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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내 40대의 어느 날, 내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3. 20.

〈내 40대의 어느 날, 내가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들〉

 

 

 

상담실의 조명은 지나치게 다정했다. 그 온기조차 내게는 위선처럼 느껴져 나는 자꾸만 가디건 깃을 여몄다. 상담사는 내 원고 뭉치를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의 틈을 타, 내 머릿속에서는 다시 그날의 날카로운 말들이 비집고 들어왔다.

“너는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사람들이 그러더라, 네가 엄마가 돼보지 못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모르는 거라고.”

친구들은 영특했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인생의 가르마를 타고, 내 삶을 ‘모성 결핍’과 ‘배려 부족’이라는 칸에 밀어 넣었다. 그들에게 인생은 참으로 명쾌한 것이었다. 참아야 할 일과 상처받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고,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나의 예민함은 오직 ‘철없는 허영’일 뿐이었다.

“선생님, 세상 사람들은 참 현명한 가르마 타기를 좋아해요.”

내가 입을 뗐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들이 그어놓은 선을 따라가지 못하면, 내 인격은 순식간에 쓰레기통에 처박힙니다. 내 감성이 영글지 못해 우스꽝스럽다고 속삭이는 악마가 제 안에도 살고 있어요. ‘너 자신을 알라’고 흔히 말하지만, 저에게 그 말은 구원이 아니라 조롱입니다. 내 초라함을 낱낱이 확인하라는 사형 선고 같아요.”

상담사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럼,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무의식의 서재에서 가장 낡고 귀한 책 한 권을 꺼냈다.

“조르바요. 희랍인 조르바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정면으로 통과하고도 의연하게 춤출 수 있는 사람.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애도하면서도, 다음 순간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인생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영혼 말입니다.”

말을 내뱉고 나니 비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조르바의 광활한 바다와 나의 좁고 습한 연극성 성격장애 사이의 거리는 빛의 속도로 달려도 닿지 못할 만큼 멀어 보였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이 상담실에서도, 내 구질구질한 자아로부터도.

“조르바는 타인의 가르마에 신경 쓰지 않았지요. 그는 자신의 머리칼이 헝클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상담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 마음속의 악마가 다시 속삭였다. ‘너는 조르바가 될 수 없어. 너는 그저 관심에 목마른 연약한 여자일 뿐이야.’

하지만 그 순간, 노트북 화면 위로 깜빡이던 내 문장들이 떠올랐다. 타인의 말에 난도질당하면서도 끝내 로그아웃하지 못했던 그 문장들. 어쩌면 내가 쓴 글들은 조르바의 춤만큼이나 처절한 나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떠남과 머무름에 초연해지고 싶어요. 누구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이 세상이 다 내 것인 것처럼 살고 싶습니다.”

상담실 문을 닫고 나오자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비현실적일 만큼 눈부셨다. 타인들의 문장이 칼날처럼 박힌 가슴을 부여잡고 내가 돌아온 곳은,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해묵은 책들과 노트북이 놓인 나의 서재였다.

 

먼지 쌓인 서가 사이에서 나는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냈다. 손때 묻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책장을 넘기자, 그가 춤추던 해변의 갈가리 찢긴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조르바는 죽어가는 여인의 곁에서도 삶의 비린내를 온몸으로 받아냈고, 전 재산을 잃은 뒤에도 바다를 향해 웃으며 발을 굴렀다.“조르바, 당신이라면 이 오욕의 말들을 어떻게 견뎠을까.”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 마음속의 악마는 여전히 “너 자신을 알라”며 나의 비겁함과 허영을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조르바의 문장들은 그 조롱조차 인생이라는 거대한 연극의 소품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켰다. 타인이 그어놓은 가르마를 따라가느라 헝클어진 머리칼을 애써 정리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는 내 삶이 쓰레기통에 나뒹구는 허영일지 몰라도, 적어도 이 하얀 화면 위에서만큼은 나는 초연한 자유를 꿈꿀 수 있었다.

떠남과 머무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 지독한 우울조차 소설의 문장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나는 자판 위에 손을 올렸다. 나를 난도질하던 무수한 말들을 하나하나 문장으로 박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무너뜨린 자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무너진 자아를 다시 세우는 나만의 제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한 칼날이었다. 커피잔을 내려놓는 우아한 손동작 끝에, 친구는 다시금 내 인생의 가르마를 타기 시작했다.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네가 그렇게 예민하게 굴면 주변 사람들이 숨을 쉴 수가 없잖아. 인생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려고 해?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인걸.”

주변의 공기가 일순간 멈춘 듯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 얼굴은 차갑게 식어버렸을 것이고, 심장 밑바닥에서는 자학의 말들이 들끓었을 것이다. ‘정말이네, 난 정말 그런 인간이구나. 타인에게 상처만 주는 이기적인 존재.’하지만 그날, 서재에서 보았던 조르바의 춤사위가 내 귓가를 스쳤다. 그는 재산을 다 날리고도 바다를 향해 웃었다. 실패조차 그의 생을 완성하는 파편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완벽한 가르마와 흐트러짐 없는 미소. 그 견고한 질서가 문득 가련해 보였다.

“인생은 가르마처럼 그렇게 반듯하게 나누어지지 않더라고.”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낯설 만큼 차분했다.

“네가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칸에 나를 끼워 넣으려고 애쓰지 마. 내가 예민하고 복잡한 건, 그만큼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서니까. 조르바는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 앞에서도 춤을 췄대. 그건 슬픔이 없어서가 아니라, 슬픔조차 삶의 거대한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겠지.”

친구의 미소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변에 앉아 있던 다른 이들도 찻잔을 든 채 얼어붙었다. 나는 가디건 단추를 하나 풀었다. 조여왔던 가슴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도망치지 않기로 했어. 내 우울이 허영인지, 혹은 치유되지 못한 상처인지 끝까지 들여다볼 생각이야. 설령 그 끝에 쓰레기통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건 온전히 내 선택이고 내 삶이니까.”

나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이 등 뒤로 흩어졌다. 카페 문을 열고 나오자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흩트려 놓았다.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대신 조르바가 걸었을 법한 거친 흙길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타인이 그어놓은 선을 밟지 않고 걷는 법을,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저 강인함. 누구에게도 흔들림 없이 세상이 다 내 것인 것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고통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나는 가슴 깊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비린내 섞인 삶의 냄새가 폐부 깊숙이 박혔다. 이것은 복수가 아니라, 나를 가둔 감옥의 창살을 하나씩 부러뜨리는 과정이었다. 어둠이 내리는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공기는 이전과 달랐다. 차가운 밤바다의 냄새가 섞인 듯한 그 공기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시원하게 뚫고 지나갔다. 나는 서재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열었다. 하얀 화면의 빛이 어둠 속에서 나를 맞이했다. 그것은 타인의 검열을 거치지 않은, 오직 나만의 언어가 허락된 유일한 영토였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방 안을 채웠다. 내 안의 악마는 여전히 기회를 엿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감히 조르바를 꿈꿔? 너는 그저 관심에 목마른 비련의 주인공일 뿐이야.’ 놈의 목소리는 여전했지만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조르바라면 그 악마의 멱살을 잡고 함께 광기 어린 춤을 추었을 것이다. 실패와 절망조차 생의 거대한 에너지로 집어삼키며 발을 굴렀을 것이다.나는 화면을 채워 나갔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혀를 찰 것이고, 누군가는 내 차가운 표정 뒤에 숨은 결핍을 분석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들의 눈동자라는 거울 속에서 내 가치를 찾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가르마에 맞추지 못해 괴로워하던 시간은 끝났다. 나의 예민함은 배려의 부족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게 앓고 싶어 하는 나만의 실존 방식이다.

창밖으로 밤이 깊어 갔다. “너 자신을 알라”는 조롱은 이제 준엄한 명령으로 바뀌었다. 내가 어떤 어둠을 품고 있는지, 그 어둠 속에서 어떤 빛을 길어 올릴 수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노트북을 잠시 덮었다가, 다시 화면을 열었다. 하얀 여백은 거대한 설원 같았다. 나는 그 위에 '미스 夢'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것은 마흔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의 초상이자, 천년 전 금강 나루터에서 사내를 기다리던 어느 뱃사공 여인의 환신이기도 했다.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한 서재를 다시 채웠다. 타인이 내 인생에 그어놓은 반듯한 가르마 대신, 나는 헝클어진 꿈의 타래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탁, 타다닥.‘

소설 속 미스 몽은 월급 백만 원도 안 되는 부동산 사무실에서 사장의 코고는 소리를 배경으로 썰을 푼다. 현실의 나처럼 그녀 또한 마음 둘 곳 없어 '읽지 않음'으로 남겨진 아흔 번째 연서를 보낸다. 그 지독한 온기의 결여가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자판 위에 박제될 때마다, 내 가슴속 감옥의 창살은 하나씩 부러져 나갔다.

나는 소설 속 그녀에게 신장 한 쪽을 떼어주는 가혹한 운명을 부여했다. 혈혈단신인 그녀가 가족이라는 뽀듯한 느낌을 얻기 위해 내어준 살점, 그러나 그 희생 뒤에 돌아온 것은 다시 지독한 유기였다. 비참했다. 하지만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이 비참함이야말로 내가 조르바처럼 생의 비린내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천년 전의 전설과 현재의 비루한 사무실을 오간다. 뱃사공 여인이 기다리던 도령의 얼굴 위로 짝사랑하던 지관스님의 얼굴이 겹쳐질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타는 가르마는 머리카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나누려 했던 현실과 꿈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창밖으로 새벽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소설 속 미스 몽은 다시 걸려 온 동생 댁의 간절한 전화기 너머로 침묵한다. 그 침묵은 포기가 아니라, 더 이상 타인의 요구에 자신을 칸막이 치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나는 마지막 문장을 치고 노트북을 덮었다. 어깨가 뻐근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이제 이 이야기는 내 서랍 속 원고지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띄우는 나만의 노 젓기가 될 것이다. 나의 40대는 그렇게 타인이 그어놓은 가르마를 지우고, 나만의 물길을 내는 문장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서재 안에서 나는 비로소 평온해졌다. 내 삶의 가르마는 오직 내가 탄다. 설령 그 선이 비뚤어지고 엉망이 될지라도, 그것만이 온전한 나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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