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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4. 25.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자화상〉

 

 윤동주(1917~1945)는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썼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1943년 7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2월 16일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해방되기 여섯 달 전이었다. 그가 형무소에서 어떤 죽음을 맞았는지는 지금도 명확하지 않다. 생체실험의 희생자였다는 증언이 있다.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사후에 출판되었다. 1948년이었다. 그가 살아서 자신의 시집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시집 전체를 다르게 읽히게 만든다.

 

윤동주의 시를 관통하는 감각은 부끄러움이다. 이 부끄러움은 자학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의지다. 〈자화상〉에서 그는 외딴 우물을 찾아가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속에 비친 자신을 미워했다가 가엽게 여기고 다시 그리워하는 분열된 자아의 풍경을 목격한다. 우물 속의 사나이는 그림자다. 융이 말한 그림자, 자아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어두운 면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그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들여다본다. 미워하고 가엽게 여기고 그리워하는 과정이 그림자와의 대화다. 우물이 그 대화의 장소다. 융이 말한 무의식의 통로가 윤동주에게는 우물이었다.

 

〈참회록〉에서 그는 밤마다 거울을 닦는다. 어느 즐거운 날에 써야 할 참회의 글을 미리 준비한다. 거울을 닦는 행위는 수면 아래 가라앉은 무의식의 앙금들을 걷어내는 의식이다. 그러나 그 즐거운 날은 오지 않았다. 참회록은 미완으로 남았다. 그 미완성이 오히려 시의 핵심이 된다. 완성된 참회가 아니라 참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그 과정 자체가 윤동주의 시가 하는 일이다. 밍거스가 슬픔을 완성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고 불규칙한 호흡 속에서 슬픔의 과정을 들려주었듯이, 윤동주는 완성된 자아가 아니라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도정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라는 조건이 이 부끄러움을 특수하게 만든다. 그는 일본어가 아니라 조선어로 시를 썼다. 그것 자체가 저항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총을 드는 저항이 없다. 대신 자신의 내면을 해부하는 저항이 있다. 〈쉽게 씌어진 시〉에서 그는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시를 쓰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한다. 시를 쓰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은 시를 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자각이다. 그러나 그는 시를 멈추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안고 계속 썼다. 그 부끄러움을 안은 채 쓴 시들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부끄러움이 시를 멈추게 하지 않고 오히려 시를 더 깊이 밀어붙였다. 융이 그림자와의 대면을 도덕적 과제라고 불렀던 것처럼, 윤동주에게 부끄러움은 멈춰야 할 감정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제였다.

 

〈별 헤는 밤〉에서 그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을 불러본다. 어머니,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 이름들을 부르다가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묘비에 이름을 새기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자신이 이미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시적 감각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이 구절은 지금 읽으면 다르게 울린다. 그가 실제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읽기 때문이다. 시인이 죽은 뒤 시가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윤동주의 시가 그렇다. 시가 시인보다 오래 살아남아 시인의 죽음을 증언한다.

 

윤동주의 시가 세대를 넘어 공명하는 이유를 융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시는 집단 무의식의 원형적 감각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인류 공통의 감각이다.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자각,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되지 못했다는 느낌. 이것은 특정 시대의 특정 인물의 감각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감각이다. 윤동주는 그 감각을 일제강점기 조선의 청년으로서 가장 극한의 형태로 살았다. 그 극한이 시를 보편으로 만들었다. 밍거스의 「Goodbye Pork Pie Hat」이 레스터 영 개인의 죽음을 넘어 모든 상실에 대한 애도가 되듯,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그 개인의 감각을 넘어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된다.

 

윤동주는 죽기 직전까지 시를 썼다. 형무소 안에서도 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시들은 남아있지 않다. 우리가 가진 것은 그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할 때 자필로 엮은 시집의 사본이다. 그는 그 시집을 세 부 만들었다. 한 부는 스승 이양하에게 주었고, 한 부는 친구에게 주었으며, 한 부는 자신이 가졌다. 출판하려 했지만 이양하가 시국이 어렵다며 말렸다. 그래서 출판되지 못했다. 그 미출판된 원고가 사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었다. 살아있을 때 출판되지 못한 시집이 죽은 뒤 가장 많이 읽히는 시집이 되었다. 이 역설이 윤동주의 부끄러움과 닮아 있다. 완성되지 못한 것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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