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여편네가, 씹도 못하는 주제에.”
그악스런 봉여사가 夢여사에게 삿대질을 해대고 있었다.
“네 년이 봤어. 내가 씹도 못한다고 언년이 그려?”
"육시럴 여편네야. 뭐 언년이 그려. 내말이지. 그러게 너 자식새끼라도 있어야?"
"네 년이 내가 자식새끼가 있는 줄 없는 줄 어이 알아? 내 입으로 자식새끼하나 없다고 떠들기라도 했어?"
"뭣이여. 네 팔자에 뭔 자식이라도 있을까봐. 아직도 처녀 딱지도 못 땠다고 그러든데, 뭘 그려. 영락없는 팔푼이랑게."
봉여사에 질세라 夢여사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주말 장이 서는 나운동 시장, 봉여사와 夢여사는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암묵적으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두 여사의 다툼은 오늘 뿐 아니었다. 매 번 장이 설 때마다 눈에 가시가 돋쳤다. 드디어 오늘은 정식으로 한 판 붙은 것이다. 사실 봉여사와 夢여사의 자리라는 게 지정되어 있을 리 없었다. 누구라도 일찍 와서 보따리를 푸는 사람이 임자였다. 이 두 여사님이 꼭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말하기도 저어 하지만 바로 그들이 차지하려는 자리 앞쪽에 트럭을 몰고 와 앉아있을 김선생 때문이었다. 김선생은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시쳇말로 아이돌이었다. 훤칠한 키에 심심할 때면 절단 된 한 손으로 하모니카를 불어대는 낭만가객이었다. 김 선생이 말을 더듬거린다는 사실 조차도 이상한 신비감을 주었다. 비록 남루한 옷차림이었지만 귀한 집 자손이 틀림없었음을 입증이라도 하 듯 귀티가 절절 흘렀다. 젊었을 때는 순진한 처녀들 애간장을 한 트럭쯤은 태웠을 법하건만 이제 육순을 훌쩍 넘은, 정수리까지 흰머리 밭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통 여사님들에게 여전한 로망이었다. 그런 김 선생의 앞자리가 그야말로 황금부지였다. 삼십도 되기 전에 과부가 되어 다섯 새끼 버젓이 키워 낸 봉여사와 쉰이 가까워지도록 남자 손이라도 탔을까? 아직도 싱글인 夢여사와의 경쟁은 그 누구보다도 치열했다. 시장통 여사님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오랫동안 못 입고 못 먹으며 새끼들 키워내느라 고생했던 과부 봉여사도 이제 어엿한 서방 만나 위로를 받아야 할 때가 되었다며 봉여사 편을 드는 축이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남자 손이 타지 않아 혈혈단신 청초한 夢여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남자가 김 선생인 것이 분명하다는 또 한편이 있었다.
봉여사의 집은 어은리, 나운동 시장까지 넉넉히 30분은 더 털털 거리는 버스를 타고 와야 쓴다. 늘 그것이 봉여사는 아쉽기만 하였다. 누군가 새벽같이 시내라도 가는 자가용이라도 행여 얻어 탈까, 첫 버스 시간보다 한 시간은 더 먼저 버스정류장엘 나온다. 운이 좋으면 차를 얻어 타 夢여사보다 일찍 김선생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련만 그렇지 않으면 늘 夢여사에게 자리를 내 줘야 할 판이다. 오늘은 용케도 이장이 타고 나오는 화물차를 얻어 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헐레벌떡 왔다. 그만 새벽 나절에 날짜 지난 우유를 마신덕분인지 배가 살살 틀어 보따리만 던져놓고 화장실에 갔다 오니 떡 하니 夢여사가 자기 보따리를 내꼰져 놓고 그 자리에 좌판을 벌이고 있는 꼴이 난 것이다. 김선생이 나타나기 전에 오늘은 기필코 夢여사에게 자리를 뺐기지 않으리라 헐렁거리는 속바지를 질끈 추킨다. 속바지 호주머니의 묵직한 동전 무게가 느껴졌다. 힘이 났다. 어젯밤 늦은 시각까지 판돈으로 놓아진 동전을 챙기느라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화투장을 때리면서 얻은 포획물이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보따리를 던져 놓고 간 봉여사 뒤를 夢여사가 헐레벌떡 달려와 좌판을 핀 것이었다. 봉여사의 보따리는 저쪽으로 업어 꼰져 놓았다. 우겨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봉여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봉여사는 과부로 산 세월이 30년이 넘었다. 애비 없는 새끼들 다섯 중에 셋을 고등학교까지 보내고 둘은 4년제 대학까지 보낸 몸이다. 그들 모다 제 밥벌이 하느라고 눈코 뜰 새 없다. 이제 비로소 예순을 목전에 두고 봉여사는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었다. 이상하게도 뭔 인연인지 그 무렵 김 선생이 떡하니 나운동 시장에 구닥다리 트럭을 몰고 나타난 것이다. 한 눈에 홀딱 반했다. 무엇이라 설명하지 못할 그 무엇이 있었다. 그냥 그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그의 널찍한 등짝에 펑퍼짐한 자신의 휜 등이라도 대고 있으면 펄 펄 끊는 73도의 체온에 삭풍이 부는 한 겨울도 무사할 것 같았다. 터무니없는 기대가 우습기도 했지만 김 여사는 자신의 마음이 막 부풀어 오르고 있는 4월의 꽃망울 같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 해를 넘기지 않고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의 포획물을 가지고 싶었다. 징글징글한 돈도 아니고 야속한 자식새끼들도 아니고 오로지 '남자의 정'이 김 여사의 목표였다. 그런데 적수가 나타난 것이다. 본때 나는 도시락을 쌓아 슬그머니 김 선생 트럭 운전석에 몰아넣는 夢여사였다. 필시 오랜 세월 홀아비일 것이 분명 할 진데 마음의 겹부터 벗기자 나선 것이다. 夢여사 만키롬 예쁜 도시락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손길은 섬섬옥수, 이팔청춘 가슴 뛰는 청춘이었다. 된장, 고추장 손수 만든 장 종류며 밑반찬 류, 김치까지 싸들고 나타나 수줍은 듯 은근슬쩍 김선생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런 마음을 알랑가 모르는가 김선생은 夢여사의 도시락도 봉여사의 밑반찬도 넙죽넙죽 잘도 챙겼다. 하지만 김선생은 지긋이 여사님들의 노는 꼴을 쳐다만 볼 뿐 가타부타 한 마디도 거들지 않는다. 마치 세상사와는 상관없다는 듯 김선생은 무심키만 하였다. 봉여사도 夢여사도 그런 김선생의 태도에 애간장이 녹았다.
"지나 나나 불쌍한 처지기는 매 한가지 이지만 일생일대의 기회를 뺏길 수가 없어야."
봉여사는 속으로만 궁시렁 거린다.
그때 저쪽에서 보무도 당당히 김 선생의 용달차가 올라오고 있었다. 분분한 벚꽃의 낙화를 배경으로 수십만 대군이 진군하는 것처럼 봉여사도 夢여사도 가슴이 콩당 거렸다. 오늘은 저 용달차에 무엇을 팔러 왔을꼬? 궁금키도 하였다. 멋지다. 어떻게 한 손으로 저렇게 좁은 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전하며 주차를 하는 지. 김선생의 일거수일투족 신기하기만 하였다. 육순을 바라보는 여사님들의 쭈글 거리는 눈주름에 살포시 분홍 꽃이 피기 시작했다. 막 주차를 끝낸 김선생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용달 뒤 칸에 포장을 걷어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화물칸에서 휠체어를 주섬주섬 내리더니 운전석 옆 창을 열고 어떤 여인네 하나를 풀썩 안아 내려 휠체어에 앉히는 게 아닌가? 근동의 모든 여사님들은 일제히 김 선생의 그 모습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세상이 순간적으로 멈추고 오직 김선생과 김선생의 동행만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봉여사도 夢여사도 넋이 나간 듯 그런 김선생을 멍 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4월이라 해도 이른 아침엔 쌀쌀한 기운 탓일까? 김선생이 모셔온 묘령의 여인을 휠체어에 앉히자마자 두꺼운 담요를 그 여인에게 덮어 주었다. 그 하나하나의 동작이 너무 부드럽고 다정해 보는 이들조차 마치 그 담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봉여사도 夢여사도 손님을 아랑곳하지 않고 김선생의 손길에 오금이 저려 서 있을 수 없었다. 봉여사의 가슴에도 夢여사의 가슴에도 날카로운 칼날이 휙 가슴을 긋고 있었다. 그 칼날에 가슴이 빠개졌다.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夢여사는 본전도 못 찾은 장사를 떼려 치우고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왔다. 夢여사보다도 더 일찍 봉여사도 몸살기가 있다며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온 夢여사는 아침에 서두르라고 잊고 먹지 못했던 혈압 약을 챙겨 먹었다. 김선생으로 부터 받은 충격에 아직 정신은 없었다. 그래도 살아야 할 목숨인지라, 김선생과 자신 몫으로 싸 갖고 간 색색 김밥을 식탁에 풀어 놓았다. 따뜻한 물을 끓였다. 양으로 보아 내일 저녁까지를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꾸역꾸역 김밥을 입에 넣고 잘근 잘근 씹었다. 목이 걸리면 따뜻한 물 한 모금을 쑤셔 넣었다. 씹고 또 씹었다. 모래알인지, 자갈인지 구분되지는 않았다. 배가 불러왔다. 질긴 목숨이었다. 夢여사는 혼잣말을 했다.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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