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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들

16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안다: 엠페도클레스의 공명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6. 2. 21.

[웹소설] 짜라투스트라 교수님의 철학 수업: F학점은 사양한다

 

 

 

 

 

16화.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안다: 엠페도클레스의 공명

 

강의실 교탁 위에는 커다란 전신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짜교수는 눈 모양이 수십 개 그려진 기괴한 티셔츠를 입고 프리즘을 만지작거리며 학생들을 맞이했다.

“자, 다원론자들이 세상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답했다면 이제 ‘어떻게 아는가’를 물을 차례다. 존재론의 시대가 가고 인식론의 문이 열린 거다.”

짜교수는 칠판에 크게 휘갈겼다.

[ 엠페도클레스: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안다 (Like knows Like) ]

정국이 거울에 비친 자기 근육을 체크하며 물었다.

“교수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냥 거울 보면 내가 보인다는 뻔한 소리인가요?”

짜교수는 프리즘을 거울에 비추며 대답했다.

“비슷하다. 엠페도클레스는 인식이 ‘유사성’을 통해 일어난다고 봤다. 네 눈 속에 불의 원소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불을 볼 수 있고, 네 몸속에 물이 있기에 세상의 물을 느낄 수 있다는 논리다. 인식은 일종의 ‘공명(Resonance)’인 셈이다.”

뷔가 눈을 반짝이며 릴스를 켰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 화려한 필터를 입히며 중얼거렸다.

“와, 그럼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도 내 안에 같은 주파수가 있어서 그런 거네요? ‘공명 챌린지’ 바로 박제 갑니다. 필터가 내 안의 색깔을 찾아내는 거랑 똑같잖아요.”

지민이 창밖의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며 감성에 젖었다.

“결국 우리가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내 안의 우주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네요. 사랑을 아는 건 내 안에 이미 사랑이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고요. 제가 슬픈 노래를 듣고 우는 것도 제 안의 슬픔이 그 노래와 만났기 때문이겠죠.”

단톡방에는 [지민=공명의 아이콘] 짤이 올라왔다. 짜교수는 거울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엠페도클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흙으로 우리는 흙을 보고, 물로 물을, 공기로 신성한 공기를 본다.’ 즉, 우리의 감각 기관은 세상의 원소들과 똑같은 성분으로 구성된 안테나다. 같은 성분끼리만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거다.”

RM은 노션에 내용을 정리하며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교수님, 이 이론에 따르면 내 안에 없는 원소는 절대 알 수 없다는 뜻인가요? 인식의 한계가 내 구성 성분에 갇히는 거 아닙니까? 만약 우주에 제5의 원소가 있는데 우리 몸에 그게 없다면 우리는 평생 그 존재조차 모른다는 소리잖아요.”

짜교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이스 캐치다, RM. 그게 바로 엠페도클레스 인식론의 핵심이자 치명적인 한계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것’만 알 수 있다. 완전히 이질적인 존재는 우리에게 인식조차 불가능한 ‘투명한 존재’가 된다. 인식의 범위가 존재의 범위로 제한되는 거다.”

슈가가 노트북을 덮으며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결국 끼리끼리 논다는 거네요. 철학판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 아닙니까? 내가 팔로우한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태그만 내 피드에 뜨는 거랑 똑같네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아는 것만 아는 닫힌 세계죠.”

학생들 사이에서 “와, 소름 돋네”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단톡방에는 [엠페도클레스 = 인류 최초의 알고리즘 설계자] 짤이 광속으로 공유됐다.

짜교수는 거울을 닦으며 수업의 절정을 찍었다.

“이 이론은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영향을 준다. ‘알려지는 것은 아는 자의 방식대로 알려진다’는 유명한 말의 씨앗이 여기서 나왔다. 너희가 세상을 편협하게 본다면, 그건 세상이 편협해서가 아니라 너희 안의 ‘안테나’가 편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국은 바벨을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더 넓은 세상을 알려면 제 안의 원소들을 더 다양하게 믹스해야겠네요. 근육만 키울 게 아니라 감성도 좀 챙겨야겠습니다.”

지민은 “정국아, 드디어 네가 공명을 이해했구나”라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짜교수는 수업을 마무리하며 마지막 퀘스트를 던졌다.

“오늘의 퀘스트다. 너희 안의 어떤 성분이 세상의 무엇과 공명하고 있는지 증명해라. 내 안의 흙이 바벨의 흙을 느끼는지, 내 안의 불이 누군가의 열정을 알아보는지 말이다. 그리고 네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통의 영역’이 있다면 네 안에 어떤 원소가 부족한지도 분석해라.”

강의실은 순식간에 “근육 공명 가즈아!”와 “내 안의 바다를 찾아서…”라는 외침으로 가득 찼다. 짜교수는 가방을 챙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시간엔 엠페도클레스의 이 ‘끼리끼리’ 이론에 킹받아서 등판한 형님을 모신다. ‘아니, 같은 것끼리 어떻게 아냐? 반대여야 알지!’라고 외친 아낙사고라스다. 명암 대비 빡세게 준비하고 와라. 엠페도클레스의 평온한 공명을 박살 낼 ‘대비의 철학’이 기다리고 있다. 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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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해설: 엠페도클레스의 인식론 - 유사성의 원리

1. “같은 것은 같은 것에 의해 인식된다.”

엠페도클레스는 인식의 근거를 ‘동질성’에서 찾았다. 만물이 불, 물, 흙, 공기라는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 역시 동일한 원소로 구성되어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는 시를 통해 “흙으로써 우리는 흙을 보고, 물로써 물을 보며, 신성한 공기로써 공기를, 파괴적인 불로써 불을 본다”라고 노래했다. 이는 주관과 객관이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초기 형태의 인식론적 통찰이다.

 

2. 유출설(Emanation Theory)과 감각의 메커니즘

그는 모든 사물에서 아주 미세한 입자들이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고 믿었다. 이를 ‘유출(流出)’이라고 한다. 사물에서 뿜어져 나온 입자가 우리 감각 기관에 뚫려 있는 미세한 구멍(poroi)으로 들어올 때 인식이 발생한다. 이때 중요한 조건은 입자의 크기와 구멍의 크기가 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에게 인식은 단순한 정신적 활동이 아니라, 물리적 입자가 딱 들어맞는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이었다.

 

3. 사랑과 미움의 인식론

원소뿐만 아니라 우주를 움직이는 두 힘인 ‘사랑(Philia)’과 ‘미움(Neikos)’ 역시 동일한 원리로 인식된다. 지민의 대사처럼, 우리가 타인의 사랑을 알아보는 것은 우리 내면에 사랑의 파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타인의 적의를 느끼는 것은 우리 안의 미움이 그것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식이 단순한 사실 수집을 넘어 감정적, 가치적 공명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인식의 한계: 알고리즘의 감옥

이 이론의 치명적인 결론은 “우리는 우리와 닮은 것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RM의 지적처럼 우리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 성질은 외부에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수신할 안테나가 없다. 슈가가 이를 ‘알고리즘’에 비유한 것은 현대적으로 매우 적절한 해석이다. 엠페도클레스의 인식론은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경험적 틀 안에서만 세상을 재구성한다는 ‘구성주의’적 관점의 씨앗을 품고 있다.

 

5. 철학사적 의의

엠페도클레스의 유사성 원리는 훗날 플라톤의 ‘상기설(Reminiscence)’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론으로 이어진다. “알려지는 것은 아는 자의 방식대로 알려진다”는 중세와 근대의 격언 역시 이 고대 철학자의 직관에 빚을 지고 있다. 그는 인간을 우주의 소우주(Microcosmos)로 규정함으로써, 인간과 우주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 관계임을 처음으로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