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환각제를 먹은 것 마냥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ㅎㅎ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 몸 어딘가에 내장되어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인 것 같아요. 선생님이 가끔 언급하는 ‘욕동’이란 것이 얼마나 조절하기 힘든지 실감하는 즈음이에요. 날선 어떤 의식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잠을 깨우고 어디론가 날 데리고 가요. 그리고 그 끝엔 어떤 이야기들이(써야만 하는) 아우성대죠.
늙고 병든 수고양이 한 마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배회하듯, 그렇게 봄은 내게 왔다.
밤새 하늘은 울었고 나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어둠 속에서 내 온 몸은 빗줄기를 세고 있었다. 곧 추적거리는 빗속을 홀로 어슬렁거리는 늙고 병든 수고양이에 대해 생각했다.
수고양이의 눈곱 낀 눈은 아직 붉었다. 털이 성긴 꼬리를 샅에 말아 넣고 부서진 담 위에 앉아 그는 무엇을 위해 아직 눈에 불을 켤까?<졸시, 내게 온 봄>
이 수고양이가 지금의 저에요.
제가 처음 소설 벚꽃을 쓸 때 주인공 금수와 종팔이 역사의 격량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가에 대한 내용이었죠. 1년은 선생님의 강의와 상관없이 제가 미친 듯 나아갔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허탈했을 선생님을 상상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쓰는 벚꽃 버전을 보며 선생님이 참 답답했을 것 같다고 이젠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어요.
소설 습작기에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혼란의 어떤 지점을 건너온 느낌이에요. 지금은.
금수의 이야기 속에 군산의 아메리카타운과 개복동과 대명동의 성매매 여성들의 참사 문제까지를 모두 이야기 하고 싶었던 제가 있었더라고요. 선생님 말씀처럼 아메리카타운이나 개복동과 대명동 사건은 어떤 이야기의 서브에 해당될 수가 없다는 것을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뼈저리게 절감했어요. 왜, 이제야 이걸 깨달았을까요?
저 이제 완벽하게 정리했어요.
1. 일제 그 후 몇 년의 군산 어떤 여자 이야기. <벚꽃> - 기생 금수의 이야기
2. 아메리카 타운의 여자 이야기. <꽃배>가제 - 매기 할머니의 역사
3. 80년대 이후 개복동과 대명동 쉬파리 골목의 여자들 이야기. <행숙아 놀자>가제
이렇게 정리하니 군산 여자들의 이야기가 3부작으로 쓰여 질 수 있겠구나.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내가 그동안 미친 듯 날뛰었구나, 불현듯 오늘 아침 깨달았어요.
요 며칠 계속 잠을 못 잤어요.
선생님을 만난 것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어요.
공모전에 당선되든, 아니 든,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되든, 그렇질 못하든 하등 상관없이 오직 쓰는 기쁨에 도취될 수 있고 이 도취가 제 인생의 어떤 상처를 치유해주며 제 자존을 높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점.
감사해요, 샘.
눈물 나게 고마워요. 선생님!
매기 할머니의 역사/김은
팔순 기초 수급자 매기 할머니가 오늘도 아메리카 타운에 장미를 팔러 온다. 암먼 내도 한 때는 이 꽃 아니었던가비. 꽃파는 팔순 매기양의 개진개진 젖은 눈이 눈곱을 흘렸다. 고향이 오식도였는디 어부였던 아부지가 납북 되었어. 엄니는 빨갱이란 손가락질을 못 견디고 도망쳤어야.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디 할머니마저 죽자 섬을 떠나왔어. 빨갱이 딱지를 떼어내려면 섬에서 멀리 가야혔으니게, 해필 해망동 선술집에 밥 훔쳐 먹다 걸려 주저앉게 되얐어. 서울로 갈라고 혔는디. 빨리 돈 벌고 잡아서 꾐에 넘어가 아메리카타운까지 흘러들어갔어. 운이 참말로 좋았응게. 첫남자가 웃대가리였어. 양공주가 아니었으니게, 닭장 집에 살지는 않았어. 유엔부인이었지. 다들 가야혔던 몽키하우스도 패스혔어. 매기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혀있는 수건에서 양담배 꽁초를 골라내 불을 붙인다. 54-2호 이복순허고 54-3호 이영순의 시체가 아직도 눈에 선혀. 이복순은 안테나 줄에 목이 감기고 반쯤 탄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이영순은 무참히 칼에 찔려 죽었다니게. 가끔 그 아들이 꿈속에 나타나곤 혀. 그런 날은 이상하게 꽃이 잘 팔리더라고. 진한 담배 연기를 내 뿜으며 움푹 팬 매기 할머니의 볼이 실룩인다. 이거 좀 보소. 쭈글쭈글한 매기 할머니의 가슴팍엔 검은 색 타투가 선명하다. 러브 포에버 엘. 아이, 에프. 이. 첫 남자가 레슬리였고 두 번째가 이삭, 세 번째가 프레드릭, 네 번째가 에드가. 레슬리가 새겼는디 이삭도 프레드릭도 에드가도 따라허드만. 그려서 내 죽을 때까징 그 이름들을 못 잊어. 유엔부인은 에드가로 끝났고 닭장집 54-4호가 내 방이 되었는디. 몽키 하우스에 끌려가서 페니실린을 맞은 덕분에 결핵이 패스헌걸 보니 고것도 천행이지 않았것는가? 오늘 밤 매기 할머니는 팔다 남은 시든 장미를 5000원에 떠넘기고 아메리카타운 정문 옆 양철집 쪽문을 더듬는다. 팔순 꽃 파는 매기 할머니 심장은 오늘도 러브 포에버 라이프 아래서 박동 친다.(LOVE FOREVER L.I.F.E)
행숙아 놀자/김은
6학년 2반 조행숙은 교실 맨 뒷줄 청소구함 옆 구석에 앉아 벌떼처럼 윙윙대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히죽인다. 행숙이의 가방 속엔 철마다 개떡, 술빵, 감자, 고구마가 아이들을 기다린다. 교실에 들어서는 행숙이의 가방을 벌렁이와 깜돌이가 경쟁하듯 낚아챈다. 뎅그르르 구르는 개떡을 코붕이가 냉큼 집어 우적거린다. 행숙이의 초승달눈이 말한다.
애들아, 천천히 먹어.
6학년 2반 수학여행은 온양온천이다. 포로수용소처럼 한 방에 웅크린 아이들 틈에 해죽대는 행숙이의 옆자리만 휑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술 취한 담임이 아이들 사이에 눕고 아이들은 서로를 죽을 듯 밀쳐댄다. 양 볼이 붉은 행숙이만 쌩긋대며 술 취한 담임에게 안긴다.
선생님, 저 예뻐요.
6학년 2반 조행숙은 대명동 쉬파리 골목을 서성인다. 40줄에 들어 선 행숙이의 거친 얼굴엔 아직도 초승달이 떴고 연분홍 볼이 푸석거린다. 치마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다리로 허청거리는 행숙이 낯선 남자에게 웃는다.
아저씨, 저하고 놀아요.
6학년 2반 행숙이의 친구였던 나는,
행숙이처럼 진심어린 말을 한 번도 건네지 못한 지나온 내 삶이 쓰기만 하다. 오늘은.
아이구 하루 종일 서류 작성 하면서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지고님이 이번주 원고마감 거셨나 궁금해서 들어와 봤더니만. 하-
삼부작 좋네요. 그리고 부자십니다. 이야기할 게 너무 작거나 협소해서 문제인 세상인데 이렇게 이야기보따리가 크고 화려하시니 운이 좋은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가 군산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더 밝은 미래를 보는 느낌입니다. 요즘은 영구한 어떤 작가보다는 어떤 부분에서 전문성을 드러내거나 특화된 것을 중요시하게 된 시기인 것 같아요. 군산출신 작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분들은 어떻게든 이데올로기 위주로 군산을 보려 하니 이런 이야기들은 그 밑에 잠복한 채 때만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암튼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동안의 나의 삶을 되집어보게 되더군요. 앞으로도 '당신 틀려' 말씀하시는 캐릭터로 남아주세요.ㅎㅎ 저도 가끔씩은 누군가에게 제동받고 싶은 1인이에요. 마조히스트는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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