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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12. 삶은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1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5. 12.


   삶은 고통이었지만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한 듯했다. 7년 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놀라 현기증이 일었다. 낯선 세상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출소 전 거의 1년 동안을 병원에 들락거렸다. 세상에 나온 후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고문의 후유증인지 환청에 시달렸다. 누군가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는 듯 두려움이 몰려와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하기사 누구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시절이었는도 몰랐다.

   출소를 하자마자 그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삼청교육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 온 듯, 그의 풍모는 다시 비대해져 있었다. 자글자글 얼굴과 목의 주름이 세월을 말해 주었다. 억울하기만 한 7년 감옥생활의 미스테리를 풀 수 있는 방법은 그를 통한 것이라는 확신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나는 그가 아니면 대답해 줄 수 없는 말을 물었다.

   “혹시 곽중근과 제 간첩누명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인가요?”

    직설적인 나의 물음에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쉽게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완강한 의지가 보였다. 집요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것이 갸가 오해를 헌 듯 싶은디.”

   “무슨 오해를? 갸 아버지의 죽음을 저와 연관 시켰는가요?”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그를 날카롭게 직시했다.

   “저를 마지막에 취조하고 진술서를 쓰게 한 놈이 누군 줄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는  놀라지 않았다. 그것이 더 이상했다.

   “긍께. 내도 아들한티서 들었는디.”

   뭔가 말할 듯 말할 듯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답답하고 분이 올라오는 것을 가까스로 다스려야 했다.

  “혹시라도 곽중근 아비의 살인 사건에 제가 관계되어 있다고 갸가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오랫동안 궁금했던 말을 꺼냈다. 그는 내 눈길을 외면했다.

   “참말로 그런가요?”

   벌겋게 달아오른 내 얼굴을 직시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형님이 그 양반을?”

   “고것이, 그 때 알다시피 내는 사찰에 있었응게.”

  그는 변명이라도 하듯 더듬거렸다. 그의 아리송한 태도는 의혹만 증폭시켰다.

   “그렇다면 필대 가요? 형님 대신?”

  확신이 들었다. 그의 안색이 서서히 굳어졌다.

   “참말로 그런 것인가요?  애먼 제가 감옥에 간 것이구요.”

   분노의 불길에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차라리 부정이라도 했으면 참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것은 살인사건이 아니었다고 한께. 결론 낫잖혀. 썩을 놈의 영감태기가 술 처먹고 골로 간 사건으로.”

   부르르 떨고 있는 내 안색을 살피며 그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더 이상 물어봤자 소용없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떡하든 사건의 내막을 알아야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내 어머니를 찾았다고 했다. 

   “누님, 쟈를 저대로 두면 되겠구먼유”

   그의 권유를 받은 어머니는 먼저 몸을 돌보자고 나에게 매달렸다. 어머니의 간곡한 청도 있었지만 나 또한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에 동의했다. 나는 예전 그가 머물렀던 숭림사라는 사찰을 찾았다. 나를 위해 그가 미리 마음을 썼다고 했다. 나는 사찰에 머무르며 병원을 오갔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맑은 공기와 청아한 자연의 소리였다. 불당에서 들리는 목탁소리는 안정감을 주었다.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며 벌레소리들이 속삭임으로 들릴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다.

   “그려. 수고혔다.”

   언제나 반겨주는 이는 그였다. 환갑을 목전에 두었다는 그는 여전히 그랜드파의 숨은 실력자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신 모든 활동은 필대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자 장가들어야지.”

    그는 나를  보자마자 장가이야기부터 꺼냈다. 필시 어머니를 대신 한 것이리라. 나는 더 이상 곽중근의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까닭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 문제였다.

   “그려. 누님이 양키시장에 점포를 사두셨구먼. 그렇게 시작혀는 거여.”

    순간 울컥 어머니의 눈물이 기억났다.

   “차차 생각혀 보게요.”

   “이자 젊은 나이도 아닌께.”

  그는 할 말이 많은 듯 쭈뼛거렸다. 필시 어머니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것이다. 어머니를 향한 그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한결같이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그에 대한 고마움도  그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한 가지 요인이었다.

   “이자, 누님은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예능인이 되었다니께.”

   그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랑스러운 듯 소식을 전했다.

   “예전 생각혀지말고. 요새 세상은 다르다니께.”

   마치 어머니에 대한 변명을 대신 하려는 듯 그는 자세히, 침착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하여 누님이 돈을 모으실 수 있었던 것잉께. 암말 말고 적당히 쉬다 일혀.”

  그는 기어이 대답을 듣겠다는 듯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참으로 간절했다.  그런 그가 고맙고 또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풀리지 않는 숙제를 가슴에 품은 나는 생각만큼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러게 말이다. 오만세월을 보내다 봉께 이런 인연도 있는 갑다.”

   어머니 또한 그와의 인연이 오직 고마울 따름이라고 했다. 그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어느 덧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느긋하지만 약간의 설렘을 가지고 양키시장 내 가게를 향해 절룩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주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오만 잡동사니를 취급하는 곳이었지만 나는 미제 테이프나 트랜지스터 라디오나 그와 관련된 부품들을 팔았다. 이것저것을 준비하는데 또한 그의 도움을 받았다.

   철없던 시절, 기생인 어머니가 부끄러워 춤추던 어머니를 마다했었다. 이제 예순이 넘은 나이의 어머니가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의 알아주는 예능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낯설고 미안했고, 믿어지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뿌듯한 구석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가 내 출소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 장황하게 설명을 하려고 애썼다. 마치 자신의 무용담이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그의 얼굴엔 어머니를 향한 경외심마저 엿볼 수 있었다. 10년의 언도 끝에 7년 만에 출소된 연유를 들었지만  그것은 그가 보여준 감격만큼  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만큼 내 마음은 무감각해져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세상이 변했던 만큼 나 또한 변한 것임이 분명했다.

   40대 중반으로 들어선 나는 양키시장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내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노동이었다. 손님은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양키시장을 오가는 통행인조차 예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농, 수, 광산물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공산품의 수입이 완전 자유화되면서 양키시장 골목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고 토박이인 가게 주인들이 시절을 한탄했다. 시절의 변화에 따른 원인도 있었겠지만 양키시장과 붙어 있던 감둑의 흥망성쇠와도 연관이 있는 듯했다. 원래 양키시장 옆으로 1960년대만 해도 감도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감도가란 감을 사다가 끓인 물에 12시간정도 데치면서 감의 독기를 빼던 곳이었는데 이후 감둑이라 불린 셈이다. 인근에 양조장이 있어 근처에 하나둘 대폿집이 생겼는데 이들이 점차 유흥주점으로 바뀌고 서서히 성매매 여성들을 고용하는 방석집을 바뀐 곳이다. 감둑에 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시절엔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았던 곳이었다. 더불어 그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색시들로 치장된 술집이 우후죽순처럼 번져 여느 도시의 집창촌처럼 밤이면 수많은 홍등들이 반짝이며 오가는 이들을 유혹했다. 그러던 감둑이 점점 쇠락을 길을 걷게 되자 더불어 양키시장 조차 사람의 발길이 줄어들은 형국이었다.

   한산한 손님들 대신으로 아직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색시집 종업원들이 수시로 양키시장에 출몰해 지루한 양키시장 상인들의 눈요기가 되기도 하고 말벗이 되기도 했다. 갈 데까지 간 인생들은 늘 모든 것이 헤펐다. 돈 쓰는 것도 헤펐지만 웃음도 마음을 주는 것조차 헤펐다.

   어머니는 무시로 여자들의 사진을 디밀었다. 새끼라도 낳으려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물지 못한 내 상처는?   여자를 향한 욕구가 생기지 않는 것에 나 또한 의아한 참이었다. 혹여 몸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었지만 병원까지 들락거릴 만큼 마음이 앞서지 못했다. 그저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말벗에 장단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충분히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눈웃음을 치며 말을 거는 감둑의 아가씨들은 볼 때마다 나는 공숙희가 떠올랐다. 비록 내 성정이 친절한 편이 아니고 유난히 말 수가 적었음에도 되도록 고달픈 인생들의 말 벗이 되는 것에 주저할 수 없었다. 한가한 틈에 나는 기타를 치며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내 유일한 취미였으며 건조하고 칙칙한 삶의 위로였다. 80년대의 민중가요들은 서서히 서정가요의 성격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이슬이나 친구 같은 노래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저음의 내 노랫소리는 듣는 나도 기분을 좋게 했다.  

  "자넨 양키시장의 김현식이네."

  옆 가게 최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 노래 소리에 끌린 감둑 아가씨들은 종종  나를 찾았다. 그 무리들 중에 아가씨라고 하기에는 나이 먹은 조연화가 있었다. 그녀는 야무진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하여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어딘가 공숙희를 닮은 분위기는 마음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오빠”

   공숙희가 부르듯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조연화의 사연 또한 공숙희와 비슷했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던 조연화는  어린 나이에 식모로 들어갔고 결국 안방마님의 손에 끌려 주인댁의 대를 이어야 했다고 한다. 핏덩이를 안방마님에게 안긴 후 찾아들어간 친정에서마저 외면당해 결국 색시집을 돌고 돌아 감둑까지 흘러 들어온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라나, 어쩐다나. 여하튼  마음이 헤픈 까닭인지 눈물도 헤펐으며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여 그녀는  늘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건여. 사건.”

   홍등가 감둑에 불이 켜질 무렵이면 양키시장의 가게들은 셔터를 내렸다. 셔터를 내리다 만 사람들이 우르르 감둑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때 마침 나도 호기심에 견 눈질을 하며 감둑을 지나고 있었다. 몇 집 남지 않은 감둑이었지만 욕설과 폭력이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여간한 사건에 놀라지 않았지만 그 날의 주인공이 조연화라는 사실에 놀라는 눈치였다. 필시 손님이었을 남자의 손에 끌려 조연화가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마치 화풀이를 하듯 조연화를 향한 서슬 퍼런 남자의 발길질에 누구도 소리만 지르고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워낙 건장한 체구의 남자였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절룩거리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내 주먹이 남자의 면상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조연화는 눈물로 범벅 진 얼굴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 나는 움찔했고 상대 남자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나는 간신히 얼굴을 피했고 어느 결에 내 주먹이 다시 상대를 제압했다.

   누군가 박수를 쳤고 환호성을 질렀다. 주먹이 오가는 사이 상대의 얼굴에서도 내 얼굴에서도 피가 튀겼다. 먼저 지친 상대가 욕설을 퍼부으며 엉겨 붙었다. 나는 남자를 올라타며 승패를 갈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실컷 주먹을 썼다. 사정없이 분노에 몰려 짐승처럼 그렇게 나는 포효했다. 잠잠해진 남자를 알아차렸을 때엔 내 눈에서 포효하던 분노도 잠잠해졌다. 다행인지 남자는 줄행랑을 쳤다. 그날은 내가 양키시장과 감둑의 영웅이 된 날이었다. 조연화의 순애보가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또한 나와 군산 주먹계의 한 계파였던 백안관파와의 전쟁이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그것은 내 개인과 백안관파의 관계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나는  여의치 않은 몸으로 오랜만에 피의 맛을 본 셈이었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그 사건에 끌려들어갔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폭력 앞에 약자였던 누군가를 지켜내고자 하는 의협심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조연화의 얼굴에서 공숙희의 얼굴이 오버랩 되며 오직 지켜내야겠다는 순간적이며 본능적인 의지이었다. 얼결에, 무엇에 홀린 듯.

  내가 백안관파의 일원과 맞붙었다는 소문은 일파만파 군산을 떠들썩거리게 했다고 최씨가 침을 튀겼다. 절대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단지 조연화를 공숙희로 오해한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진 행동이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다시 주먹계의 두 계파인 백안관파와 그랜드파의 피의 혈투가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어쩜 나는  그들 양 계파가 팽팽했던 힘의 싸움이 계속되자 그 시간이 빚어내는 긴장감과 지루함을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하나의  불쏘시개의 역할을 한 셈인지도 몰랐다.

   정치적으로 입지가 높은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신생 백안관파는 주로 백안관이라는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었고 그와 필대가 중심이 되어있던 그랜드파는 그랜드모텔의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주먹세계의 룰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다. 세로 보면 전통이 있는 그랜드파가 월등하겠지만 그것은 그저 표면에 불과한 것이고 신생 백안관파의 젊은 혈기들은 훨씬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었다. 그랜드파의 일원들은 의리를 중요시 한 반면 백안관파의 일원들은 세력 확장에 중심을 두었다.

   오야붕인 그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무렵 백안관파의 일원들은 야금야금 그랜드파의 활동영역을 침범했고 몇 달 사이에 감히 그랜드파에 맞설만한 위용을 드러냈다. 소문일지 모르지만 간첩색출에 지대한 공을 인정받아 특진을 거듭해 결국 군산 경찰 서장으로 영전을 온 곽중근은 아버지 곽일표의 죽음이 양 계파의 세력다툼에도 원인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드러내놓고 어느 한 계파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어렸을 적 분명 고향 독립군파의 계파를 이어가고 있었던 백안관파를 비호하고 눈에 가시와 같은 그의 그랜드파를 일망타진할 계략을 숨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 정도 신빙성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곽중근이 경찰서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깡패일제소탕작전을 개시했다는 소문은 군산시내 일원에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러한 시점에 터진 나와 백안관파의 주먹다짐은 다분히 나를 그랜드파의 일원이라 오해한 백안관파의 복수심을 자극하고도 남았고 경찰서장이라는 곽중근의 지위를 남용할만한 구실을 준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백안관파는 그랜드파를 직접 건드리지 않았다. 양 계파사이의 긴장감은 일촉즉발의 태세였지만 서로 눈치만 살폈고 곽중근 또한 자신의 관할에서 시끄러운 사건이 터지기를 원하지 않는 듯 겉으로는 침착했다. 그들 사이에 모종의 휴전과 같은 상태는 얼마간 지속되었지만 곧 실체를 드러냈다.

   먼저 일을 시작한 것은 곽중근이었고 곽중근에게 도움을 준 것은 백안관파의 일원이었다. 90년대 초는 한 중수교로 인천을 통한 중국과의 교역량이 급증했다 여행객증가와 함께 밀수등 각종 범죄 또한 빈번했다. 범죄 유형은 지능, 조직적이고 대형화의 추세를 보이는 중에 특히 한약재로 위장한 아편 밀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곽중근은 교활했고 지략에 뛰어났다.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만큼 치밀하게 계산된 사건이 그랜드파의 뒤통수를 쳤다. 일명 “군산 그랜드파 아편사건” 이라는 사건은 그의 그랜드파 일원들이 도전하기에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아직 그랜드파 그 누구도 군산을 벗어나 전주 이리 등의 세력과 연대할 만한 세도 갖추지 않았었고 그럴 만큼 머리가 뛰어난 일원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골목 깡패로 시작해 근근이 머리수로 세를 늘렸을 뿐이었고 그들의 지도자인 그 또한 대형 사고를 칠만큼 통이 큰 인물도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그런 그랜드파의 약점을 곽중근을 알고 있었다. 곽중근은 자신의 하수인과 같은 백안관파를 조종해 그의 그랜드파 일당을 마약사범으로 몰아간 것이다. 백안관파 일원중의 하나가 그랜드파 조무래기들에게 시간에 걸쳐 알게 모르게 아편을 나누어주었고 소문 만으로만 듣던 아편을 손에 쥔 그랜드파의 누군가가 필대를 거쳐 그의 수중까지 아편을 전달한 것이 화근이었다. 영문 모르고 그는 급습을 당했고 필대를 위시한 몇몇이 아편을 소지하고 판매한 행위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건은 오랫동안 모의 되었지만 일단락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다만 곽중근의 실수는 그를 사건과 연관시킬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까닭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체포선상에서 제외되었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 필대를 위시한 수족과 같은 그의 부하 몇몇이 감옥에 갇혔다. 명맥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자신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그는 그저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펐을 것이다.

   그를  제외한 그랜드파의 일원들이 일망타진 되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군산을 들썩거리게 했다. 사건을 전해들은 나는 그를 위시한 그랜드파의 몰락이 나에게서 연유된 것은 아닐까 자책이 들었다. 이미 나의 세계에 속하지 않은 그들 간의 전쟁이라는 생각은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또 그를 모른 체 할 수 없는 입장도 있었다. 함께 지내온 세월의 깊이와 길이는 비단 어머니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견뎌온 동지의식도 있었고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은 신뢰는 아직 둘 사이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었다.

   “몸 조심해야 쓰겄어요.”

   오랜만에 종이호랑이의 모습으로 어머니를 찾은 그를 보고 진심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예전 그가 나를 염려했던 말 그대로 이제 그를  향한 내 염려의 표현이었다.

   “그려 조심혀야 것다. 어머니 계시니 니는 조심혀야 혀.”

  그는  무심한 듯 뇌까렸다. 평소와 많이 다른 그가 이상했다. 패잔병으로서의 그의 얼굴엔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이 느껴졌다. 예 쉰 중반을 넘어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그를 바라보려니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연민의 감정이 솟구쳤다.

   “그려, 동상. 동상도 나이를 생각혀야지.”

  어머니가 덧붙였다. 그의 표정에서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더 있을 것 같은 애틋함이  쓸쓸하고 연민스럽던 감정에 더해 슬프기 까지했다. 그의 자존심을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누님 이것을 맡아주소.”

  그가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내미는 봉투를 받았다.

   “혹시라도 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님이 정리해주소.”

  그의 눈길은 간절했고 깊었다. 어머니는 평소와 다른 그의 태도에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말을 덧붙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은 한 참을 그러고 앉아 있었다. 침묵 또한 깊었다.

   “동상. 우리 함께 오래도록 이렇게 지내세.”

   어머니가 침묵을 깨고  만감이 교차된 얼굴로 웃었다.

   “참말로 누님, 지는 열여섯. 누님은 스무 살 안쪽이었을 당시의 그 일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았구먼유.”

   그의  목소리에 물기가 느껴졌다. 세삼 까마득한 옛일을 입에 올리는 그의 얼굴엔 온갖 비감이 넘실거렸다.

   “생각혀보면 동상과의 인연도 보통이 아니었구먼. 자석 빼고 내 곁을 늘 보아준 것도 동상뿐인 것 같은디.”

   “지에게도 누님은 어머니였고 누님이었고 애인이었당께유. 남새스럽지만 누님은 제 영원한 아네모네였으니께유.”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네모네의 확실한 뜻을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가 꽃이름을 말했을 것이고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이 아네모네라는 꽃처럼 예쁘다는 말로 이해했을 것이다.

   그날 밤 자정이 넘도록 그와 어머니가 도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나는 사건이 있은 후 더욱더 살갑게 달라붙는 조연화에 대한 나의 마음이 혼란스러웠고 꿈속까지 터무니없게 나타나는 조연화에 대한 감정으로 뒤척이던 밤이 늘어만 갔던 즈음이었다.

   “갸가 빚이 좀 있던 가빈디. 여유 있으면 빚 갚아주고 데꼬 살아보면 어뗘?”

   농담처럼 내 뱉는 이웃가게 최씨의 말에 코웃음을 쳤지만 한편으론 신경이 쓰였다. 몸으로 먹고사는 여자인 조연화의 처지를 동정했지만 그렇다고 함께 살 만큼 선뜻 마음이 다가서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연화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내 가슴에 쳐들어와 웃고 울고 요염을 부렸다. 조연화의 푸념처럼 깊은 한 숨소리는 가슴에 성에가 끼는 것처럼 아리기만 했다.  젊었을 때의 공숙희에게서 느끼던 감정과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겨우 밥값을 벌 수 있는 양키시장에서 조연화에 대한 혼란의 감정에 허덕이며 두 계절을 더 보낸 후 어머니에게 선언을 했다.

   “흠 있는 여자지만 데꼬 살아야겠습니다. 어머니가 이해하소.”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내 눈길을 더듬었다.  한 번도 여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들이 몸으로 먹고 사는 여자를 들이겠다니 믿기지 않으면서도 걱정에 몰린 표정이었다. 늘 인연은 하늘의 뜻이라는 믿고 살았던 까닭인지  혹은 가타부타 자신의 말을 품어내지않는 아들의 깊은 속을 이해한다는 뜻인지 아무튼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과거를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의 여자라 하여도 오십을 바라보고 있는 아들의 선택에 초를 치고 싶지 않은 까닭도 있었으리라. 아니 성에는 차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하나 뿐인 아들이 여자와 함께 살겠다고 하니 쌍수라도 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려야. 뜻대로 허긴 혀도 잘 정리혀야 안 쓰겄나.”

    어머니가 답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 였다. 그렇게 나는 조연화와 월명산 자락에 있는 칠성사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형식적인 절차였지만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공들여 맞춘 감색양복을 입었고, 조연화 또한 처음으로 고운 남색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입고 서로의 손가락에 금가락지 하나씩을 나눠 끼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어머니 몫의 금가락지는 비로소 아들의 아내의 손가락에서 빛을 본 셈이었다.

  나는 신혼여행으로 온양온천을 택했다. 하룻밤의 여행이었지만 나와 조연화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느긋함과 서서히 달아오르는 서툰 욕정에 몸을 맡겼다. 마치 첫 순결의식을 치르듯 서툴렀고 뜨거웠고 감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상대를 위한 조심스러운 배려였고 조연화는 난생 처음으로 여자가 된 것 같은 황홀함을 느꼈다고 수줍게 말했다. 나 또한  비로소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의 책임감이 묵직하게 가슴에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것어요.”

   다음 날 아침,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조연화를 안으며 나는 난생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무신 그런 소릴. 이자부턴 좋은 말만 하소.”

  조연화의 등을 토닥거리며 나는 말하지 못해서 참을 수 없는 희열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내 온몸을 휘돌아 내 몸의 중심인 그곳에 모아져 용암처럼 산을 뚫고 터져나오는 한 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조연화는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괴성을 질렀고 결국 요란하게 울었다.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는 더 이상 이런 행복감을 연장할 수 없었다. 

   “군산 경찰 서장 곽중근을 태운 승용가가 사고를 당해 즉사혔다는디요.”

   장항을 거쳐 군산역에 탄 택시 안에서 들은 소식이었다. 순간 아득했다. 귀가 멍멍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지 애비도 살해되었다고 혀는디 서장도 그 전철을 밟고 말은 셈이구먼유. 뭔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나 모르것소만. 복수를 당혀도 싸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틀림없이 쪼간이 많은 사건이긴 현가보요.”

   소식을 전하는 택시운전사는 뒷좌석을 힐끗거리며 말하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 계속 주절거렸다.

   “깡패 두목이라고 그러던디요. 사고를 낸 차가. 중앙선을 밟고 돌진현 것을 보면. 그날 서장과 함께 술을 마신 작자라고 혀든디. 죄 짓고는 천수를 누릴 수가 없을 것이구먼유.”

   단번에 사건의 핵심이 보였다.

   “상대편 운전자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같이 죽었다던디유. 둘다 현장에서 즉사 혔데요. 마치 박치기라도 하듯 달려 들었으니께유. 음주운전을 혀고서. 그것도 자정도 넘은 시각에. 인적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그렸다는디. 솔찬히 계획적이었던 가보드라고요.”

   집에 도착해  어머니부터 찾았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사건에 대해 물었지만 자세한 사항은 말할 수 없다는 말 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도립병원으로 직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립병원에는 그랜드파의 남아있던 그의 부하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경찰 몇이 그들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보였다. 어머니가 퉁퉁 부은 모습으로 병원의 접수대 앞에 앉아있었다. 차마 어머니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어머니가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은 그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는 완전한 고독 그 자체였다. 째보선창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처연한 모습이었다. 마치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 어머니는 무참해 보였다.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어머니를 지켜봤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어머니의 애통함이 나를 조여왔다.

   그렇게 그는 떠났다. 장례를 치룬 뒤 어머니는 맥을 놓고 앓아 누었다. 장가든 아들의 행복을 빌 사이도 없이 어머니는 세상을 다 잃은 듯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말을 나누는 것조차 하려하지 않았다. 뜻밖의 상황에 아내인 조연화  또한 어쩔 줄 몰라 했다. 시집 온 며칠 만에 앓아누운 시어머니가 마치 자기 탓이라도 되는 양 아내는 허둥댔다. 새 사람을 잘 못들인 까닭이라는 말이라도 새어나올까 안절부절 동동 거렸다. 아내는 마음만큼  시어머니를 향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죽을 끓이고 손발을 주무르고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병원 대신 부지런히 약을 사다 날랐다. 미제물건을 파는 여자를 수소문해 몸에 좋다는 미제 알부민을 구해  싫다하는 시어머니의 몸에 맞혔다. 시어머니는 쉬 일어나지 못했다. 서울에서 공연을 하기로 했다던 약속마저 실행을 하지 못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애틋함과 죄스러움에 내 안색을 살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아내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나는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어쩌지 못했다.

  누워있는 어머니도 염려되었지만 시집 온 며칠 만에 시어머니 병구완을 하게 된 아내에게도 미안했다. 기 한 번 제대로 펴고 살지 못했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며 다짐한 마음이 있었다.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꿀릴 것 없을 만큼 사랑하리라.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다해. 비록 가진 것이 건강하지 못한 몸 밖에 없었지만 마음만은 세상 누구에게 지지 않을 만큼 사랑해 주리라. 최씨의  가게에 걸려있던 복사본 서양그림 속 농부부부처럼 말이다.

  그림 속 볏단을 베고 다정히 누운 농부부부처럼 사는 것이 내 일생 최대의 꿈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내와의 결혼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동기였다. 결혼 축의금대신에  나는  최씨에게 벽에 걸려있는 그림을 부탁했고 최씨는 선뜻 중매쟁이 운운하며 액자를 내주었다. 결혼 전 날 밤 신혼 방이 될 시멘트 벽 위에  단단히 못을 박고 액자를 걸어 놓으며 나는 얼마나 흐뭇했으며 얼마나 설렜는지, 마치 행복이 늘 이 방안에 넘칠 것 같은 도취는 밤을 꼬박 세우게 했다. 아내와의 첫날밤을 치룬 다음 날 온천장여관에서 나는 한 없이 늑장을 부리며 팔베게를 한 신부를 조물락거리며 신혼방에 걸린 그림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했었는데.  아내는 그림속 부부처럼 다정히 누워있는 일조차 미안한지 자꾸만 몸을 사렸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또한 얼마나 아렸는지.  어머니에 대한 염려보다 아내의 마음 씀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근 한 달을 누워 지내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난 듯 누런 서류 봉투하나를 내밀었다.

   “맡긴 것이다. 지 신상에 뭔 일이 있으면 니에게 전혀주라고 혀드라.”

  봉투는 풀로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다. 봉투 안에는 등기부등본 하나와 어머니 앞으로 된 통장 하나와 도장, 그가 손수 쓴 편지가 있었다. 초등학교 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은 그의 글자는 온통 삐틀거렸고 맞춤법조차 맞지 않았지만 얼마나 정성스럽게 볼펜을 눌러썼는지 글자 중간 중간에 강약조절을 실패한 잉크가 살짝 번져 있었다.

   “보거라.

   내 편지가 니 손에 다을 때 쯔미면 낸 이 세상이 엄쓸 거시구만. 서운타 생각혀지 마라. 인명은 재천이라고 혀든디 내 목숨은 내 거시니께. 은젠가 니가 물었다. 곽일표의 죽음과 연관 되기는 혔냐고. 그 물음에 이제사 대답혀게 되어서 좃나 미안혀다. 내가 필대더라 죽이라고 혔다. 필대와 나 사이에 영원히 비밀로 무더두기로 혀면서 말이다. 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그렸는디 니가 생각도 못혀게 잡혀가는 바람에 내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럿다. 니가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닐팅께 길게 말혀지 안혀거다. 참말로 내 의도는 업썼다. 니 때문에 내 마음이 하루도 편할 날이 업써쓴께 니가 이해혀라. 마지막으로 누님을 부탁현다. 니가 어떴케 생각혈지 모르거지만 누님은 열 여서 살 이후에 내 아네모네였따. 명심혀라. 니 어머니 내 누님 눈 가무실때꺼정 그분 뜻대로 따러 사러라. 니 목과 누님 목스로 얼마간의 돈과 양키시장 점포를 하나 남긴다. 언젠가 내 여동상을 차게되면 갸 줄라코 혔는디. 니가 알끼라. 미안타. 장가는 꼭 가서 새끼 하나 더 만드거라. 참 내 언젠가 공숙희, 까무치 그 야 이야기를 혔는디 이지 말거라. 공숙희가 니 딸을 나았다더라. 내가 백방으로 차자보았는디 외삼춘 미테서 잘 크고 있더라. 해서 더 이상 니에게 말혀지 아났다. 갸 외삼춘 이름은 공태수이다. 은젠가 차자 보거라. 공태수 검사는 내 은인이기도 혀다. 말허며는 기러지니께 그냥 그런 주로만 알거라. 니 대신혀서 복수 하고 갈란다.

이만 초오총. 니 영워한 형님  배상.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울음이 울컥거렸다. 언젠가 그가 자신의 여동생 몫이라며 목이 좋은 양키시장 입구의 점포는 내이름으로 등기되어 있었다. 통장에는 상당한 액수의 현금이 어머니의 이름으로 저금되어 있었다. 아마 일 년도 더 전에 계획된 일이었든 듯 등기 날짜도 통장 개설일도 일 년이 더 지나있었다.

  그의 편지를 읽는 동안 어머니 또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편지를 읽고 난 사흘 후 어머니는 자리를 털었다. 살겠다는 의지였는지 눈빛은 어느 때보다 검셌다. 나도 아내도 안도의 숨을 쓸어 내렸다. 이제 그 어떤 시련도 셋이라면 더 이상 고통일 것 같지 않은 든든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목에 가시처럼 그가 언급한 공숙희의 딸, 내 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니 핏줄이니 갸를 찾아야 안 허겄냐?”

   어머니 또한 잊지 않고 속삭거렸다.

   “다 인연이 다면 곧 만날 것이니 급하게 생각지 말게요.”

  어머니의 핀잔에도 나는 망설이고만 있었다. 세삼 검사 삼촌 밑에서 잘 자라고 있는 딸을 입때껏 한 번도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불쑥 나설 용기도 없었지만 아내인 조연화에게도 못할 일은 아닌지,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인생에서 행복한 순간들은 측정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법인가? 그가 떠나고 어머니가 다시 기력을 찾고  시간은 꿈처럼 흘렀다. 어머니도 나도 아내도 난생 처음 맛보는 듯 선물 같은 일상에 취해있을 무렵. 하늘은 더 이상 행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나를 쓰러뜨렸다.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은지 꼭 일 년만의 일이었다. 부지런 절뚝거리며 출퇴근을 반복하며 겨우 밥벌이를 하며 장사를 하는 맛에 익숙할 즈음이었다. 구급차에 실려 간 나는 뇌출혈 진단을 받아 응급수술을 한 후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만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다. 물론 재활치료를 꾸준히 거친다면 서서히 회복할 수 있으리란 진단도 받았지만 휠체어에 타지 않고서는 움직이지 못할 신세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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