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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제임스 설터 "가벼운 나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3. 1. 6.

 

처음 작가 제임스 설터를 만난 것은 고독한 얼굴이라는 장편 소설이었고 그 문체에 반해 소설을 쓰고 싶다면이라는 산문집에 이어 아메리칸 급행열차라는 단편소설을 읽고 장편 가벼운 나날을 연이어 읽었다.

 

 

 

 

단편 아메리칸 급행열차의 문장들에 매혹되어 원어로 읽어보며 필사하려고 알라딘에 신청을 했는데 절판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쉽지만 가벼운 나날을 읽고 나니 비록 장편이지만 원어로 도전해보고 싶은 가당찮은 용기가 생긴다. 그만큼 제임스 설터에게 매혹되는 중이다.

 

 

 

 

 

말하라, 기억이여에서 나보코프는 우리는 단지, 두 영겁의 어둠 사이에서 갈라진 틈을 통해 잠시 새어 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늘의 소설 제임스 설터의 소설 가벼운 나날(마음산책)”에서 이 빛과 같은 존재인 주인공 네드라와 비리의 결혼 생활을 빛과 시간에 대비시키며 빛은 그들의 삶을 아름답게 하지만 시간은 그들의 삶을 시들고 초췌하게 그리며 보여준다.

 

설터는 파리스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은 결혼 생활의 마모된 비석들이다. 그 안에 있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과 아름답지 않은 것들, 결혼 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시들게 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얘기다. 결혼은 수년, 수십 년씩 지속되지만 결국에는 기차에서 스텨 지나가는 풍경과 비슷하다. 평원이 있고, 늘어선 나무들이 있고, 저물녘 창에 불 켜진 집들이 있고, 어두워진 마을과 기차역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종이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모두 사라진다. 다만 멸하지 않을 순간들, 사람들, 장면들이 있다. 동물은 죽고, 집은 팔리고, 아이들은 자라고, 그 부부마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속에 시가 있다.“

 

 

 

 

 

숨 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깊은 숨을 내쉬느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소설이라는 문학 평론가 신형철님의 문구가 그대로 와 닿는 셜터의 가벼운 나날

 

경이로울 정도의 섬세하면서도 서정적인 묘사들, 상상된 현실 속에 존재하는 내재적인 리듬으로 구성된 문장들,

 

긴 오후처럼 지나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듯 빛나던,

가벼운 나날(옮긴이의 말)“

 

그녀가 한때 그리도 확신했던, 영원히 잃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이젠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사랑으로 빛나던 날들의 맛과 그 부풀어 오름, 그것만 있으면 될 때가 있었다. 네드라가 말했다. ”그건 환상일 뿐이야.”(427)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났다. 긴 하루였고 끝없는 오후였다. 친구들은 떠나고 우리는 강변에 서 있다.”

고 작가는 소설을 맺는다.

 

어쩌면 환상일 뿐인, 이 우주의 영겁에 비하면 찰나처럼 짧은 순간일 것 같은 우리의 인생을 가감 없이 되돌아보고 현재를 혹은 미래를 어떻게 살까, 가만가만 귀띔해줄 것 같은 소설, 어쩌면 그 해답은 이미 우리 자신 속에 있다고, 다만 발견하고 선택해 누리라며, 이 무의미한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 의미의 여정에 몰두할 수 있을 때 주어지는 것이라고 토닥토닥 등이라도 두드릴 것 같은 소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삶이란 것에 대한 연민, 아니 좀 더 솔직 하자면 내 삶에 대한 연민이었다. 삶이라 여정에 빛나던 순간들과 그 시간들이 물밀듯 몰려왔다, 썰물처럼 물러난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겨울 하늘은 시리도록 맑았고 나는 무릎에 책을 내려놓은 채 그저 오래도록 바라보기만 하였다.

 

 

마음산책의 제임스 설터 시리즈를 몽땅 구매하고 싶은 이 뻘쭘한 용기를 어떻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