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물구멍이 또 터졌나 보다.
며칠 이대로 퍼붓겠지,
걱정도 되지만
난 비 오는 여름이 좋다,
그것도 우렁찬 빗소리를 날로 들으며
빈둥거리며 누워있노라면
그야말로 온갖 지난 기억들이 스며들며
촉촉이 마음을 적신다.
그것뿐이랴,
오래 저장되어 숨어 있던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도 하며
때론 눈물짓기도
때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버킷리스트로 머물러 있던
찐한 신파 연애 소설을 하나 완성하고 싶은
욕망이 치마를 펄럭이며 들이닥친다.
허락도 없이, 아직은 아니라고,
좀 기다리라고 억눌러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고야 마는 놈!
그 쓰달데기 없고,
그럼에도 생생한 그놈을
오늘은 빈둥거리며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1. 정은서: 주인공
1) 배경 설정:
41세. 결혼 14년 차. 자녀는 없지만 조카들을 자주 돌보며 가족 내에서 따뜻하고 차분한 역할을 맡아 살아감.
한때는 문학이나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일반 사무직으로 살아가는 중.
작고 조용한 동네에서, 정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마음속에는 늘 “말하지 못한 문장들”을 품고 있음.
남편과는 정 없는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오래전에 서로의 중심에서 멀어진 상태.
2) 외모와 분위기:
퍼머를 한 단발머리를 자연스럽게 묶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정리하는 습관.
늘 단정하고 차분한 톤의 옷차림: 베이지색 니트, 검은 슬랙스, 얇은 코트 같은 자연스러운 스타일.
화장은 거의 하지 않지만, 립스틱 하나쯤은 늘 가방에 넣고 다님.
말이 적지만, 그 눈빛엔 늘 어떤 생각이 머물러 있는 느낌.
3) 성격과 내면:
겉으론 조용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속엔 언제나 ‘말하지 못한 질문들’이 맴돌고 있음.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줄 알고, 그 사랑을 함부로 흔들지 않으려는 의지와 절제가 있음.
감정이 깊은 사람. 누군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오래 머무르는 타입.
하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도 부담 주지 않으려 늘 자기 감정을 숨기는 법을 먼저 배워온 사람.
2. 하진우(41살)
1) 외모와 분위기:
키는 약 180cm, 말랐지만 균형 잡힌 체격.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지만 늘 절제된 몸.
깔끔한 셔츠 차림을 즐기고, 말이 많지 않아도 묘하게 분위기를 잡는 사람.
짙은 쌍꺼풀이 없는 눈매. 웃을 때는 입꼬리만 살짝 올라가는데, 그 미소에 자꾸 마음이 흔들림.
검은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 안경을 쓰는 날이면 어쩐지 더 멀어 보임.
향기는 무겁지 않은 시트러스 계열의 향수. 가까이 있을 때만 느껴질 만큼 은근함.
2) 성격과 매력:
말은 많지 않지만 필요한 순간엔 따뜻한 한마디를 던져주는 사람.
주변 사람에게 예의 바르고, 일에 대해서는 성실하지만 일보다 사람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김.
커피보다는 따뜻한 우유를 마시는데, 혼자 있을 때는 진에 토닉과 얼음을 넣은 음료를 좋아하며 책 읽거나 오래된 영화를 보는 걸 특히 좋아함.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말 하나, 표정 하나가 은서의 하루를 바꾸게 된 그런 사람.
비가 조금씩 흩날리던 평일 오후, 은서는 우산을 들지 않고 나왔다. 회사 앞 카페에 들러 평소처럼 라떼를 주문하고 있는데, 앞에 선 사람이 진우였다. 그는 돌아보며 말없이 손을 들어 보였고, 은서는 얼떨결에 웃었다. “비 와요,” 그가 말하자, 은서는 그제야 머리카락이 젖어 있다는 걸 알았다. 잠깐 망설이던 진우가 우산을 꺼냈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같이 걸어요,” 말은 짧았지만,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둘은 좁은 우산 아래서 아무 말 없이 몇 블록을 걸었다. 팔이 스치고, 발걸음이 맞았고,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충분히 사랑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가 우산을 쓴 모습이 비 오는 날마다 떠올랐다.
그렇게 소설 속 주인공 은서는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싱글인 진우를 마음에 두게 되었다는 거지. ㅋㅋ 그리고 이런 편지를 써.
영원히 전하지 못할 편지라면 어떨까?
[전하지 못할 첫 번째 편지]
그 사람에게
오늘 너의 웃는 얼굴을 보았어.
누군가와 데이트를 간다며
들뜬 네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어.
다행히 아무도 몰랐고,
물론 너도 모르겠지.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늘 조용히 바라보다,
그냥 스쳐 가는 사람.
사실 말이야,
널 처음 좋아하게 된 순간이 언제였는지 나도 몰라.
그냥 어느 날, 너의 말투가 따뜻하게 느껴지고
너의 무심한 친절이 하루를 바꿔버렸어.
그러고 보니,
너는 내게 단 한 번도 특별한 말을 건넨 적 없는데
나는 매일 너를 기억하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어.
그럴 수 없는 위치에 있고,
내가 지켜야 할 삶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 마음은 이대로……
내 안에만 묻어둘게.
혹시 언젠가, 아주 먼 훗날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때, 이 편지를 꺼내어 볼지도 몰라.
그땐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내가 한때 너를 참 많이 좋아했었어.”
아무런 기대 없이, 아무 미련 없이.
그러니 지금은,
부디 너의 계절을 따뜻하게 살아줘.
나는 이 자리에, 조용히 머물게.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아름다우니까.
그 누구보다 너의 행복을 바라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하지 못할 두 번째 편지]
너를 좋아한 이후로,
나는 나를 자주 속이게 되었어.
너를 보며 아무렇지 않은 척,
너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저릿한 걸 감추고 웃는 연습을 했지.
어쩌면
사랑보다 더 고된 건,
그 사랑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지키는 일이야.
말하지 않아서 편할 줄 알았는데,
입술을 다물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져.
그날 너는 내게 네가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친구처럼, 조언해 주는 사람처럼 웃었어.
근데 그날 밤, 나 혼자 울었어.
바보 같지?
네가 행복하다고 했는데,
그게 왜 그렇게 아팠을까.
그래도 알아.
나는 너에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야.
내 곁엔 이미 한 사람의 삶이 있고,
너의 삶엔 내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이 마음을 조용히 흘려보내야 해.
너는 몰라도 되는 이야기.
알게 되면 오히려 어색해질 이야기.
그래도
혹시, 아주 혹시라도
언젠가 너도 누군가를
말하지 못하고 사랑했던 적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잠깐이라도 떠올려줬으면 해.
그럼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아.
말하지 않아도, 닿지 않아도,
내가 널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마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오늘도, 멀리서
너의 하루가 평안하길 바라며
그림자처럼 머무는 한 사람으로부터
은서가
[전하지 못할 세 번째 편지]
잘 지내지?
나는…… 잘 지내려 애쓰고 있어.
요즘은 너의 이름을 예전처럼 자주 떠올리지 않게 되었어.
아주 가끔,
조용한 밤이나 비 오는 날,
문득 생각나긴 하지만,
예전처럼 가슴이 아프진 않아.
그날의 감정들이 내게서 천천히 걸어 나가고 있다는 걸 느껴.
아마도, 그게 시간이 하는 일인가 봐.
사랑을 끝내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랑이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조금씩 흐릿하게 만들어주는 일.
한때는 너의 말 한 마디,
너의 표정 하나에 하루가 무너지고
또 살아나곤 했어.
하지만 지금은,
너의 소식을 들어도 마음이 덜 흔들려.
조금은 나를 되찾은 기분이야.
너를 좋아했던 그 시간은
내 안에서 부끄러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비록 말하지 못했고,
닿지 못했고,
결국은 보내야 했지만,
그 사랑은 나에게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너를 향한 마음을
조금씩, 정말 조금씩
내 마음 바깥으로 내보내 보려 해.
미련 없이, 원망 없이,
다만 고마웠다고 말하며.
고맙다는 말,
이 말은 너에게 해도 되겠지?
너를 몰래 좋아했던 나의 계절을
진심으로 살아가게 해줘서,
감사해.
이제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사랑 안으로
조금 더 충실하게 걸어가 보려 해.
그리고 너는,
너의 행복을 꾸밈없이 누리기를.
그렇게 서로의 삶을,
묵묵히 응원하는 거리에서.
안녕,
내 마음속에만 살았던 사람.
이렇게 전해지지 않을 편지를 쓰는 은서에게 작가인 나는 이런 편지를 썼어.
[은서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은서야,
고생했어.
정말 많이 애썼지.
사랑하면서도 말하지 않고,
보고 싶으면서도 바라보기만 했고,
가슴이 터질 듯하면서도 웃어야 했던 너.
그 시간들을 잘도 견뎠구나.
그를 좋아한 건, 잘못이 아니었어.
사랑은 언제나 이유 없이 찾아오고,
때로는 허락되지 않은 곳에 머무르기도 하지.
그건 죄가 아니야.
그건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어.
다만, 그 사랑을 어떻게 품고,
어떻게 보내는지를
너는 스스로 선택했고,
그 선택은…… 너무도 성숙했어.
울어도 괜찮아.
참았던 눈물이 터지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버텼다는 증거니까.
마음껏 울고,
마음껏 아파하고,
그 다음엔 천천히,
너 자신을 안아줘.
그때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넌 충분히 아름다웠어.
누군가를 몰래 좋아한 시간은
결코 헛된 게 아니었고,
그 마음을 지켜낸 너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야.
이제,
그 마음의 자리엔
너 자신을 채워넣자.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너,
더 빛나야 할 너,
그리고
아직도 살아가야 할 많은 날들을 품은 너.
나는 너를 믿어.
앞으로도, 수없이 흔들리겠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너는 다시 일어나
너답게 걸어갈 거란 걸.
그러니 오늘은,
그저 조용히 숨 쉬듯,
너 자신을 안아줘.
그게 지금 너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이야.
늘 네 곁에서,
너를 응원하는 사람으로부터.
[은서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은서야,
사랑을 참는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사람들은 흔히, 욕망을 따라가며 후회를 남기기도 하는데
넌 그러지 않았어.
아무도 모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한 사람을 마음에 담고
그 계절을 조용히 지나왔지.
그건 너의 착함 때문만이 아니야.
그건 네가 얼마나 깊은 사람인지,
얼마나 자신과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인지
보여주는 증거야.
내가 만약 그 모든 상황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너에게 이렇게 말해줬을 거야.
“괜찮아.
지금 이 마음이 너를 무너뜨리지 않게,
너의 속도대로 흘려보내.
사랑은 끝나도,
그 사랑을 품었던 너는 여전히 살아 있어.”
슬펐던 날들을 하나하나 돌아보다 보면,
사실은 그 안에도 따뜻했던 순간들이 숨어 있었던 걸 알게 될 거야.
그가 웃을 때,
네 마음이 가벼워졌던 시간들.
그를 멀리서 바라보며
그의 행복을 빌던 밤들.
그건 사랑이 주는 고통이자
또 동시에 사랑이 주는 은혜였을지도 몰라.
이제 그 사랑은 조금씩 흘러가고,
남는 건 너 자신이야.
그 누구보다 솔직했고,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고,
누구보다 조용히 견뎌낸 너.
그러니, 이젠 너에게 말해줘야 해.
“정말 고생했어.
이제 괜찮아.
너는 더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이야.”
사랑은 멈췄지만
너의 삶은 계속 흐르고 있어.
그 속에서 언젠가는
누군가가 너를 보고 말할지도 몰라.
“어쩌면, 그 사람도
한때 말하지 못한 사랑을 했던 사람일지도 몰라.”
그리고 그건,
서로를 가장 따뜻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시작이 될 거야.
은서야,
너는 너의 슬픔을 안고도
다시 사랑을 믿겠지.
왜냐하면, 너는 그 모든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냈으니까.
이런 글을 쓰고 나니, 은서가 부럽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쓸데없을지도 모를 상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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