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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오늘도 발칙할 나의 하루를 위하여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5. 19.

 

 

 

 

 

오늘도 발칙할 나의 하루를 위하여

 

이른 아침, 나의 하루는 언제나 커피보다 빠른 자판 소리로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늘 그렇듯 화면 앞에 앉아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중얼거리거나, 아무 의미 없는 문장을 두드리며 깨어난다. 그러다가 음악, 오늘은 재즈다. 뭐니뭐니해도 아침은 에반스지. 그 느릿한 박자에 맞춰 나는 작은 공간의 초록들을 향해 마음을 돌린다.

 

밤새 잘 있었니? 춥진 않았니? 물은 괜찮았어?

 

그렇게 하루의 첫 인사는 사람보다 식물에게 더 자연스럽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월세방은 지난 겨울에 옮겨온 새 서재다. 예전 집에서 함께 지내던 식물들은, 지난 겨울 동안 낮은 온도와 통풍에 신경을 못 써서, 하나둘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는 한동안 나의 무심함을 자책하며 어떤 초록도 들이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그 결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식물 없는 공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곧 알게 되었으니까. 내 공간에서 가장 먼저 그리운 건 늘 초록이었다. 이번에는 조금 작게, 조금 신중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자리를 차지한 건 향기로운 쟈스민. 해가 드는 창가에 놓이면, 아직 꽃은 피우지 않았지만 잎 하나하나가 내가 다정하게 바라볼 때마다 아주 조금씩 반짝인다.

 

아스파라가스는 엉켜 있는 듯한 섬세한 줄기 사이로 음지에서도 의외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조금만 물이 모자라면 삐죽 토라지는 고무나무도 있다. 잎이 말려 올라갈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마음으로 다시 그의 뿌리에 물을 붓는다. 민트와 바질도 베란다에 나란히 있다. 민트는 손끝으로 스치면 시원한 향을 퍼뜨리고, 바질은 잎이 부쩍 자랄 때마다 해가 잘 드는 날을 골라 인사를 건넨다.

 

햇살과 바람을 조금 더 가까이 두고 싶은 식물들. 그 나란함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요즘은 작은 율마가 은근히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 늘 수분과 온도, 바람을 기다리는 그 섬세한 속성은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색이 바래거나 끝잎이 마르기도 한다. 나는 율마를 돌볼 때마다, 어딘가 예민하고 까다롭지만 그래서 더 신경 쓰이던 내 친구 한 명이 생각난다. 함부로 다룰 수 없어서 더 마음이 가는 존재. 율마는 그런 친구다. 가끔은 나 자신과도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 그 앞에 앉아 잎 끝을 살피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용해진다.

 

조금 넓은 화분에서는 워터코인이 동그란 잎으로 빛을 받는다. 작은 동전처럼 생긴 그 잎들은 투명한 햇살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유칼립투스, 말을 걸면 쿨하게 대답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가진, 하지만 묵묵히 공기를 맑게 해주는 친구다.

 

귀엽게 생긴 다육이들은 화분 하나하나마다 표정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뚱한 얼굴로, 어떤 아이는 방긋 웃는 듯한 자세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옆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식물들도 있다. 정확한 종은 모르지만, 분명히 나를 위해 이곳에 존재하는 생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보랏빛을 머금은 라벤더, 지난 가을에 씨앗을 심은 아보카도는 이제야 싹을 틔우며 그 여린 몸을 햇살을 받으려 고개를 쳐든다.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생명들.

가끔은 그 진정성, 어쩌면 본능적인 욕망에 대해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있다.

 

며칠 뒤면 여인초가 도착할 예정이다. 그 이름부터가 내 하루에 무언가 풍경을 더해줄 것만 같아 괜히 설렌다. 아마 그녀는 제법 키가 클 테고, 잎이 넓을 테고, 밤이면 조용히 숨을 고르며 나를 지켜봐 줄 것이다. 나는 이미, 그녀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이 모든 초록들이 있는 나의 공간은, 사실 너무 소박하다. 웃음이 날 정도로, 작고 흔하고 보잘것없는 공간. 하지만 바로 그 공간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마음을 키우고, 조금씩 나 자신에게 말을 걸며 하루를 살아간다. 생명이란 이름의 조용한 존재들과 함께, 나는 나의 하루를 오늘도 발칙하게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작은 초록들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하루를 물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생 나의 동반자가 되어, 내 마음의 허전함을 조용히 채워주는 존재들처럼.

 

아이들을 위한 나의 작은 조찬!

 

초록이들의 낮은 목소리

 

쟈스민은 말을 아낀다

대신 잎에 향을 숨긴다

 

아스파라가스는 벽을 타며

바람의 결을 짜 넣는다

 

고무나무는 하루에 한 번

잎사귀를 오므려 섭섭함을 접는다

 

민트는 손끝에 닿으면

오래전 기억의 숨을 뿜는다

 

바질은 햇살 아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펼친다

 

율마는 내가 모른 척한 틈을 타

제 마음을 먼저 시들게 한다

 

워터코인은 동그란 잎으로

빛의 잔을 비춰낸다

 

유칼립투스는 아무 말 없이

공기 속 불안을 말려낸다

 

다육이들은 새벽마다

혼자 자라는 법을 되새긴다

 

몬스테라는 벽을 기어오르며

잎 하나씩, 어둠을 건넌다

 

아보카도는 말이 없지만

조용히 잎 하나로 계절을 틔운다

 

아직 오지 않은 여인초

그녀는 공간 어딘가에서

자신의 그늘을 조용히 넓히는 중이다

 

나는 이 모든 생명들과 함께 숨 쉬며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연인을 기다린다

그가 올 날을 상상하며

내 마음의 햇살과 그림자를

오래도록 품는다

 

그의 향기와 소리와 몸짓이

내 하루의 공기처럼 스며드는 날들 속에서

 

 

고마워, 애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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