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애인은 1/김은
내 애인은 엿장수
손님 없는 엿을 판다
내 애인은 욕쟁이
수 틀리면 욕을 한다
내 애인은 방귀쟁이
이쁜 것들 앞에서는 일부러 방귀를 뀐다
내 애인은 엄살쟁이
손가락에 피가 나면 날 부른다
내 애인은 바람둥이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가슴이 되어 꽃을 딴다
내 애인은 꼭두각시
세상을 향해 맘에 없는 웃음을 흘린다
내 애인은 겁쟁이
질 것 같으면 되레 큰소리를 친다
내 애인은 수다쟁이
빨간등 아래서 노래를 부른다
내 애인은 허겁쟁이
빈집 근처에도 못가 나를 앞 세운다
내 애인은 때꼽쟁이
바라만 보는 애인에게 밥 한 끼 안 사준다
내 애인은 이 모든 쪼다다
하여도 참으로 예쁘기만 한 것은
그가 내 애인인 까닭이다
2. 내 애인2/김은
내 애인은 뚱순이
뚱깃걸음으로 잘도 걷는다
내 애인은 변덕쟁이
하루도 열두 번씩 쫑이다 지랄을 떤다
내 애인은 왕짜증 수다쟁이
바람 분다 비가 온다 하루에 열 두 번씩 소리친다
내 애인은 철부지
밥도 나오지 않는 썰을 풀고 노상 헛 것들을 찍어댄다
내 애인은 암컷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날마다 춤을 춘다
내 애인은 말똥구리
또르르 또르르 암 것도 아닌 일로 박장대소 눈물 흘린다
내 애인은 참 몹쓸 종자
싫다고 싫다고 암만 쫒아도 치대기만 한다
내 애인은 이 모든 모순이다
하여도 참으로 예쁘기만 한 것은
그녀가 내 애인인 까닭이다
3. 살겠다고/ 김은
날마다 허공에
천 개의 바람 집을 지었다
그대와 살 섞어 새끼를 낳고
새끼들은 무지개 같은 웃음을 흘리며
천 개의 꽃밭을 만들었다
바람 소리 날 세운 하룻밤
바람 집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초상집 같은 울음소리 요란할 뿐
꽃상여 앞세우던 천개의 꽃밭도
임립한 만장처럼 휘날렸다
어느 날 꿈 깨어보니
사라진 천 개의 바람 집과 천 개의 꽃밭은
환지통을 위한 천개의 타이레놀이었을 뿐
4. 6월 소경/김은
또르르 또르르
흡 흡 흡
이슬방울 무거워
연이파리 배꼽으로 모여들면
여름빛은 짙어간다
마흔다섯은 귀신이 와
서는 것도 보인다는데
쉰여섯인 나는
연이파리에 모여든 이슬방울만 보이고
그들이 만드는 어린 고요가
내 늙은 고요에 젖을 물린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슬방울이 묻는다
어디든 상관없어
이쪽으로 가면 더 큰 호수로 빠지는 거야
그것의 의미는 네가 없어진다는 것이야.
그럼 저쪽으로 갈까?
마찬가지야
넌 물속 연이파리 배꼽 위에 있어
어느 쪽으로 가든 마찬가지야
넌 곧 사라질 거야
해가 뜨면 사라질 거야
또르르 또르르
흡 흡 흡
여름빛 짙어가는 이른 아침에
연이파리에 모여든 이슬방울들이
나에게 말한다
이쪽도 저쪽도 상관없이
넌 곧 사라질 거야
해가 뜨면 사라질 거야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었는지
사라지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
존재하는 것은 곧 사라지는 것인지
똣또르르르 똣또르르르
흡 흡 흡
숨을 멈춘 고요가
이슬방울로 맺혀있다
여름이 짙어간다
Erik Satie - The Essential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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