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곡의 재즈, 한 명의 철학자, 한 권의 문학, 한 편의 영화, 군산의 한 장소를 다섯 겹의 렌즈로 하나의 주제를 즉흥 연주한다. 재즈 에세이이자 군산 산책기이자 철학 입문서로써 35개의 장은 재즈 클럽의 다섯 세트(Set)로 구성되며, 시간과 기억에서 출발해 경계와 융합으로 나아간다. 모든 장소는 군산이다.
3. Almost Blue Chet Baker Let’s Get Lost soundtrack / Chet Baker in Tokyo (1987) — 해망굴, 군산
1. 거의 파랑 “Almost Blue.” 거의 파랑. 이 제목부터가 이미 음악이다. 파랑에 도달하지 못한 파랑. 슬픔에 도달하지 못한 슬픔. 사랑에 도달하지 못한 사랑. “almost”라는 단어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멈춰버리는 모든 것들의 부사다. 그리고 재즈의 역사에서 이 단어를 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쳇 베이커(1929년 ~ 1988)다.
이 곡의 탄생에는 기묘한 순환이 있다. 1981년, 영국의 뮤지션 엘비스 코스텔로는 쳇 베이커의 보컬 앨범 《Chet Baker Sings》를 반복해서 들으며 그 음울하고 섬세한 분위기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베이커가 불렀던 1931년 재즈 스탠더드 “The Thrill Is Gone”의 쓸쓸한 정서는 코스텔로의 감수성과 맞닿아 있었다. 코스텔로는 베이커의 음성이 품고 있는 그 특유의 거리감, 감정에 빠져들지 않으면서도 감정의 한복판을 건드리는 그 태도를 자기 방식으로 쓰고 싶었다. 그렇게 태어난 곡이 “Almost Blue”이다. 1982년 《Imperial Bedroom》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A 단조, 60bpm의 느린 박동으로, 지나간 사랑을 현재의 관계 위에 걸쳐놓는 가사를 담고 있다. 경의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회한을 노래하는 방식이다. 베이커를 위해 쓴 곡이었지만, 코스텔로는 베이커에게 이 곡을 직접 건네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이 개입한다. 1983년, 베이커가 예고 없이 런던에 나타났다. 코스텔로는 그를 스튜디오로 초대해 자신의 앨범 《Punch the Clock》에 수록된 “Shipbuilding”에서 트럼펫 솔로를 부탁했다. 녹음이 끝난 뒤 코스텔로는 베이커에게 “Almost Blue”의 레코드를 건넸다. 베이커는 받아 들었지만, 그 후 이 곡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코스텔로는 베이커가 그 레코드를 들어보지도 않고 어딘가에 버렸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베이커가 죽고 난 뒤에야 코스텔로는 베이커가 말년의 공연에서 이 곡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위해 쓴 곡이 침묵 속에서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이미“almost”의 서사다. 거의 닿을 뻔한 것들이 먼 길을 돌아서야 비로소 도착하는 이야기이다.
2. 쿨의 왕자, 추락하는 얼굴 1950년대의 쳇 베이커는 재즈가 만들어낸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재즈 역사가 한 명의 인물에 대해 “제임스 딘, 시나트라, 빅스 바이더베케가 한 몸에”라고 평한 적이 있을까. 오클라호마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베이커는 아버지의 트럼펫을 물려받아 몇 주 만에 연주를 시작했다. 1952년, 찰리 파커의 오디션을 통과해 그의 트럼펫 자리를 차지했다. 스물두 살이었다. 곧이어 게리 멀리건의 피아노 없는 쿼텟에 합류하면서 베이커는 단숨에 스타가 된다. 1954년 《Chet Baker Sings》가 발매되면서 트럼펫 연주자이자 보컬리스트로서 이중의 명성을 얻었다. 할리우드는 그에게 영화 계약을 제안했지만, 베이커는 거절했다. 그는 무대 위의 삶을 택한 것이다.
웨스트코스트 쿨 재즈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베이커의 음악에는 다가오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트럼펫을 불 때의 비브라토 없는 맑고 건조한 톤, 노래할 때의 거의 속삭이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는 청중을 향해 손을 흔들지 않았고, 감정을 쌓아놓고도 마지막 한 층을 남겨둔 채 돌아서는 태도였다. 마일스가 관객에게 등을 돌린 것이 의도적인 경멸이었다면, 베이커의 거리감은 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다가가고 싶었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처럼 연주했다. Almost.
그러나 1960년대, 베이커의 삶은 균열을 잃기 시작한다. 마약 중독으로 세계 각지의 감옥을 들락날락했고, 1968년 샌프란시스코 소살리토의 한 식당 바깥에서 마약 거래와 연루된 폭행을 당해 앞니가 부러졌다. 트럼펫 연주자에게 앞니란 입술이고, 입술은 악기와 연결되는 유일한 접점이다. 앞니가 부러졌다는 것은 목소리를 잃었다는 것이다. 베이커는 틀니를 맞추고, 새로운 앙부쉬르(관악기 연주자가 입술, 턱, 혀, 얼굴 근육 등을 어떻게 배치해 마우스피스를 물고 소리를 내는지를 뜻하는 음악 용어)를 만들어가며, 석 달 만에 다시 무대에 섰다. 그러나 돌아온 소리는 예전의 소리가 아니었다. 더 벗겨졌고, 더 드물어졌고, 더 쉽게 부서졌다. 어떤 비평가는 이것을 쇠락이라 불렀지만, 더 정확한 단어가 있다. 베이커의 후기 사운드는 불완전함 자체가 표현이 된 음악이었다. 적은 음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하는 법을, 그는 박탈이 아니라 파괴를 통해 배웠다.
사진작가 윤리엄 클랙스턴이 1950년대에 찍은 젖은 베이커의 얼굴과, 영화감독 브루스 웨버가 1987년에 찍은 만년의 베이커 얼굴을 나란히 놓아보라.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렵다. 클랙스턴의 쳇은 캘리포니아의 햇빛 아래서 빛나는 청년이다. 웨버의 쳇은 빛이 빠져나간 뒤의 풍경이다. 깊게 파인 주름, 함몰한 눈, 이빨이 빠진 입.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웨버의 흑백 사진 속 베이커는 클랙스턴의 쳇보다 오히려 더 아름답다. 파괴가 얼굴에 새겨넣은 선들이 음악과 닮아버렸기 때문이다. 만년의 베이커를 보면서 우리는 그의 트럼펫 소리를 듣는다. 얼굴 자체가 악기가 된 것이다.
1978년 베이커는 유럽으로 건너갔다. 미국이 그를 버렸다기보다는 그가 미국을 버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유럽의 청중은 베이커를 다르게 대했다. 네덜란드에서 베이커의 공연을 본 작가 렘코 캄퍼르트는 이렇게 썼다. “먼지 한 톨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미국의 보수적인 재즈 팬에게 베이커는 너무 내향적이었고, 진보적인 팬에게는 피부 색이 틀렸다. 유럽은 그런 것들을 묻지 않았다. 음악만 물었다. 베이커의 말년은 유럽의 호텔방들과 재즈 클럽들 사이를 떠도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호텔이 암스테르담의 프린스 헨드릭이었다.
3. 키르케고르, 반복할 수 없는 것의 반복 키르케고르는 《반복》이라는 책에서 물었다. 반복은 가능한가. 그의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경험을 다시 살 수는 없다. 회상은 뒤로 향하는 움직임이고, 반복은 앞으로 향하는 회상이지만, 진정한 반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간 것은 돌아온 것과 같지 않다. 거의 같을 뿐이다. Almost.
쳇 베이커는 평생 “My Funny Valentine”을 연주했다. 1953년 게리 멀리건 쿼텟에서 부른 버전부터 1988년 죽기 직전의 버전까지, 같은 곡을 수백 번 반복했다. 그런데 한 번도 같은 연주가 없었다. 1953년의 베이커는 맑고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고, 1987년의 베이커는 모든 것을 통과한 뒤의 피골이었다. 같은 멜로디를 불지만 거기에 실리는 삶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키르케고르가 말한 반복의 불가능성이 여기 있다. 베이커는 같은 곡을 반복했지만, 매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반복이 아니었다. 거의 반복. Almost.
키르케고르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불안도 베이커를 통해 음악이 된다. 키르케고르에게 불안은 자유의 조건이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지, 불안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선택의 가능성 앞에서 어질어질하는 것, 그것이 실존의 핵심이다. 베이커의 음악에는 이 어질어질함이 있다. 다음 음을 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여기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는 것. 그의 트럼펫은 음표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음표의 가장자리를 걷는 것처럼 들린다. 다음 음으로 넘어갈 때마다 작은 낭떠러지를 건너는 듯한 무중력의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베이커의 음악을 베이커의 음악으로 만든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키르케고르는 절망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자기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절망, 자기 자신이고 싶지 않은 절망, 그리고 자기 자신이고 싶은 절망. 베이커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살았다. 젊은 시절 자신의 재능을 의식하지 못하는 도취 속에서, 중년에는 더 이상 젊은 날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만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쳇 베이커이고자 하는 의지 앞에서. 그러나 절망은 베이커를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망이 음악을 통과하면서 소리가 되었다. 베이커의 후기 연주가 초기보다 더 깊은 울림을 갖는 이유다. 절망을 통과한 소리는, 절망을 모르는 소리보다 항상 더 정직하다.
4. 김은, 《랩소디 인 해망동》의 거의 살인 김은의 소설 《랩소디 인 해망동》은 “almost”를 몸으로 살아낸 여자의 이야기다. 새만금 개발로 고향 하제가 지도에서 지워진 뒤, 갯내를 쫓아 해망동에 정착한 영혜. 그녀는 거의 사랑하고, 거의 행복하고, 거의 살인을 저지를뻔한다. 모든 것이 “almost”에서 멈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베이커가 음악으로 그 거리를 살았다면, 영혜는 몸으로 그 거리를 살아낸다.
영혜의 삶에는 ‘줄자’라는 별명의 남자 태호가 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그가, 해망굴에서 퀸의 “Bohemian Rhapsody”를 흥얼거리며 영혜의 손을 잡는다. 그 터널 속 키스는 베이커의 트럼펫처럼 불완전하고 뜨겁다. 그러나 태호는 키스하는 동안에도 눈을 감지 않는다. 마치 무엇인가를 재고 있는 듯한 그의 눈빛. 영혜는 사랑하는 순간에도 줄자를 놓지 않는 이 남자에게서 베이커의 음악과 같은 거리감을 느낀다. 거의 사랑. Almost.
소설의 절정에서 영혜는 병실에 누운 미스 고의 호흡기 줄을 붙잡는다. 거의 살인할 뻔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 영혜의 몸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하혈이다. 뱃속의 아이가 엄마의 파괴 본능에 반발하듯, 생명이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장면이 베이커의 “Almost Blue”와 가장 깊이 공감하는 지점이다. 베이커는 평생 파괴와 창조 사이를 오갔다. 영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미스 고의 호흡기 줄을 놓은 뒤, 신생아실 유리창 앞에 선다. 아기가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를 반복한다. 소설은 그것을 “태고의 갯벌에서 솟아난 가장 순수한 생존의 멜로디”라 부른다. 베이커의 트럼펫이 바로 그 소리였다.
영혜는 줄자를 버린다. 삶을 숫자로 계산하는 방식을 버린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며 선언한다. “나는 눕지 않는다.” 이것이 베이커와의 결정적 차이다. 베이커는 창문에서 떨어졌다. 영혜는 걸어나간다. 베이커의 음악이 아름답게 부서진다면, 영혜의 서사는 불완전하게 일어선다. 둘 다 “almost”의 사람들이지만, 방향이 다르다. 하나는 추락의 아름다움으로, 하나는 생존의 광시곡으로. 소설의 제목 자체가 임인건의 앨범 《Rhapsody in Gunsan》에서 빌려왔다. 군산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재즈와 갯내와 해망굴이, 베이커의 “Almost Blue”와 같은 지형 위에서 울리고 있는 것이다.
5. 《헤어질 결심》, 거의 사랑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본 사람이라면 “almost”라는 단어가 영화 한 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 사이의 관계는 사랑에 거의 도달하지만 결코 사랑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수사와 헌신, 의심과 속임 사이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뻗은 손을 닿기 직전에 거둬들인다. 그 거둬들이는 순간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박찬욱은 이 영화에서 안개를 중요한 시각적 모티프로 사용한다. 안개 속에서는 모든 것이 흐릿해진다. 윤곽이 흐려지고, 감정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사랑과 사랑 아닌 것 사이의 선이 지워진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이 정확히 이 안개의 질감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음은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피어오르고 흐려진다.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않고, 감정이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 다음 음으로 넘어간다. 해준이 서래를 바라보면서 그것이 사랑인지 집착인지 분별하지 못하듯, 베이커의 청자도 그의 음악이 슬픔인지 아름다움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서래는 모래를 택한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자신의 몸을 묻는 서래. 해준이 찾아올 때쯤이면 밀물이 모든 흔적을 지운다. 그녀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묻히는 것을 택한다.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매장처럼 보인다. 거의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가 그녀를 모래 속으로 데려간 것이다. 베이커가 암스테르담의 호텔 창문에서 떨어진 것과, 서래가 밀물을 기다리며 모래 속에 자신을 묻은 것, 이 두 추락은 하나는 아래로, 하나는 땅속으로 다른 방향이지만 둘 다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행위다.
6. 같은 곡, 다른 추락— “Almost Blue”의 버전들 엘비스 코스텔로의 1982년 오리지널은 깔끔하게 정돈된 팝 발라드다. A 단조, 60bpm. 피아노와 기타 위에 얹혀진 보컬은 베이커의 거리감을 모방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방이다. 코스텔로 자신이 인정했듯, 이 곡은 베이커의 음성에서 태어난 곡이지만 코스텔로의 손을 거치면서 영국적 절제가 더해졌다. 감정의 문 앞까지 가지만 문을 열지 않는다.
1987년 5월, 칸 영화제. 브루스 웨버의 다큐멘터리 《Let’s Get Lost》 촬영 중에 베이커가 이 곡을 부른다. 청중은 술에 취해 산만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스텔로는 나중에 이 장면을 보고 “불편한 시청”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베이커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평생 그랬듯, 청중이 없어도 불었다. 칸 영화제의 화려한 밤 속에서, 함몰한 눈의 남자가 자신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1987년 6월 14일, 도켄. 《Chet Baker in Tokyo》 라이브 레코딩. 피아니스트 해롤드 당코, 베이시스트 하인 반 데 헌, 드러머 존 앵갈스. 여기서 베이커는 “Almost Blue”를 7분 53초에 걸쳐 연주한다.
곡은 트럼펫 솔로로 시작된다. 그 솔로는 가슴을 찢는 듯한 소리라고 표현된다. 쳇은 이 곡을 편안하게 부른다. 칸의 무관심한 청중 앞에서의 불안한 연주가 아니라, 도켄의 조용한 청중 앞에서의 편안한 연주. 이 버전이 베이커의 결정판이 된 이유다. 여기서 베이커는 코스텔로의 곡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코스텔로가 베이커의 음성을 모방해서 이 곡을 썼다면, 베이커는 그 모방을 원본으로 되돌려놓았다.
11개월 뒤인 1988년 5월 13일, 암스테르담 프린스 헨드릭 호텔. 새벽, 베이커는 2층 창문에서 떨어졌다. 방에서는 헤로인과 코카인이 발견되었고,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경찰은 타살을 배제하고 사고사로 결론지었다. 일부에서는 자살이나 타살을 의심했지만, 리틀 지미 스콧의 증언에 따르면 진실은 더 평범했다. 베이커는 로비에서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배를 가지러 방에 올라갔는데, 방문이 잠겨 있었다. 옆방 문이 열려 있길래 들어가서 발코니를 통해 자기 방으로 건너려다가 발을 헛디딘 것이다. 도켄 로비에서 베이커와 함께 있었던 스콧이 이 이야기를 확인해 주었다. 베이커의 죽음은 그의 삶처럼, 그리고 그의 음악처럼 거창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발을 헛디뎠을 것이다. Almost.
죽음 이후에도 “Almost Blue”는 버전을 더해간다. 2004년, 코스텔로의 아내 다이애나 크롤이 자신의 앨범 《The Girl in the Other Room》에서 이 곡을 커버했다. F 장조, 56bpm. 코스텔로의 오리지널보다 더 느리고, 베이커의 도켄 버전보다 더 정돈된 버전이다. 코스텔로가 베이커를 위해 쓴 곡을, 베이커가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코스텔로의 아내가 다시 가족의 곡으로 되돌린 것이다. 이 곡은 주인을 바꾸며 반복된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말했듯, 단 한 번도 같은 곡이 아니다. 베이커의 트럼펫이 담고 있던 그 무게는 다른 어떤 버전에서도 반복되지 않는다. 거의 반복될 뿐이다. Almost.
베이커가 죽기 1년 전에 녹음한 《The Legacy》라는 앨범이 있다. 빅밴드와 함께한 이 녹음은, 베이커가 말년에도 여전히 놀라운 수준의 연주를 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베이커는 부서진 채로 빛났다. 흔들리는 네온처럼 호사스럽고, 한쪽 날개가 부러진 채로 날았다. 1970년대 후반 베이커의 피아니스트이자 사실상의 음악 감독이었던 리치 바이라크는 그를 위해 “Broken Wing”이라는 곡을 썼다. 부러진 날개, 베이커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사람이 붙인 제목이었다.
이 곡은 1977년 론 카터, 토니 윌리엄스, 마이클 브레커, 존 스코필드 등과 함께 《You Can’t Go Home Again》 세션에서 녹음되었지만, 원래 LP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2000년 확장판으로 재발매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공개되었다. 한편, 베이커 사후인 1992년, 바이라크는 랜디 브레커, 마이클 브레커, 존 스코필드, 조지 므라즈, 아담 너스바움과 함께 추모 앨범 《Some Other Time: A Tribute to Chet Baker》를 녹음했고, “Broken Wing”를 그 첫 트랙에 놓았다. 베이커의 트럼펫 없이 다시 연주된 부러진 날개. 그것이 베이커의 “almost”였다.
7. 해망굴, 어둠을 통과하는 길 군산의 해망굴은 일제 강점기인 1926년에 뚫린 터널이다. 월명동에서 해망동으로 넘어가는 이 터널은 길이 약 130미터, 높이 3미터 남짓. 걸어서 통과하는 데 2분이면 족한다. 그러나 그 2분이 길다.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 빛이 완전히 차단된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기 전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망설임이 된다. 바닥의 균열, 벽의 습기, 어딘에선가 반사되는 희미한 빛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터널의 끝에서 밝아오는 출구의 빛, 그 빛을 향해 걷는 동안, 우리는 “almost”의 공간 안에 있다. 거의 도착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못한 그 사이에.
이 책의 첫 번째 장소가 초원사진관이었고, 두 번째가 경암동 철길이었다면, 세 번째는 이 터널이다. 초원사진관이 시간을 정지시키는 장소였고, 경암동 철길이 방향을 해방시키는 장소였다면, 해망굴은 어둠을 통과시키는 장소다.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베이커의 음악이 바로 이 구조다. 빛나는 전성기가 있었고, 어두운 중기가 있었고, 다시 빛을 찾은 후기가 있었다. 그런데 베이커의 경우, 터널 끝의 빛이 이 세상의 빛이 아니었다. 그는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거의 빛에 도달한 채로 멈춘 것이다.
해망굴을 해 질 무렵에 통과하기를 권한다. 오후의 빛이 기울면서 터널 입구가 주황색으로 물든다. 어둠 속을 걷다 반대편 출구에 도착하면 해망동의 바다가 보인다. 어둠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바다. 베이커의 음악도, 베이커의 삶도, 이 터널과 같다. 어둠 속을 걷지 않으면 바다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베이커의 바다는 창문 밖 아래의 컴컴한 보도였다. 터널 안에서 발소리가 울린다. 자신의 발소리가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것을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트럼펫 소리가 떠오른다. 베이커의 트럼펫이 울림을 남기는 방식이 꼭 이런 반사와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이 공간을 채우고, 공간이 음을 되돌려주고, 그 되돌아온 음이 원래의 음보다 조금 더 쓸쓸하다. 해망굴은 베이커의 음악이 울리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도 울리는 음악,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빛의 모양, 그것이 베이커의 트럼펫이고, 그것이 해망굴이다.
8. 거의, 라는 가장 정직한 부사 “Almost”는 실패의 단어가 아니다. 정직함의 단어다. 완전한 파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을 속이고 있다. 거의 파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슬픔과 아름다움 사이의 정확한 지점에 서 있다. 쳇 베이커의 음악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완벽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균열이 가고, 음이 흔들리고, 숨이 빨라지고, 다음 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채 불어내는 그 소리. 그것이 인간의 소리다.
키르케고르의 반복은 불가능하고, 영혜의 줄자는 부러졌고, 서래의 사랑은 모래 속에 묻혀버렸다. 베이커는 이 모든 “almost”를 트럼펫 하나로 불었다. 거의 도달하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직한 소리다. 완전한 파랑은 없다. 있는 것은 거의 파랑뿐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 해망굴의 어둠 속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거의 닿을 듯 가까운 그 소리는, 손을 뻗으면 사라진다.
♫ 듣기— Chet Baker, “Almost Blue” 1982 · Elvis Costello, Imperial Bedroom (Columbia). 오리지널. 1987 · Chet Baker in Tokyo (King, 1988). 7분53초. 도켄 라이브. 1987 · Let’s Get Lost 사운드트랙(RCA/Novus, 1989). 칸 영화제. 2004 · Diana Krall, The Girl in the Other Room (Verve). 커버. ⌖ 걷기— 해망굴| 전북 군산시 해망동| 오후 늦은 시간을 권한다. ▷ 읽기— 김은, «랩소디 인 해망동» |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 보기— 박찬욱, «헤어질 결심» (2022) | 브루스 웨버, «Let’s Get Lost»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