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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진주 여행 3일 차, 속닥속닥!!!)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4. 2.

진주 여행 3일 차, 속닥속닥!!!)
 
이번 여행은 남편에게 초점을 맞추려 했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어제 오후 영화 벌새를 감상한 후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어요. 나이 탓이려나, 새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제 인생의 먼 뒤안길을 산책했죠.
 
영화 <벌새>에서 은희의 성장 과정은 주로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제 세계관은 대부분 책을 통해 더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어린 시절부터 제가 저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굳건한 성을 쌓는 일이었고, 제 경계선을 침범하려는 타인들의 태도에 촉수를 세우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죠. 그런 연유로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의 관계가 서툴렀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저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어린 시절 부모와의 적절한 관계 형성의 미비, 혹은 고등학교 3학년부터 집을 떠나 혼자 살아오면서 나름 터득한 제 모순이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한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열어 두신다잖아요. 저에게 그 다른 쪽문은 1989년부터 여행사 직원으로서 떠돌이 같은 생활을 하면서 경험했던 많은 것들이 제 인생의 밑거름이었어요, 참 다행이면서도 축복받은 인생이었죠.
 
특히 1989년인지 1990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가는 야간 열차를 탓을 때였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후 우리나라는 막 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을 때였으므로 그 열차에는 서양인들과 중국, 일본, 타이 여행객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침대칸으로 이루어진 열차는 밤에 방콕 역을 떠나 아침 치앙마이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는데, 서툰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주변의 젊은 여행객들과 대화는 꽤 웃기기도 했고요. 철로 주변을 따라 태국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어요. 어스름하게 밝아오는 이른 아침, 맨발의 소년, 소녀들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간이역마다 먹을거리를 판매하기 위해 열차를 오르내리는 풍경, 저는 “와, 인간들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서서히 떠오르는 남녘의 태양 빛에 물들은 풍경들이 제 가슴으로 밀물처럼 밀려 들어와, 벅찬 감동을 이루며 멜로디를 만들고 찬미하지 않을 수 없는 삶이구나, 그런 생각.
 
그 후 싱가포르의 센토사 섬의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불타오르다 서서히 바닷속으로 사라지던 남쪽의 태양, 남태평양 피지에서 망망대해를 앞에 두고 달리던 낚싯배에서의 감동, 뉴질랜드의 남섬 퀸즈타운에서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버스 여정, 로마에서 스위스를 향해 가던 버스 투어 중 만났던 많은 유적들, 특히 캐나다의 캘거리에서 밴프, 로키로 가던 중, 살아있는 곰을 만나고, 석회암에 물들 에메랄드빛 호수들과 주변의 웅장했던 산림과 로키의 빙하 등등, 여행을 통해 제 세계관은 형성되었던 것 같아요.
 
미숙했던 제 인간관계는 아직도 깨어져야 할 많은 부분이 분명 있지만 제가 몸소 경험했던 여행을 통한 세계관이나 인류관은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웅장하며 타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면 지나친 자만일까요?
 
여하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잠든 밤, 남편의 코골이 때문에 깼는데, 이참에 증거를 남겨야지 막 핸드폰으로 남편의 코골이를 녹음하다가 그만 핸드폰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ㅠㅠ
 
육중한 몸에 또 고혈압 등 지병이 있는 관계로 저는 몹시 코를 골아요. 예민한 남편은 잠을 잘 때 저의 뒤척임이나 코골이 때문에 꽤 고민스럽다고 하더라고요. 해서 저는 남편이 집에 오면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자는데요, 여행을 오면 한 침대에서 기거할 수밖에 없어 저까지 신경이 예민해지거든요. 또 웃기게도 남편은 자신은 절대 코를 골지 않는다고 우겨요, 아무리 자기도 코를 곤다고 해도 도무지. 해서 이번엔 증거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우아, 실패!!! 언제든 꼭 증거를 잡고야 말겠다, 다짐하는 이른 아침,
 
 

 
예의 바른 남편이 숙소 화장실에서 맨손 체조를 하는 모습이어요. 자기 딴에는 아내를 깨우지 않겠다는 배려였겠지만 저는 그만 웃음이, 참 부부의 모순!!!
 
어제는 오전 중에 촉석루와 진주성을 3시간여가량 산책하며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었어요. 전날 석양 무렵에 들려 잠깐 좋은 느낌만 받았는데 실제로 진주성을 따라 걸어보니 풍광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역사에 민감한 편이 아니라도 충분히 그 당시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고요. 남강을 따라 널찍하게 펼쳐진 공원은 참으로 근사했어요.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ㅠㅠ
 
울고 싶어요. 어젯밤 카메라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내 컴퓨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를. 어제 촬영분이 몽땅 날라 갔어요. 휴대폰에 남아있는 몇 장이 고작, 이번 여행의 최대 참사에요. 어쩌겠어요.
 
 
진주성에 이어 진주시립 이성자 미술관으로 갔는데요. 생각보단 작품이 많지 않아 좀 실망을 했어요. 하지만 인구 34만의 진주시와 인구 26만을 겨우 넘는 군산시를 이리저리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당 김은호 화백부터 운보 김기창과 그의 부인 박내현 화가 까지 잠시나마 군산에서 활동했다던데 그분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상설관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이잖아요, 물론 친일 행위같은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작품은 또 작품이고요. 이곳 진주성 촉석루에도 김은호 화백이 그렸던 논개상이 전시되었다 친일 행적 때문에 철거되었다는 사실에 좀 마음이 거시기 하더군요. 군산에는 또 하반영 화가님 같은 특출한 화가분들이 계실텐데 하루빨리 군산의 인물들을 찾아 그분들의 작품들을 시민뿐만 아니라 일반 여행객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추상화가 이성자 미술관

 

 
 
 
오늘은 점심을 먹고 저는 군산으로, 남편은 연수가 있을 부산으로 각각 떠나야 해요. 남편을 배웅할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는 중, 다시 진주성에 들러 아침 산책을 하며 몇 컷은 건져야겠어요.
 
 
제가 쓰고 있는 “니체”라는 동화 첫 구절이 이래요.
 
“할아버지, 제 가슴은 왜 이리 항상 뜨거운 거죠? 라고 물어요. ”넌 뜨거운 곳에서 온 바람에 의해 태어났으니까.“라고 할아버지가 대답해요.
 
이 글을 써놓고 몇 년이 흐른 지금 꺼내 보니, 헐, ”뜨겁게 살고 싶은, 지나치게 뜨거워 엉거주춤 제 자세를 취할 수 없었던“ 바로 제 고백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어요. 이제는 그 뜨거움에 적절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 만큼은 성장한 것 같아요. 적당한 거리에서 자신을 관조하며, 냉철한 이성과 더불어 따뜻한 가슴으로 마지막으로 꽃피울 나의 불꽃들을 위해 나아가야죠.
 
”나의 니체야 기다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