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순의 풍경화
어느 밤,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나는 그들의 가벼움과 천박함을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한다. 이것이 나의 숙제다.”
이 문장은 나를 관통하는 지독한 균열의 선언이었다. 나는 인간들의 세계를 바라볼 때마다 두 개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환각을 앓는다. 하나는 들판처럼 가벼운 웃음이 먼지처럼 흩날리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숲처럼 무거운 고요가 쇠사슬처럼 내려앉은 곳이다. 사람들은 들판 위에서 바람처럼 농담을 흩뿌리고, 그 웃음은 의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금세 휘발되어 사라진다. 나는 그 참을 수 없는 소란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맥동하는 생기에 묘하게 매료된다.
나의 본질은 줄곧 숲속에 머물러 있었다. 나의 생각은 고목의 나무처럼 지독하게 깊은 뿌리를 내리고, 나의 감정은 이끼 낀 바위처럼 그 자리에 무겁게 침전한다. 말 한마디조차 그 속에 담긴 존재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결벽증적인 강박이 나를 짓누른다. 그러나 숲의 고요는 때로 성소가 아닌 감옥이 되어 나를 가둔다. 그리하여 나는 들판을 그리워한다. 그들의 천박한 웃음 속에는 억눌리지 않은 야생의 자유가 있고, 경박한 농담 속에는 내일이 없는 즉흥의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벼운 자유를 영원히 놓쳐버린 사람이다.
품위를 지키려는 욕망과 그 품위 때문에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애착이 내 안에서 서로 굶주린 짐승처럼 으르렁댄다. 나는 싫어하는 것에 끌리고, 끌리는 것을 미워하는 이 지독한 형벌을 자처한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내가 가장 혐오하던 그 천박함이 내 안에서도 함께 숨 쉬고 있음을 목격한다. 숲의 파수꾼인 줄 알았던 내 얼굴 위로 가벼움이 스며들 때, 내 입술에서 새어 나온 그 비천한 웃음은 사실 무거운 의미에 짓눌려 질식해가던 내 영혼이 살기 위해 터뜨린 비명이었다.
이 깨달음은 잔인한 자아 분석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나는 들판에서 사람들과 섞여 웃으면서도, 동시에 숲의 나무 뒤에 숨어 그 웃음을 해부한다. 나의 이성은 날카로운 메스가 되어 내면의 가장 은밀한 동기까지 도려낸다.
“너의 그 웃음은 진심인가, 아니면 군중 속으로 숨어들기 위한 비겁한 가면인가? 이 품위는 고결함인가, 아니면 거절당할까 두려워 두른 갑옷인가?”
나는 나를 이해하려 할수록 더욱 낯선 존재가 되어간다. 무엇이 박제된 가면이고 무엇이 살아있는 얼굴인지 분간할 수 없는 붕괴의 지점에서 나는 처절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이 지독한 자기 분석의 끝에서 나는 문득 낯선 시선을 발견한다. 내가 혐오했던 들판 위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도,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숲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음을 본 것이다. 그들의 경박한 웃음은 사실 각자의 가슴 속에 숨겨둔 무거운 숲의 고요를 견디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나만 모순된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의 내면에 거대한 적막을 품고도, 삶이라는 들판에서 흩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가벼움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통찰은 혐오를 연민으로 바꾼다. 우리는 모두 숲의 무게에 짓눌린 채 들판의 가벼움을 갈망하는 동지들이다.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타인의 천박함은 사실 그들이 생의 무게를 버텨내고 있다는 가장 슬프고도 위대한 증거였다. 이제 나는 숲의 끝자락이자 들판이 시작되는 그 축축한 늪지에 서서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나의 가면이 그들의 가면과 마주칠 때, 우리는 서로의 얼굴 뒤에 숨은 고독한 나무들을 알아본다.
결국 나는 나를 부정하면서도 인정해야 하는 이 거대한 모순을 초월하기로 한다. 밤새 나를 괴롭혔던 그 숙제인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마음은 이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생한 박동이 된다. 숲의 적막을 지탱하는 것은 들판의 바람이고, 나의 품위를 완성하는 것은 내가 그토록 밀어냈던 내 안의 소란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해부하고 다시 꿰매지만, 이제 그 행위는 고문이 아닌 치유가 된다. 숲의 무거운 고요 속에서 들판의 바람을 맞이하며, 그 바람에 실려 오는 나의 낯선 웃음을 기꺼이 껴안는다. 이 지독한 혼란과 아픔, 그리고 타인과 나누는 이 서툰 공감이야말로 나라는 인간을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순의 늪 위에서, 가면을 쓴 채로 비로소 가장 진실한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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