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이죠.
카톡으로 몇 자 적어 보냈더니 열어보지도 않았네요. 카톡의 즐거움도 날아가고 난 또 열어보지도 않을 메일을 쓰고 있네요. ㅎㅎ 참 인간이란 게 조잡스러워서 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맘은 쓰리지만.
나한테 화났어요? 내가 앞으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겠다고 해서. 물론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나를 싫어하는지, 생각나요? 당신이 한 말 중에 오랫동안 내 맘을 아프게 한 말, 본인의 인생 중에 나를 만나 함께한 시간이 제일 힘들었다고. 지금도 그 말 생각하면 마음이 쓰려 가끔씩 찔찔거린다능. 어쩔 수 없죠. 내가 그런 인간이니, 어쩌란 말인가요?
난 내가 산 모든 세월 중에, 모든 인연 중에 당신과의 어느 한 때가 가장 행복했고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는데. 당신과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한꺼번에 경험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위해 많이 아팠다는 사실,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과 내가 바라다보는 세상과의 색깔이 그토록 다르다니, 당신과 너무나 다른 나를 보며 수없이 비웃었던 당신이 있었기에 아팠지만 또 아픈 만큼 성숙했다는 사실이 고마운 시간이에요.
포스트 모더니즘적 인간(요즈음 제 화두거든요. 내 소설 속 캐릭터를 잡는 주요한 요소죠)은 누구나 다 자신의 주체성이 있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즈음이에요. 나도 당신도 그 누구도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는 것이 타인과 비교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난 나 자신을 변명하고 싶어요. 오만하고 무데뽀이며 어수룩한 나를 좀 있는 그대로 보아주면 안 될까요? 비록 수많은 단점들이 있지만 장담컨대 누굴 기만하거나 누굴 희롱할 만큼 그렇게 사악하지도 않다고요. 그냥 아이처럼 누군가, 무엇인가 무턱대고 좋았고 아이처럼 누군가, 무엇인가 내 마음을 뜨겁게 한다는 사실이 벅찼을 뿐이지요. 충분한 오해의 소지가 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당신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어찌되었건 모든 어긋남은 내가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 영악하지 못한 내 심상의 발로라고 이해하겠지만 이런 봄날, 환장하게 좋은 햇빛과 바람과 소리와 냄새가 내 내부에 잠자고 있던 모든 욕동을 쓰나미화 시켜 날 덮치는 날, 지금 나는 내 자신을 후회하고 있어요. 내 마음을 후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철없었던 말과, 행동들, 진심이었던 내 말들은 그저 한 순간의 바람처럼 당신을 휘돌다 사라졌다는 사실들. 그렇게 가볍게 나둥글도록 놔두었던 내 자신을.
사람들이 사랑에 인색한 이유 중의 하나가 유기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더군요. 이제 이런 두려움이라도 나를 제어할 수 있었으면,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고 적당히 자신을 조절할 능력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월명산 겹벚꽃을 만나는 아침이다. 되는데로 써놓은 글들이 내내 생각을 헤집는다. 생각을 지우려 사방을 둘러본다. 분홍 꽃봉우리들이 만개했다. 저 예쁜 것들은 더할 수 없는 한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숨죽이며 지새웠을까 ,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 중의 하나이며 그 죽음 또한 나에게 멀지 않다는 사실, 하여 어쩌면 '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순간이 바로 내 앞에' 있을 것 같은 이 설렘을 어찌할 수 없군요. 이 설렘이 내 남아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색칠할까요? 봄빛이 여물고 여름의 초록이 가을 빛으로 화할 때 그 때쯤 만발하기 직전, 꽃봉우리로 죽어갔으면 해요. 무서운 겨울이 오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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