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티 플레저
젊은 시절, 한때 나는 ‘파티의 여왕’이라 불렸다. 니나노,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먹고 마시고 웃던 시절.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여 수다를 떨고, 술잔을 부딪치고, 늦은 새벽까지 웃음이 마르지 않던 그 시간들은, 누군가에겐 소모적인 소비였겠지만 내겐 축복 같은 순간들이었다.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은 지금도 가끔 “그때 덕분에 참 좋았어”라고 말해주고, 밥도 사고, 차도 산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끔 민망해진다. 속도 없이, 뭔 지랄을 떨었던 걸까. 한없이 떠들고, 울고, 웃고, 상처도 주고받던 그 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그런 시간을 좋아한다. 술잔을 기울이며 음식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받는 그 느슨한 공동체의 순간을.
지난 주말 밤, 몇몇 다정한 이들과의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호사를 부릴 것도 없이, 도란도란 둘러앉아 나눈 식사. 와인 디켄터에 담긴 정읍산 막걸리라니, 한 모금 넘기자마자 “야, 이거 기가 막힌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두릅전의 씁쓸한 맛, 국적모를 유산슬에, 상추 위에 한 점씩 올려 먹는 회, 그리고 야채뿐인 샐러드까지.
“우리 훈이는 말야, 누나가 지켜줄게.”
“일이가 말이야, 은 선생님 디스할 때 저한테 얘기하세요. 제가 몇 배로 갚아줄게요.”
그 말들이 왜 그렇게 다정하게 들리던지. 단순한 농담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순간. 사람의 말이라는 게, 그때 그 자리의 공기와 눈빛, 그리고 먹고 마시는 행위가 어우러질 때, 단순한 농담조차 위로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도망가지 마시고 오래 함께 있어줘요. 우리 일이, 순이, 현이, 훈이 고마워요.”
이 말이 입 밖으로는 나오지 못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너무도 또렷했다. 나의 이 감정은 어쩌면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관계의 끝, 소중한 것들의 상실, 익숙한 것들이 흩어지는 풍경에 대한 예감 같은 것. 그래서 더 애틋하게 매달리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숨기지 않고도 있을 수 있는 자리, 그 조용한 안도감.
그러니까 나는, 문득 마음이 기울어질 때면 그런 다정한 밤을 그려본다. 말 한마디에 웃고, 가만한 손길에 조용히 안심하는 그런 밤. 그런 밤이 지나고, 나는 조용히 기도하듯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디 모두 건강하길, 혹시라도 나의 미숙함으로 이 따뜻한 자리가 깨지지 않기를.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넓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가끔은 다정함보다 무례함이 먼저 나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끝내 돌아와 웃으며 다시 술잔을 부딪칠 수 있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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