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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리틀 프라이드』, 말하지 않고 살아내는 윤리에 대하여: 화자와 오스틴의 욕망, 몸, 프라이드 비교 비평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5. 10.

 

 

리틀 프라이드, 말하지 않고 살아내는 윤리에 대하여:

화자와 오스틴의 욕망, , 프라이드 비교 비평

 

 

복수전공 중인 국문학과 현대소설강독 수업에서는 2025년 제16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이미 몇 주 전, 서장원의 단편소설 리틀 프라이드를 읽고 스스로 정리하는 의미로 독후감을 쓴 바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교수님의 요청에 따라 학생들이 돌아가며 각자의 감상을 공유했고, 이후 교수님은 이 작품 속 화자인 와 그와 변별되는 인물 오스틴의 차이에 대해 다음 시간에 더 깊이 논의해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서 이 두 인물의 대조를 중심으로 보다 분석적인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했다.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2024자음과모음봄호에 발표된 이후 제25회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르며 강렬한 비평적 주목을 받은 작품이며, 나는 이를 2025년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된 버전으로 읽었다.

서장원의 소설 리틀 프라이드는 한 회사에서 일하는 두 인물인 트랜스 남성인 화자 ,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남성 동료 오스틴의 관계를 통해, 젠더, , 욕망, 프라이드에 관한 치열한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화자는 호르몬 치료와 수술을 거쳐 자신을 구성해 가는 중이며, 사회적 인정보다는 내면의 윤리를 따라 살아가려 애쓴다. 반면 오스틴은 자신의 작은 키와 평범한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사지연장술을 감행하며, 사회가 승인하는 괜찮은 남성성에 도달하고자 한다. 두 사람은 함께 일하는 동료지만,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과 욕망의 방향, 존재를 견디는 윤리에서 근본적인 거리를 가진다. 특히 화자는 오스틴이 여성과 페미니즘을 향해 조롱 섞인 언사를 던지는 장면을 목격하며, 자신이 그와 "전우"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단단히 확인하게 된다. 이 작품은 일상의 소음 속에서 묻혀버리는 미세한 감정의 윤리와, 살아내야만 알게 되는 자긍심의 결을 천천히 묻는다.

화자와 오스틴은 모두 자신을 보여지는 존재로 의식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그 시선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두 인물의 욕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산된다. 오스틴은 “164센티인 나보다도 키가 작았다는 서술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왜소한 체격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그것을 비율도 좋지 않았다는 외모 인식으로까지 확장한다. 그는 타인의 시선을 따라 자기 욕망을 구성하며, “좋은 여자도 만나고요. 페미가 아닌 좋은 여자요라는 발언처럼, 자신의 결핍을 이성애 규범에 끼워 맞추며 보상받고자 한다. 오스틴에게 욕망이란, 자신을 스스로 향한 열망이 아니라, 사회가 승인할 만한 정상 남성의 궤도에 진입하려는 복제 욕망이다. 그가 지금 생각하면 웃기죠라며 수술을 농담처럼 소비할 때조차도, 그 욕망의 근원은 자기 혐오와 승인 욕망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반면 화자는 수술을 통해 남자답게 보이기 위해몸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고통과 자기 존재를 감당하기 위해 결단한 인물이다. 그는 나는 그날 웃통을 벗고 싶지는 않았다. 상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몸이 그 자체로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몸을 꾸며진 기호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또한 괜찮은 남자로 보이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감정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사회의 시선 속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재정비한다. 그는 문워크를 추던 트랜스 남자를 떠올리며, “멋졌지만 매혹되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 말에는 동경도, 부정도 아닌 복합적인 자기 인식이 담겨 있으며,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아주 천천히 받아들였다는 문장에서 확인되듯, 그의 욕망은 타자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위한 내면의 윤리적 사유에 가깝다.

두 인물의 차이는 타자에 대한 인식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오스틴은 자신의 열등감을 여성의 기준 탓으로 전가하고, “페미니까 차인 거죠라는 말로 페미니즘을 조롱한다. 그는 혐오의 정서를 정당화하면서 자신을 사회의 피해자로 위치시키고자 한다. 이는 단지 발화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욕망이 자기 정체성을 비껴간 채 타자에 대한 지배나 배제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반대로 화자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여성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그리고 트랜스젠더 노인 부부 같은 존재들에 대해 섬세한 관찰과 윤리적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말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해 질문하며, 타인의 삶을 대상화하지 않고 가만히 경청하려 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가 어떤 프라이드를 꿈꾸는지를 함축한다.

서사 후반부에서 화자는 오스틴에게 전혀 달라요라고 단호히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정체성의 구별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 타자와의 거리, 몸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의 전면적인 차이를 선포하는 말이다. 오스틴은 수술을 통해 남성성의 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지만, 화자는 수술을 통해 그 문턱에 서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려 한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윤리적 저항을 욕망으로 삼는다. 그렇게 프라이드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취하는 태도가 아니라, 내면의 고통과 기억을 껴안고 조용히 지속해 나가는 삶의 형식이 된다.

화자의 자기 인식이 결정적으로 심화되는 대목은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한다. 병실을 나선 화자는 건물 뒤편의 조촐한 공원에 이르러 담배를 피우며 혜령과 나누었던 한때의 대화를 떠올린다. “인우보증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그 짧은 시간 동안 결정을 내렸다는 독백은, 화자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해명하거나 설명되지 않은 채로 존재하는 삶의 틈 안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혜령이 이야기하던 다양한 존재들을 떠올린다. 노년의 퀴어 커플, 문워크를 추는 트랜스 남자, 잉크가 번진 문신 피부를 가진 사람들, 초고도비만을 감량하고 남은 처진 피부의 남자들. 그들 모두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비켜선 존재이며, 혜령은 그런 사람들 속에서 무언가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자는 그 쇼를 떠올리며 걷잡을 수 없이 기분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그 감정은 혐오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직면에서 오는 고통이다. 그는 멋졌지만 매혹되지는 않았다는 혜령의 말과 동일한 표현을 반복하며, 자신 또한 그 트랜스 남자에게 매혹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그 사실을 아주 천천히 받아들였다고 고백한다. 이 반복과 자인(自認), 화자가 자신의 욕망을 더듬어 가는 감정적 운동의 흔적이다. 그것은 타자의 시선에 자신을 투사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타자의 욕망을 내면화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거리두기이며, 결국에는 자신을 자기 안에서 견디는 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가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을 둘러싼 남성들과 환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거리낌 없이 침과 가래를 뱉는 남자들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단성에 동화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자기 존재의 고유한 궤도를 따라 이동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마지막을 가장 밀도 있게 감싸는 문장이다. 말하지 않아도, 말하지 못해도, 그는 자신의 윤리를 선택한다. 리틀 프라이드는 결국 그 선택의 연속성으로 존재하는 소설이며, 독자인 나에게도 그와 같은 조용한 선택의 가능성을 질문하게 한다.

이처럼 리틀 프라이드는 프라이드를 몸의 표면에 부착된 자격증처럼 여기는 오스틴과, 고통과 침묵 속에서 자기 존재를 구성해 나가는 화자의 대비를 통해, 진정한 프라이드는 어디에서 오며, 욕망은 어떻게 정체성과 윤리에 엮이는지를 묻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취하는 태도가 아니라, 내면의 고통과 윤리, 기억을 껴안고 조용히 지속해 나가는 삶의 방식에서 비롯된다. 오스틴은 몸을 통해 사회적 승인 욕망에 응답하지만, 화자는 몸을 통해 침묵 속에서도 살아야 할 이유를 증명한다. 그들은 같은 수술을 했지만, 같은 길을 걷지 않았다.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몸을 단순한 육체적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만나는 감각적 주체이자 지각의 장이라고 보았다. 그는 몸을 (flesh)’이라 명명하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구성하는 감각의 출발점이자 존재의 조건으로 바라보았다. 리틀 프라이드의 화자에게 있어 몸은 단순한 외형의 조작 대상이 아니다. “내 몸이 그 자체로 불편했기 때문이라는 고백에서처럼, 화자의 몸은 사회적 시선 이전에 느껴지고, 살아내야 하는 실존의 자리다. 그는 수술 이후에도 괜찮은 남자로 보이기 위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상황을 겪으며, 몸이 단지 보이기 위한 외형이 아닌, 세계와 마주하며 윤리를 견디는 장소임을 깨닫는다.

메를로퐁티의 말처럼, 우리는 언제나 몸을 통해 세계와 접속하고, 그 몸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한다. 화자는 타자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비켜세우고, 몸의 감각을 따라 자기 윤리의 좌표를 잡아간다. 결국 리틀 프라이드살아 있는 몸을 사유하고 감각하는 존재가 어떻게 자기 욕망을 구성하고,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 속에서 고유한 자기 존재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문득, 작가 서장원이 리틀 프라이드의 작가의 말에서 남긴 한 문장을 떠올린다. “제가 아는 한, 프라이드 혹은 자긍심이라는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 얻었다가도 어느새 잃게 되는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제게 프라이드란 언제나 작고 연약한 어떤 것입니다.” 이 문장은 마치 나에게 묻는 것 같았다.

나에게 프라이드란 무엇이었는가. 한때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감정, 한때는 나에게도 불어왔던 찬란한 의기. 그러나 지금 나는, 이승의 소풍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나이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조용히 생각한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수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 연약한 프라이드를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시대의 수많은 혐오와 단정, 냉소와 경쟁을 견디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향해, 어떤 타자를 향해 말 걸기 위해, 타자의 마음에 닿기 위한 날개짓을 하고 있다. 이 작고 연약한 프라이드는 그래서 아직, 나에게 삶의 가치를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언어일지 모른다.

리틀 프라이드라는 제목은 결국, 오스틴이 얻고자 한 작고 반짝이는 자존이 아니라, 화자가 끝내 말하지 않고 살아내는 작지만 윤리적인 자긍의 역설적 이름일지도 모른다.‘작고 반짝이는 자존이 아니라, 화자가 끝내 말하지 않고 살아내는 작지만 윤리적인 자긍의 역설적 이름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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