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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아리아

첫사랑1.Ludovico Einaudi [ 10 Best ] Vol.1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7. 29.

 첫사랑

 


  세상을 뒤집어놓을 듯 요란하던 새벽 소나기가 그친 아침이다. 물안개가 걷히는가 싶더니 금새 맑은 하늘이 드러나고 중천엔 두둥실 해가 떠올랐다.

   “무너질 것 같은 하늘이었어도 또 금시 얼굴을 바꾼당게. 그려, 그려 뭐 인생살이라는 게 하늘을 닮았으니게. 흐린 날이 있으면 갠 날이 있고. 맑았는가 싶으면 또 비바람 몰아치고.”

   엄마는 알아들을 듯 말 듯한 소리로 궁시렁대며 부산을 떤다. 으레 토요일이면 엄마는 이른 아침 밥숟갈을 떼자마자 그의 집을 향했고 땅거미가 몰려 올 때쯤 돌아오곤 한다. 일 년에 서너 번은 며칠 씩 그의 집을 들락거린다. 오늘 아침에도 엄마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허리춤을 묶으며 나를 돌아봤다.

  “부뚜막에 밥 챙겨놨으니까 순덕이랑 함께 먹고.”

  치마꼬리를 붙잡는 나를 두고 엄마는 눈을 부라렸다. ‘내가 뭐 애보기인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는다. 입을 삐쭉 내미는 것으로 분을 대신한다. 괜히 엄마의 화를 돋우고 싶진 않다. 틀림없이 기대되는 저녁이다. 저녁이면 어김없이 풀죽은 시래기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만 엄마의 양손엔 늘 무언가가 들려있을 것이다. 쌀이나, 달걀이 주를 이루었지만 가끔씩은 돼지고기 같은 횡재를 몰고 왔다. 떡이나 화과자 보따리일 땐 그야말로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우릴 감싸곤 했다.

   그의 집은 우리 집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었다. 초가집이었던 우리 집 서너 채가 들어갈 정도였다. ㄱ자 형의 긴 기와집으로 마당 한 켠엔 연달아 꽃밭과 정자가 있었고 오래된 감나무 한 그루가 정자의 지붕 위로 굵은 팔을 뻗치고 있었다. 햇빛 좋은 가을 날이면 감나무 가지마다 목을 메단 생선들이 댕강거렸다.

  휴일이 되면 꽃밭 옆 정자에선 하모니카 소리와 기타의 울림이 번갈아 들렸고 때론 알아들을 수 없는 양키노래소리가 들렸다. 그의 풍금소리는 끊기는 게 아쉬울 만큼 지루하지 않았다. 가끔 밤 깊도록 피리소리가 사방을 휘돌았다. 고등학생인 그의 양키 노랫소리와 피리소리는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웅얼거리는 듯 낮게 내지르는 목소리는 어딘가 반항적이면서도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긴 꼬리를 끄는 피리 소리는 심금을 건드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꼭 오라버니여, 오라버니.”

  아련히 들리는 피리소리에 잠을 못 이루며 뒤척이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지 부모 팔자를 벗어나야 쓰는디……”

  엄마가 돌아누우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게 팔자라는 거여.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랑께. 어여 자. 낼은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피지 못할 만큼 바쁠 것잉게.”

   아빠가 엄마의 등을 두어 번 토닥거렸다. 곧이어 엄마와 아빠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쉬 잠들지 못했다. 멈출 듯 멈추지 않는 피리소리에 홀려 내 영혼도 정처 없이 온 우주를 떠도는 듯 마음이 시렸다. 겨우 7살이었던 코흘리개가 무엇을 알았을까마는 그런 밤이면 내 꿈에선 안개가 등장하고 점점 짙어지는 안개 속으로 누군가 등을 보이며 빨려 들어갔다. 전봇대만한 키에 구부정한 뒷모습으로 보아 얼핏 그가 아닐까 발을 동동거리다 급기야 팔을 휘저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무서움에 소리라도 질렀을까, 다독거리는 엄마의 손길에 안도하며 다시 잠속에 빠져들곤 했다.


                                                                        *

   중천에 떠있는 뭉게구름 사이로 햇살이 내린다. 목이 꺾인 코스모스 꽃잎들이 시시덕대며 햇빛바래기를 하고 있다. 코스모스 꽃잎 위로 벌들이 윙윙댄다. 아직 물기를 이고 있는 코스모스를 한 줌이나 꺾어 발로 비벼도 분이 안 풀린다. 평소 같으면 피했을 벌 한 마리를 잡아 발로 뭉개려다 다시 날려 보낸다.

   “넌 코스모스.”

   익숙한 남자 목소리였다.

   “그럼, 벌?”

   여자가 연신 끽끽거렸다. 화장실 쪽문으로 바라보니 희뿌연 달빛을 인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기찻길을 따라 둘은 점점 멀어졌고 가을 안개가 둘의 몸을 감쌌다. 눈을 비비고 몇 번이고 확인해보았지만 분명 명옥이 언니와 그였다. 명금이네 사촌, 연애쟁이 명옥 언니라니…… 서릿발이 꽂힌 듯 가슴이 시렸다. 마른번개라도 내려 두 사람의 앞길을 막을 수 있다면, 밤새 뒤척이며 기도했다.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새벽녘에 시작되었던 소나기는 번개와 천둥을 동반했다. 내편이 된 번개와 천둥소리를 자장가삼아 늦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어딘지 개운치 않다. 한편으로 걱정도 앞선다.


                                                                            *

   우물 벽에 몸을 기댄다. 실눈을 뜨며 그가 걸어올 법한 고샅길에 눈을 준다. 벌써 몇 번째인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른 때와 다르게 기다림은 길었고 지루했다.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귀를 기울인다. 제법 규칙적이다. 풍금의 건반 소리와 많이 닮았다. 우물 깊은 곳에 무엇인가 살고 있다는 확신이 점점 분명해진다. 보이지 않지만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쩜 귀신이 살고 있는지도 몰라.”

   얼마 전 명금이는 아는 척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여자 귀신이 밤이면 우물 주변을 서성인데.”

   명금이는 신이 나 다음 이야기를 지껄였지만 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떴다.

우물 속에 빠져 죽은 사람은 분명 그의 엄마였다. 설사 그의 엄마가 귀신이 되어 우물 속에 살고 있다하여도 무섭지 않았다. 민들레를 수놓은 앞치마를 입고 가끔씩 내 머리를 쓰다듬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천사 같았다. 그녀가 귀신이 되어 우물 속에 살고 있다면 아마도 여전히 나에게 친절할 것이다. 그 믿음 때문인지 우물은 내 놀이터였고 그의 집을 멀리서나마 맘껏 들여다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우물 바닥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떤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물은 일 년에 한 번 열린다. 우물을 청소하는 날이다. 이 날 조차도 어른들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 우리를 가로 막았다. 청소를 끝내고 제사 비슷한 것을 치룬 후에는 여지없이 우물은 또 다시 무거운 뚜껑을 이게 된다.

자꾸 하품이 나온다. 햇빛에 달궈진 우물 벽이 뜨끈하다. 졸음이 쏟아진다.

   코스모스 천지다. 짐승 같기도 하고 그와 닮은 사람 같기도 하지만 형체가 불분명한 무엇인가가 코스모스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짓이겨진 코스모스 모가지들이 시커멓게 변해간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그것, 나를 뒤쫓아 온다.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깜빡 졸음에 눈을 뜬다. 꿈이라서 다행이었지만 속옷이 젖어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우물 옆 명금이네 볏짚 사이에 실례를 한다. 지린내가 코를 찌른다. 명금이네 볏짚에 오줌을 눕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엄마는 내 오줌조차도 단내가 난다고 실실 웃은 적이 있으니까. 명금이가 보았으면 실눈을 뜨며 지랄을 떨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오늘 명금이네 식구들은 모두 해평리 기와집에 갔을 것이다. 군수라는 큰아버지 집에서 제사가 있다며 자랑을 해댔지만 전혀 부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명금이네 큰집 제사가 작년처럼 파투가 났으면 좋겠다고 입을 삐죽 내밀어본다.

   “올 군수네 제사엔 별일 없어야 헐틴디요.”

   낮 동안 명금이네 큰집인 군수네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하다 온 엄마에게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엄마가 싸온 떡과 전으로 저녁을 배불리 먹은 터라 자꾸 화장실이 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있던 차였다. 새끼를 꼬던 아빠에게 엄마가 걱정스레 말을 붙였다.

   “그러게 말이시. 이젠 원수 갚겠다고 나설 사람이 없지 않응가?”

   아빠가 한 숨을 크게 쉬었다. 배를 감싸며 엄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작년 이맘때쯤 해평리 명금이네 큰 집에 불이 나 명금이네 사촌 큰오빠가 불에 타 죽었다. 그 일로 그의 작은 삼촌, 경태아저씨가 자취를 감췄다가 마을 저수지에서 시체로 떠오른 일이 있었다.

   “참으로 긴 악연이긴 혀. 6,25 때부터 그렸다니까.”

   엄마가 아빠 옆으로 이불을 펴며 기름 냄새나는 옷을 벗었다.

   “전쟁 통엔 누구네 집 할 것 없이 한 두 사람 안 죽은 사람이 없었으니께. 차치하고라도 경태 갸마저 그렇게 되었으니. 이젠 도호가 가장인디 아직 학생이니.”

   엄마의 한 숨 소리가 깊었다.

   “오라버니가 그렇게 되지만 않았어도 고모가 편히 눈 감을 수 있을 틴디.”

   “성님은 여전혀지?”

   “긍게요. 일전에 고모랑 요양원에 들렀는디 고모보다 더 일찍 갈랑가 안혀요.”

   “고모님이 편히 가시진 못허겄어. 이젠 남은 것이란 달랑 집 하나뿐인디.”

   “경태 갸가 정신만 온전혔어도……”

   엄마가 울먹였다.

   “도호엄니가 우물에 빠져 죽지만 안혔어도.”

   “도호엄마 탓은 못혀지요. 애초 경호오라버니가 미국으로 공부허러 간다고 혔을때 고모가 순순히 보내줬더라면 이런 사단은 안 났을거구먼요. 재산도 지켜냈을 것이고 경태 갸도 죽지 않았을 것이고. 아니 경호 오라버니를 그렇게 만든 게 군수네 큰아들 명철이 아닌감요. 어렸을 적엔 둘도 없는 단짝이었는디. 함께 나팔도 불고. 근디 어떻게 경호 오라버니를 빨갱이라고 신고할 수 있었는지. 애먼 누명만 쓰고 을마나 고문을 당혔으면……”

   엄마의 목이 잠겼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고양이들이 날카롭게 울어댔다. 마치 유리조각에 쇠붙이를 긁어대는 소리다. 섬뜩해 몸서리가 쳐졌다.

   “썩을놈들아, 저리가지 못해.”

   갑자기 엄마가 문을 젖히며 고양이를 향해 욕지기를 해댔다.

   “지들도 짝을 찾겠다는디. 그냥 놔두랑께. 다 자연의 섭리인게.”

   아빠가 웃을 듯 말듯 낮은 소리로 엄마를 달랬다. 엄마는 손으로 가슴을 쓸었다. 고양이 울음이 잦아들더니 멀리서 익숙한 새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람들이 슝헌소리까지 혀든디. 연애하는거 같았다고. 명철이 그 양반이 꼭 여자만치로 허리를 꼬고 다녔으니께. 질투심으로 꼰질렀다고.”

   아빠가 새끼를 꼬며 무심한 듯 물었다.

   “글씨, 장가가서 자석까지 낳고 사는 오라버니를……”

   엄마의 목소리엔 뭔지 모를 힘이 빠져 있었다. 마치 아빠의 말에 긍정이라도 하듯.

   “쉬쉬혀지만 아직도 소문은 돌고 있으니께.”

   “뭔 소문요? 씨부럴거릴 것이 없어서. 여편네들이 참.”

   엄마는 부르르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정적이 흘렀다. 아빠는 잠시 멈춘 새끼 꼬기를 계속했다. 엄마가 쿵하고 몸을 뉘였다. 아빠는 손을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이내 싸리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오라버니가 그럴 리가 없지, 오라버니는 나 헌티도 얼마나 살갑게 굴었는디. 천성이 착혔어. 암먼.”

   엄마는 혼잣말을 하며 뒤척였다. 엄마의 고모라는 할머니 방에 걸려있던 빛바랜 사진속의 남자. 멋들어진 제복을 입고 길쭉한 나팔 같은 것을 불고 있는 인물. 영락없이 그였다.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도 참고 있었던 배를 움켜주며 나는 방 밖으로 나왔다. 싸한 밤공기가 온몸을 휘감았지만 정신없이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엄마와 아빠가 두런거리던 소리들이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분명 명금이네 큰집은 그의 원수인데 명옥이 언니와 연애를 하다니, 생각만으로도 오스스 팔뚝위에 잔소름이 돋는다. 저절로 눈살이 찡그려진다. 햇살을 등지고 즐비한 전나무 사이로 그가 나타난다. 삐딱하게 비껴쓴 교모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뒹굴 것만 같아 조마조마하다. 재빨리 우물 벽으로 다시 몸을 숨긴다.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세차게 요동치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다. 가슴팍위에 오른 손을 얹는다. 하나, 둘, 셋, 넷. 심장의 박동소리가 더 빨라진다.

  “오빠”

  오빠라는 소리를 내뱉는다.

   지난 월요일 아침, 미처 끝내지 못한 다림질을 마무리하며 엄마는 나에게 그의 교복바지를 들려 보냈다.

  “여기요, 여기.”

  엄마 손을 거쳐 갔을 것이 분명한 그의 방 한지 문엔 코스모스 두 송이가 꽃잎을 활짝 펼치고 있었다. 문고리를 두어 번 달그락거리며 어정쩡한 자세에 모기만한 소리로 나는 겨우 인기척을 대신했다. 자꾸만 양 볼이 뜨거워졌고 오줌이 마려 나도 모르게 발이 동동거렸다. 하얀 러닝셔츠 차림의 그가 문을 열었다. 웃을 듯 말듯 입 꼬리를 올리며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들고 온 바지를 그의 손에 던지듯 넘겨주며 대문을 빠져 나오는 내 등 뒤로 그가 소리쳤다.

  “요기가 아니라 삼촌이다. 알았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내 양 볼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리미의 잔열만큼 뜨거웠다.

  “치, 진짜 삼촌도 아니면서.”

  입을 삐죽거렸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부엌으로 직진해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삼촌 아니제?”

  뜬금없는 내 질문에 엄마가 바쁜 손을 놓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글씨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마구 소리치잖어.”

  나는 자꾸 달아오르는 양 볼을 문지르며 볼멘소리를 가장해 확인 사살을 유도했다.

  “먼 삼촌?”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지. 삼촌은 아니고 그냥 오빠라고 혀. 도호 갸 아버지를 내가 오빠라고 불렀으니께. 촌수로 따지면 니도 삼촌이 아니고 오빠인 셈이지.”

  엄마는 또 무엇인가 구시렁댔지만 난 이미 들을 것을 들은 셈이어서 후다닥 부엌을 빠져나왔다.

   “오빠”

   가슴에 뜨거운 것이 화하고 퍼진다. 급기야 온몸이 찌릿찌릿해온다.





Ludovico Einaudi [ 10 Best ]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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