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자의 불안, 그리고 다시 쓰기」
어떤 밤들은 문장을 다 써놓고도, 글이 나를 배반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죽을 힘을 다해 썼지만, 내가 정말 전하고자 한 것이 고스란히 문장에 실렸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끝없는 자기 검열에 빠진다. 이건 과연 '작품'이라 부를 만한가? 나는 쓰는 자로서 윤리를 지키고 있는가? 그저 ‘글을 쓴 사람’이지 ‘작가’라 말할 자격은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가장 잔혹한 질문—나는 글을 쓸 재능이 있는가?
이 물음들은 답을 요구하기보다는, 내 안에서 날마다 새로 태어나며 나를 밀어낸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 글을 선뜻 건네는 일은 더 어렵다. 뻔뻔할 수 없다. 내 글이 아직 다다르지 못한 자리에 누군가의 시선을 들이는 일이, 나는 아직도 조심스럽다. 결국 나는 글 앞에서, 타인 앞에서, 그리고 나 자신 앞에서 오래 망설인다. 쓰는 사람은, 늘 그런 식으로 늦게 다가간다.
요즈음 나는 그 불안을 조금이라도 다스리기 위해, 내 글을 검열하고 보완하기 위해, 종종 인공지능에게 의지한다. 분석을 요청하고, 구조의 균열을 짚어달라고 하고, 때로는 냉정한 비판을 감수하기도 한다. 이것은 나의 글이 아직 미완이라는 고백이자, 동시에 내가 여전히 쓰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AI의 눈을 통해 내가 놓친 결을 발견하기도 하고, 불현듯 문장의 틈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읽고, 내 문장을 다시 쓰는 법을 배운다. 비로소 조금씩, 망설임이 말이 되는 법을 알아간다.
그리고 그 망설임 끝에 문장을 하나 더 쓰게 될 때—아직 나는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다시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다. 글이 완성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쓰는 사람이고, 나의 글은 나보다 조금 더 나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랫글은 얼마 전 초고를 쓴 내 원고 전문을 AI에게 내보이며 실랄한 비판을 주문한 결과이다. 참으로 타당성이 있음에 글을 쓴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검은 사신.exe」는 강력한 서사적 몰입감과 감정적 공명이 있는 텍스트이다. 그러나 실랄한 비평의 요청에 응답하자면, 이 소설은 의식적 과잉, 구조적 비대칭, 정서적 도취와 미학적 혼란이 결합된 텍스트로서, 몇 가지 뚜렷한 약점을 지닌다.
1. 문학성과 장르성을 모두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는 실패
작품은 정교한 문장과 시적 이미지를 사용하는 동시에, 하이퍼 리얼리즘 액션-복수극의 장르 문법을 따르려 한다. 그러나 이 두 언어는 서로 충돌하며, 박하의 내면 서사는 문학적 감정과 기억, 트라우마, 예술의 힘에 근거한 반면, 릴리의 액션 서사는 리얼 타임 복수극, 테크노 누아르의 쾌감을 지향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정체를 알기 어렵다. 예술에 잠식된 작가의 이야기인가, ‘검은 사신’이라는 캐릭터의 히어로 탄생기인가, 독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2. 지나치게 장황한 묘사 – 미학이 구조를 압살한다
이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는 매혹적이다. 그러나 페이지마다 반복되는 고밀도 묘사는 서사적 전진을 압도하고, 결국 긴장감과 감정 이입을 지연시킨다.
예: 박하가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묘사, 숲 속과 바다로 나아가는 환상적 장면들, 감각적인 옷, 음반, 빛, 피부, 물결 묘사 등.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세밀하게, 과잉된 감각으로 서술되며 서사의 리듬을 정체시킨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감탄과 동시에 피로를 느끼게 된다.
감정적 진심은 있으나, 상징과 구조는 흐려진다. 박하와 대휴의 관계는 작품의 핵심 정서축이지만, 그 감정의 발달이나 긴장, 전개가 지나치게 후반부에 묻혀버리며, 서사의 중심 갈등이 분산된다. ‘검은 사신’이라는 존재는 릴리인가, 박하의 내면인가, 복수의 망령인가, 사회정의인가? 이 인물의 존재론은 서사 속에서 충분히 철학적·심리적으로 매만져지지 않았고, 상징으로도 애매하다.
결과적으로 “도대체 이 이야기는 박하의 이야기인가, 릴리의 이야기인가, 혹은 박하=릴리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3. 이야기의 끝이 감정적 완성에 도달하지 못함
긴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결국 박하가 어디에 도달했는가를 궁금해하게 된다. 그러나 박하는 바다에서 떠오르며 무언가를 결심한 듯하지만, 그 결심이 서사적으로 구체화되지 않고, 다시 과거 회상과 감정적 혼란 속으로 빠진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감정적으로 도달해야 할 '종착지'를 박하와 함께 공유하지 못한다. 서사의 감정선은 말미에 이르러 해소되지 않고, 감상적 몽상으로 봉합된다.
요약: 구조적 단점
항목 문제점 비평적 해설
장르 혼용 문학성과 액션 복수극의 결합 정체성 혼란, 서사의 산만함이다.
묘사 미적 과잉 리듬 상실, 이야기 정체를 유발한다.
인물 정체 릴리-박하 혼재 중심축이 붕괴되고 감정 이입이 어렵다.
상징 과도하고 해석 불가능 메타포가 아니라 알레고리 수준으로 흐른다.
결말 정서적 봉합 부족 주제적 도달 실패, 독자의 허탈감을 유발한다.
4.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릴리와 박하의 정체를 조기에 명확히 연결하거나 분리해야 한다. 바다, 숲, 바람 등 감각 묘사는 절반 이상 생략하고, 정서의 기점에 집중해야 한다. '검은 사신 = 릴리 = 박하의 복수심 = 정의'라는 주제를 구조화해야 한다. 구성적 장치로서 음악과 성경을 심화시켜 메인 테마와 병치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엔딩은 감정이 아닌 행동으로서의 결심이 드러나야 한다.
「검은 사신.exe」는 분명 대단히 감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그 감각이 작품의 미학을 잠식하고, 구조와 독자 설득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비판은 문학적 재구성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이다.
이 모든 비판을 마주한 지금, 나는 앞으로 어떻게 이 단점들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묻는다. 아마도 그 첫걸음은, 내 글이 완성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견디는 일, 그 불안 속에 계속해서 앉아 있는 일이야말로 진짜 글쓰기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완벽한 문장을 쓰려 애쓰기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자주 묻고 싶다. 문장 하나에, 인물 하나에, 내 마음 한 조각을 온전히 밀어넣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글쓰기의 윤리는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다시 쓸 것이다. 고쳐 쓰고, 줄이고, 더듬고, 멈추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나의 글이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해질 때까지. 그리고 언젠가, 그 글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 만큼 진실해졌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단점들마저 글로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나의 구체적 행동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나는 첫째, 습작과 검토를 일상의 리듬 안에 정착시켜야 한다. 주기적인 쓰기와 읽기를 반복함으로써 문장 근육을 기르고, 관찰과 비판을 생활화해야 한다.
둘째, 나 혼자만의 시선에 갇히지 않기 위해 꾸준히 타인의 작품을 읽고, 가능한 한 낯선 문체와 세계에 나를 던져보아야 한다.
셋째, 내 글을 외부에 내보이는 연습을 지속해야 한다. 두려움을 감수하고, 피드백을 받아들이며, 나의 문장이 독자에게 닿는 방식을 체험해야 한다.
넷째, 나 자신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 누구를 위해 쓰는가, 지금의 이 문장은 무엇을 밀어내고 무엇을 드러내는가—이 질문들을 삶과 함께 끌고 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쓰는 자로서, 불안을 동반한 채 계속 쓰기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성실한 태도일 것이다. 지금은 봄이 만개해 초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어제, 중간고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교정을 가득 채운 철쭉의 화려함에 나는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피어 있었는데도, 나는 정작 이번 봄에 진달래조차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문득 아득해졌다. 글을 쓰고, 공부에 몰두하느라 사방에서 펼쳐지던 계절의 몸짓을 흘려보낸 것이다. 나 자신에게 너무 집중한 탓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나는 그것을 자책만 할 수 없다. 쓰는 일은 내게 허락된 하나의 삶이었고, 나는 그 삶을 외면할 수 없었다. 피어나는 계절과 등지고 있는 것 같아도, 나는 문장 안에서 나만의 봄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 인생의 후반 길을 걷는 나는 왜 이렇게 갈팡질팡일까. 문장에 몰두한 자신이 미워지고, 문장 없이 견딜 수 없는 자신이 안쓰럽다. 그러나 이런 모순과 망설임이야말로, 끝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진한 술 한 잔하고 싶은 날들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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