지난 5월 24일에서 26일까지 '제2회 금강 역사영화제' 가 군산과 서천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영화인 게스트로 이준익, 조민호, 전수일, 제제 다카히사, 봉만대, 김수현 감독이 참석했으며 프로그램으로는 <사도>, <국화와 단두대(일본)>, <아메리카 타운>, <항거: 유관순 이야기>, <오빠생각>, <김군> 등이 상영되었으며 영화 상영 후 관객과 감독과의 대화는 지방에서 경험하기 흔치 않은 기회였다.
여건상 내가 참석한 프로그램은 전수일 감독의 영화 “아메리카 타운”이었다. 지난 12월에 전주 독립영화관에서 관람하긴 했지만, 영화 촬영기간 내내 스탭들의 작업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까닭에 어쩌면 나에게 특별한 영화라고 할 수 있기에 2번째 관람...
영화는 1980년대 군산기지촌의 사진관 집 아들 상국이라는 15살의 소년이 기지촌 여성 영림을 만나 첫사랑에 빠지고 영림은 그에게 첫 경험을 안겨준다. 이 영화는 상국이 소년성을 잃던 날들의 감각을 생생하게 담아 통해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느꼈던 상처와 쓰라린 아픔을 전하는 줄거리이다.
나는 전수일 감독의 전작, <검은 땅의 소녀와, 2007>,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2008>, <핑크, 2011>, <콘돌은 날아간다, 2012>, <파리의 한국남자, 2015>등을 경험했기에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이다. 특히 롱 테이크로 처리된 그만이 그릴 수 있는 회화적인, 영상들이 종종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인상적이었으며, 그가 그려낸 스토리의 말하지 않는 여백에서 관람자의 상상과 추론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인간들의 영혼의 성장기를 그리는 감독의 독특한 시선에서, 어쩌면 나는 전 감독 영화의 매니아 중의 하나라고 말하기에 주저함이 없겠다.
그러나 가감 없는 나의 관람평은 <아메리카 타운>은 전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편으론 그의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이 아닌가?, 처음 영화를 관람 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나의 감상평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인터넷을 셔핑하다가 2018년 6월 영화 <아메리카 타운>으로 시드니영화제에 초청받은 전수일 감독과 김민하(호주/시드니)씨와의 인터뷰를 발견했다. (이상은 인터뷰에서 발췌)
<영화 <아메리카 타운>이 관객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 자신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어요. “제가 왜 영화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죠. 근본적으로 어렸을 때 아버지 사진관에서 흑백사진을 현상, 인화하면서 이미지에 대한 신기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이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제 사춘기 때 가졌던 사진에 대한 이미지와 소년이 겪었던 첫사랑에 대한 어떤 아픈 기억, 그런 것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사회와 개인의 성장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우리 삶이 사회문제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성장을 통한 현재의 한국과 과거 80년대 상황의 한국을 견주어 비교해보는 그런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감독님에게 있어서 영화 <아메리카 타운>은 어떤 의미인가요? 또 이 영화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일단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제 자신입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제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다시 한 번 반추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측면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과 미국 간 관계에서 다소 종속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권리의 문제 등을 다시 되새김할 수 있는 점에 의미가 있어요. ‘아메리카 타운’이라는 미군 전용 클럽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데, 이제 한국인 웨이트리스는 찾기 힘들어요. 20년 전부터 러시아, 필리핀 여성들이 일을 하고 있고, 요즘은 러시아 여성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힘들었던 점은 미군 역을 맡은 엑스트라를 써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 서울에 계신 (영어) 강사들을 써서 머리를 짧게 한다든지, 웨이트리스 섭외하는 측면에서 제작이 힘들었어요.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시대 자체를 재현해내는 것이 힘은 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제 동안에 영화 관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관객 중 몇은 “아메리카 타운”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무게감이 영화에 많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위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감독은 시대를 고발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경험과 성장의 배경으로서 시대상을 가져다 쓴 것이며, 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은 자신이 왜 영화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대답을 했다.
감독의 답변을 들으며, “어린 아이를 우리의 무의식 안에 결코 완전히 죽어서 사라지지 않는 원초적 나르시시즘의 표상”이라고 해석했던 어느 작가(박준상/블랑쇼의 카오스의 글쓰기 해제에서)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마저 부정당하며 아버지의 무심함을 견뎌야했던 상국, 어머니의 남자에게 어린 시절 성폭행 당했으리라 짐작되며 기지촌까지 휩쓸려온 영림, 상처투성이의 두 인물의 세계는 시종일관 암울하기만 하다. 영화는 열린 결말로 미래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상국은 어떻게든 성장했을 것이고, 영림 또한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남았을 것이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가슴이 먹먹했고, 긴 한 숨이 나왔다. 아마도 70, 80 년대를 성장한 “나”, “우리”의 모습 중의 하나 일 것이다.
함축, 감독은 관객에게 많은 것을 유추하며, 그 여백에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어쩌면, 감상자들 자신의 성장기를 뒤돌아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무엇을 하며 미래를 맞이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은 아닐지?
5점 만점에 별 세 개를 주고 싶은, 비록 내 기대치만큼, 도달하지 못한 영화였지만, 전수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없어서는 안 될, 시작점을 되돌아보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 더불어 전수일 감독의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가게하는 , 충무로의 흥행몰이에 주눅 들지 않고, 그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철학을 구현해 갈 전수일 감독의 다음 행보를 기다리게 하는 영화 <아메리카타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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