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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에피소드 4. 생일상을 차리는 여자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6. 4. 30.

생일상을 차리는 여자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일로 가득 차 있다고? 자, 오늘이 그날이다. 예기치 않은 일을 예기된 운명으로 바꾸는.  입술 끝이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자꾸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톡톡’ 허브맛 솔트를 후라이팬 위에 뿌린다. 손이 가볍기만 하다. 엄지손가락 옆으로 도드라진 여분의 손가락. 잘려나가 겨우 흔적만 보이는. 손가락 하나가 더 있다는 사실이 늘 거추장스럽기만 했건만. 숨기고 싶은 과거를 절대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을 숨기지 못하는 현실이 늘 버겁기만 했건만. 하여도 오늘은 달랐다. 아니 다르다는 것이 인지되지 않을 만큼 오늘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딱히 식탁이라 볼 수없는 앉은뱅이 밥상 위에 노란 물방울모양의 테이블보가 로맨틱하다. 사실 입지 않던 오래된 원피스를 잘라 손수 기워 만든 것이다. 워낙 품이 큰 원피스였던지라 테이블보로써 손색이 없다. 분홍 접시 두 개를 필두로 보라색 플라스틱 컵 두 개와 몸체가 긴 샴페인 잔. 한 번도 쓰지 않았던 포크와 숟가락 젓가락을 배치하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다. 두 개씩 나란히. 그림 속에 누워있던 농부부부처럼.

   인터넷 셔핑을 하다가 우연히 그 그림과 마주쳤다. 오후 네 시. 밀레의 그림을 누군가 판화로 복제했고 고흐는 판화를 또 그림으로 복제했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탄생한 고흐의 그림 속 장면은 독신주의자가 되겠다던 내 꿈을, 아니 이젠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는 내 안의 절망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리다니. 저 그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내 인생에도 저 그림 같은 날이 꼭 있어야 한다. 그것은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이자 권리였다. 그때 이래로 내 꿈은 단 하나, 그 그림처럼 살고 싶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의 시작인 셈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저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는 ‘섬집아기’였다. 섬집아기를 들으며 잠들었을 무렵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던.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할머니 목소리뿐이다. 열 살 이전의 기억이다. 그런 까닭일까? 섬집아기를 부를 때면 바닷가의 갯내가 풍겨왔다. 갯내와 동행하는 분홍빛 꿈. 꿈이란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분홍빛 물이 오른 아기에게서 풍겨오는 냄새와 연관되는, 영영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

   사루비아. 사씨 성에 루비아가 내 이름이다.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이름 덕분인지 나는 늘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당연시 여겼다. 남들과 다르게 사시인데다가 여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있고 다른 애들과 다르게 학교도 가지 않았고. 동네 아줌마들은 얄밉게도 육순이라 불렀다. 육순이 육손이를 빗댄 말이라는 것을 친구의 입에서 들은 다음부터 누군가 육순이라고 부를 때면 나는 꼭 그 사람의 얼굴을 새겨 두었다. 언젠가 내가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꼭 복수할거야. 다짐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늘 “사루비아, 사루비아.”라고 불렀다. 사실 난 그 이름이 좋았다. 어쩐지 사루비아란 이름 속엔 나름의 긴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어린 나이에도 그런 기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특히나 할머니가 ‘사~루~비~아~.’라고 한 글자마다 긴 꼬리를 메달 듯 그렇게 불렀을 때의 기분은 최고였다.

   콧노래를 멈춘다. 조리 되고 있는 음식물의 냄새를 코로 흡입한다. 마치 행복의 절정을 마음 놓고 흡입하려는 것처럼. 적당히 익은 소고기가 야채와 어울려 풍기는 냄새. 비강을 통과한 냄새는 순식간에 대뇌의 후각 중추를 강타한다. 발끝에서 머리털 끝까지 모든 세포가 깨어 스멀스멀 움직인다. ‘흠’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 나온다. 필시 전달 통로에서 설렘이란 감정과 합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설렘과 흥분은 분명 사랑의 묘약이었다. 누군가 "사랑을 어떻게 알아차려요?" 묻는다면. 셀렘과 흥분의 농도로 측정될 수 있다고 나는 이제 대답하겠다.

   한 달 전부터 계획한 이벤트였다.

   “생일 같은 것 챙겨본 적이 없는데. 뭐 별 걸 다...”

   왜 한 번도 생일을 챙겨 주지 않았을까? 그때 태호의 엑스와이프에 대해 잠시 호기심이 일었다. 물을 수는 없었다. 무신경하게 뱉어내던 태호의 대답에 가슴이 짠해왔다.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뿐이었던 회식자리였다. 사장을 포함한 십 여 명의 회동은 모처럼만에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직원들끼리라도 생일을 찾아주자고 생일을 일주일 앞둔 미스고가 술주정처럼 떠벌리던 날이었다. 몇몇은 거침없이 생일을 말했다. 취한 미스고는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숫자를 받아 적고 있었다. 실현될지 여전히 의문이 들었지만 또 기대심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었다. 쭈뼛거리며 생일 날짜를 말하던 태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태호의 입에서 나오던 숫자를 재빨리 스마트폰의 일정표에 입력을 해 놓았다.

   “그래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태호의 눈치를 살피며 생일상을 차리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킨 셈이다. 좀체 의지라는 것을 타인을 향해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이번만은 달랐다. 사실 그 순간부터 이 날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생일상을 차린 다는 것. 그것은 설렘을 넘어선 매혹이었다.

   “야간”

   “그럼 아침 퇴근하고 곧바로?”

   “자다 가야지.”

   굳이 생일 같은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했다. 어디 태호의 생일뿐인가. 엄밀히 말하면 내 지난 삶을 정리하는 날이기도 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숱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꿈. 바로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미리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은 날이라는 것을. 터무니없는 인생의 새 출발을 자축하고 싶은 날이라는 것을 태호는 절대 모를 것이다.

   사실 전 날, 새 출발을 다짐하겠다는 의미로 하제를 다녀왔다. 저녁 무렵을 택한 것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해지는 하제의 풍경을 다시 보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할머니의 장례식 내내 할머니의 죽음조차 슬픔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혼자 남을 것 같은, 어쩌면 옆집 경숙언니처럼 고아원 같은 곳으로 보내질지도 모를 두려움에 떨었다.

   "가자."

   피곤에 지친 표정으로 외삼촌이 손을 끌었을 때의 안도감. 안도감에 취해 10살까지의 내 삶의 증인들을 떠난다는 슬픔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하지만 평생 잊을 수 없었던 풍경은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돌아보던 하늘이었다. 바다위에 막 침몰할 듯 지고 있었던 빨간 해와 주황빛 노을. 오랫동안 가슴에 화인처럼 남아있던 풍경이었다. 그래서일까? 그 후에도 줄곧 해질 무렵이 되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안도감과 함께 막연한 그리움이 몰려오곤 했다.

   어제의 하제는 달랐다. 날씨 탓이었을까? 변한 환경 탓이었을까? 새만금 조성으로 바다는 더 깊숙이 밀려 났고 바다였던 갯벌엔 보라색 들꽃들과 갈대들이 무성했다. 마치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폐선처럼 석양은 더 이상 붉지 않았고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가만 할머니를 불러봤다. 낯선 이방인에게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바다는 잠잠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나직이 부르던 노래의 여운이 긴 꼬리를 늘어뜨렸을까? 스테이크를 요리하던 오늘까지 노래가 계속되는 셈이다. 딱히 재주가 없었던 탓에 늘 공단주변을 맴돌았다. 몸의 한계가 찾아올 때까지. 2년, 3년이 그 경계의 지점이었다. 생각보다 일자리는 많았다. 회사를 옮기면서 형성된 인맥정도라면 밥벌이를 할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는 충분했다. 단 점점 한 회사에서 일하는 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100kg을 육박하는 몸은 적응할라치면 한계가 찾아오고 그 간격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군산에 내려온 후 열일곱 번째 회사였다. 슈퍼아줌마가 건네 준 서해 교차로에서 시작된 인연이었다고나 할까?

   한 번도 말을 섞어보지 않던 태호를 해망동 말랭이에서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그도 나도 말이 없는 편이었다. 말을 잃어버린 로봇처럼. 늘 정확한 자세와 손놀림이 마치 둘 사이의 언어를 대신하는 것처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끔씩 내가 실수를 한다는 점이고 반면 태호는 모든 면에서 정확했다. 그의 별명은 ‘줄자’였다.

   태호가 연락한 것은 직장을 퇴사한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3개월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또 3개월이 지나도록 태호는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하여도 내 근거없는 기다림은 계속되었다. 기다림 덕분이었을까?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뀔 무렵 술에 취한 태호가 횡설수설 안부 인사를 해 온 후. 태호와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태호와 함께 일하는 동안 터무니없는 그에 대한 설렘 같은 것에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애써 고개를 저었다. 필시 유부남이었을 것이기에. 순간의 열정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 될 불륜의 사랑 따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기에.

   “미스터 곽, 이혼남이래.”

   우연히 듣게 된 미스고의 한 마디. 안도와 설렘. 뒤척이며 새벽까지 잠 못 들던 일이 엊그제 같기만 하다.

   “그럼 점심으로 할까요?”

   “한 시, 먹고 또 자지, 뭐.”

   여전히 시큰둥한 태호였다. 나는 망설일 수 없었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슴을 물들이고 있었던 매혹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먹는 것으로 소비하기에 제법 큰돈을 지불했건만 일 년에 딱 한 번뿐이라는 사실은 변명의 여지로 충분했다. 보라색 불루베리 케잌이 제격이었다. 스파클링 와인을 거를 수는 없었다.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 와인이었던지라 인터넷에서 추천된 와인이면 족했다. 진열대의 치즈코너엔 딱히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치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익숙한 슬라이스치즈를 빼놓고는 도무지 맛을 짐작할 수 없어 망설였다. 12,800원짜리 가격표 밑에 4,900원짜리 새로운 가격표가 붙여진 치즈에 자꾸 눈이 갔다. ‘유통기한 임박’이란 글자가 오늘 날짜로 쓰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하나를 집어 쇼핑카터에 떨어뜨렸다. 이제 사야할 것은 고기. 메인요리였다. 수입고기 코너엔 미국산과 호주산이 뒤섞여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호주산과 미국산과의 가격차이가 무엇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판매대안쪽에 하얀 위생 캡을 쓰고 있는 여자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녀의 무표정이 좋았다. 놀라지 않는 얼굴, 100kg의 나를 보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그녀는 어쩜 나보다 더 참혹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견뎌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무감각이니까.

   “저기, 요거 두 조각만 주시겠어요.”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묻고 싶은 생각을 포기한다. 그녀는 나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사는 거야. 갑자기 그녀가 가엾기만 하다. 100g당 700원이나 싼 미국산 척 아이롤을 가르켰다. 여자는 말을 잃어버린 자동로봇처럼 고기를 저울에 올려놓고 가격표를 붙이고 포장용기에 놓더니 한 번 더 비닐로 쌓아 내밀었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또 참았다.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고개를 가볍게 꾸벅거리는 걸로 충분했다. 쇼핑카터를 힘차게 밀고 야채코너를 향했다. 야채코너 앞에서 잠시 멈춰 생각을 한다. 상 위의 남겨진 쇼핑목록이 바다를 바라보며 할머니를 기다렸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주인을 기다릴까. 갑자기 콧등이 시큰거렸다. 리스트를 작성하던 순간으로 뇌의 회로를 돌려야 했다. 삐걱거리는 잡음이 들릴 정도로 회전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만 간다.

   “색색파프리카, 브로콜리, 양파, 송이버섯.”

   떠오르는 대로 입속으로 중얼거려본다. 분명 하나가 더 있었을 텐데, 도시 생각나지 않는다. 우선 생각나는 것들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가장 적은 양을 사기로 마음 먹는다. 이상하게 쌍으로, 혹은 몇 개씩 묶어놓은 것들만 진열되어있는 상품들이 야속하다. 일 년에 한 번 뿐이니. 4개 묶음의 파프리카. 두 송이를 묶어 파는 브로콜리. 족히 10개쯤은 들어있을 법한 양파 한 망. 두 개를 한 묶음으로 파는 송이버섯. 차례로 카터에 담는다. 하나가 더 있었는데. 최소한의 목록이었는지라 빠트리면 안 될 것 같은 하나가 생각나지 않는다. 느릿느릿 야채코너를 한 바퀴 돌아도 도무지 그 하나가. 할 수 없지, 포기하려던 찰라 키 높이만큼 쌓아놓은 마늘더미에 눈이 간다. 그제야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야채코너를 두 번 돌아 겨우 1,000원 묶음의 깐 마늘 한 봉지를 카터에 던져 넣는다. 그나마 머릿 속 형광등이 깜박 거렸기에 다행이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선코너에서 가장 소량으로 포장된 생합을 산다. 미역국은 필수였고 생합은 소고기보다 부담이 적었다. 이로써 생일상 재료는 끝이다.

   단 한 권뿐이었던 '키다리 아저씨'라는 동화책을 읽으며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글자도 읽을 줄 모르던 내게 글자를 가르쳐준 것은 이웃집 삼촌이었다.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늘 군복바지를 입고 있었던. 뿔테 삼촌은 가끔씩 잘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무엇인가 달콤하고 조금은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어느 날 난 뿔테 삼촌과 어른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뿔테 삼촌과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비밀을 간직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없다는 사실보다도 난 내가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늘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잠들 수 없는 시간엔 양을 세는 것보다 무엇인가 배 속을 가득 채우는 것이 최상의 방법임을 난 너무 일찍 깨달았다. 꿈속에선 간첩을 만나거나, 전쟁이 일어나 우리 집이 불타거나, 누군가에게 쫓겨 절벽 앞에 선 나를 만나야 했다. 도망치기 위해서 달리다보면 어느 새 자기위해 먹은 것들이 내 온 몸 세포에 골고루 퍼지며 똥을 쌌다. 연골 마디마다 켜켜이 쌓이는. 비밀과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내 속을 태워야만 했던 연기의 그을음 같은 것.

   키다리 아저씨가 나타난 것은 열 살 무렵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였다. 키다리 아저씨는 외삼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동화책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그 어미의 그 딸이겠죠."

   외삼촌 집에 들어간 첫날 밤, 삼촌과 숙모가 토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양색시의 딸을 어떻게?"

   외삼촌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무서워 귀를 막았으니까.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외숙모의 말들이 맨 발에 밟힌 낚싯바늘처럼 아팠다. 늘 외숙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버릇이 된 것은 내가 집안의 상처라는 것을 알게 된 그날부터였다.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처음 도망친 곳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한 곳이었다. 멀리 떠날 수 없었던 것은 혼자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 어떤 것보다 앞섰을 것이다. 뿔테 안경을 쓴 삼촌을 벗어나면 더 이상 비밀을 쌓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세상 어디에든 그 보다 더 무섭고 겹겹으로 묶어둘 비밀들은 늘 생겨났다. 난 20살이 되기 전에 벌써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간이 되었다. 결국 하제로 돌아왔고 하제와 멀지 않은 해망동에 정착했다. 내 존재의 뿌리였던 곳이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카터는 제법 묵직했다. 3층 의류코너로 가기위해 에스컬레이터에 쇼핑카터를 밀어 올린다. 뒤뚱 현기증이 난다. 곧 발에 힘을 주며 허리를 곧추세운다. 아래로 쏠릴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라도 불안감에 쇼핑카터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익숙한 조심성이었다. 몸에 익은. 한 번도 올라와본 적이 없는 의류코너를 두리번거린다. 속옷코너를 살핀다. 텔레비전광고로 익숙한 상표를 단 매장이 눈에 보인다. 유혹하는 표정의 광고모델 또한 평소 관심이 가던 이였다. 천천히 쇼핑카터를 밀며 매장 앞을 기웃거린다. 한가한 까닭일까? 눈치가 빠른 매장안의 점원이 쇼핑카터를 매장 옆으로 밀어준다. 점원의 친절에 울컥 작은 감동이 밀려온다. 눈에 띄는 남성용 속옷 코너로 곧장 직행한다. 매장점원이 바짝 옆에 다가서며 묻는다.

   “사이즈는요?”

   “100으로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

   “40대요. 아, 아니에요 30대인가?.”

   매장점원이 모르겠다는 듯 살짝 웃음을 띤다. 한 번도 남자 팬티를 사본 적이 없었다. 속옷을 입어야할 상대를 매장 점원에게 들키기라도 한 듯 몹시 쿵쾅거린다.

   “야야, 가시내가 완전 깜둥이새끼 되것다. 그러다 비행장 깜둥이들이 내 새끼하고 데려 갈 성 싶은디.”

   햇빛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라치면 늘 할머니는 쪽문을 열고 잔소리를 해대곤 했다. 그때마다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의 품속에 안기곤 했는데. 쪼그라들어 젖꼭지만 남은 가슴을 파고들면 늘 할머니의 노래는 시작되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할머니, 우리 엄마는?”

   “굴 따러갔지.”

   할머니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번번이 예상된 대답에도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어쩜 나는 ‘엄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잠결에 어렴풋이 할머니가 저고리 끝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내 가슴을 토닥거리며. 내 등을 쓸며. 그때 맛보았던 아릿하면서도 달콤한 서정이 어쩜 내 마음에 그늘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이라는. 아릿하면도 달달한.

   “이것은 어때요? 땀이 차지 않는 원단이어서 여름엔 그만이죠.”

   점원은 화려한 꽃무늬 사각팬티를 들어 보이며 가볍게 웃는다. 마치 입을 사람을 알기라도 하는 양 웃어 보인다.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내 얼굴이 달아오른다.

   “네. 예쁜데요.”

   대답은 그리했지만 내 시선은 벌써 다른 제품을 향한다.

   “요즈음엔 중년들도 화려한 것을 찾아요.”

   점원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한마디를 덧붙인다. 점원은 내가 유행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핀잔을 하듯 새치름했다. 점원의 표정에 나는 일순 멍해져온다. 점원이 내 시선을 쫒는다. 날 다람쥐를 닮아서 일까? 그녀는 재빨리 갈색 도트무늬의 팬티를 다시 꺼낸다.

   “얼마예요?”

   “23,500원요.”

   점원은 보란 듯이 가격표를 들이댄다. 순간 멈칫거렸다. 통장잔고가 아른 거린다. 이제는 싫어도 새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눈물로 호소하는 사장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적당한 선에서 합의 했다. 딱히 사장의 잘못도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였다.

  난 거추장스러웠던 여분의 손가락이 잘려 나갔을 뿐 아닌가? 동료들은 보험금을 타야한다고 주장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었지만 사장은 직원들의 고용보험조차 들지 않았다 했다. 할 말을 잃었다. 사장이 내민 봉투의 액수를 확인하면서 나는 사장의 얼굴을 주시했다. 사장은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가슴이 찡해왔다. 누렇게 뜬 사장의 얼굴에다 대고 차마 봉투를 돌려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사장은 동네의 이웃이었다. 사장네 가족을 먼발치에서 목격했었던 적도 있었다. 동네 슈퍼아줌마에게서 사장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었으므로. 말이 사장이었지 동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었다. 10여명 남짓한 직원을 둔 회사였지만 동생이 하던 것을 껍데기만 물려받았다는. 늘 빚에 시달린다는 소문은  직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1년 이상을 근무한 사람은 태호와 미스고 뿐이었다. 미스고는 사장의 먼 친척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태호는? 그것이 늘 의문이었다.

   "마지막 직장이었으면 해요."

   태호는 피곤한 표정으로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마치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듯이. 새로운 일터란 이곳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선언이라도 하듯. 그런데 곧 사장의 정체가 드러났고 미스고와 사장은 직원들의 밀린 월급과 밀린 자재대금을 가지고 튀었다고 했다. 사장의 남동생과 똑 같이.

   “여기 50프로 세일 하는 것도 있어요.”

   멈칫거림을 눈치 챘을까? 점원은 한쪽 구석의 진열대를 가르킨다. 50프로 세일이라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곧장 갈 수가 없다. 진갈색 도트무늬 팬티를 집어 들고 느리게 세일코너를 다시 넘겨다본다. 점원은 양손에 세일 상품을 하나씩 들고 웃어보인다.

   “네, 예쁘네요.”

   마지못해 점원을 향해 웃는다. 나는 세일코너에서 다른 팬티를 골라 손에 쥔다.

   “100사이즈로 주실래요?”

   점원은 세일 상품의 진열대를 몇 번이나 뒤적인다.

   “어떻하죠? 100사이즈는 남아 있지 않군요. 세일 상품이라서 사이즈가 다 있는 건 아니에요. 이것은 어때요. 요건 100인데요.”

   점원이 내미는 것이 눈에 차지 않아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얼마에요?”

   “11,000원, 반값이에요.”

   점원은 얼마나 싼지를 강조하듯 재빨리 대답한다.

   “그럼 그것으로 주시고요. 요것도 함께 싸주세요.”

   애초 예산이 있었다. 물가에 어두웠던 탓일까? 10,000원정도면 너끈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신상은 20,000원을 넘었다. 하나를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신상하나와 세일 상품 하나를 고른 셈이다. 예산보다 10,000원을 웃돈 셈이었지만 그것도 일 년에 한 번 뿐이니 망설여지는 마음을 다독인다.

   “포장해드릴까요?”

   “네.”

   점원이 묻는 말에 짜릿한 흥분이 셈 솟는 걸 간신히 참는다. 자꾸 입가가 실룩거린다.

   “가격표는 떼어주세요.”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첫 경험이었다. 남자의 속옷을 사다니.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다니.

   “저어, 선물을 주고 싶어서요.”

   멈칫거리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뱉어냈다. 태호는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멀건이 쳐다보았다.

   “책, 아니면 재즈 시디?”

   기실 내가 받고 싶은 선물목록이었다.

   “저기, 속옷. 사각팬티.”

   대답을 끝내하지 않을 것 같던 태호가 내뱉은 단어들은 생경했다. 그것도 사각팬티라니. 놀랐고 웃음이 나왔다.

   “그게 필요하니까.”

   충분히 이해했다. 정말 필요에 의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장과장과는 집 방향이 같았다. 신촌이었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신촌의 여자대학이 가까운 옥탑방. 신촌의 공기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신비였다. 식당 구석진 방을 전전하다 집을 나온 칠년 만에 얻은 안식처였다. 월세가 다소 부담이 되었지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 어떤 음식 냄새도 술 냄새도 없는. 가볍게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첫날. 눈송이가 풀풀 내렸다. 선물 같은. 곧 다가올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옥탑방 바로 앞 골목에 작은 재즈카페가 있었다. ‘blue room’이라는 카페의 이름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카페 주인장도 알았을까? 새어 나오는 음악들은 늘 나를 비틀거리게 했다.  마치 ‘조금은 타락해도 좋아요’ 속삭이는 것처럼. 월급을 타는 날 혼자서라도 오고 싶었던 장소였다. 신촌을 꽉 채우던 여자 대학생들처럼, 착각속에서나마  나도 잠시 그들 중 하나이기를. 세상에서 그들처럼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았다. 그 시절엔. 하지만 그 세계는 내가 속한 세계가 아니었다. 눈이 푹푹 빠질 정도로 폭설이 내린 날. 버스는 마비되었고 지하철엔 타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몇몇은 폭설 속을 함께 걸었다. 장과장은 내 옥탑방에서 한 블록 떨어진 주택에서 산다고 했다. 어머니와 함께. 걷기에는 먼 길이었지만 동행이 있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처음으로 골목 재즈카페에 진입했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차나 한 잔하며 몸을 녹이자는 장과장의 말에 생각난 곳이었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거친 남자가수의 목소리가 그날따라 무척 유혹적이었다. 손님은 없었다. 주인장은 머리에 눈을 쓰고 들어서는 우리에게 재빨리 수건을 내밀었다. 수건을 받아든 장과장이 내 머리를 먼저 닦아 주었다. 깜짝 놀라 얼굴을 드니 그가 웃고 있었다. 순간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왜 그랬을까? 낯선 배려. 오랜만에 느껴본 다정함이랄까?

   “엘피군요.”

   “네. 좋죠?”

   장과장은 주인장에게 아는 체를 했다. 고깃집 홀 메니저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엘피라는 단어조차 나는 생경했다.

   “이런 날 특히 좋군요.”

   “네. 그렇죠.”

   “에스프레소 도피오”

    장과장이 낯선 말을 던졌다. 잠시 멍해왔다. 주인장은 내 차례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같은 걸로다.”

   다행히 나의 무식을 들키지 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내가 아는 커피라면 아메리카노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카페라는 곳을 처음으로 경험한 날이었으므로. 주인장은 주문한 커피를 준비하기에 바쁘면서도 장과장의 대화에 열중했다. 수동 그라인더를 작동하는 그가 힘겹게 보였다. 막 갈아놓은 커피에서 풍기는 냄새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자극적이고 몽환적이었다. 그때의 커피냄새를 잊을 수 없다. 아니 그때의 커피의 맛을 잊을 수 없다가 더 적확하다.

   “제일 좋아하는 트럼페터입니다. 하지만 목소리 또한.”

   주인장과 장과장은 오랜 지인이라도 되는 듯 말을 섞었다. 그들의 대화 속의 낯선 말들이 이명처럼 귓속에서 맴돌더니 이내 내 몸 곳곳에 파고 들었다. 잊고자 했던 기억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세상 모든 것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들의 작은 방에서,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은 물리치고, 그저 그대와 내가 그리는 소소한 일상에 취한, 그런 사랑을 하리, 그런 사랑만을 하리.”

   씹기라도 하듯 커피를 홀짝거리며 장황한 설명을 하던 장과장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날이었다. 다음해도 또 다음해도, 오랫동안 폭설이 내리면 가수의 목소리와 장과장의 흥분된 표정이 오버랩 되었던 것을. 그날 이후 장과장이 적어주었던 쳇 베이커라는 트럼페터에 대해 팬이 되고 말았던. 연주보다 오히려 거친 목소리에 끌릴 수밖에 없었지만. 장과장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절대 다시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그가 유부남이었더라면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을 것을. 인두에 지진 흔적. 그 흉터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이 계속되었는지.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리. 아마 폭설처럼 내 첫사랑은 그렇게 찾아왔고 상처만 남기고 간 것일까? 아린 기억이었다.

   상처에서 벗어난 시점에 이르면 오히려 폭설이라도 내렸으면 다시 바라게 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 고비사막처럼 건조한 모래바람을 맞는 삶보다, 고통이라도 폭설 같은 사랑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 나은지 모른다. 인생은 참 신비하다. 상처를 잊은 순간부터 또 새로운 상처를 기다린다는 사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쳇 베이커의 타락한 인생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노래가 싫지 않다는 사실. 아니 미치게 다시 쳇 베이커가 좋아졌다는 사실은 폭설도 모래바람도 인생엔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까닭일까. 어느 한 쪽에 너무 오래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지치고 외로워 찾은 곳이 열 살 이전의 기억뿐인 고향이라니. 친구도 아는 이도 하나 없이 무작정 도착한 곳은 그저 황량하기만 했었다. 떠난 지 10여년 만이었다. 정을 떼려고 그랬을까. 떠나기 전 몇 달은 옆집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삼촌이 영문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흉흉한 소문에 가슴을 졸였는데. 간첩들이 해변에 나타나 납치 해갔다는 말도 있었고 시절을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가 정보국에 끌려갔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내 기억을 각색하자면 말이다. 사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없어진 뿔테 삼촌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른 다는 것이었다. 익숙했던 비행기소리였지만 그 즈음엔 유난히 비행기소리가 더 빈번했었고. 마을 배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아 온 마을이 뒤숭숭했었고. 꿈자리가 사나워 죽을 날이 가까운 것이라고 체념처럼 말하던 할머니는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외삼촌의 손에 잡혀 떠났던 세월을 가늠해보았다. 참 아득했다.

   처음엔 할머니 이름을 대고 그 마을에 정착할 작정이었다. 가물거렸지만 할머니와 지내던 옛집을 찾아 묻고 또 물었다. 집은 흔적도 없었다. 곧 포구마저도 사라질 전망이라는 선창가 음식점아주머니의 푸념을 들은 후 결정한 정착지가 해망동이었다. 하제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넓은 바다가 보이는. 낯선 곳이었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처녀 같은디. 혼자 살려고?”

   호기심으로 눈을 번뜩이던 슈퍼아주머니의 소개로 찾은 집은 앞바다를 원 없이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낯선 땅, 낯선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안도감이 몰려왔다. 마치 다시 찾은 고향이라도 되는 듯. 갯내 때문이었을까? 그저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아침이면 바다에서는 온통 수박 냄새가 난다고 조르바 아저씨는 말했는데. 나는 바다에서 할머니의 젖무덤 냄새를 맡는다니, 마치 “그래 이제 마음 놓아도 돼.” 그렇게 속삭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니.

   이제 바다가 보이는 해망동을 벗어날 시점이다. 재개발 지역이라 사람들이 떠나고 몇 집 남지 않은 동네. 곳곳에 빨간 페인트로 칠한 X 표식이 늘어갔다. 군산에 내려온 지 자그마치 20년도 더 살았던 곳인데. 떠나려니 무엇인지 자꾸 붙잡는 것이 있었다. 아직 난 할머니의 냄새를 벗어나지 못했단 말인가?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늘 바다가 보이는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이에겐 평생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 나에겐 그것이 갯내였다. 바다냄새. 특히 비오기 직전, 바람에 묻어 전해지는 묵직한 냄새. 모든 흔들리는 것들을 눌러 앉힐 것 같았던. 하여 어쩔 수 없이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았던.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이 지금까지도 계속되었다는 사실로 충분히 입증된 셈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한다면 이제 다시 하제로 갈 생각이다. 농가주택이라도 얻어야겠다고 작정했지만 아직 급한 것은 아니다. 사실 직장을 잡는 것이 우선 순위였다. 큰돈은 아니어도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얼마간 모아둔 돈에 든든했었는데. 몇 개월의 병원비로 통장은 쉽게 뼈를 드러냈다. 아직은 젊으니까. 애써 변명을 해보지만 직장을 다시 찾는 것은 내 새 출발의 조건과 맞아야 했다. 우선 힘쓰는 일엔 아예 시작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기에. 일주일에 세 번씩 발행되는 무가지를 살펴보며 적당한 자리를 눈여겨보고는 있다. 식당자리는 넘쳐났다. 늘 식당은 마지막 보루로 남겨뒀다. 한가한 시간엔 컴퓨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컴퓨터가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대신 스마트폰이 있으니.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늘 나 자신에게 물어야만 하는 질문이다. 혼란의 시점에. 가야할 방향을 찾아야 할 시점이었다. 내부에서 강렬하게 소리치는 이 느낌을 외면할 수 없다.

   "왜 그렇게 살아요?"

   회식 날, 점점 취해가던 미스고가 참아 왔다는 듯 물었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미스고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고 있었다. 딱히 미스고의 도전적인 질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마신 소주 때문이기 했고 정확히 말하면 태호의 눈빛 때문이었다. 상대의 모든 것을 담고 싶어 하는.

   "꼼짝 마, 그대로 있어. 함께 있어야 해."

   라고 갈구하는. 절대 저항할 수 없는 그 무엇.

   "언니는 시집도 안가고 그 나이에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혹시 돌싱, 아니면 누군가의 내연녀?"

   누군가 쿡쿡거렸다. 재미있어 죽어도 좋다는 웃음이었다. 난 웃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얼마간은 내가 내 자신에게 묻고 싶었던 말이었으므로. 제법 조리 있게 미스고는 또 한 번 물었다. 피해갈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서."

   당황한 나는 대답 같지 않은 대답을 했다. 얼굴이 달군 석쇠처럼 빨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스고는 피식 웃더니 그대로 상에 고꾸라졌다. 나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다고. 답답해 죽을 것 같다고. 미스고는 며칠이 지난 후 사과를 해왔다.

   "아직도 그걸 몰라요?"

   좀체 나서지 않던 태호가 술김에 뱉은 말이었다.

   "루비아씨 주변에 있으면 따뜻해져요."

   태호의 말은 그랬다. 그때 태호의 눈빛은 너무 깊었다. 농담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내가 누구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날이었다. 그저 술주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는 너무 컸다. 회식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나와 태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일행은 곧 취해갔다. 그들 위에 삶의 고단함이 폭설처럼 내렸다.

일행을 뒤로 한 채 슬며시 빠져나왔다. 어느 결에 태호가 내 옆에 있었다. 침묵한 채 하염없이 걸었다. 걷다보니 어느 새 풀풀 눈발이 날렸다. 예정된 폭설처럼. 그렇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된 셈이다.

   누군가 "사랑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묻는 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나도 모르던 내 좋은 점을 알려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라고. 그리고 꼭 상대의 눈을 깊게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상대의 눈빛을 충분히 받아 낼 수 있는 지점에서 사랑은 비로소 시작할 것이라고.

   블로그의 커서가 깜박인다. 1002번째 에피소드의 마침표를 찍을 차례이다. 아쉽기만 하다. 난 아직도 생일상을 차리는 여자이고 싶은데.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이 얼어붙어 고드름처럼 뻣뻣하다. 비닐을 친 문틈으로 덜덜거리는 해망동 칼바람 소리에 등골이 선득댄다. 익숙한 친구처럼 지랄을 떠는 쥐새끼들의 방문과 블로그 속의 인물들이 유령처럼 튀어나와 나를 감싼다. 에피소드 하나가 끝날 때마다 나는 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다. 마침표는 곧 새 출발을 의미하니깐. 그것으로 충분해.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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