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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룸 넥스트 도어』, 색채와 서사의 교차점에서 죽음과 존엄을 묻다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색채와 서사의 교차점에서 죽음과 존엄을 묻다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óvar)의 영화와의 첫 조우는 2004년 영화 『나쁜 교육』(La mala educación, 2004)이었다. 흔히 이 영화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어둡고 개인적인 작품 중 하나로, 성(性), 기억, 권력, 그리고 영화 자체의 속성을 탐구하는 복잡한 네오누아르 드라마라고 일컬어진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했던 점은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미장센, 사회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용감함이었고 그 후 그의 팬이 되어, 멜로드라마적 감성과 여성 캐릭터들의 강한 서사가 돋보였던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특히 음악이 아름다웠던 영화 『그녀에게』(2002), 페넬로페 크루.. 2025. 2. 28.
(6화) 오후 네 시 (6화) 오후 네 시  “근데, 영숙씨. 이제 나도 어른이 된 것 같아. 어릴 때 아이들이 놀리던 내 크고 까만 눈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겠어. 어쩌면 섹시하기까지 할지도 몰라. 그래서 가끔 과 선배나 같은 과 남학생들이 슬쩍 쳐다볼 때 나도 모르게 턱이 바짝 올라가.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요, 칠뜨기들아. 아무리 나한테 눈독을 들여 봐라. 내가 어디 눈 하나 깜짝하나? 이래뵈어도 난 너희 같은 촌뜨기들이 탐낼 아가씨가 아니거든.’ 어때, 나 잘했지?” 지원의 목소리는 어느새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들고 있었다. “그래, 우리 채송화 씨는 뜨거운 열대의 나라 공주님이지.” “그래, 그 생각이 나. 언젠가 영숙씨가 그랬잖아. 아이들이 나를 ‘양공주’라고 놀려서 울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네게 .. 2025. 2. 28.
[200-145] <현대 사회에서 노동의 본질과 조건: 맑스 철학의 재조명> [200-145] 현대 사회에서 노동의 본질과 조건: 맑스 철학의 재조명>  [원 문장] 『처음 읽는 독일 현대 철학』 중 노동의 존재론과 칼 맑스의 혁명 사상, 조정환 씀 “우리에게 노동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 노동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은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이 질문들을 이어 받으면서 그것을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제기하는 데 있어서 맑스는 우리에게 결코 우회할 수 없는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맑스를 참조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개척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 즉 우리의 몫일 것입니다.” 나의 문장) 인용문은 위 글쓴이가 맑스에 대한 글의 맺음말이다. 여기에서 나는 맑스의 철학이 글쓴이가.. 2025. 2. 28.
겨울방학 동안에 한 일 이번 겨울 방학엔 좀 무리한 도전을 했었다. 알고 싶었던 현대 철학자들을 전체적으로 개관해 보자는 것이었다. 논문 형태로 시작해 묶는다면, 언젠가 철학 에세이 쯤으로 변주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루 4, 5시간을 투자해 어찌어찌해서 35인의 철학자들을 선택해 하루하루 쌓이는 쪽수에 스스로 감탄하며 드디어 완성본을 만들었다. 아마도 차후 나의 철학적 사유의 무늬에 다양한 색을 입힐 것이며, 각각의 철학자가 남긴 개념과 논의들이 서로 얽히고 스며들어 새로운 통찰로 이어질 것이다. 그들의 사유가 단순히 개별적인 지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충돌하며 또 다른 사유의 가능성을 열어갈 것을 기대하는 작업이었고 이제 제 2의 것으로 가공될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이 .. 2025. 2. 27.
기다리는 책들, 찾아가는 나 나는 애독자 이기 이전에 애서가이다. 서가를 마주하고 글을 쓰다가 지루할 때면, 나의 눈길은 늘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에게 다가간다. 꽃혀있는 책의 제목만 읽어도 행복하다면, 분명 나는 애서가이다. 그들 중 100 여권쯤은 아직도 읽히지 못한 채 언젠가 자신이 간택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기다림도 인연일까? 마구 사들이던 플라톤의 책들을 어느 순간 모두 읽어버리는 참사를 벌였던 날들의 기쁨도 있더라. 과연 내 머릿속에 무엇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지만, 여하튼 일정 기간동안 플라톤을 사랑했다는 성취감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고 이건 바로 책과 나, 플라톤과 나, 철학과 나의 상호작용을 통해 내 글 속에 어떤 식으로든 무늬를 남기리라 생각하니, 자꾸만 헛웃음이 꼬리를 문다.이.. 2025. 2. 27.
(5화) 오후 네 시 (5화) 오후 네 시  “영숙씨, 오늘은 몇 살 걸로?” 천명관 것도, 강은교 것도 낭독한 후에 이제 할머니의 원고를 낭독할 차례였다. “오늘은 일곱 살 걸로” “알, 지금 부터는 영숙씨는 다시 일곱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럼 내가 더 언니가 되었으니 일곱살 영숙씨에게 뽀뽀 한 번 하고 읽기 시작한당.” 지원은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볼에 자신의 입술을 살짝 데였다가 뗀다. 오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수없이 입술 도장을 찍었던 할머니의 볼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지원이 낭독 모드를 취하자, 할머니 또한 듣기 모드를 취하며 지원 쪽을 향해 몸을 모로 누웠다. "아저씨는 소쿠리 팔러 가셨어요? 언제 다시 돌아와요?“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시작을 알린다. “소쿠리 사세요. 소쿠리 사세요.” .. 2025.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