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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에세이스트의 책상/배수아/문학동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3. 5.

나는 소설을 쓰기를 원했으나, 그것이 단지 소설의 형태로만 나타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무엇이라고 불리는가 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배수아의 고백처럼 오늘의 책 에세이스트의 책상(문학동네)”은

 

오랜 시간 오직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서 고독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모습인 것처럼 보이는 M과 나의 일상과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M과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핵심은 또렷한 스토리나 사건이 아닌 M이 함께한 시간들, 그 시간을 가 기억하는 방식이다. 마치 M을 정신적 질료로 하여 그에 대한 회상에서부터 풀려나오는 정신, 언어나 사랑과 음악, 죽음에 대한 생각과 예술 텍스트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펼쳐놓는 에세이적인 형식을 띤 장편소설이다.

 

 

M은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았다.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나는 M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내가 M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으며, 그 기회를 영영 잃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M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았다. M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면 나는 군중 사이를 산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말을 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M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었다면 내가 수미를 알 수 있었을까? M이 있으며, M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기 전의 M의 눈동자, 그 사로잡힌 눈동자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디서 M을 찾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187 188)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은 현실 같지만 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M이란 존재는 작가의 다른 책, 작별들 순간들 속의 베를린 서가의 주인과 같은 상상 속, 어쩌면 음악이나, 언어, 혹은 글쓰기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닐까 한다. 작가와 M 사이의 거리는 일정하지 않다. 때론 현실 속 인물인 것처럼, 때론 작가의 가상 속,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경지의 간극을 메워가기 위한 추상적 개념이 이 책의 분위기를 모호하게 이끌며 다소 몽환적인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배수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을 펼쳐놓는데, 그 매력은 읽고 상상할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선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상 앞에서 나는 계속해서 쓴다. 페터 한트케의 말처럼, ‘단지 글을 쓰고 있을 때만이, 나는 비로소 내가 되며 진실로 집에 있는 듯이 느낀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207)

 

오늘의 책, 에세이스트의 책상은, 글을 쓰고 있을 때만이 진실로 집에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배수아님의 다음 글을 기다리게 만드는, 배수아 월드의 한 멤버가 된 것이 얼마간 나에게 은밀하고 신비한 즐거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책 중에서)

책과 언어가 M에게 절대적인 세상의 징표였다면, 음악은 접근할 수 없는 정신이자 종교이고 영혼 그 자체였다.(8)

 

 

 

, 더 많은 음악, 하고 그 목소리는 말했다. 보통 수량을 나타내는 많다, 라는 표현은 이 경우에 적절한 것이 아니다. 더 아름답다 혹은 더 슬프다, 더 멀다, 더 죽어 있다, 더 혼자 있다, 라고 표현할 때처럼 그 목소리는 말했다. ……한 음악. 더 죽어 있다, 라고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이기 때문이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단지 둘 중의 하나만을 가질 수 있는 문제이다. 음악은 절대적인 것이고 죽음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죽음이나 덜한 죽음이 존재하지 않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영혼의 등가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9)

 

 

 

나는 때때로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 깊은 감정이란 우리 인생에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17)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고 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났으나 결국은 자신에게서조차 벗어나지도 못했던 그 여행에 대해서. (28)

 

 

 

정신적 빈곤과 경박함은 곧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은 M의 생각이었다. 진지한 시선이 결여된 정신은 부패하는 고기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란 실제로 구체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기에 앞서서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 삶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점유한다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말한다면,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84)

 

 

 

언어를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은 자국어의 경계를 넘어서서 사고하는 일이며(외국어를 배운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성장한다는 것은 단지 언어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며 그것은 단지 언어만이 사고(소통이 아니라)의 명확한 도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M의 생각은 환영이었다. M은 자국어가 단지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는 경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설사 외국어에 능통하다 하더라고 역시 의식의 감옥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내가 M과 서로 다른 자국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졌다. (106)

 

 

사랑은 쉽게 부정되고, 그 정의는 항상 애매모호함 속에 갇혀 있고 천박하고 상스러우며 무책임하고 뻔뻔스러우며 변명을 좋아하고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끈질기게 발언의 기회를 노리면서 모양새를 망가뜨리고 히죽거리고 킬킬거리고 새끼 밴 암컷보다 더 배타적이며 게다가 그 장황한 목소리가 부끄럽게도 한창때의 장미꽃보다 더 빠르게 잊히고 만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나간 다음에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었다.(136)

 

 

슈베르트 애호가는 계속해서 우리들에게 말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진정으로 발견하게 된 팔 년 전 어느 날 이후 그는 사랑하는 것, 그 마음의 행위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으며 시간의 풍경 위에 그대로 허공에서 멈추어버린 노란 비단 의상을 입은 니진스키가 별들이 되었으며 하늘에서 빛나는 그 별빛들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 빛을 따라서 그 자신도 마침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머나먼 우주의 먼지 속으로 흘러가버렸다고 (155)

 

 

 

나를 깊게 관통했던 것은 소유욕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것은 어디에서 오며 과연 용납될 수 있는 것인가. 아름다움, 섬세함, 배려와 관용, 은둔된 평화, 글을 읽고, 음악과 함께 그리고 쓴다…… 그러면서 마침내 찾아낸 영혼의 일치, 그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배반하고 파괴해버릴 만큼 그것은 정당한 것인가. 인간은 왜 소유욕을 가지며 그것이 충족되지 못할 때 짐승처럼 분노하는 것일까. 그 분노가 수천 가지의 음 중에서 긴 시간 동안의 고뇌 끝에 얻어진 단 하나의 극치의 선율, 그 선율의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짓밟고 모욕하며 천박한 표현으로 스스로를 저주하고 미친 닭처럼 제 살을 쥐어뜯는 추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왜 인간은 그대로 방관할 수밖에 없는가, 왜 인간은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소유욕은 어디에서 오는가. 왜 그것은 마음속의 긴 여정의 사색에서 얻은 모든 윤리적인 질문들에 침을 뱉고 조롱하는가, 그것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그런 것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인간이 이루어내는 다른 일들이 과연 가치를 평가 받을 만한 자격이라도 있단 말이낙,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으며, 단지 육체적인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자극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 M은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듣지 못할 것이나 나는 아니었다. (157 158)

 

 

시간이 지날수록 두 가지 상반되는 욕구가 꿈으로 나타났다. 그 하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 일이란 다름 아닌 고립된 삶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므로 더 이상의 사교는 필요하지 않았다. (174)

 

 

 

 

M은 마치 그림이 전혀 없는 책과 같았다. 내가 영혼을 바쳐 읽지 않으면, 나는 M을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내가 M을 일생에 단 한 번밖에 만날 수 없으며, 그 기회를 영영 잃었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M에 대한 그리움을 멈추지 않았다. M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다면 나는 군중 사이를 산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말을 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M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없었다면 내가 수미를 알 수 있었을까? M이 있으며, M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지배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기 전의 M의 눈동자, 그 사로잡힌 눈동자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디서 M을 찾아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187 188)

 

M은 처음부터 내 마음을 끄는 유형은 아니었다. 만일 그런 유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단지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어떤 점이 M의 몸짓, 눈길, 태도에 분명히 스며 있었다. 그것은 압도당하고 싶은 욕구와 동시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속성이며, 의지로 이루어진 관능과 동시에 그것의 자발적인 차단으로 보이는 성질이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오직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서 고독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모습인 것처럼 보였다. (205)

 

 

 

책상 앞에서 나는 계속해서 쓴다. 페터 한트케의 말처럼, ‘단지 글을 쓰고 있을 때만이, 나는 비로소 내가 되며 진실로 집에 있는 듯이 느낀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것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