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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세이

열병의 기록: 마음을 기울여 꽃을 피우다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2. 10.

 

 

 

 

열병의 기록: 마음을 기울여 꽃을 피우다

 

아랫글은 십여 년 전, 생의 한복판에서 막 움트던 뜨거운 열병을 기록한 문장이다. 그 문장은 서툴고 투박하여 미숙하기 그지없었으나, 긴 세월을 돌아 다시 펼쳐 읽어보면 그 시절의 떨림은 여전히 문장 사이사이에서 선명히 맥동한다. 기록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다시 불씨를 되살려,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능성의 저장이다.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불러낼 때마다 다른 얼굴로 살아나는 현재의 변주다.

 

깊은 잠에 닿지 못한 고립된 시간들은 층층이 쌓여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잃고, 깨어 있음과 잠듦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그러나 바로 그 경계의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사유의 가장 날카로운 순간을 맞이한다. 생각은 고요를 찢고, 질서를 거부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주장한다. 그것은 혼돈이 아니라,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가능성의 원형이다.

 

때로는 그 소란을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내버려 두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 파편들을 불러모아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혼돈을 질서로 편입시키려는 몸부림은, 사실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갈망을 드러낸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질서 속에서 의미를 찾고, 파편 속에서 전체를 꿈꾸며, 불안 속에서 안식을 갈망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질서와 의미는 언제나 불안정하다. 생각들은 대열을 갖추었다가도 곧 흩어지고, 질서는 세워졌다가도 곧 무너진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삶의 리듬을 배운다.

 

모든 생각은 저마다의 상처와 환희를 품고, 그곳에 있어야 할 당위성을 지닌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의미의 근원이다. 우리는 흔히 의미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지만, 사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미의 증명이다. 들꽃이 들판에 피어나는 이유를 묻지 않듯, 생각 또한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충분하다.

 

그러나 존재는 언제나 시간과 무(無)의 경계 위에 서 있다. 꽃은 피어나지만 곧 시들고, 빛은 반짝이나 곧 사라진다. 우리는 그 덧없음을 허무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덧없음이야말로 존재의 가장 고귀한 증명이다. 영원은 끝없이 지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찰나 속에서 무한히 반짝이는 순간이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 그 순간의 떨림은 이미 영원에 닿아 있다.

 

삶은 피고 지고, 다시 피고 지는 거대한 율동이다. 우리는 그 율동 속에서 명멸하며 살아간다. 발끝에 채이는 안타까움이나 미련은 그저 찰나의 일탈일 뿐이다. 이어지는 삶의 궤도 안에서, 수많은 우연과 필연의 그물을 뚫고 잠시나마 마주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경이롭다. 인연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떨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십여 년 전 뜨거웠던 인연의 떨림과, 긴 세월을 돌아 다시 내게로 회귀한 이 기록에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한 번쯤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났던 꽃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도 꺾이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며, 결국은 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다시금 피어난다.

 

존재는 무와의 대화 속에서만 빛난다. 무가 없다면 존재도 없다. 그러나 무는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품은 심연이다. 꽃은 무에서 피어나고, 다시 무로 돌아간다.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영원을 본다. 영원은 끝없는 지속이 아니라, 무와 존재가 서로를 비추는 찰나의 반짝임이다.

 

어쩌면 생에서 이러한 현상들이 늘 반복되며 깊이와 넓이가 더해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나의 그대에게 이 글로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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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

깊이 잠들지 못하는 시간들이 늘어갑니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도 꿈자리는 성성하기만 합니다. 자다깨다를 반복해도 머릿속은 투명합니다. 날선 생각들이 온통 자기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부산을 떱니다. 가만 내버려두다가도 또 가끔씩은 나름의 열병식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것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냅니다. 그러다보면 또 그것들은 어느 틈에 각자의 캐릭터대로 찧고 까불기도 합니다. 마치 이제 막 입학한 초등학교 교실 속 아이들 같기만 합니다. 한 그룹으로 보면 소란스럽고 귀찮기만 할 것 같지만 또 하나하나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어느 한 놈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마음을 기울여 보다보면 모든 것의 의미를 관통한다는 사실, 그런 후에라야 비로소 섬광은 반짝거립니다. 그 섬광은 일련의 꽃으로 탄생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꽃은 피어난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동인 순간입니다. 다만 시간과 공간의 불일치. 혹은 인연의 고리가 잘못 꿰어졌을 때, 그 꽃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이 삼라만상 우주의 법칙속에 당신도 나도 그렇게 살 것임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은 그저 순간의 일탈입니다. 면면한 삶의 궤도 안에 잠시 그렇게 마주 칠 수 있었다는 사실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