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꽃밭이 있는 집에 살아보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산 밑 정말 코딱지만 한 오두막인지라 방 두 개에 딸랑 부엌하나, 마루도 없었고 토방도 없었던 집이었고 손바닥 크기의 마당이었지만 저 한쪽에 조그마한 꽃밭이 하나 있었으면 그렇게 소원한 적도 있었다.
동네에 곱상하고 왠지 모르게 껑충 기품이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 분이 살고 계셨는데 그분 마당에 해마다 칸나며, 사루비아, 백합, 접시꽃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저 집이 우리 집 이라면 소원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그 집이 우리 집이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할 무렵 이었나.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암튼 어느 날부터 우리 가족은 그 꽃밭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었다. 해마다 가지가지 꽃들이 만발한 곳에서 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여름 무렵 어느 날 엄마가 채송화 모종을 한웅큼 얻어 오셨다. 초라한 작은 식물을 꽃밭 한 모퉁이에 호미로 대충 심어 놓으셨는데 이삼일 쯤 지나니 쭉쭉 자리를 잡고 제 모습을 갖춰 가는 게 신기했다. 며칠이 지나자 그 작은 놈에게서 예쁜 꽃송이가 올라오더니 작고 앙증맞은 꽃잎을 터뜨렸다. 오도카니 앉아 한참을 꽃잎을 내려다보며 참 여리게 생긴 그놈들을 예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고 여려 보여 더 예뻐해 주고 싶고 보호해주고 싶고 뭐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름이 가고 꽃이 시들면 아주 작은 알갱이 같은 씨앗들이 맺히고 그것이 신기해 여물기도 전에 터뜨려보곤 했는데... 다음해에도 또 다음해에도 보살피지도 않았건만 저절로 그 자리에 더 많은 식구들을 데리고 와 또 꽃을 피우곤 했다. 어느 날 부턴 그 모습이 예뻐 마당 곳곳에 온통 채송화 밭을 만들었다. 토방 밑에도 화장실 옆에도 개집 옆에도. 장독대 밑에도... 채송화는 까다롭지 않아 꺽꽂이를 해도 잘 자란다. 여름비가 온 뒤 촉촉한 습기가 채 마르기전 꺽꽂이를 해 이곳저곳에 놓아두면 이삼일 후에 제자리를 잡는다. 어느 새 튼실한 모양새를 갖추고 꽃잎을 터뜨린다. 작지만 수더분하고 왠지 튼실해 제 생명력을 발휘하는 듯해서 예쁘다.
그렇습니다. 어린 계집아이가 그렇게 작고 여린 식물에게 넋이 빠져 온 마당에 채송화를 심고 그놈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듯 그런 연민과 감탄을 경험한 것입니다. 강하고 멋있고 세련된 것들에 경도되기보단 여리고 볼품없지만 튼실한 생명력이 있어 크게 보살핌 없이도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는 생명들...
그리고 사람들...
가끔씩 물론 연출된 장면들이기는 하지만 “ 인간극장 ”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 사는 세상이 참 아름답다 많은 위안을 받습니다. 가난해서 약하고 그래서 더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사는 모습들이 참 좋습니다.
나도 누구에겐가 내 튼튼한 어깨를 빌려 줄 수 있는 그런 기품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언제나 느리기만 합니다. 마음이 아직 가난합니다. 혹은 내 몫의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색깔이 다른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합니다. 작고 여려 소박하기만한 채송화처럼 내 있는 존재자체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나에게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내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이번 여름엔 작은 화분에 채송화를 심으며 그 여린 모습에 배어 있는 생명력을 즐겨볼까 합니다.
채송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키는 20㎝ 정도이고 가지가 많이 갈라진다. 두툼한 육질의 잎은 선형(線形)으로 어긋나는데 끝은 둔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백색·자주색·홍색·황색 등 다양한 색의 꽃은 7~10월경 가지 끝에 1~2송이씩 핀다.
채송화에 얽힌 전설
페르시아에 욕심 많고 돈밖에 모르는 여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왕이 좋아하는 것은 오로지 보석으로 자나깨나 보석을 손에 넣을 궁리만 했습니다.
여왕은 상인들에게 세금을 모두 보석으로 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습니다. 욕심 많은 여왕은 어느 날 가혹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페르시아의 백성들은 누구나 죽기 전에 보석 하나씩을 세금으로 바쳐라."
먹고 살 것도 없는 백성들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보석 한 개를 바치자면 집과 땅을 다 팔아도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여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보석이 담긴 열두 개의 상자를 싣고 여왕을 찾아왔습니다. 여왕은 너무나 많은 보석을 보자 너무 좋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저 보석들 좀 봐! 내가 갖고 있는 것들보다도 훨씬 많네!' 여왕은 보석을 보자 욕심이 불같이 타올랐습니다. 그 보석들을 꼭 차지하고 싶었거든요.
"여보시오, 노인 양반. 그 보석을 내게 바친다면 그 대가는 충분히 치르겠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보시오." 그 때 노인의 입에서는 듣기에도 무서운 말이 떨어졌습니다.
"보석 하나가 페르시아 백성 한 사람분입니요."
보석에 사람을 비교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욕심 많은 여왕의 눈앞에는 보석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왕은 노인의 요구에 응했습니다. 여왕은 보석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보석을 하나씩 여왕에게 건네 줄 때마다 백성이 한 명씩 없어졌습니다. 드디어 보석을 전부 세고 딱 한 개가 남았습니다. 그 보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굉장히 크고 진귀한 보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보석과 바꿀 백성이 없었습니다.
노인은 여왕에게 말했습니다.
"여왕님, 여왕님까지 합치면 수가 꼭 맞겠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럼 이 보석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노인은 보석을 집어들고 떠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왕은 다시 그 노인을 붙잡았습니다.
"노인 양반, 나는 그 보석을 갖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소. 그 보석을 주고 나를 가져가시오."
노인은 여왕에게 보석을 내주었습니다. 여왕이 그 보석을 받아 드는 순간, 보석 상자가 모두 터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보석은 사방에 흩어져 자그마한 '채송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왕은 지나친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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