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낮은 말소리에 새벽잠을 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존재, 오래 전 가슴 속에만 묻어 두었던 인물은 단연 태풍이었다.
하찮은 건달 조직의 보스, 특이한 전력을 덕지덕지 붙은 그의 불퉁거림은 며칠 내내 내 신경을 건드렸다. 그러니까, 딱 3년 동안 썼던 글들을 한꺼번에 방출하고 밀물 듯 밀려오는 그 쓸쓸함을 견뎌내기 위해 내 마음의 저변에서 나는 먼저 그를 초대했는지도 모른다. 아직 형성화되지 못했으나 오랫동안 내 마음 언저리에서 서성이던 그의 기다림이 비로소 텅 비어버린 마음의 빈 공간으로 자리를 잡을 필연적인 순서였을지도. 초대를 했든, 아니면 스스로 방문을 했든 이제 나는 그를 만날 차례이다. 어떤 식으로 만나야 할까, 이리저리 뒤척거리며 말을 걸기 시작한다. 부윰한 새벽빛이 창문 틈으로 스며든다. 낮게 저미는 발자국소리에 아침이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비를 몰고 오는 해무를 뚫고 입항하는 희미했던 오색 깃발을 확인하는 순간처럼 반짝 나를 어지럽히던 것들을 확인하는 야릇한 순간이다.
"일제 시대 10살을 갓 넘은 태풍은 순창 어딘가에서 일본인 순사를 때려눕히고 군산으로 피신을 왔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인 순사가 휘둘렀던 칼에 의해 눈 밑의 상처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태풍의 훈장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디 그뿐인가, 인공시절엔 청년 학도병으로 나라를 위해 한 몸 헌신했으며 인공 후엔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 대장으로서 한 몫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비록 이 모든 이야기들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군산 시내를 주름잡고 있는 태풍이란 존재가 또래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음엔 분명했다. 비록 왜소한 체격에 살집이 있어 뒤뚱거리던 태풍이었지만 눈 밑의 칼자국과 옆으로 째진 날카로운 눈에서 흘러나오던 광선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오발탄과 같은 내 처지가 태풍의 그늘에서라면 뭔가 수가 날 것 같은 기대감에 들떴다. 나는 그 시절 내 나름의 인생 최대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다행스럽게 첫눈에 태풍은 나를 자신을 부하로 받아들였다. 그에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암담하던 내 현실에 비친 한 줄기 햇살이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태풍은 김진규나 최무룡의 흉내를 내며 멋진 대사를 읊조렸다. 가끔씩 앞뒤가 맞지 않는 대사조차 그럴듯해 보였다. 독하다고 소문이 난 태풍은 어렸을 적 헤어진 식구들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말이 느려지고 목을 큼큼 거렸다. 그런 태풍이 나는 싫지 않았다. 아니 한 편으론 진짜 형님 같은 은근함도 있었다. 태풍 또한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소위 자화자찬을 하자면 묵직한 면도 있지만 청하면 들려주는 유행가의 운치가 가슴을 녹여주는 멋이 있었다. 뿐 만인가? 뜻을 알 수 없는 내의 양키노래는 한 참 군산의 미군 부대 문화가 시작되던 때에 걸맞게 유행의 첨단을 걷게 했다. 태풍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그린필즈였다. 멋들어진 양키 발음을 들으며 내가 들려 준 노랫말처럼 푸른 초원인 고향을 상상하는지, 최태풍은 아련한 추억 속에 잠기곤 했다.
태풍의 고향은 순창 골짜기, 섬진강이 흐른다는 진메라는 마을이었다. 태풍의 고향이야기는 얼개가 맞지 않았다. 푸른 초원이 망망했다던가, 섬진강을 끼고 앞산이 턱 숨을 막게 했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넷까지 그곳에서의 추억이 태풍에게는 제일로 행복한 시절이었던 듯 최태풍의 목구멍에 양주가 쏟아진 날은 으레 그 시절 이야기를 입이 닿도록 읊어대고 또 읊어댔다. 열여섯에 처음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렸고 이제 갓 삼 십 줄 중반에 들어선 최태풍은 군산 주먹계의 황제였다. 신수가 편했더라면 나 같은 아들, 자기보다 쬐매 더 잘생기고, 키가 더 크고, 어딘지 야릿야릿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아들 두엇쯤 두었을 것인데. 태풍은 나를 쳐다보면 왠지 아들 같아 듬직하다고 했다. 내 다부진 몸집도 좋았지만 굵은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특히나 최태풍의 거친 삶에 한 줄기 서정이라나, 어쨌다나. 술판이 벌어진 그 자리에 나를 옆에 끼고 있으면 태풍은 순한 어린양이 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