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사년 전쯤 일입니다. 이혼을 해야할까 말까 기로에 선 시기였나보다.
가능하다면 모든일을 자기안에서 해결하도록 추스리며 살았지만 이혼의 위기 앞에선 이성이 마비되나 보다. 친구딸을 데리고 신이 내린지 얼마 안된다는 무당을 찾아 산속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그녀는 심리치료사였는지 내리 두시간을 목청껏 울었다. 이혼을 하라더라. 그런데 솔직히 이혼만은 피하고 싶었다. 또 실컷울고 나니깐 그냥 참고 살아야겠다는 굳은 결심마저 생기더라. 참 사람의 묘한 심리는 모르겠다. 참고 그냥 살라고 했으면 또 지금 이혼녀가 되었을까? 끔찍하다. 주변에 돌씽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한 둘도 아닌데 뭐 그거 대수냐 생각도 들겠지만 이혼의 상처는 둘다에게 너무 치명적인 상황이며 그것때문에 낭비되는 삶의 에너지보다 적당히 참아주고 견디는 것쪽이 경제적인 면, 감성적인 면에서 월등한 것은 진실이다. 어떻게 보면 이혼의 위기란 어쩜 내 스스로 조성했던 감상적인 삶의 자세가 아니었나하는 뉘우침 마저 일었던 경험이었다. 내리 두시간을 울고 나니깐 돈 이만원이 아깝더라. 그래서 두번째 친정 동생이야길 꺼냈다.언제쯤 그놈이 속이 차릴 지 무척 궁금했던 참이었다. 그녀말이 우리집안에 자살한 사람이 있다더라. 그 사람을 위해 옷을 사서 굿거리를 해야만 동생에게 쒸운 귀신이 나간다나 어쩐다나.무릎을 탁 쳤다. 그래요. 우리이모부가 외할아버지 상을 치른날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들은 것 같애요. 우선 엄마에게 물어볼께요. 근데 정말 굿을 하면 친정 동생이 속을 차리나요. 백퍼센트 오케이... 속도 애지간히 풀렸고 또 데리고 간 친구딸에게도 조금 머쓱해져서 기약을 하고 산은 내려왔다.
이모 !
우리엄마에게 하나 밖에 없는 언니이다. 친척집이 많이 없어서 어쩌다 아랫녁에서 이모가 봇다리짐을 이고 오시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이모가 손수 뻘밭을 오가며 캔 조개들이며 오리쌀 누룽지가 나오곤했다. 이모가 오셨다 간 날은 맛있는 것들이 지천으로 깔린다. 엄마는 자식들 보다 이모가 더 좋은가보다라고 속으로 삐치기도 했지만 어쨎든 반가운 이모였다. 가끔씩 나도 방학때면 아랫녁 이모네 댁으로 한 시간쯤 걸어 나들이를 가곤했다. 이모네집 뒤에있는 똘에서 수영도 하고 또 물고기, 게를 오빠들과 잡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이모집에 갈때마다 이모부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이모네 집이 되게 부자라는 소릴 여러번 들었는데 이모집에 가면 방두칸짜리 오두막에 불과하다. 우리집보다 훨씬 가난해 보이는데 왜 이모네 집이 부자일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곤했지만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니 부자이모이겠지 생각했다. 어느 날 집에서 엄마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떨렸다. 엄마가 저렇게 우는 소리를 처음 들어봤는데...방문을 열기가 겁이나는데 토방에 낯선 신발이 있다. 이모가 오셨나 보다. 조슴스레 방문을 여니 엄마와 이모가 부둥켜안고 울고 계셨다. 엄마도 이모도 꼴이 말이 아니었고 이모의 얼굴이 퉁퉁붓고 얼굴 곳곳에 멍자국마저 보인다. 참 고운 이모인데. 어떻게.. 엄마와 달리 순둥이 양같이 하얋고 가늘고 자그마한 미인 이모였는데... 어쩌다가...
엄마와 이모는 홀아비의 딸들이다. 서너 살도 못돼 엄마의 가출로 술 주정뱅이 홀아비손에 곱게 자랐다. 이모는 생김새도 성격도 순둥이, 울 엄마는 생김세도 억세보이고 또 동네에서 야물딱스럽고 싸낙배기 가시네였단다. 생각해보면 술 주정뱅이 아버지를 모시고 순둥이 언니와 함께 살면서 악역을 담당해야 했던 엄마의 성격이 그 집안을 이끌었지 않았을까.. 어쨎든 예쁘고 순둥이 같은 언니를 탐내는 동네부잦집들을 제치고 아랫녁
오봉동네로 시집을 갔단다. 첫아들을 임신했는데 이모부가 전쟁터에 나가는 바람에 아들을 유복자로 낳았는데 부잦집이라 하더라도 큰 시숙네하고 같이 살았단다, 이모에 대한 소문이 바람결을 타고 날아 오는데 큰 동서의 시집살이 때문에 눈물마를 날이 없단다. 몇 번 싸낙배기 여동생이 찾아가 한 번씩 큰 동서와 다투고 오고 또 사촌오빠들을 데리고 가서 친정의 힘을 과시해보곤 하지만 이모의 동서시집살이는 오뉴월 서릿발마냥 새각시 가슴에 서러움만 남긴다고 오봉쪽 바람결은 소식을 전하곤 했다더라. 어느날 이모부의 전사통지서가 오고 그 소식을 들은 엄마는 치맛자락을 동여매고 십리를 걸어 이모집으로 내달았다고. 한달도 안 된 젖먹이를 업고 퉁퉁부은 얼굴로 방아를 찛고 있는 이모를 보았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해복간이 안돼서 였는지 치마속것으로 핏줄기가 내 비쳣다나. 젖먹이 아기를 풀어 마루에 놓고 우리 언니먼저 살리겠다고 언니를 끌고 친정으로 돌아와 보살폈는데 퉁퉁 분 가슴때문에 사흘도 안돼 엄마 몰래 시댁네 댁으로 도망쳤단다. 매운 동서 시집살이가 날로 드세져 이모의 속울음소리가 엄마의 환청소리로 들리는 날 맘 다져먹고 다시 이모네 집으로 쫒아가 이모 큰 동서를 때려눞히고 우리집 핏줄이니 우리것이다라고 외치는 이모 시엄니에게 아기를 뺐기고 안오겠다는 이모를 질질 끌고 달래고해서 친정으로 데려 왔는데 그 뒤 시름 시름 이모가 앓아 누워 엄마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맘 다잡아 먹은 이모의 여린 마음이 아물무렵 엄마가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의절없는 이모는 친척들의 주선으로 또 한번 시집을 간다. 갓 스무살이 넘은 과부댁이고 또 얌전하고 곱상한 과부댁을 아랫녁 땅부잣집 둘째 부인으로 데리고 갔단다. 첫째부인이 오늘 낼 저승길을 기다리는데 그 큰집을 남자가 건사할 수 없고 또 올망졸람 애들 셋을 맡을 사람도 마땅치 않았는데 이모의 소문을 들은 그 댁 친척들이 엄마와 아버지를 설득해 이모를 데리고 갔다. 오늘 낼 저승길을 앞둔 조강지처만 가면 부잦집 안방마님이 되는 것이니 이제 팔자피게 됐다는 희망으로 보낸 첩살이다. 참 사람팔자 알 수없는것. 이모의 수발이 너무 극진해서인지 저승길이 낼 모레라는 조강지처가 멀쩡하게 건강해지고 그 다음부터 이뤄지는 질투의 화신인 조강지처의 시집살이가 또 한번 이모의 일생에 엄마의 등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당하고만 있는 언니대신 하루가 멀게 엄마는 또 그집 큰마님과 이모대신 싸움을 시작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본 기억으론 기골이 장대한 그 마나님을 보건데 엄마가 수세에 몰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암튼 이런 저런 일로 이모는 아들 둘 딸 하나를 낳고 큰마나님으로 부터 돈 한베미와 오두막살이 하나를 얻어 똘방옆에 독립을 하였고 수시로 이모부는 토실각시찾아 드나드셨겠죠. 초등학교 이학년때쯤 엄마와 같이 사시던 외할아버지 상을 치르고 집에 돌아가신 이모부의 부고가 날아왔답니다. 첩의 장인이지만 장인인지라 초상을 치르고 큰 마나님께 돌아가니 큰 마나님의 바가지를 못참고 술김에 농약먹고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참 사람의 인생이 이렇듯 갖가지 쓰디쓴이야기의 연속입니다. 그 뒤 이모는 호적에도 없는 아이들을 키우고 아들네 따라 논밭 팔고 서울로 가셨지만 지금은 생활보호대상자로 엄마곁에 삽니다. 두 자매의 말년의 쓸쓸한 삶은 그래도 맨날 티격태격 삐치고 풀어지고 웃고 울고 당뇨병에 눈도 안보이는 이모를 아직도 우리 엄마는 언니처럼 병원에 모시고 가고 이것 저것 챙기기에 바쁩니다. 딸의 심사로 어느 땐 이모가 얄미울 때도 있습니다. 바리바리 엄마가 챙겨준 양념이며 반찬들을 싸들고 아들 딸 보러 서울 나들이를 하실 땐 엄마가 배웅하고 마중하고,,,얄밉다가도 마음이 짠 합니다. 평생 기한번 제대로 못피고 어찌 운명의 수레바퀴에 물려 말년마저 저리도 쓸쓸할까. 한편으로 화도 납니다. 운명의 신에게. 순하디 순한 양반에게 어떻게 저렇게 힘든 삶을 살도록 했는지....
이런 연유로 무당을 만나고 온 날 무당의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가 된통 욕만 먹었습니다. 나이도 젊은게 그런델 드냐드냐고... 어떻게하다본게 그렇게 됐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했지만 사실 아직도 꺼름찍 합니다. 혹시 무당말데로 굿을 하게 되면 친정 동생이 속을 차리게 될 날이 있을런지...ㅋㅋㅋ
이런 쪽글을 쓰고나니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던진 말이 생각이 난다.
'어떤 경우에는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네 도주로에 맞추듯 방향을 바꾸지. 너는 다시 또 모래
폭풍을 피하려고 네 도주로의 방향을 바꾸어 버리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치 날이 새기 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되는 거야.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 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모든 걸 체념하고 그 폭풍 속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눈과 귀를 꽉 틀어막고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가는 일뿐이야. 그곳에는 어쩌면 태양도 없고 달도 없고 방향도 없고 어떤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간조차 없어. 거기에는 백골을 분쇄해 놓은 것 같은 하얋고 고운 모래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있을 뿐이지. 그런 모래 폭풍을 상상하란 말야."
참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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