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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떠남과 돌아옴의 미학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12. 2. 25.

어제 밤 친구가 왔습니다. 내가 끓인 쌀국수가 맛있다하여 종종 찾아오는 친구인데 가끔씩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참 좋은 관계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친구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많은 이야기를 해도 지루하지 않은 그런 친구입니다.  나도 모르게 어제 밤에 그 친구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말이야, 넌 언제나 그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고 있어 참 좋아. 친구라는 이유로 경계의 벽을 허물려고 하면 상처가 되더라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하는 충고란 쓸데없는 것 아닐까? 이 나이 먹은 께 누구 충고 듣는다고 변하지 않더라고. 그리고 자신의 충고 없이도 넌 잘할 수 있어 그런 믿음을 가지면 안될까, 상대에게... 친구라는 이름으로 상대가 자기모습 데로 변하길 기대한다는 것은 이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그냥 옆에서 지긋이 바라다봐주고 넌 잘할 수 있어, 난 언제나 네 편이야 그렇게 소리 없이 격려해주는 그런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난 네가 참 좋아.”

 

참 낯간지러운 고백이었지만 우린 이구동성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 했습니다. 이렇게 두루두루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떠남과 돌아옴의 미학”

 

 

 

내가 장사에 정신이 없을 때 친구는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서 그녀에게서 난 참으로 많은 이야기와 자극을 받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어제 밤의 떠남과 돌아옴의 미학이라는 어쩐지 낭만적 무드가 느껴지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오! 그래. 그것을 주제로 수다를 한바탕 피워보자 그런 생각이 내내 떠나지 않더이다.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자만이 돌아 왔을 때 곁에 있는 파랑새를 볼 수 있다.

그런 이야기...

 

파랑새가 곁에 있었음을 진정한 기쁨으로 누릴 수 있는 사람이란 오직 떠났다 돌아온 자만이 할 수 있는 것 이다. 라는 요지입니다.

 

 

 

난 초등시절부터 앞으로의 내 삶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복합적인 영향 이었겠지만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상상하는 즐거움을 터득한 것 같습니다. 집 뒤에 야트막한 산이 있었습니다. 책을 들고 종종 뒷산에 오르면 한쪽에 전면이 확 트인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 책을 읽곤 했습니다. 산 잔디가 자라 있어 푹신푹신해서 책을 읽다 지루하다 싶으면 책을 베게삼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종종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이 너무 자유스럽고, 멋있게 보였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나도 저렇게 새들처럼 자유스럽게 세상을 날아 다녔음... 하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살다보니 어느 날 직업상 비행기 탈 일이 많아지고 있더군요. 그때 퍼뜩 아, 어린 시절 내 꿈 중의 하나가 실현되었구나 하는 달콤한 자존감을 느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참 고독했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고독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쓸 만했던 고독이었던 같습니다. 물론 또래아이들과도 신나게 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있음으로 해서 많은 상상 속에서 꿈을 꾸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남과 다른 삶이었습니다. 인생사라는 것을 잘 모를 시절부터 사는 게 고행인 것 같고, 저렇게 그렇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내 삶의 모독이다 뭐 그런 당찬 생각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재능도 특별한 힘도 없었던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남과 다른 인생을 사는 게 꿈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지만 암튼 그런 염력 때문인지 조금은 색깔이 다른 삶을 살아 온 것은 확실합니다. 지내놓고 보니... ㅋㅋㅋ

 

 

 

그런데 참 웃기는 사실은 이제 오십을 너머서고 부터는 제 꿈이 뭔 줄 아십니까? 나도 남들과 똑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지지고 볶는 소소한 생활, 그것이 주는 생활의 진동을 느껴보고 싶은데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아줌마들의 수다를 왕창 좋아합니다. 목욕탕이나 찜질방에서 끊임없이 수다를 피우며 깔깔거리는 이들을 보면 참 부럽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줌마들이 참 귀엽다 그런 느낌도 듭니다. 무슨 이야기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엿듣고 싶은 기분이 들 때조차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부러우면서도 나는 정작 그러지를 못한 다는 것입니다. 막상 친구들과 만나면 할 이야기가 별로 없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보며 근 10년을 외롭게 지냈습니다. 외로웠다고요?

 

 

어떻게 어울리면서 더 외로울 수 있었을까 어패가 맞지 않는 말 같지만 내가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키워온 내 성정이 그네들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나또한 단순 무식, 솔직 담백함을 내 무기로 여기다보니 복잡하게 꼬인 관계들 속에서 내 존재에 대한 회의 때문에 참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로웠다고나 할까. 친구들과의 어울림의 자리에선 관심 밖의 이야기를 할라치면 힘이 듭니다. 할 수 없이 앉아있는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런 내 모습이 싫을 때가 많았습니다. 친구들에게 미안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한 적도 있었는데 ...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나는 요즈음 고독의 세계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친구가 좋고 또 가끔씩 날 일부러 찾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할 때도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찾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가끔씩 알싸한 소주에 구수한 막창구이의 담백함을 즐기며 익어가는 수다를 피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웬지 그런 날은 친구들의 위로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고 돌아 나는 내가 다시 고독의 세계에서 유영하고 있는 요즈음이 정말 행복합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평화와 안정, 뿌듯한 자존감이 참 좋습니다. 아, 이런 모습이 아마도 나에게 운명 지어진 내 팔자인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조차 듭니다. 내 파랑새는 내가 고독하게 살 때 내 곁에 머물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어제 밤 친구의 몇 마디 말들이 내내 내 생각의 고리를 만들고 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습을 그리게 합디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내 모습을 견뎌주고 바라다봐주는 내 친구들에 대한 고마움과 그네들의 넘치는 사랑을 먹고 살아오면서도 내 고독의 즐김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참으로 좋은 팔자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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