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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소설화

밀월 4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12. 21.

  “필시, 그 씨팔 놈의 영감, 곽일표, 그 놈의 새끼. 곽중근. 잊지 말거라.”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다는 믿을 수 없었지만 태풍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태풍의 확신은 내 의식을 깨웠다. 그제야 나는 봉렬이 들려준 말들을 기억해냈다. 영문도 모르게 끌려가 닭장 같은 트럭에 태워졌을 때 희미하게 웃으며 주시하고 있었던 곽중근의 얼굴이 떠올랐다. 공숙희가 죽었을 때 사건 현장을 지휘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공숙희와 이영순이 근무하던 ‘플레이보이’라는 클럽의 주인이었던 곽일표의 아들, 곽중근. 공숙희의 친구 이영순 사건 당시 불같이 일어났던 데모대를 향해 사정없이 곤봉을 휘두르던 젊은 경찰, 바로 그 얼굴 이었다. 그때 나는 그를 향해 사정없이 돌격해 죽도록 패주었고 결국 2년 동안을 차디찬 감옥에서 지내게 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어린 시절 옷을 벗겨 쫒아냈던 미면의 독립군파, 바로 그놈이었다. 철없는 시절, 놀이처럼 치고 싸우던 것 뿐이었는데. 나는 믿기지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분명 진실이었다. 그리고 태풍은 죽었다.

  “현석아, 혹시라도 내가 죽으면”

  태풍은 목이 매여 한 참을 망설이다 말했었다.

  “내 복수는 니가 해라.”

  태풍이 유언처럼 남긴 말들이 버겁게 느껴졌다. 어떤 부류에게 분노는 살아가는 힘이 되지만 어떤 부류에게는 지고 가야할 힘겨운 부채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복수란  지고 싶지 않은 짐 같은 것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복수 같은 것에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태풍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지나간 일에 더 이상 연연하고 싶지 않았다. 늘 내 인생을 꼬이게 하는 것은 과거의 일이었고 이제 비로소 나는 인생의 진리의 한 조각을 알아가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차곡차곡 내 내부에 쌓일 뿐이었고 분노보다 더 한 혼란들이 내 인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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