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라는 것도 자기 자신의 욕망의 표현이고 발산이며 이 욕망의 구조와 향방은 자신이 쓰는 소설 안에 잘 드러날 수밖에 없다. 소설의 구조 즉 욕망의 구조는 개인의 욕망이고 개인 고유한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의 고유함조차 이미 앞서있었던 한 개인의 소설의 형식이나 개인의 욕망을 차용을 해온 성격이 짙다. 개인적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지극히 보편적이며 그 보편과 특수가 맞물리게 되어 소설 속에서 혹은 삶속에서 재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명강의였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령의 귀환에 대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소설 속에서 발현되는 유령의 귀환, 그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나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죄와 벌의 구조였다는 것을 불현 듯 깨달았습니다. 내 무의식 깊은 곳엔 늘 알 수없는 죄의식이 존재했고 그 죄의식은 분명히 벌의 형태로 처단 받아야 마땅하다는 나만의 법칙이 설정 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제동을 거셨던 부분에 대해 저는 이런 대답이 저절로 나오더군요. 아마도 선생님의 강의처럼 나는 어쩌면 내 무의식속에 잠자고 있던 욕망의 형태를 이렇게 제 소설 속으로 귀환시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토요일, 일요일, 오늘 새벽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감독 버전을 먼저 쓰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완성된 후 다시 쓰라고 하셨지만 아주 강한 어떤 것이 “나를 먼저 써 주세요.”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수가 최태풍을 죽이고 스스로 염과 입관을 하며 무덤을 만들고 쓰러지기까지... 새벽 초고를 쓰고 난 후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금수가 되어 금수의 마음과 생각을 더듬으려니 너무 힘이 들어, 쓰고 난 후 몇 시간을 깜깜한 어둠 속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일어났습니다. “머리를 깎아야지, 아니 빡빡 밀어야겠다. 모든 이제까지의 내 삶을 좀 정리하고 온전한 내 모습으로 살아야겠다.” 뭐 이런 생각이랄까요? 다행이도 단골로 가는 미장원은 이른 시간이라 주인만 덩그마니 혼자였습니다. 머리를 빡빡 밀어달라고 주문을 했더니 미용사분이 놀라 눈을 크게 떴습니다. “아니요. 머리가 귀찮아서요.” 호기심을 차단하느라 서둘러 둘러댔지만 사실 머리를 미는 문제에 대해선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문제였답니다. 단지 오늘 아침 그것을 실행했을 뿐이죠. 미장원 거울 앞에 앉아 머리가 깎이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더니, 미용사분이 눈을 좀 뜨라고 하더군요. 낯설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고, 아예 빡빡 밀어달라고, 스님처럼 그렇게 라고 했더니 미용사분이 심각하게 내 얼굴을 건너다보더군요.
그렇게 민둥산이 된 내 머리에 두건을 쓰고 산책길에 올랐습니다. 산 속에 접어들자마자 쓴 두건을 벗었더니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는 알 수 없는 묘한 흥분과 설렘과 후련함이 일시에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숲속으로 난 오솔길에 접어들자 또 울컥울컥 눈물이. 참으려고 훅훅 숨을 몰아 내쉬며 나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불현듯 참말로 불현듯, 이젠 나는 누구의 내가 될 수 없구나. 나는 이런 인간이었어, 그런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오랫동안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나, 한 남자의 무한의 신뢰 속에 살아가는 참한 아내가 되고 싶었던 나, 열정의 상대로서 여자이고 싶었던 나, 지고지순 오직 한 남자만을 사랑하고 싶었던 나가 모두 허상이었으며 나는 끊임없이 이제까지 그런 꿈을 꾸며 실현되지 못한 애통함을 견뎌왔구나. 이런 생각들이 나를 후벼 파더군요.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 괜한(?) 것들에 억지로 나를 밀어 넣지 말자. 아니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절대 그래선 안 돼, 나는 그럴 수 없는 여자야. 어쩌면 내 운명은 그런 것들을 내 삶에 예정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 이런 생각들이 줄줄이 꼬리를 물며, “나는 이젠 다른 사람의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 자신만의 무엇이 될 수 있어. 그 무엇은 온전히 내 삶을 다르게 만들거야.”
선생님, 이제까지, 이 소설을 쓰면서 무던히 나는 나와 싸움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내 숨겨진 욕망의 발현을 위해 기를 썼지만 어찌되었건 또 억압 앞에서 고개를 못 들었다가 다시 유령이 되어 귀환해오고. 선생님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선생님 나름의 방법을 동원해 나에게 글을 쓰는 어떤 길을 제시하려고 무단히 노력 하셨음을 어찌 제가 모를까요? 이 모든 과정을 되새김질 하며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 드리고 싶군요.
사실 해평리는 제가 자랐던 고향이고 지금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저는 기억을 더듬으며 어린 시절 제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보았습니다. 송금수라는 이름은 저의 이모의 이름이며, 송금수의 아버지 봉입은 저를 키우셨던 제 외할아버지 이름이며 그 속에서 저는 제 외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이 용솟음쳤습니다. 오봉댁이라는 캐릭터 속엔 내가 싫어했던 내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놓았더군요. 제 가족의 실제 이야기가 아닌 설정된 캐릭터와 소설적 구성이지만 사실 그 속엔 내 가족 뿐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만나 부대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 각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구나, 나는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세상에 내보내려 하고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이. 금수가 실제 주인공이지만 주변 인물들, 고석동과 안일표 등등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을 것이고 각자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들...
얼마 전 선생님이 올리셨던 십만 케이스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선생님은 잠자는 제 의식을 여러 방면에서 깨우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쩐지 바흐의 마테 수난곡 중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수없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군산의 하늘은 몹시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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