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22 - 아픈 그대에게.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3. 28.

 

 

"건강한 수치심을 가진 사람은 나의 한계에 부딪쳤을 때 그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한계 너머의 지혜와 능력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건강하지 못한 수치심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끼며 실패자로 생각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병들게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아픔은 살아 있음의 증거입니다. 이 아픔을 잘 견디고 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누군가도 이미 내가 아파하는 그 삶의 자리를 지나갔고, 그리고 당당히 살아남았다는 것을. 또한 그 아픔보다 한 치 더 성장하고 깊어졌다는 것을. 그 어떤 순간에도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기 이전에 이미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믿어야 합니다." 

가족 치료사 브래드 쇼의 말씀입니다.

 

 

 

5, 6년 전 쯤 인가, 햇빛이 유난히 눈부신 토요일 날, 시내에서 옷 가게를 하는 친구를 찾아갔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여고 동창생이고 한 달에 한두 번 정기 모임 때 만나곤 하던 친구였는데 왠일인지 그 날은 나도 모르게 선뜻 친구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가게는 그리 크지 않아서 앉아있기 쑥스러웠지만 무슨 배짱에 그곳을 찾았을까 지금도 의아합니다. 그때 친구가 하는 말, “너, 힘들구나. 이해해.” 오메!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앉아있었는데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바람에 “앗 뜨거” 그 즉시 그곳을 떠났습니다. 갑자기 그 친구에게 분노가 일었습니다. “네가 뭔데, 나를 위로 하려들어? 내가 너한테 위로 받자고 왔는줄 알아?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습니다. 나는 그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뜬금없이 그녀를 찾아갔을 것입니다. 본심은 그랬을지언정 그녀가 말하지도 않은 내 본심을 꿰뚫어보고 던지는 몇 마디의 말에 야릇한 분노와 수치심마저 일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들킨다는 것이 부끄럽기만 했던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살았는지, 얼마나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감추고 살았는지 참 용의주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빛좋은 개살구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자유롭고, 윤택하고, 하고 싶은 것 , 사고 싶은 것, 다하는 것 같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면 여행가고...

 

 

 

그런데 어느 날 보니 55평 아파트가 미어터질 것 같더이다. 가족이란 달랑 둘, 그나마 남편은 출타 중, 언제나 혼자인 공간에 쓸데없는 물건들로 넘쳐나고 있더이다. 책, CD, DVD, 도자기그릇들, 그림들, 가구들, 옷들로... 어느 새 나는 공허한 내 마음을 이런 것들로 채우기 시작했고 그것이 마치 고상한 취미인양 나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나는 내가 정말 아픈 사람인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면서 남편에게 분노가 일었고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소통의 부재를 의식하게 하는 친구들에 대한 원망이 시작된 것입니다. 내 안의 슬픔, 공허감, 아픔을 애써 외면하고 묻어두기만 하다 일시에 터지는 그 놈들의 작당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왔을 때에야 비로소 서서히 나는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고, 내 아픔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혼란은 시작되었고, 남편과도 친구와도 가족과도 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내 아픔을 그들에게 내 보일 수 없는 수치감, 건강하지 못한 수치감에 나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간들은 오로지 책을 읽거나 혼자서 바닷가를 찾거나 목적지 없는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파도치는 바닷가 절벽에 선 날, 차와 함께 절벽아래도 뛰어들고 싶었던 충동에 대한 두려움에 지금도 파도치는 바닷가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뭔가 내 삶의 변화를 감행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그때까지의 내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눈치 없는 지인들은 팔자 좋은 년 고상한 취미하나 더 늘리자고 고생사서하고 있구나. 수근거림 같은 것도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냥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단 며칠 만에 가게를 얻고 은행 대출받고... 그렇게 이 지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한 번도 남편에게 내가 왜 이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양반도 자신의 삶의 목표가 있고 내가 느낀 절망을 공유할 만큼 넉넉하지도 과감하지도 못합니다. 너무 소박하고 수수해서 감히 내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있으며 그냥 그 선을 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지 못하고 경계의 밖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털어놓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 모조리 누구에겐가 내뱉고 있는 내 자신을 어느 날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안의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것들을 뿜어내지 않으면 자가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나를 발설하기 시작했던 날의 통쾌함과, 비밀을 함께 나눈다는 공유감으로 위로를 받는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용감무식, 좌충우돌,혼비백산의 순서로 내 시간들은 흐르기 시작했고 혼란스런 내 자신을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쓰면서 나의 고통스런 감정을 해방시키는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미완성인 나의 문제들에 대한 완성도를 찾기 시작했고 내 문제점들의 명확한 인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앞으로의 내 삶의 설정에 대한 방향성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서히 나만의 고유영역을 지키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테메노스(개인의 내면에 만들어 가지는 심리적 공간)의 환경을 내 자신 안에서 이룩할 수 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까지 진입하기 위해서 내가 흘린 눈물, 내가 뿜어냈던 분노와 원망, 내가 부렸던 억지들로 인한 소통의 한계, 터무니없이 매달리곤 하던 도움의 손길, 등등을 경험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리는 모두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아프면 아프다고 인정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곧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첫 번째 계단이라는 것을 오랜 아픔 끝에 깨달았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수치심을 동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가끔씩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아픔을 깨닫고 인정한 다음에 그 아픔의 치유가 시작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희망적입니까? 치유의 방법은 사람의 다양성만큼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어 집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랴 찾을 것임을 믿고 출발하면 됩니다. 해결 되지 못하는 문제들은 없습니다.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말입니다. 의욕이 없습니까? 햇빛으로 나오십시오. 5분간만이라도 봄볕에 있게 된다면 생명의 신비를 경험하실 것이고 그것이 곧 의욕이 될 것입니다. 봄이 곧 생명의 탄생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부족하다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내가 책을 통해 위로받은 것은 나보다 훨 똑똑하고 가진 것이 많고 유명한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으나 그들이 나보다 더 나은 것은 그 아픔을 용감하게 아프다고 인식하고 발설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나도 그들처럼 나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고 누군가로부터 끊임없는 위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운 내 곁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로부터...그것이 너무 신기하고 놀랍고 고맙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한편으론 누군가 나에게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내가 그들에게 함께 공유하는 위로를 주고 받음을 느낍니다. 그런 상호작용에서 오는 자존감, 그리고 공동체의식이 나로 하여금 오늘 이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아프고 고통 받는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내가 현재의 나의 삶의 한 모퉁이에서 묵묵히 나의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내 안에서 작은 빛이 일어나고, 그 빛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준다는 것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즉 나뿐만 아니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실하고 묵묵하게 제자리에서 존재하고 있을 때 그 생명력은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따뜻함을 선물하는 빛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픈 그대여,

아프면 아프다고 인정하고, 말하고 너, 나 할 것없이 우리 모두가 함께 아프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오늘 저녁은 너무 많은 것을 말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신도 피곤하고 육체도 피곤하지만 왠지 마음이 후련하고 이상한 기대감에 설레이기도 합니다. 바로 나에게 위로를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내 마음 표시와 또 아픈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은 내 마음을 전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렇게 오늘 나의 하루를 마감하렵니다.

 

 

Good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