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그녀는 마흔하나.
성공한 교수, 두 아이의 엄마, 세상이 부러워할 삶.
도덕의 틀 안에서 단정히 걸어온 삶.
흠 하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궤적.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욕망 없이 살아왔다는 것.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원하는 걸 욕망해 본 적 없다는 것.
그것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단지 두려웠기에.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나란 사람, 그 삶을 이제 시작할 수 있을까?”
「B급 사랑 소설의 유혹」
B급 사랑 소설의 본질은 불륜이 아니다. 그것은 눈물과 교훈으로 포장된 도덕극이 아니며, 더욱이 선함을 가장한 순애보의 윤리적 설교도 아니다.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 역시, 겉보기엔 윤리적이다. 마치 지금 시대의 도덕 군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알고 있다.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리는 서사를, 진심으로 원하는 시대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주인공은 상상되었고, 동시에 낯설었다. 작가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녀 안의 욕망을 함께 걷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작가의 진심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더 정직해지고 싶었다. 도덕적인 여성이 아니라, 욕망을 따라가는 여성에게 더 마음이 끌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었다.
이 말년, 은서와 고등학교 동창인 말년은 자신의 욕망에 거리낌 없는 표상적 인물이다. 그녀에게 더 끌리고 집중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비밀스런 욕망과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욕망 덩어리인 삶 속에서 구원받고 싶어 하면서도, 사실은 벗어나지 못하는 일부분을 은서에게 투영해 본 것이고, 그럴 때, 구원은 가능한가? 그 삶 속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래서 작가는 희귀하고도 본질적인 무언가를, 철저하게 욕망에 매몰되어 충실한 은서의 반대편의 인물, 이말년의 삶을 그리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욕망 속에 완전히 몰입한 여성’을, 비난 없이, 구원 없이, 다만 ‘살아 있는 존재’로서 진지하게 응시하며, 현실 속 자신의 삶을 대체하고 싶은지도. 철저히 망가져버리고 싶은 죽음 충동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를.
이말년; 41살. 국내 명문 사립대학 철학과 교수
1) 가족: 남편은 외국계 법률회사 파트너, 초등학교와 중학생 두 아들을 둔 어머니
2) 외모: 단정한 단발머리, 얇고 세련된 안경, 고급스러운 옷차림까지, 사람들은 그녀를 ‘지성’, ‘성공’, ‘품위’로 요약한다.
3) 직업 활동: 언론에 칼럼을 쓰고, TV 교양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4) 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그녀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괴롭다. 이성적이고 절제된 성격이지만, 내면에는 억눌린 감정들이 진흙처럼 눌려 있다. 예전엔 책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손이 가지 않는다. 대신 어두운 로맨스 웹소설이나 성적 판타지가 섞인 B급 소설에 끌린다. 구원을 바라는 마음보다는, 차라리 완전히 무너지고 싶은 충동에 가까워지고 있다. 삶에 본래 의미 따위는 없다는 자각과, 그럼에도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 사랑받고 싶다.
어느 날 우연히, 고향을 방문했다가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었던 과수원 주인을 만난다. 그와의 재회는 말년의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자기 해체에 가까운 욕망이다.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넌 예전엔 참 착했지. 그런데 지금은 성공의 화신이 됐네?”
구릿빛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순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순수한 민낯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기억하는 ‘착했던 나’는 이미 죽었고, 지금의 자신은 “더럽지만, 정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인물은 작가가 욕망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위해 창조한 존재다. 이성적이고 절제된 삶 뒤편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더 드러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타인의 욕망은 잘 분석하지만, 자신의 욕망 앞에서는 유난히 서툰 자신의 한계를 이말년을 통해 그리고 싶은 것이라면, 작가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마도 작가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나란 사람, 그 삶을 이제 시작할 수 있을까?”
현실의 나는 “아니되옵니다. 말년씨, 현실의 삶에서는 전복이란 늘 고통만 따릅니다.”라고 말하며 웃은다. 아이고, 웃픈 현실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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