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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소설화

밀월 3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12. 20.

  

 “술 한 잔 허세.”

   가끔씩 찾아와 서슴없이 술지갑을 여는 봉렬이 고맙기만 했다. 딱히 마음을 주며 지내는 친구가 없었던 나는 그나마 봉렬의 배려에 위안을 받기도 했다. 평소 과묵했던 사내 둘은 딱히 할 이야기도 없었다. 늘 이야기는 해망동 뱃전을 넘지 못했다. 봉렬을 만나면 나는 봉렬보다 훨씬 뒤떨어진 사람이 아닌가하는 자괴감조차 들곤 했다. 봉렬은 아버지 대에서 물려준 배 몇 척으로 점점 가세를 키워나가는 것을 볼 때 내 처지가 한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때 그 자석 생각나는가?”

  거나하게 취해가는 봉렬이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그저 봉렬의 얼굴을 빤히 쳐다만 보았다.

  “아, 그때 말여. 우리 중학교 때 해망동굴에서의 혈전.”

  봉렬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네가 해결사 아니었든가비.”

  그때서야 나는 그때의 일이 기억났다.

  “그랬던가?”

  아득한 세월의 뒤안길을 밟는 다는 것은 그닥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자석 있잖혀. 네 주먹 한 방에 뻗은 놈? 그 자석 빌빌 기었잖여.”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땅딸막한 키에 새까만 놈이 박박 기어들더니 주먹 한 방에 나가 떨어졌던 고등학생이었다. 그때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객기를 부렸었다. 팬티만 남기고 옷을 홀딱 벗겨 그들을 쫒아 냈던 것이다. 미면 똘만이들에게 해망동 선창파들이  사정없이 굴욕이 안겼던 사건이었다. 물론 그때 군산 주먹계의 황제였던 태풍의 도움도 살짝 받았다. 수적으로 우세하던 미면의 독립군파에게 우리 쪽이 점점 밀리던 순간이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시작된 태풍이 생각나자 나는 더 이상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았다. 묵묵히 술만 마시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봉렬은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발단은 봉렬이였다. 고등학생에게 깝죽대던 봉렬이 결국 그들의 표적이 되었고 그 뒷수습을 내가 나선 꼴이었다.

  “그 자석이 뭐?”

  “글씨 얼마 전에 그 새끼를 해망동에서 만났는디.”

 봉렬은 무엇이 우스운지 자꾸 실실거렸다.

  “갸가 군산 경찰서에 근무한디야.”

  “그랴서?”

  “그랴서는 뭣여, 그 때 그 시절 생각도 나서 그 자석하고 술 한 잔 혀야겄다고 생각혔는디. 글쎄 그 자석이 바쁘다고 핑계를 대드만.”

  나는 연거푸 맥주잔을 들이켰다. 낮 동안 있었던 거만했던 여자 손님과의 실경이 때문에 진이 빠진 터라 남아있던 화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 뒤에도 한 참이나 봉렬은 뭐라 뭐라 그때의 일을 지껄였지만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혹시라도혀서. 다 어릴 적 눈에 뵈는 것 없었던 시절이긴 혔지만.”

  봉렬의 결론이었다. 그 때의 인연도 있으니 혹시 경찰서에 갈 일이 있으면 곽중근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그 자석, 지가 뭐 독립투사 안중근이라도 되는 양, 그 이름 뭐냐? 그려 독립군파였지. 미면의 독립군파.”

  봉렬은 재미있다는 듯 껄껄 대며 한 참을 웃었다.

  “갸,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몇 번 나왔다가 낙선했다지. 일제 시대엔 군산 경찰서장으로 포악을 떨었다고 하더니만, 자석은 이름은 어찌 안중근의 이름을 따 중근이로 지었을까? 다들 웃더구만.”

나는 봉렬의 말들을 귓전으로 흘려보냈다. 다시는 경찰서 같은 곳엔 기웃거리고 싶지 않았다. 경찰서 그림자도 보기 싫어 아예 그쪽으로 발걸음도 주저하던 판 아니던가?나는 그저 고개만 까닥거렸다.

 봉렬과 나눈 술잔에 취해 집으로 향하던 나는 혼자서 또 몇 잔을 더 걸치고 ‘가슴 아프게’를 부르며 집에 돌아왔다. 이런 날은 죽은 공숙희도 생각났고 월남전의 김대치도 흐엉도 눈에 보였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수없이 뇌까리던 감옥에서의 차가왔던 밤이 생각났다.

  “그려, 집으로 가고 있는가비. 우리 엄니가 있는 집 아닌가벼.”

  혼자서 묻고 혼자서 대답하며 나는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알싸한 추억들도  아른 거렸다.

  “나 같은 인생이 태어나긴 왜 태어난 것인감?”

  급기야 나는 내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세상에 떨어진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연민스러웠다. 머리꼭대기까지 차오른 술기운에 몸도 마음도 한없이 비틀 거렸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내 그림자도 비틀거렸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어머니가 애창하던 곡이었기도 했다. 이 노래를 부르며 한 숨을 쉬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왜 그렇게 자꾸 죄책감만 몰려드는지. 어머니의 한 숨을 모른 체 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감옥소를 오간 놈,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만한 형편에 어머니 말대로 결혼을 해서 자식을 둘 상황도 아닌 신세가 왜 이리 처량한지.

  봉렬과 헤어져 건들건들 해망동굴을 빠져나오는 참에 순경 둘이 나에게 접근했다.

  “이봐요, 아저씨.”

  순경이 아저씨라 부르는 사람이 있는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술은 취했지만 정신만큼은 말똥했다. 마지막으로 봉렬과 막 광주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문에 대해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다 헤어진 참이었다. 봉렬의 말대로라면 간첩들의 농간에 의해 광주시민들이 놀아나는 판이지만 나는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뿐이지 봉렬처럼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어 답답했다. 아무리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하여도 대학생인데 간첩들의 농간에 그 많은 수가 놀아날 리 없었다. 어쩜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4,19와 같지 않을까 집히는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았지만 막 통금을 앞 둔 시각이라 내 뒤로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순경 둘이 나에게 다가서며 양팔을 걸었다. 얼결에 양팔을 잡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세차게 몸을 흔들었다. 흔들수록 잡힌 팔이 옥죄며 둔탁한 무엇인가가 머리를 내리쳤다. 잠시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나는 낯선 곳이었다.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다. 두리번거리며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애써 생각해내려 했다. 봉렬이와 만나 술 몇 잔을 걸치고 해망동굴을 지나 집으로 가던 참이었고 분명 통금 전이었다. 어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없었다. 왜 유치장처럼 보이는 곳에 끌려왔을까? 나는 "여보시오, 여보시오" 소리쳤다. 따지고 싶었다.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릴 뿐이었다.

   “조카, 고만혀.”

  나는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아니, 무슨 일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듯 태풍은 담담했다. 얼굴의 흉터만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갇힌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십대 꼬마들부터 60대에 가까운 10여명가량이 유치장속에 있었다. 아침이 되자 총을 든 순경들의 호위를 받으며 20여명 넘는 사람들이 군용트럭에 태워졌다.

  “저 씨팔 개새끼.”

   태풍은 트럭에 태워진 후 밖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랐지만 분명 그곳에 전에 국회의원 선거 후보였던 곽일표가 있었고 곽일표 옆에 젊은 순경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른 체 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젊은 순경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어리둥절한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태풍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는 그것이었다. 사회 정화 차원에서 불량배와 감옥에 수감되었던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일정기간 동안 훈련을 시키기 위해 집단 훈련소에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만기로 출소하지 않았던가? 태풍이라면 모를까, 나는 맞닥뜨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군가 이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총을 든 채 눈을 부라리는 순경들의 태도에 태풍마저도 침묵했다. 어렸을 적 보았던 전쟁터의 한 장면이, 겁에 몰린 표정으로 총을 든 나를 바라다보면 월남인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찾아오는 두려움만큼 나를 혼돈에 빠뜨리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무슨 수를 생각해 낼 것이었다. 집채만 한 어두운 파도가 한꺼번에 덮친 듯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태풍의 침묵조차 내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아침 일찍 출발한 군용트럭은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린 후 점심을 지나 얼추 저녁이 다 되어 멈췄다. 도착한 곳은 인적이란 전혀 없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늘 만 보이는 산속이었다. 어쩐지 영화 속에서 보았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같은 으스스한 풍경이었다. 족히 500명은 넘을까 생각되는 무리들이 이미 운동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군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깎이고 지켜야할 수칙에 대한 훈시를 받은 후 곧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주로 P.T 체조였다. 나는 이미 유격훈련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익숙했던 훈련이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태풍은 땀범벅이 되어 행동이 굼떴다. 태풍을 향해 훈련조교의 개머리판과 군화발이 날아왔다. 태풍에게 날아드는 군화발의 충격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나는 마치 내 몸에 맞기라도 하듯 깜짝 깜짝 놀랐다. 처음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 몰려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차 상황에 익숙해지자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풍을 향해, 나를 향해, 끌려온 사람들을 향해,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는 조교들의 얼굴 하나가 낯에 익었다.

  분명 봉치였다. 김봉렬의 사촌형 봉치였다. 봉치는 태풍을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나 또한 봉치에게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봉치의 눈에 서린 핏발은 당장이라도 누군가 한 놈을 죽이기라도 할 듯 살기가 넘쳤다. 사촌형 봉치가 월남에서 돌아와 군에 못을 박기로 했다는 봉렬의 말이 기억났다. 태풍에게 차마 봉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태풍은 뚱뚱해진 몸과 나이 탓이었을까 유난히 목봉체조와 유격훈련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훈련도중 뻗어버리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했다. 누군가 끙끙대는 눈치가 보이면 치료 대신 조교들은 더욱 더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가차 없는 폭력이 그들을 숨 막히게 했다. 결국 아픈 이는 쓰러졌고 쓰러진 다음 날부터 그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짐작할 수 없는 공포에 훈련생들의 입은 닫히기 시작했다. 무거운 침묵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그들을 감쌌다.

  조교에게 대들지 않기, 아프면 무조건 참기,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기, 어떤 폭력에도 반항하지 않기 등등 처음 훈련소에 입소해서 숱한 폭력을 겪으면서 그들이 터득한 지혜였다. 상황에 순응하는 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비겁함은 생존의 문제였다. 누구도 그 같은  단순한 사실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154번”

   나는 부르는 소리에 섬뜩 몸을 곧추 세웠다. 등줄기에 서늘한 식은땀이 느껴졌다. 훈련 중 잠시의 휴식시간이 이었다. 화장실 옆 몇몇이 모여 바닥에 나둥그는 꽁초를 주워 피우던 참이었다. 엉겁결에 피우던 담배꽁초를 놓치며 돌아섰다. 봉치였다. 봉치의 손엔 화랑담배 한 보루가 들려있었다. 태풍은 그제야 봉치를 눈치 챘는지 눈으로만 봉치를 쏘아보았다.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살기등등했던 조교가 봉치였다니 태풍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봉치 역시 고개만 까닥했을 뿐 태풍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얼떨결에 봉치가 내미는 화랑 담배 보루를 태풍의 손에 쥐어주었다. 봉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태풍의 눈이 불타고 있었다. 나 또한 인정사정없는 봉치의 처사에 서운한 감도 있었지만 담배 한 보루에 그의 마음이 읽혀져 눈을 까막거렸다. 자꾸 서러움이 몰려와 울컥거렸다.

  “갸?”

  멀어져가는 봉치를 바라보며 태풍의 목소리가 자꾸 젖어 들었다.

  “그러게요. 군에 못 박았다고 혀든디.”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태풍의 모습은 몇 달 사이 눈에 띠게 달라져 있었다. 땅딸만한 키에 애기무덤 같은 배를 드밀며 땅콩처럼 굴러다니던 태풍이었는데. 말라 비틀어져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는 태풍은 알맹이가 들어있지 않은 말라비틀어진 땅콩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호령하며 으스대던 태풍의 모습은 온 데 간데없어졌고 주먹 한 방에 언제든 떨어질 모습이었다. 그런 태풍을 바라보려니 가슴이 먹먹했다. 딱히 잘해준 것도 없었건만 생각해보니 늘 어머니 옆에서 배경이 되어주던 태풍이 고맙기만 했다. 그런 고마움에 무엇이라도 태풍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마음만 그랬지 놓인 상황에서 내가 태풍을 향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것이 더 미안했다. 점점 여위어가는 태풍에게 쏠리는 마음이 버겁기조차 했다.

  “몸을 잘 돌보시게요.”

  퉁명스럽게 내뱉는 내 말에 태풍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려. 우리 함께 살아서 나가자.”

  태풍은 젖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나는 고개만을 끄덕거렸다. 둘 사이의 침묵은 혈서보다 더 강한 약속으로 느껴졌다.

  다음 날 반복되는 훈련 중에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담배 갑이 떨어졌다.

  “누구야?”

  칼날처럼 조교가 물었다. 한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담배의 출처는?”

즉시 담배의 출처에 대한 심문이 이어졌다. 성큼 태풍이 앞으로 나섰다. 말린 틈도 없었다.

  “뭐야, 이 쓰레기 깡패 새끼가."

무자비한 조교의 발길질이 태풍을 쓸어넘겼다. 그야말로 묻지마 폭행이었다. 아무리 발길질에 개머리판에 채어도 끝내 태풍은 봉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깡패의 뒷심은 폭력 앞에서도 당당했다. 거의 죽을 정도로 얻어맞은 태풍을 눈앞에서 바라보는 나는 하마터면 봉치의 이름을 외칠 뻔했다. 태풍이 맞는 사이에 나에게 얼굴을 돌렸다. 나는 멈칫거렸다. 태풍은 손사래를 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먹 같은 눈물이 내 얼굴에서 떨어졌다. 나는 불끈 주먹을 쥐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저승사자처럼 드리워진 공포가 우리를 휩쌌다. 공포에 짓눌린 표정에서 나는 월남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것은 분대원들의 총받이 노릇을 하던 정글 속 월남의 평범한 주민들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나는 힘이 빠졌다. 내가 가한 공포가 메아리처럼 나에게 돌아온 것이구나, 나는 자꾸 뜨거워졌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서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악몽은 계속되었다. 태풍은 앓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퍽퍽 거리는 군화소리와 개머리판이 뼈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빈 하늘에 울렸다. 성긴 눈발이 날렸다. 금방이라도 폭설이 내릴 듯 하늘은 어두워졌다. 어디선가 날쌘 매 한 마리가 솟구쳐 올랐다. 쏜살같이 사라지는 매의 발끝에 허옇게 매달려있는 어떤 것이 눈에 보였다. 어렸을 적 이웃집 노인이 죽었을 때 지붕위에 던져지던 노인의 웃옷을 연상시켰다. 떠난 혼을 불러들여 죽은 이를 다시 살려내는 간절한 소망의식이라 했던가? 마치 죽은 혼이 날아간다는 북쪽일 듯싶은 방향으로 내 시선도 함께 따라갔다. 하늘하늘 매달린 희뿌연한 것이 가늣하게 멀어지는 매와 함께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더불어 군화의 퍽퍽 거리는 소리도 박자를 맞추던 욕설도 개머리판의 툭툭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죽음처럼 무거워진 침묵이 우리를 휩쌌다.

  그날 우리 일행은 모두가 뻗을 만큼 합동 기합을 받았다. 태풍은 죽음 직전까지 구타를 당했다. 시체처럼 널브러진 태풍을 부축하며 나는 물었다.

  “차라리 불지 그랬어유?”

  “글면 갸는?”

태풍의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늘 마음 한 편에 깡패 질하는 태풍을 무시해왔던 나였다. 하지만 봉치라는 말을 끝내 내뱉지 않은 태풍의 기개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다음날도 여지없이 영화 20도가 넘는 땅바닥에서 지옥훈련이 계속되었다. 연병장을 포복하며 원산폭격, 쪼그려 뛰기, P.T가 계속되었다. 결국 뒤에 처진 태풍은 쓰러졌다. 태풍을 부축하는 나에게도 무수한 군화발과 방망이질이 계속됐다. 나는 뼈만 남아있는 태풍의 몸을 감싸 안았다. 오그라진 태풍의 몸뚱아리는 내 가슴으로 감쌀 만큼 아주 작아져 있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폭력으로부터 태풍을 지켜내려 했다. 차라리 태풍을 대신하고 싶었다. 전 날 뵈지 않았던 봉치가 눈에 띠었다. 일그러진 표정의 봉치의 눈에선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쏟아져 내렸다. 태풍과 나도 아이처럼 울었다. 태풍과 나는 누가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정신 줄을 놓았고 깨어나 보니 둘만 있었다.

  “야, 미련한 자석아. 니라도 살아서 나가야지.”

태풍은 마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난, 이제 더 이상 못 견디겠다.”

담담함 속에 비장감이 돌았다. 오래전에 보았던 태풍의 섬뜩한 눈빛이었다. 그때였다.

  “형님”

  봉치였다. 태풍도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형님, 죄송혀유. 지도 착출되였지유. 처음에는 형님이랑 현석이를 못 알아봤지유. 근데.”

  봉치는 울고 있었다.

  “세 사람씩은 때려죽이라는 명령이 떨어 졌지유.”

  봉치는 말을 버벅댔다.

  “군이 아닌가비요.”

  봉치는 묻지도 않은 말로 변명을 했다. 태풍도 나도 듣고만 있었다.

  “독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시유. 지들도 상급조교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있구먼유.”

  자꾸 봉치는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용을 썼다.

  “일 계급 특진이 걸려 있응께 모다 눈에 불을 켜고 있구먼유.”

  “그려도 사람 새끼들 아닌감?”

  듣다 못한 태풍이 힘주어 대꾸했다.

  “긍게요, 형님.”

  봉치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문을 닫았다.

  “야, 사내새끼가 눈물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는 봉치를 향해 태풍은 나직이 말했다. 목이 메인 듯 태풍은 말을 잇지 못했다.

  “형님, 죄송혀유.”

  봉치는 무릎까지 꿇고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낮에 보았던 살벌함은 어디에 숨겼는지 태풍 앞에서 그는 한낮 졸개였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꼭 살아서 나가셔유.”

  봉치의 마지막 부탁이었다. 태풍도 나도 봉치를 이해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무엇이라 서로를 위로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는 태풍을 바라보며 나는 어떻게든지 태풍과 함께 살아 꼭 군산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다. 봉치는 한 참을 주억거리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봉치가 나간 자리에 은하수 담배 한 보루와 안티푸라민이 놓여 있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갈수록 낯익은 얼굴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설마 죽이기 사 했을까 쉬쉬하는 사람들 사이엔 공포감이 스멀거렸다. 과연 살아서 이곳을 빠져 나갈지 모두가 묻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아무도 묻지 못했다.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현석아, 안 되겄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어차피 죽은 목숨잉께. 나 탈출혀야겄다.”

  도시 예전의 모습을 잃은 태풍의 푸석한 외모와 달리 목소리엔 아직 남아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다 무신 일이 나면유?”

  나는 태풍의 계획에 동조할 수 없었다. 월남전을 통해 죽음 직전까지를 경험 했던 나는 그 어떤 폭력과 지독한 훈련이라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었지만 태풍의 인내는 한계에 이른 듯 했다.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 튀어야겠다. 그런 날은 경계가 좀 느슨허지 않겄어.”

태풍의 퀭한 눈엔 어떤 비장함이 넘쳤다. 태풍의 결심이 옳은지도 몰랐다. 나 또한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도망치다 발각되면 현장에서 총살이었다. 이미 누군가 탈출하다가 죽어나갔다는 흉흉한 소문은 소문만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봉치에게 부탁혀야 겄다.”

  봉치에게 부탁한다는 뜻이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누구랑 함께 계획한 일인지도 묻지 않았다. 나는 함께 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변명으로 다만 태풍의 계획이 무사하길 빌 수밖에 없었다. 눈이 오는 걸로 보아 강원도 산속 어디쯤이라는 짐작만 할 뿐 이었다. 방향도 분간 못할 만큼 많은 눈이 쌓였고 전 부대원이 쌓인 눈길을 치우느라고 며칠을 고생했다. 누군가는 동상이 걸려 발가락이 잘려나갔다. 훈련과 노동과 폭력을 견디고 살아나갈 것에 점점 확신이 떨어질 즈음 태풍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봉치가 손을 좀 써놓았다고 혔어. 그랴도 갸 밖에 없더라.”

  비록 함께 갈 수는 없었지만 나는 조마조마했다. 태풍이 가는 순간까지 내 마음은 갈등했다. 사나이의리로서 마땅히 따라가고도 싶었다. 하지만 개죽음일 것이 분명하니 또한 그럴 용기가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 날, 몹시 눈보라가 치는 밤이었다. 비장한 태풍은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꼭 다시 만나자.”

  뼈만 앙상한 태풍의 작은 손이 내 손을 쥐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덥석 두 손으로 태풍의 손을 감쌌다. 손을 빼며 태풍은 나갔다.

  5분이나 지났을까 밖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잠을 자던 무리들이 함께 일어나 우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저곳에서 연발탄 소리가 나고 군인들이 우왕좌왕하는 함성이 들렸다. 마치 월남전을 방불할 만큼 요란했다. 연병장에 불이 밝혀지고 연병장 철조망 한 가운데 서치라이트의 불빛을 받으며 태풍이 서있었다. 태풍은 무엇인가를 외치는가 싶었다. 하지만 곧 총탄이 울렸고 태풍의 목소리는 곧 총탄에 묻혀 사라졌다. 서치라이트가 꺼지고 군인들은 서둘러 잠자리를 빠져나온 부대원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군인들이 겨눈 총구에 숙소를 나갔던 부대원들은 속속 잠자리로 돌아왔다.

  잠자리로 돌아온 이들은 웅성거렸다. 소동은 곧 진정되었다. 악다구니를 쓰는 조교들의 목소리에 웅성거리던 말소리들은 잦아들었다. 죽음 같은 침묵이 깊어갔다. 작은 몸집에 익숙했던 모습은 분명 태풍이었다. 내일이 두려웠다. 결국 태풍은 그렇게 갔구나. 함께 하지 못한 태풍에게 죄를 짓고 말았구나. 태풍의 마지막 고성이 귀에 쟁쟁했다. 무엇이라고 외쳤을까?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나에게 그것은 그저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에 불과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이의 절규였다. 나는 짙은 어둠속에서 흐느꼈다. 누군가 함께 우는 이가 있었다. 나머지 분대원들은 우는 이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두려움이 그들을 침묵케 했다.

태풍은 당당했다. 서치라이트 불빛에 도드라진 눈 밑 칼자국이 선명히 일그러졌다. 고양이의 눈 같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군인들을 향해 있었다. 태풍이 마지막으로 외친 세상을 향한 분노, 그것은 내가 외치고 싶은 어떤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잃지 않고 살아서 이곳을 나가는 것이 나에겐 세상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의 탄식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월남전보다 더 참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월남은 내 개인의 전쟁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다분히 내 개인의 전쟁이었다. 죽은 것은 태풍 혼자가 아니었다. 나 또한 살이 찢기고 심장이 터지는 고통 속으로 던져졌다. 참 이상한 것은 태풍의 죽음은 나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폭력이 혹독하면 할수록 살고자 하는 의지가 맞섰다. 살아남고자 하는 의식은 모든 고통보다 월등했다. 고통과 두려움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충동이 나를 감쌌다. 다행이 시간이 약이었을까? 나는 6개월의 악몽에서 풀려나 다시 군산으로 돌아왔다. 훈련도중에 아프던 다리가 덧나 끝내 절뚝거리는 신세였다. 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온 자신이 대견했다. 나는 태풍이 해준 말이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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