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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안개 나라의 아침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12. 8.

  아침 안개가 제법 자욱했어요. 청소차가 느리게 달리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총총거리는 중년의 여자와 묵직한 발걸음으로 어깨를 내려뜨린 사내가 지나갔어요. 불도 켜지 않은 채 드뷔시의 피아노곡을 배경으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침을 맞이한 기분이었어요. 저 밑바닥에서부터 용솟아 차오르는 무엇인가가 나를 가득 채우는 느낌요. 내 영혼이 깨어 자박자박 지상 위를 걸으며 나를 들여다봐요. 부산한 일상에 젖어 그날이 그날 같은, 권태와 무기력의 반복에 질식할 것 같은 그런 날들을 건넜구나, 안도감마저 나를 감쌌죠. 아마 또 며칠 후엔 그런 기분에 휩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순간만은 오롯이 나 자신과 대면하며 내가 살아가야하는 순간들에 대해 침잠할 수 있었죠.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이 깨어있음으로 살아가는 나를 발견했어요. 가난하고, 모자라고,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지만 오롯한 나는 또 그 무엇이, 가령 내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느낌, 바로 이것으로 살아왔고, 아마도 이것으로 살아가겠구나, 미로와 같은 인생길을 헤매며 지치고 외롭고, 때론 슬프고 고통스럽다하더라도 결국 나는 죽음 앞에서 생의 은총에 감사하며 눈을 감을 것이란 예감이 신의 축복인가, 가만 웃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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