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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24 - 이것이 운명이라면...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3. 30.

내게서 도망치겠다고요?

절대 안 되지요.

사랑하는 이여!

내가 나이고, 그대가 그대인 한,

사랑하는 사람인 나와 싫어하는 사람인 그대,

우리 둘이 이 세상에 있는 한

하나는 피하고, 나머지 하나는 쫒는 한.

내 인생이 결국 실패일까 두렵군요.

내 인생이 실로 운명과 같군요.

내가 최선을 다해도 성공할 수 없으니

하지만 내가 여기서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어쩌리요?

그저 계속해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넘어져도 눈물 닦으며 웃고,

실패하더라도 일어나 다시 시작할 뿐

그렇게 사랑을 쫒다가 삶을 마칠 뿐, 단지 그거뿐.

한 번만이라도, 가장 멀리 있는 그대가

먼지와 어둠 속에 아주 깊이 묻혀 있는 나를 봐 준다면,

오랜 희망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새로운 희망이 같은 목표를 향해 곧장 떠오르도록,

나는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텐데

그대와 영원히

떨어져 있다 해도!

 

 

사랑속의 삶/ Robert Browning

 

 

Robert Browning은 영국의 시인 Elizabeth Barrett Browning의 남편이며 셀리 못지않게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열정을 가졌던 영국의 시인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엘리자베스와 결혼해 15년간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그녀의 부인과 함께 수많은 주옥같은 시를 쓴 빅토리아 시대의 최고 시인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나는 얼마 전에 엘리자베스 베렛 브라우닝의 ‘사랑의 방법’이란 시를 먼저 만났습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내 사랑의 방법을 손꼽아볼게요.

존재의 끝과 영원한 은총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내 영혼이 닿을 수 있는 깊이와 넓이와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합니다.

 

햇살 아래서나 촛불 곁에서.

일상의 가장 하찮은 순간에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권리를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을 외면하는 사람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나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래 전 내 슬픔에 쏟았던 정열 그대로,

내 어린 시절의 믿음 그대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내 수호성인들에게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그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일생 동안의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만일 신이 허락하신다면,

죽은 후에도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아침을 맞이하니 차분해지기는 하지만 서러운 그리움이 가슴에 차고 넘칩니다. 누군가 곁에 있어 말없이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땐 이런 사랑이나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들로부터 위로를 받게 됩니다. 시인들이 만든 한숨과 우울과 사랑에 대한 감동은 마치 나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아니 나도 그들처럼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안겨줍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래’ 그렇게 말해 주는 듯 이상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시들을 만나게 되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바꿔보며 타당한 이유를 한 가지씩 찾기도 합니다. 괜히 눈물 짜고 콧물도 닦아내며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야만 하는 내가 한없이 연민스럽다가도 내 그대가 먼지와 어둠 속에 아주 깊이 묻혀 있는 나를 봐 준다면, 오랜 희망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새로운 희망이 같은 목표를 향해 곧장 떠오르도록, 나는 나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 텐데...라고 애써 희망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Shell Silverstein의 잃어버린 조각이라는 동화가 생각나시나요? 그 후편에 두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조각이 큰 동그라미를 만나다 The Missing Piece Meets the Big O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책의 끝 부분에 홀로 남겨진 그 잃어버린 조각이 주인공입니다.

 

피자의 한 조각처럼 생긴 그 잃어버린 조각은 모가 나서 홀로 굴러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마냥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동그라미를 만나야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불완전한 동그라미가 찾아와야만 그와 하나가 되어 온전한 동그라미를 굴러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무심히 지나가는 동그라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번쩍이는 치장을 하고 아름답게 꾸며도 보지만 아무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자신을 원하는 동그라미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긴 외로움과 기다림 끝에 잃어버린 조각은 드디어 자신에게 꼭 맞는 동그라미를 만났습니다. 둘은 하나의 완전한 원이 되어 행복해하며 함께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잃어버린 조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동그라미와 맞지 않게 되어 결국 잃어버린 조각은 동그라미에게서 떨어져 나옵니다. 그는 또 다시 홀로 남겨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동그라미, O를 만납니다.

“네가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동그라미 같아. 어쩌면 네가 잃어버린 조각이 바로 나일지 몰라.”

“하지만 나는 잃어버린 조각이 없어. 내게는 네가 들어와 채울 곳이 없어.”

잃어버린 조각은 그에게 매달려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합니다. 그러자 O는 이렇게 말합니다.

“넌 나와 함께 굴러갈 수 없어. 하지만 어쩌면 너 혼자 구를 수는 있겠지.”

“나 혼자? 잃어버린 조각은 혼자서 구를 수 없어.”

“노력이라도 한 번 해봤니?”

다시 혼자 남겨진 채 자신을 데려갈 동그라미를 기다리다 지친 조각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스스로 일어서기를 시도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혼자 힘으로 굴러보려 애를 씁니다. 그렇게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는 동안 모난 부분들이 조금씩 닳아서 잃어버린 조각은 자그마한 ㅇ가 됩니다. 작은 동그라미가 된 잃어버린 조각은 이제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전에 만났던 커다란 O를 다시 만났습니다. 마침내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굴러갑니다.

 

 

 

오늘 이 동화를 읽으면서 세상을 사는 게 두렵고 혼자라는 것에 대한 외로움 때문에 꼼짝하지 못한 채 희망과 절망을 오가면서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어쩜 이렇게 동화속의 주인공의 마음을 닮았을까? 피식 웃어보기도 합니다.

 

결국 내 안의 결핍은 누군가에 의해서 채워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동반할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모순적인 모습을 확인해 봅니다. 결국 하나하나 별개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너와 나, 그런 존재의 쓸쓸함과 공허함은 우리의 실존이며 삶의 일부임을 마주하고 안고 살아야할 우리들의 운명, 인간의 조건이라는 사실이 오늘 나에게 다시 한 번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는 듯합니다.

 

오늘 밤엔 멀리서 내 벗들이 온답니다. 군산 생막걸리를 소개하며 맛있는 술맛과 수다를 떨 생각을 하니 설레이기도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재미, 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이러한 순간들이 늘 나의 일상의 꿈이기도 합니다. 의미없는 수다, 웃음이라 할 지라도 누군가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나의 존재의 확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그들로 인해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작은 감동입니다. 오늘 나는 아마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제공해주는 자리에서 맘껏 웃고 수다떨며 혹시 모를 술주정도 하고 싶습니다. 가끔씩은 어설픈 푼수떠는 아줌마인 나를 만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듯 합니다. 생각해보니 하나 하나 내가 살아가야할 이유들이 늘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