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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書시리즈 - 독후감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4. 30.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 팬덤과 길티 플레저, 그 윤리적 모순과 한계

 

 

 

나는 국어국문학과 복수전공자로서, 현대소설 강독 수업을 통해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를 처음 접했다. 이 작품은 2025년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었으며, 이후 단편소설집 혼모노(창비, 2025)로 발간되었다. 성해나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사회적 감수성과 윤리적 응시를 동반한 문장을 선보여 왔다고 하는데, 적어도 내가 읽은 이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 하다. 작품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팬덤과 길티 플레저, 윤리와 쾌락이라는 현대적 감각이 충돌하는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수상 경력을 지닌 영화감독 김곤의 아역 배우 학대 논란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는 이 사건 이후에도 김곤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 길티 클럽이라는 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그의 작품을 계속 소비한다. 클럽 내부는 김곤의 윤리적 결함에 대해 침묵하거나 옹호하는 분위기이며, 주인공 또한 비판적인 팬들에게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던 중 김곤이 대중 앞에 사과하면서, 주인공은 심리적 혼란과 허무함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 주인공은 치앙마이의 타이거 킹덤을 여행하며 발톱과 이빨이 제거된 호랑이를 만지는 체험을 하게 되고, 이때 느낀 윤리적 불편과 쾌락의 감정이 김곤 팬덤에서 자신이 느낀 감정과 동일함을 직면하게 된다. 결국 그는, 사랑과 소비의 윤리적 모순 속에 깊은 침묵으로 침잠한다.

문제적 감독 김곤을 둘러싼 아역 배우 학대 논란 이후, 주인공 ''는 여전히 그를 옹호하며 길티 클럽이라는 팬덤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클럽 내부에는 김곤 감독에 대한 비하 발언 금지라는 규정이 존재하고, 팬들은 윤리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김곤의 예술을 소비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팬덤 내부의 자기합리화, 집단적 방어기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김곤의 사과 이후 주인공이 느끼는 허무감은, 더 이상 소비 행위가 자신의 태도를 정당화해주지 못할 때 발생하는 정체성의 균열을 상징한다.

작품의 백미는 주인공이 치앙마이의 타이거 킹덤에서 발톱과 이빨이 제거된 호랑이를 만지는 장면이다. 그는 윤리적 불편함을 인식하면서도 쾌락을 느끼고, 이 감정의 중첩은 김곤 감독의 작품을 소비하며 느꼈던 죄책감과 쾌락의 공존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이 장면은 팬덤이라는 집단적 열광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한 윤리적 층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김곤의 범죄 자체를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둘러싼 방관자와 소비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덕분에 독자는 다소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대상의 결함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가?”

쾌락과 윤리가 충돌할 때, 나는 무엇을 우선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단순한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의 실제 윤리적 태도를 점검하게 만든다.

작품은 또한 소비주의 사회 속 길티 플레저의 심리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SNS 알고리즘과 집단 동조 구조, 팬덤 커뮤니티의 위계화, 포스트모던 윤리의 상대성을 함께 끌어안는다. 팬클럽 내에서 벌어지는 입장 차이는 공동체적 윤리가 해체되고 개인적 해석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도덕적 풍경을 날카롭게 반영한다.

그러나 이처럼 설득력 있는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작품에는 몇 가지 비판적 지점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주인공의 변화가 지나치게 피동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줄곧 자기모순 속에서 맴돌 뿐, 어떤 결정적인 전환이나 주체적 각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결국 호랑이 체험 이후에도 그는 죄책감과 쾌락의 공존을 '자각'하는 데 그치며, 윤리적 입장을 분명히 세우지 않는다. 현대인의 무력함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느껴지지만, 서사적으로는 긴장감과 카타르시스가 부족해진다.

또한 가장 핵심적인 상징인 '호랑이 만지기' 장면은 은유가 지나치게 직설적이며, 해석의 폭을 좁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발톱과 이빨이 빠진 호랑이를 만지며 느끼는 쾌락을 곧장 길티 플레저와 1:1로 대응시키는 방식은, 해석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답정너식 해석을 유도한다. 은유는 본디 다층적 해석을 허용해야 하지만, 이 장면은 이미 정해진 의미를 독자에게 강하게 제시함으로써 상상력의 여지를 좁혀버린다. 더욱 다양한 맥락이나 상징 체계를 탐색할 수 있었던 독자의 해석 공간이,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규정적인 상징 체계 속에 갇히고 만다.

이와 더불어, 김곤 논란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에 대한 비판이 주인공 개인의 심리묘사에 압도되어 있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팬덤을 둘러싼 자본 구조, 미디어 생태계, 혹은 팬덤 내부의 권력 역학처럼 더 확장 가능한 사회적 층위는 배경에 머물 뿐, 작품은 끝내 개인의 윤리적 내면극 안에서 닫히고 만다. 팬덤 문화 자체에 대한 접근 또한 다소 단선적이다. 길티 클럽은 지나치게 기형적이고, 단일한 정서로만 묘사되며, 현실 팬덤 내에서 분명 존재하는 자성의 움직임, 윤리적 고뇌, 복잡한 감정 구조들이 삭제되어 있다. 이로 인해 길티 클럽은 '자기합리화만 하는 집단'이라는 클리셰로 환원되고, 독자는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기회를 잃는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완성도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보다 능동적인 내면 여정을 겪는다면, 이야기의 정서적 깊이와 서사적 긴장감이 배가될 수 있었을 것이다. ‘호랑이 만지기장면 역시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문을 여는 방식으로 구성했다면, 문학적 상상력은 훨씬 확장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사회 구조에 대한 보다 선명한 거리두기와 비판, 팬덤 내부의 다층적인 정서를 함께 포착했더라면, 이 소설은 단순한 심리적 기록을 넘어 동시대 윤리 감각을 깊이 성찰하는 작품으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윤리적 타협의 순간들을 정밀하게 포착해낸다. 이 작품은 단지 팬덤 문화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고, 왜 그것을 옹호하며, 어떤 죄책감 속에서 소비를 지속하는지를 묻는 불편한 거울이다. 성해나는 이 짧은 단편 속에서 복합적인 인간 심리를 탁월하게 직조해냈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로 하여금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 마주하게 만든다.

더불어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문득 나 자신의 글쓰기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 또한 서사를 짓는 존재로서, 쾌락과 윤리, 표현과 책임 사이에서 얼마나 자주 망설였던가. 허구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하면서도,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피해갔던 적은 없었는가. 성해나의 이 작품처럼, 나 역시 문장이 향해야 할 불편하고도 투명한 방향을 떠올린다. 문학이란 어쩌면 끝내 옳음에 도달하지 못하는 과정을 진실하게 응시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모순과 불안, 갈등을 부끄럽지 않게 기록해 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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