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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산티아고 감보아 소설 "밤기도", 현대문학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2. 7. 19.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사실주의와는 거리를 둔, 작가 여행자로 분류되는 콜롬비아의 젊은 작가 산티아고 감보아(1965년생)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살펴보는 고독한 존재뿐만 아니라 여행과 이주와 망명의 은유를 사용하여 작품을 형성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해외를 떠도는 방랑자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작품은 보코타, 마드리드, 베이징, 방콕, 예루살렘등을 배경으로 삼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오늘 소개하는 책 밤기도2019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첫 번째 번역서로 출판되었다.

 

 

 

 

모든 도시에는 아주 분명하고 독특한 냄새가 있다. 하지만 극심한 스모그로 뒤덮인 방콕에는 그 냄새가 숨겨져 있고, 대부분 낮에는 그 냄새를 감지하기도 어렵다. 마침내 밤 깊은 시간에 그 냄새가 나타날 때면, 도시는 평온하고 고요하다. 너무나 분명한 그 물체는 공중을 떠다니고, 꾸불꾸불한 거리를 뛰어다니며, 가장 외딴 골목길로 들어간다. 방콕의 수로에서는 음식을 짓거나 빨래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 물체는 수로의 고인 물에서 나오는 냄새일 수도 있다. 혹은 차이나타운의 마른 생선 가판대나 파트퐁 시장과 실롬 거리의 꼬치 튀김과 뜨거운 튀김 음식에서 나오는 냄새일 수도 있다. 혹은 커다란 차투착 시장의 버들가지 우리 안에서 기다리는 산짐승의 냄새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도시를 관통하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질병처럼 눈에 띄지 않게 우리를 공습하는 시커먼 차오프라야강의 수증기에서 나는 냄새일 수도 있다.

오늘은 비가 억수처럼 퍼붓는다. 강물은 몸부림치듯 출렁거리고 무모하게 강을 오가는 삼판과 카누들을 먹어치울 기세다 이것이 샹그릴라 빌딩의 오리엔탈 호텔 14층에 있는 내 방의 정문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샹그릴라Shangri-La라는 이름은 천국을 의미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고독이나 아니면 단순히 기다림과 같은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미 날이 저물었고, 나는 얼굴을 창문에 대고서 진을 마시며 빗물로 일그러진 풍경을 바라본다. 차오프라야, 방콕의 불빛, 푸른빛의 고층 빌딩들, 먹구름과 주변을 비추는 번갯불, 그리고 잔인한 대도시를.

에어컨을 켜자, 습기와 녹이 뒤섞인 강한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몇 시나 되었을까? 아마도 8시쯤 되었을 것이다 나는 곧 내려가서 저녁을 먹고, 진을 몇 잔 마실 것이다. 나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지만(얼마 전에 마흔다섯 살이 되었다), 아직도 우연을 믿는다. 우연을 긍정하고 사유하는 이런 주사위 던지기 같은 사고방식은 알지 못하는 도시에서 술을 마시려고 밤에 나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그런 모험을 어색해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술병을 들이켜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도시를 배회하기를 좋아하고, 그런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는 잠들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초조한 생각을 역한 공기 속으로 내뱉는 것 말고, 지금 내가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다시 말하면, 기억한다. 나는 기억과 약속했다.

나는 기억하겠다고 마음먹고서 방콕으로 왔다. 몇 년 전에 이 도시에서 경험했던 것을 다시 보고자 했다. 비록 다른 빛 속에서 보게 될지라도 말이다. 때때로 시간은 빛의 문제다. 세월 이 흐르면서 몇몇 모습은 빛나지만, 반대로 어떤 것들은 이상한 불투명한 색으로 뒤덮인다. 실제로 그것은 같지만, 더욱 강렬하게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말 어떤 때는 그걸 움켜쥘 수도 있을 것처럼 생생하다. 하지만 왜 그런지 나는 잘 모른다. 그저 단순한 소망이나 단순한 말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바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내 목표다.

무언가 때문에 물론 나도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아마도 충동, 혹은 창의적 열정, 아니면 단순히 오래된 슬픔일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글로 써서 점검해야 한다고 느꼈다. 즉 처음에 나를 방콕으로 오게 했던 사건을 말이다. 어느 도시에서 곤란한 상태에 빠진 오래된 이야기,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향해 열리는 이야기다. 그 시절에는(내가 기억하고자 하는 시기에는) 모든 게 달랐고,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보다 더 낫지도 않고 더 못나지도 않은, 단지 다르고 조금 더 젊은 사람이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15 17)

 

윗글은 산티아고 감보아의 소설 밤기도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소설의 무대가 되는 방콕에 대한 묘사이다. 그립고 그리운 도시, 방콕. 2의 나의 고향, 하염없이 그 시절과 그곳이 그립다.

 

소설 밤기도는 태국 방콕에서 한 남자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작가인 그는 몇 해 전 인도 델리에서 영사로 있던 당시, 방콕에서 콜롬비아 청년이 대량의 마약을 소지한 죄로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태국에 콜롬비아 대사관이 없는 까닭에 델리의 영사인 그가 이 문제를 담당하게 되면서, 방콕 교도소의 뜨겁고 더러운 공기 속에서 청년 마누엘과 처음 만난다. 그리고 국립대학 출신의 젊은 철학자인 청년이 누나 후아나를 찾아 이곳까지 흘러온 긴 사연을 듣게 되고 마누엘 대신에 영사인 그가 후아나를 찾아 마누엘과 만나게 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한 주 내내 생각에 잠겨 보냈지만, 파티와 후아나의 친구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해의 마지막이자, 학교가 곧 끝날 시기였고, 그래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나와 후아나의 삶은 어떻게 될까? 등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그림은 내게 힘을 주었지만, 현실은 내 앞에서 더 크게 열렸고, 내가 떠맡아야 할 어두운 공간은 너무나 컸습니다. 나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답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그 모든 빈 공간과 그 질문들을 미래로 이끌고 싶었으며, 미래 속에 나 자신을 투영하고 심지어 선견지명의 힘도 갖고 싶었지요. 나는 셀링을 읽었고 나 자신의 경험과 행운, 운명과 선과 악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나는 내가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고 느꼈으며, 따라서 그런 현실을 이해하고, 계속 살아나갈 수 있는 조그만 이론의 밑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었지요. 나와 누나에게 일어나고 있던 것은 세상의 커다란 악과 비교하면 아주 하찮고 작은 것이었지만, 우리는 각자 개인적으로 그런 것을 경험합니다. 바로 거기서 열정의 부족이 나타나기도 하고, 삶과 끔찍한 충돌이 벌어지기도 하며, 단순하고 순수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무엇을 생각해야 했을까요?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농촌의 들판으로 가서 고랑 사이에 앉아 종을 치는 소리가 들리길 기다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162 163쪽 마누엘의 고백)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 며칠간에 걸친 미국의 소년 홀든 콜필드의 성장소설이라면 오늘의 소설 밤기도는 콜롬비아라는 나라와 정치적으로 어수선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청년 마누엘과 그의 누나 후아나의 어린 시절부터 삼십을 목전에 두고 멈춘 성장소설(모든 소설을 일종의 성장소설로 보는 관념에서 출발한)이라고 애써 말하고 싶다. 비록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고 말았지만.

 

때때로 나는 후아나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집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이를 품에 안고서 세심한 눈으로 어둠 속에서 보살피면서 자장가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 목소리는 희미한 중얼거림에 불과했다. 힌두스탄의 하늘을 가로질러 마누엘의 귀에 이르고자 하는 부드럽고 조그만 숨소리였다. 아마도 마누엘은 그 시간에 이미 그녀가 올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청년은 방콕의 더럽고 축축한 감방에 있고, 그의 누나는 테헤란에서 사랑하지 않는 남자 옆에 누워 자는 척한다.

, , .

밤 기도.

그들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생각하는 이 기도. 그것은 마음속에서 울리는 가슴이 찢길 듯한 비명과 고통과 사랑의 외침이다. 그것은 두 개의 조용한 기도이다. 나는 그 이상한 폭풍우 속에, 그들이 만들었지만 한 번도 살아보지 못했던 행성과 가까운 곳에 있다. 이 두 연약한 인간은 함께 있으면서 잊히기를 염원하지만, 삶은 마치 벽처럼 그들 사이로 끼어든다.(280쪽)

 

서사는 약간 스릴러적 묘미가 있는 매춘 조직, 마약과 군사정부의 부패 실종자를 찾기 위한 시위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남매간의 사랑에 관한 것이고 감보아는 포장을 잘하는 소설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 감보아는

 

나는 모든 희망과 맞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진실과 거짓말에서 순수하겠다고 약속하며,

모순된 말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 작가는 절대 안 되겠다고 약속한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다시 쓰고 수정하며 지우고 욕할 것을 약속한다.

주님, 이 모든 것을 백지와 전쟁을 벌이며

순직한 작가들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주님, 저는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500단어만 주시길 바라옵니다.

 

라고 매일 아침 이런 기도를 반복한다고 한다.

 

나도 매일 아침 반복할 수 있는 기도를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