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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戀書 - 23 - 위로가 필요한 날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3. 29.

 

 

 

위로가 필요한 날 나는 어떤 사람이 생각날까? 내 마음을 차분히 이해해주는 사람, 함께 가슴아파하며 느껴주는 사람, 가만히 내 옆에 있어만 주어도 좋은 사람...

 

 

그러나 나는 정작 내가 위로가 필요한 날은 일부러 사람들을 멀리해왔습니다.. 행여 내 입에서 행동에서 내가 보여주길 원하지 않는 것들이 튀어 나올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혼자가 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결론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지 내가 위로가 필요한 날은 일부러 사람을 찾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 조금 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 왜 가까운 사람은 안되고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을 더 찾게 되는 걸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 안의 것들을 속 시원히 털어놓자니 누구라도 그게 설령 자신이더라도 언젠가는 나의 고통이 그들에게 술안주거리밖에 되지 못하는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처음엔 야속하고 그리고 원망도 들었지만 지금은 나 또한 누군가의 아픔을 안주거리 삼은 적이 있었을 것이고 이런 것들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속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야속함도 원망도 부질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이런 고통, 슬픔은 나만의 것이지.’ 그들의 것은 아니고 그들이 대신 풀어 줄 수는 없다는 결론이 왠지 서글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결론을 잘 알면서도 그 누군가 사람의 따뜻한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종종 있으며 그런 날 스스럼없이 막걸리를, 소주 한잔을 대작하며 꼭 내 아픔을 이야기하기 보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조금쯤은 나에게서 비껴가는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내 아픔도 어느 덧 나도 모르게 나누는 술잔에서 나누는 수다에서 용해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상하게도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면 왠지 말하지 않아도 상대는 나의 아픔,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고 또 어쩜 공감의 경지에 도달할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함께 맞는 비/신영복

 

 

같이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만으로도 단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날 Mansfield의 ‘카나리아’라는 단편 소설을 생각합니다.

 

 

주인공은 작은 카나리아를 키우면서 큰 위로를 받는답니다. 어느 비오는 날 밤, 주인공은 무서운 악몽을 꿉니다.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갔을 때, 마치 어둠이 부엌 창문을 통해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그러고는 곁에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아니 ‘저 어둠으로부터 나를 숨겨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외로웠습니다. 그때 카나리아가 깨어나 그녀에게 짹짹 말을 건넵니다. 마치 ‘여기 내가 있잖아요’라고 말해주듯이 말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새의 그 여린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위로가 되었는지 거의 울어버릴 뻔했다고.

 

 

도움이 절실한 순간에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작은 새 한 마리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부턴가 내 인생에 정말 위로를 받고 싶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난 당신 없인 안 돼.” 그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 말입니다. 힘들고 지치고 사는 것이 두려운 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사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 같은.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날 집으로 데려갈 수 있는 사람, 내가 추울 때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 사랑스럽지 않은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 줄 사람...

 

 

 

그러던 어느 날은 ‘당신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까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베르톨트 브레히트

 

 

이렇듯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오늘 내가 살아야할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하루하루를 살아야지라는 용기를 내보는 오늘도, 지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됨이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