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들

콘돌은 날아간다/ 전수일 감독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5. 3.

 

콘돌은 날아간다 포스터

 

 

 

  “신부님, 생각하는 죄도 죄가 됩니까? 저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거든요. 근데 그 애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어서 그걸(자위) 하게 돼요. 그걸 하게 되면 그 애한테도 미안하고 진짜 후회되는데 그애 생각만 하게 되면 또 하게 돼요.”

  “괜찮아, 자위는 자연적인 현상인데 뭐. 횟수를 줄이고 공부에 좀 더 치중하자.”

  복사 도마는 박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자신의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한다. 그런 도마의 마음을 아는 박신부는 도마의 죄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해준다.

  어느 날 박신부를 따르는 중학생 영미가 성폭행을 당해 살해되고 그 범인은 박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던 복사 도마였다.

  “도마야, 정말 네가 그랬니? 도대체 왜 그랬어? 신부님한테 말해봐. 용서해줄게.”

  “용서? 누구한테. 신부님은 왜 그랬는데?”

  “무슨 말이니?”

  “영미한테. 왜 그랬냐고? 영미 매일 성경 쓰고 필요도 없는 성당일 시키고 신부님은 항상 영미를 성당에 묶어두고 가두려고 했잖아요. 애완동물처럼. 영미를 옆에 두려고 그런 것 아니냐고? 영미를 신부님한테서 구해주고 싶었는데. 바보 같은 영미는 신부님만 믿었어. 신부님은 뭔데?”

  복사 도마는 박신부에 대든다.

  복사 도마와 박신부의 이야기를 듣던 영미의 언니 수현은 박신부에게 위로받았던 자신과 믿고 있던 박신부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온다.

  “이곳의 하늘은 갇혀있네요. 저처럼. 신부님 물어볼게 있어요. 신부는 누구에게 고해하고 용서받나요? 집에 자주 못 들어오는 저 때문에 영미는 저보다는 신부님을 많이 따랐어요. 그래서 신부님을 고맙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너무 후회가 되어요. 영미한테 너무너무 미안하고 당신이 너무 싫어요. 그리고 나도. 영미가 우릴 용서해 줄까요? 하지만 전 용서할 수 없어요.”

  박신부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친구인 최신부를 찾아 남미 페루로 떠난다. 그곳에서 날치기를 당하며 칼에 찔리기조차 한다. 이러한 고난을 통해 박신부는 자신의 죄의식을 조금은 덜 수 있을까? 박신부는 결국 고생길 끝에 최신부와 만나게 되고.

  “나 고해성사 좀 봐줄래?”

  요청한다.

  화면은 박신부의 표정을 비추며 오랫동안 정지해 있다가 엔딩 크레딧을 올린다.

 

 

 

<나의 감상>

 

 

 

1. 조재현보다 배정화의 연기가 압도적으로 좋았다.

   물론 연기파 배우인 조재현의 연기도 좋았지만 배정화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심리 묘 사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마지막 장면, 최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봐 달라고 하는 박신부의 표정을 오랫동안 못 잊을 것 같다.

 

 

2. 영화에서 배경들은 각각 어떤 상징성을 가지기 마련인데 수현의 집 벽에 걸려있는 풍경 화는 어떤 상징일까?

   그냥 그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박신부와 수현이 있었던 모텔방의 액자 속 그림의 상징성은?

  익숙한 그림인데 화가를    찾지 못하겠다. 루벤스 그 림인가 아무리 찾아도... 알고 싶다.<이 호기심.ㅎㅎ!>

  영화 속의 상징성을 찾는 재미 또한 영화를 즐기는 한 가지 덕목이다. 감독이 숨겨 놓은 배치물의 상징성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이란?

 

3. 육체를 통해 위로 받고자 하는 수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너무 화면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장면은 적당할 때 더 임팩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조금만 과해도 영화의 질을 의심케 한다. 왜 박신부는 수현의 음부를 뚫어질 듯 바라보았을까? 그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

 

4. 박신부가 페루에 도착하기 전까지 화면도 느리고 서사의(영미와 박신부, 박신부와 수현, 박신부와 도마)

   속도도 지루해 성질      급한 관객은. ㅎㅎㅎ 페루에서 성당 문이 열리자 비로소 답답하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5. 인간의 죄의식에 대한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흔히들 죄의식을 강조하는 풍조는 사람들에게 감정적인 삶을 불신하게 하고 창조적인 삶 을 후퇴시키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자율성을 억압한다.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오고 이 결핍을 일으키는 욕망은 우리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내적 힘의  원천임에 죄의 식의 제기는 인간 삶의 본질을 부정케 한다는 면에서 인간 본래의 실존에 마이너스적 요 소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또한 중학생 때 전도사님 아들을 짝사랑하며 교회에 가는 일이 하나님을 보 러 가는 것이 아니고

  짝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가, 괴로워하며 죄 사함 을 받기위해 부흥집회 때에 정신병자처럼 방언을

  내 뱉던 일이 생각나 혼자 빙긋이 웃었 다. 지금은 그저 추억에 불과하지만 늘 성경공부를 통해 받았던 어떤 교육들은

  지금까지 도 내 죄의식을 부추기며 나를 멈칫거리게 한다. 난 죽을 때까지 절대 종교를 가지고 싶 지 않다.

 

6. 신부님, 천국이란 것은 정말 있는 거죠?

   천국은 내 일상 속에 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찾 을 수 있을까? 그렇게 믿고 싶다.

 

7. 당신의 마음으로 용서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바흐의 마테수난곡 중, 아리아부분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다. 종교를 가지고 싶지 않지만 난 지극히 종교적이다. 이 이율배반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기심의 발로?

  오늘도 나는 나의 오만과 알게 모르게 지은 죄 때문에 용서를 구한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씨네21|2013.05.29.

"신부는 누구에게 고해받고 용서받나요?" 검은 옷의 신부는 묶인 곳이 많다. 죄 많은 지상에, 사람들의 평판에, 영적 갈구와 육체적 욕망에도. 어느 날 가족 없이 늘 성당에서 지내던 여중생 연미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다. 전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박 신부(조재현)와 늘 집을 비웠던 언니 수현(배정화)은 연미의 죽음에 해 죄책감을 느끼며 서로를 위로하다가 깊은 관계까지 맺게 된다.

영화는 박 신부를 따라가지만 우리는 그의 경험과 내면 전부를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의 카메라워킹은 고요하며 우리는 프레임 밖의 상황들, 좀더 구체적인 단서들과 의혹들을 알아낼 수 없다. 파드레 최에게 온 편지의 내용, 박 신부의 과거, 그가 실제 연미에 대해 품은 감정과 욕망의 정도 등은 보이지 않으며, 사실상 그것들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도 아니다. 영화를 관습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많은 단서들은 아마도 프레임 밖에 있을 터인데,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어딘가, 하지만 그 모서리가 다 보이지 않는 그곳을 심리적으로 제시해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한다. 결국 < 콘돌은 날아간다 > 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중요치 않다. 실제로든 영적으로든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하다.

전수일 감독의 < 콘돌은 날아간다 > 는 소재상 타락과 일탈에 관한 영화로 보이기 쉽지만 그 본질은 치유와 구원에 대한 영화다. 그렇기에 영화는 한국이면서 페루이면서 우리 내면의 어떠한 풍경이기도 한 그곳으로 날아간다. 연미의 죽음 뒤 박 신부는 연미의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배회하는데, 우울하게 얽힌 그 길들은 마치 박 신부의 내면의 지도와 같으며 이후 페루 골목길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 콘돌은 날아간다 > 는 영혼의 구원을 위한 편력기다. 고요하고 성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