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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2023)
생애와 교육 그리고 사상
안토니오 네그리(1933~2023)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윤리·정치 철학자이자,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적 이론가로 꼽힌다. 그는 북부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나 파도바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교수직을 역임했다. 네그리는 초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 내 행동파로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나, 교회의 보수성과 사회주의적 경향에 대한 탄압에 반발해 곧 탈퇴했고, 1954년 이탈리아 통일사회당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좌파 정치운동에 뛰어들었다.
1959년 법철학 교수 자격을 획득한 뒤, 《붉은 노트(Quaderni Rossi)》, 《노동계급》 등 진보적 잡지의 간행과 노동자 중심의 세미나 조직을 통해 이탈리아 노동운동과 지식인 네트워크의 중심에 섰다. 이 과정에서 네그리는 노동자주의(operaismo)와 자율주의(autonomia)라는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흐름을 이끌었고, 1969년 ‘노동자의 힘(Potere Operaio)’, 1973년 ‘노동자의 자율(Autonomia Operaia)’의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네그리의 사상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당 중심적, 전체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분산적이고 네트워크적인 대중의 힘, 즉 ‘자기가치화’와 ‘산 노동’의 창조적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의 자기조직화, 탈중심적 혁명, 그리고 노동의 변화에 주목했다. 1970년대 이탈리아의 급진적 사회운동(아우토노미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혁명적 주체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옹호했다.
1979년 알도 모로 암살사건과 관련해 테러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실제로는 혁명적 사상과 운동에 대한 국가권력의 탄압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프랑스로 망명해 파리 8대학, 국제철학대학 등에서 활동하며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등과 교류했다. 1997년 이탈리아로 귀국해 다시 수감과 가택연금을 겪었으며, 주요 저작의 상당 부분을 감옥에서 집필했다.
네그리는 마이클 하트와의 공저 《제국》, 《다중》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권력의 변형, 그리고 새로운 혁명적 주체로서 ‘다중(multitude)’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21세기 정치철학과 사회운동에 큰 영향을 남겼다.
아우토노미아(자율주의)운동
아우토노미아(Autonomia) 운동은 1960~7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전개된 급진적 좌파 사회운동이자, 네그리 사상의 핵심적 실천 무대였다. 이 운동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당 중심적·위계적 조직 모델을 비판하고, 노동자와 대중의 자율성, 자발성, 그리고 네트워크적 연대를 강조했다.
1969년 피아트 자동차 공장 파업 등에서 시작된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대중과 전위의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자발성과 집단적 창의성이 돋보였던 것이 특징이다. 이후 1970년대 초반에는 붉은여단 등 무장조직의 등장과 더불어, 기존 좌파 조직의 위계와 이데올로기적 응집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1973년 미라피오리 공장 점거 사건에서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힘과 역량을 드러내며, 전위가 대중을 이끄는 방식에서 벗어나 노동자 스스로 봉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운동이 변화했다.
네그리는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통해, 혁명의 동력은 당이나 전위가 아니라, 분리와 탈구조화를 통해 자기가치화(self-valorization)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산 노동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7년 《자본주의 지배와 노동자계급 사보타지》 등에서, 혁명적 주체의 다양성과 네트워크적 조직, 그리고 대중의 독특성에 기반한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했다.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1977년 이탈리아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와 점거, 사보타지 등으로 절정에 달했으나, 1979년 네그리와 동지들이 알도 모로 납치사건 등과 연루되어 체포되면서 국가의 강경한 탄압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운동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새로운 사회운동, 그리고 ‘다중’ 개념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며, 네그리 사상의 실천적 원천이 되었다.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의 시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20세기 후반 이후의 세계 질서를 ‘제국주의’가 아닌 ‘제국(Empire)’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고전적 제국주의가 국민국가 간의 경쟁과 영토 확장, 군사적 지배를 특징으로 했던 반면, 오늘날의 ‘제국’은 초국가적이고 네트워크화된 권력구조로, 특정 국가의 패권이 아니라 전 지구적이고 탈중심적인 질서임을 강조한다.
‘제국’은 미국이나 유럽의 헤게모니가 아니라, 자본과 권력이 전지구적으로 분산된 네트워크 형태로 작동하며, 국민국가의 주권은 점차 의미를 잃고 있다. 이는 상품, 금융, 노동력, 정보 등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계화의 심화와 맞물려 있다. 네그리는 국민국가를 장악하거나 변혁하려는 기존의 좌파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권력에 맞선 저항 역시 새로운 방식—네트워크적, 수평적, 자율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의 특징은 차이를 배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한 차이와 특이성들을 포섭하고 통합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지배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차이들이 네트워크 속에서 통합·관리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의 중심도 산업노동에서 비물질노동(지식, 정보,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서 ‘다중(multitude)’이 등장한다.
결국 네그리에게 ‘제국’의 시대란 국민국가 중심의 근대적 주권과 제국주의의 종언, 그리고 초국가적 네트워크 권력의 부상, 다중의 새로운 저항 가능성이 열리는 시대로 정의된다.
민중에서 다중으로
네그리와 하트가 제시한 ‘다중(multitude)’ 개념은 전통적 ‘민중(people)’ 혹은 ‘대중(mass)’ 개념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민중’은 국민국가와 근대 정치의 맥락에서, 단일한 의지와 동일성, 통일된 정체성을 전제로 하는 집합적 주체였다. 즉, 민중은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주권적 의지로 대표되는 존재였다.
반면 ‘다중’은 복수적이고 이질적인 주체들의 네트워크다. 다중은 인종, 젠더, 계급, 문화, 지역 등 다양한 차이와 특이성을 지닌 개별적 존재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면서, 서로의 차이를 지우지 않고 공통의 힘을 만들어내는 집합이다. 다중은 통일된 ‘하나’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통하며, 자율적으로 조직되는 ‘많음’의 정치적 주체다.
네그리는 ‘민중’이 국가와 권력의 논리, 동일성의 논리에 쉽게 포섭되고 재현될 수 있는 반면, ‘다중’은 차이와 다양성, 자율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저항과 창조의 힘을 보여준다고 본다. 다중은 위계적 지도부나 대표 없는, 수평적이고 분산적인 힘의 집합으로, 제국의 네트워크 권력에 맞서 새로운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결국 네그리에게 ‘민중에서 다중으로’의 전환은, 근대적 주권과 동일성의 정치를 넘어, 차이와 다양성, 네트워크적 연대에 기반한 21세기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등장을 의미한다.
물질 노동의 헤게모니에서 비물질 노동의 헤게모니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적 전환을 ‘물질 노동’에서 ‘비물질 노동’의 헤게모니로의 이동에서 찾는다. 전통적 산업사회에서 중심이었던 물질 노동(공장 노동, 생산직 등)은 점차 정보, 지식, 커뮤니케이션, 감정, 문화 등 비물질적 요소를 생산하는 노동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비물질 노동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하나는 지식, 정보, 커뮤니케이션 등 ‘지성노동’, 다른 하나는 서비스, 감정, 돌봄 등 ‘정동노동’이다. 이 노동들은 단순히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소통, 주체성 자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네그리는 이러한 변화가 자본주의적 가치생산의 방식 자체를 변형시킨다고 본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정보, 문화콘텐츠 등은 한 번 생산되면 거의 비용 없이 복제·확산될 수 있고, 그 가치는 더 이상 전통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비물질 노동의 헤게모니 하에서는 노동시간과 비노동 시간, 생산과 소비,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진다. 소비자는 단순한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상품의 기획·생산·유통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된다. 이 과정에서 소통과 협력이 경제적 가치의 핵심이 되고, 주체성의 생산과 사회적 관계의 창조가 경제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노동의 양적 축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생산의 질적 전환, 즉 사회 전체의 생산방식과 권력 구조의 변화로 이어진다. 네그리는 이 전환이 다중(multitude)이라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며, 비물질 노동의 네트워크와 협력이 제국적 권력에 맞서는 잠재적 힘이 된다고 본다.
요약하면, 네그리는 물질 노동의 헤게모니에서 비물질 노동의 헤게모니로의 전환을 통해, 자본주의적 가치생산의 방식과 사회적 주체성, 그리고 저항의 가능성까지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6. 공통체
안토니오 네그리에게 ‘공통체(the common)’는 전통적 공동체(community)와 구별되는, 21세기 정치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공통체는 혈연, 민족, 동일성, 소유에 기반한 배타적 결속이 아니라, 다중(multitude)이 각자의 차이와 특이성을 지닌 채로 상호 소통하고 협력하며, 함께 창조하고 누리는 관계적·생산적 장(場)이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자본주의가 사적 소유(사유재)와 국가적 공공재(공유재)로 사회적 자원을 분할해왔음을 비판하며, 이 양자를 넘어서는 ‘공통적인 것(the common)’의 정치와 경제를 제안한다. 공통체는 언어, 정보, 지식, 자연, 사회적 협력 등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생산·이용·관리하는 자원과 관계망을 의미한다.
공통체는 동일화나 동질성, 소유의 논리가 아니라, 차이와 다양성, 네트워크적 연대에 기반한다. 다중은 각자의 특이성을 유지하면서도, 공통의 힘과 창조성을 발휘하며, 권력과 자본에 맞서 새로운 사회적 결합과 민주주의의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공통적인 것’의 민주적 관리와 참여, 그리고 자율적 자기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결국 네그리의 공통체론은, 국가와 자본, 소유의 논리를 넘어, 다중이 생산하고 공유하는 ‘공통적인 것’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결합, 그리고 열린 민주주의의 실천을 의미한다.
(공통체와 기존 공동체의 차이
공통체(the common)의 의미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말하는 ‘공통체’는, 누구나 접근하고 함께 창조하며 누릴 수 있는 자원과 관계, 그리고 그 관리방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통적인 것’은 언어, 정보, 지식, 자연, 사회적 협력 등 사적 소유나 국가의 공공재와는 구별되는, 모두가 참여하고 생산하는 열린 장(場)이다. 공통체는 배타적 소유나 동일성에 기반하지 않고, 다중(multitude)의 차이와 다양성이 유지되면서도 상호 소통과 협력을 통해 스스로 조직되는 네트워크적 결합을 지향한다.
기존 공동체(community)와의 차이
기존 공동체는 혈연, 민족, 지역, 문화, 동일성, 소속감, 도덕적 규범, 배타적 소유 등으로 결속된 집단이다. 구성원 간 유사성, 동질성, 소속감, 도덕적 유대, 공통의 가치와 규범이 강조된다. 전통적으로 공동체는 구성원 간의 유대와 소속, 책임, 봉사, 정의, 공정성, 인류애 등 도덕적·윤리적 기반 위에 세워진다.
공통체는 동일성이나 배타적 소유, 소속감에 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차이와 다양성, 네트워크적 연대에 기반해, 각자의 특이성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모두가 함께 생산하고 공유하는 열린 구조다. 소유나 대표, 배타적 경계가 아니라, 상호 소통과 협력, 민주적 관리, 자기조직화가 핵심이다.
정리
공동체: 소속, 동일성, 도덕적 유대, 배타적 경계, 공통의 규범과 가치
공통체: 차이와 다양성, 네트워크적 연대, 열린 생산과 공유, 민주적·자율적 관리, 배타성의 극복
네그리의 공통체론은, 국가와 자본, 소유의 논리를 넘어, 다중이 생산하고 공유하는 ‘공통적인 것’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결합과 민주주의의 실험을 지향한다. 이는 전통적 공동체가 강조하는 동일성, 소속감, 배타적 경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7. 에셈블리
‘에셈블리(Assembly)’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2017년 발표한 저서 『Assembly』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개념으로, 21세기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핵심 키워드다.
에셈블리는 전통적 의미의 ‘집회’나 ‘의회’와 달리, 다중(multitude)이 수평적으로 모여 스스로 조직하고 결정을 내리는 집합적 주체의 역동성을 뜻한다. 이는 위계적 지도부나 대표자를 중심으로 한 기존 정치 구조와 달리, 네트워크적이고 분산적인 힘의 결집, 즉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집합의 형태를 강조한다.
1) 에셈블리의 특징
수평적 조직
에셈블리는 권위적 리더십이나 중앙집중적 구조가 아니라, 다중이 각자의 차이와 특이성을 유지한 채 상호 협력하고 소통하는 수평적 네트워크다.
집합적 지성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집합적 토론과 실천을 통해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이는 ‘집합적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실현이기도 하다.
자기조직화와 자율성
에셈블리는 외부의 명령이나 지도 없이, 다중이 스스로 조직되고,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자기조직화의 힘을 보여준다.
즉각적 민주주의
대표를 통한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여자 모두가 직접 의견을 내고,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즉각적 민주주의’의 장이다.
2) 역사적 맥락과 현대적 의미
에셈블리는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광장 운동(예: 스페인 인디그나도스, 미국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홍콩 우산혁명 등)에서 그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운동들은 위계적 지도부 없이, 다중이 직접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장을 보여주었다.
네그리와 하트는 에셈블리의 힘이야말로, 제국적 권력에 맞서 다중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공동체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에셈블리는 차이와 다양성을 지우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통해 공동의 힘과 창조성을 실현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8. 네그리를 정리하며 다다른 나의 사유
안토니오 네그리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틀을 넘어서, 현대 자본주의와 권력의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했다. 그는 국민국가의 시대, 제국주의의 시대가 저물고 이제는 '제국(Empire)'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이 제국은 더 이상 경계를 중심으로 작동하지 않으며, 권력은 분산되고 유동적으로 작동한다. 이 안에서 저항과 창조의 주체는 '국민'이나 '인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정체성을 지닌 이질적인 존재들의 집합체, 곧 다중(multitude)이다.
네그리의 사유에서 다중은 단순한 집합이 아니다. 각각 고유한 차이와 특이성을 지닌 이들이 소통과 협력의 연결망 속에서 스스로를 조직하며 새로운 공동의 장을 창출하는 존재다. 그들은 자신을 지우지 않으며, 오히려 다름을 보존한 채로 커먼(common)을 만들어간다. 커먼이란 더 이상 동일성이나 소유에 기초한 공동체가 아니라, 공유하고 참여하며 변화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이 사유의 궤적을 따라,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되묻게 된다. 그것은 이제 정체성이나 소속감, 폐쇄된 경계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고유성이 존중받으며, 함께 살아가고 협업할 수 있는 열린 장(場)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나 생산과 관리, 분배에 참여한다. 이것이 내가 실천하고자 하는 다중 민주주의(multitude democracy)이며,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 노동의 시대를 지나, 지식과 정보, 감정, 관계와 같은 비물질적 노동(immaterial labor)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이 흐름 속에서 내 글쓰기와 사유, 교육적 실천 또한 하나의 비물질적 노동임을 깨닫는다. 내가 쓰는 문장 하나,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서로를 이해하고자 내미는 몸짓은 단순한 개인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창조의 일부이며 새로운 공동체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나의 일상과 삶의 실천, 글쓰기의 모든 행위를 커먼의 창조로 여긴다. 그 어떤 단어도, 생각도, 나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나의 언어는 반드시 누군가와 공유되는 자리, 누군가가 들어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열어야 한다. 배타성과 소유의 논리를 넘어서, 모두가 함께 만들고 누릴 수 있는 공통적인 것들을 향해 나아가는 삶. 그것이 내가 바라는 미래의 민주주의이다.
앞으로 나는 이 새로운 민주주의, 이 커먼의 이상을 내 삶과 글쓰기, 교육적 실천 속에서 구체화하고자 한다. 다양한 존재와 생각들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 글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나 개인의 성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차이와 다양성을 드러내는 장, 누구든 머무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 나는 언제나 예외와 여백, 침묵의 가능성을 남겨두려 한다. 글이 권력이 되지 않도록, 독점되지 않도록, 언제든 타자와 만날 수 있도록.
나는 이제 안다. 지식과 감정, 관계와 이해의 몸짓은 곧 사회적 힘이며, 커먼의 기원이자 미래의 공동체를 여는 문이다. 내 언어는 닫힌 것이 아니라 열려 있어야 하고, 나의 글은 사유를 분리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가는 실천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확신 위에서 나는, 나의 내일을 살아가려 한다. 다중 민주주의의 윤리를 품고, 커먼의 공간을 확장시키며, 비물질적 노동의 창조적 힘을 존중하는 일상 속에서. 그것이 나의 삶이며, 글쓰기이며, 공동체를 향한 조용한 선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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