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Song -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

 

🍁 9월의 노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사랑을 사색하다

가을이 깊어지며 나뭇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바람은 한결 차가워졌다. 풍경은 점점 비워지고, 마음은 그 빈자리를 따라 조용히 젖어든다. 무언가 끝나가는 계절의 기척이 느껴지는 날. 이럴 때면, 나는 오래된 노래 하나를 꺼내 듣는다. 특히 계절이 처음 기울기 시작할 때 들었던 그 멜로디는 지금까지도 마음속에서 잔잔히 울리고 있다. 아마도 황혼기에 접어든 내 삶의 주기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 늘 Sarah Vaughan과 Clifford Brown이 함께한 1954년의 그 앨범으로 찾아간다. 그들의 협연은 단순한 재즈의 조화를 넘어, 시간의 깊이와 감정의 결을 동시에 담아낸다. 사라 본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다. 부드럽고 깊은 음색은 마치 늦가을의 공기처럼, 차갑지만 따뜻하고, 쓸쓸하지만 충만하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이 감싸 안는다. 그의 연주는 결코 앞서지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마치 그녀의 숨결을 따라 호흡하듯, 한 음 한 음이 그녀의 감정에 조심스럽게 닿는다. 그의 트럼펫은 때로는 그녀의 고백을 부드럽게 밀어올리고, 때로는 그 울림의 여운을 길게 끌어준다. 이 앨범에서의 “September Song”은 단순한 계절의 노래가 아니라, 두 사람의 음악적 대화가 만들어낸 가을의 철학이자 사랑의 시이다. 그들의 음색은 서로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결국 하나의 감정으로 녹아든다. 그 순간, 시간은 잠시 멈추고 사랑은 유한한 삶 속에서 가장 진실한 형태로 빛난다.

 

 

 

 

 

“September Song”
이 곡은 1938년 뮤지컬 《니커보커 홀리데이(Knickerbocker Holiday)》를 위해 커트 바일이 작곡하고 맥스웰 앤더슨이 가사를 쓴 곡이다. 삶의 가을에 선 한 남자가 젊은 연인에게 남은 시간을 고백하는 이 노래는, 특히 사라 본(Sarah Vaughan)이 1954년에 발표한 버전에서 깊은 울림을 얻는다. 그녀의 낮고 부드러운 음색은 시간의 무게를 품고 있으며, 그 안에는 사랑의 온기와 이별의 예감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이 노래는 단순한 계절의 회상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시간 철학이 응축되어 있다. 삶의 달력 앞에서 우리는 유한성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오, 5월부터 12월까지는 길고도 긴 시간이지만, 9월에 이르면 하루하루는 짧아지네.”
젊음의 5월엔 시간이 무한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9월이 되면, 시간은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우리를 재촉한다.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며 불꽃처럼 타오르듯, 삶의 가을은 찬란하지만 짧다. 9월의 햇살은 길고 낮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온도를 되새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 말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며, 그 유한성을 자각할 때 비로소 본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에게 남겨진 건 단지 ‘소중한 며칠’뿐이다.
“가을 날씨가 나뭇잎을 불꽃으로 물들일 때면, 사람에게는 기다리는 게임을 할 시간이 없어.”
여기서 ‘기다리는 게임’이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채 망설이는 마음이고, 삶의 본질을 외면한 채 일상에 안주하는 태도이며,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행동하는 자기기만이다. 젊은 날에는 그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랑을 미루고, 결정을 유예하며, 언젠가는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가을이 오고, 나뭇잎이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게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때부터는 선택해야 할 시간, 사랑해야 할 순간, 함께 있어야 할 사람만이 남는다.

하이데거가 말한 ‘선구의 태도’란, 죽음을 단순히 피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을 앞당겨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용기 있는 자세를 뜻한다. 언젠가 반드시 도래할 죽음을 미리 끌어안음으로써,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실존적 결단이다. 반대로 ‘세인(das Man)’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흔히 빠지는 익숙한 군중의 삶을 가리킨다.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상태. 그 안에서는 나만의 고유한 삶도, 진정한 선택도 없다. 선구의 태도는 바로 그 세인의 흐름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삶을 나 스스로 책임지는 존재로 서겠다는 선언이다.

이 시간의 압박은 우리에게 지연될 수 없는 행동, 즉 사랑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요구한다. 사랑은 더 이상 미래의 숙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실천되어야 할 가장 시급한 존재론적 행위다.

노래의 모든 사색과 성찰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이 소중한 며칠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
삶의 끝자락에 다다를수록 사소한 것들은 모두 배경으로 사라지고, 오직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만이 선명하게 남는다. 그 본질은 진실한 자아일 수도, 이루지 못한 이상일 수도, 혹은 인간 정신의 존엄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중에서도 사람과의 관계, 특히 연인과의 사랑을 가장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당신’은 그 사랑을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한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당신’은 나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내가 아직 말하지 못한 모든 고백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고독을 함께 견디는 연대이며,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한계 앞에서 서로를 지탱하는 실존적 결단이다.

사랑은 시간을 초월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한한 시간 속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무한한 시간 속의 사랑은 유예될 수 있지만, 유한한 시간 속의 사랑은 선택되어야만 한다. 그 선택은 존재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행위이며, 죽음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 정신의 존엄성을 드러낸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사랑은 시간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유한함을 껴안을 때, 사랑은 비로소 가장 깊은 곳에서 빛난다.



https://youtu.be/otPzP4YYFpE?list=RDotPzP4YYFpE

      September Song - Sarah Vaughanwith clifford brownwww.youtube.com

 

오늘도 나는 이 노래를, 사라 본의 목소리로 듣는다. 그녀의 음색은 시간의 끝자락에서 건져 올린 듯한 울림을 지닌다. 낮고 부드러운 톤은 삶의 황혼을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 깃든 사랑의 온기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다른 보컬들이 이 곡을 화려하게 해석할 때, 사라 본은 절제된 감정으로 노래한다. 그 절제 속에서 오히려 사랑의 진정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바이닐 위를 흐르는 바람 같았다. 따뜻하고, 조금은 쓸쓸했다. 그 소리는 나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 질문이자, 그 질문에 대한 가장 감성적인 대답처럼 들린다.

키르케고르는 사랑을 ‘불안 속의 결단’이라 했다. 이 노래는 바로 그 결단의 순간을 노래한다. 그리고 나는 그 결단 앞에서, 오늘도 이 노래를 다시 듣는다.

낙엽은 구르고, 바람은 그 위를 조용히 지나간다. 텅 빈 가지 사이로 흐릿한 빛이 스며들고, 그 빛 속에서 나는 지나온 계절을 천천히 되짚는다. 사랑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그리고 나는, 이 짧은 계절의 끝에서 당신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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