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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호의 은행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2. 23.

 

가게를 연지 2년이 지났다. 10여년을 오직 아이들하고만 지내다가 장사라는 것을 시작한다니 말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내 오랜 꿈 중의 하나라서 그냥 밀고 나갔다.

 

가게를 얻고 인테리어를 하고 드디어 북카페로써 오픈을 했는데 처음 맘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음식도 술도 손을 대게 되었다. 처음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라 예상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면서 운영을 올케에게 맡겼는데 두 손발을 다 드는 바람에 내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인 뛰어 들기 시작했다. 주방언니와 함께 하는 일이라서 그리 힘든 줄 몰랐는데 이것도 외국음식이라고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고... 수입이 오르지 않아 지금은 혼자서 운영을 하는 중이다. 하여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지난 2여년에 내가 저지른 시행착오를 자꾸 되 집어 본다.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이 기억된다. 내가 그렇게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인가 경험 많은 주방언니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뭐하고 살았지, 접시 닦는 일 하나 제대로 못하고... 뭘 정리하는 일이란... 청소하는 것도 왜 그렇게 힘들고 해봤자 윤이 나지도 않고... ㅋㅋㅋ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들은 역시 사람들이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내가 계산도 잘 못하고 그래서 규모도 없고 일반적인 상식이 한 참이나 부족하다. 현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에 문외한이다. 아마 오랫동안 한국이라는 사회를 떠나있었고 또 내 세계외의 것에 별 관심이 없는 성격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이 엉성해 보였을 것이다. 참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자기보다 좀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더 마음이 끌리고 호의적이다. 내가 처리 하지 못하고 끙끙 거릴 때 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꼭 도움의 손길이 왔다.

 

 

얼마 전 함께 일했던 주방언니 왈 “ 전 오랫동안 주방 일을 하면서 많은 주인을 겪어 봤지만, 사장님 같은 사람은 처음 봐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어쩜 친구들, 지인들이 나타나 무사히 일들이 해결되는지, 사장님은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렇다. 코엘료가 소설 ‘오자히르' 에서 언급한 ‘호의 은행’에서 나는 수억을 지금 대출 중이다. 아마 이 은행에선 나처럼 좀 모자라고 현실과 뒤떨어진 셈밖에 못하는 사람에 대한 신용평가가 훨씬 높은 듯하다. 넘치는 대출을 받아서 지금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 안정되고 평안한 맘으로 내 일을 하고 책도 읽고 한없는 수다를 피우며 살고 있다. 대출만기일은 언제 쯤 될까? 요즈음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식으로 이 대출을 갚아 나가야 할 수 있을까? 셈을 해 보아도 셈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건데 앞으로 아마 이 가게도 점점 좋아 질듯 하다. 왜냐면 손님들의 반응이 나아지고 있고 나름 음식 맛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 듯하다. 2여 년 동안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제 나름 주방 아줌마로서의 자세가 좀 생긴 것도 같고...ㅋㅋ

 

 

이런 저런 책을 뒤적이며 생각의 숲으로의 여행을 하다 보니 오늘 아침 불현 듯 코엘료와 다시 친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참동안 내 자신의 트라우마에 전전긍긍 하다 보니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글들에만 취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자, 기다려라. 코엘료씨!

그대와의 또 다른 여행을 지금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것이 내가 나아갈 길의 어떤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호의 은행이란

파울로 코엘료의 장편소설 '오자히르'속에 나오는 것으로 언젠가 도움이 될 사람에게 인맥이라는 예금을 부여하는 것으로써 나중에 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인간관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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