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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들

〈소년의 시간〉, 우리는 언제 그 아이를 놓아버렸는가, 4편 관람 후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5. 5.

 

 

 

 

소년의 시간, 우리는 언제 그 아이를 놓아버렸는가

 4편 관람 후기

 

복수전공 국문과 4학년 웹글쓰기 강의에서 방영 중이었던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의 서두, 긴장감 높았던 그 첫 장면을 잠깐 보았는데, 그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번 연휴에 결국 몰아보기로 4편까지 관람한 나의 관람 후기이다.

 

2025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은 단순한 범죄 드라마가 아니다. 13세 소년이 동급생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끝까지 시청자에게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가를 묻는다. 첫 회, 새벽에 무장 경찰이 소년 제이미 밀러의 집에 들이닥치고, 아이는 갑작스럽게 체포된다. 그 순간부터 카메라는 단 한 번의 컷 없이, 끊김 없는 롱테이크로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현실과 감정의 밀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화면 속의 숨소리, 떨리는 눈빛, 무너지는 부모의 표정을 그대로 마주보며, 이 드라마가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일면이라는 불편한 감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소년의 시간은 청소년의 일탈을 묘사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성격이나 돌출적 분노로만 설명될 수 없음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제이미는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범한 13살 소년이지만, 그 내면에는 부모와의 단절, 또래 집단에서의 소외, 남성성과 정체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켜켜이 쌓여 있다. 피해자인 케이티 역시 단순한 피해자로 머물지 않는다. 그녀는 제이미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또래 집단의 위계를 대변하면서도, 스스로도 압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또 하나의 청소년 인간으로 그려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인셀(Incel)’ 문화에 대한 드라마의 날카로운 인식이다. ‘비자발적 독신주의자’(Involuntary Celibate)의 줄임말인 인셀은 연애나 성관계를 원하지만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하는 남성들이 여성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며 사회적 혐오를 표출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드라마는 이 인셀적 정서가 제이미의 내면에도 어떻게 잠재되어 있는지를 암시하며,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젠더 갈등 및 젠더 기반 범죄의 뿌리와 닿아 있음을 비껴가지 않는다. 나는 이 장면들을 보며, 이 이야기가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우리 사회 또한 같은 구조 속에 놓여 있음을 실감했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빛나는 지점은 선과 악의 구도를 해체하고, 각각의 인물에게 균열과 결핍, 그리고 그 나름의 진심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제이미의 아버지 에디는 평범하고 모범적인 가장이지만, 아이의 정서적 신호를 제대로 읽지 못한 무력한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4편 마지막 부분, 제이미의 아버지 에디 밀러가 제이미의 침대에 엎드려 우는 장면에서 결국 펑펑 울고 말았다. 그 또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학대를 받았고, 그 고통을 되새기며 나는 절대 그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고 말하던 그의 회한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깊은 죄의식의 고백처럼 들렸다.

 

가족 전체는 각자가 자신의 행동들을 자책하는데, 결국 제이미의 누나가 말한다.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짧은 말 한마디가 가족의 무너진 시간 속에서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 그 문장이 울림을 주었던 이유는, 이 드라마가 다루는 비극이 단지 한 명의 일탈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겪는 고통과 자책, 감정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내게 깊이 다가온 것은 바로 그 가족들 각자가 겪는 괴로움과 자책의 서사였다.

 

특히 이 서사에서 상담사인 브리오니 애리스턴의 태도는 큰 울림을 주었다. 침착하고 단호하며, 제이미의 방어적 태도와 돌발적 행동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대화를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제이미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과 동기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심리적 상처와 왜곡된 인식, 가족 관계까지 섬세하게 관찰한다. 때로는 제이미의 공격성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그의 말 너머에 있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끈질기게 앉아 있는 사람. 그녀의 태도는 단순한 상담의 기술을 넘어, 아이의 붕괴된 내면과 대면하려는 윤리적 자세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곁에서 이웃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마치 구경꾼처럼, 잔인하게 들여다보기만 하는 이웃들. 나는 생각했다. 참다운 이웃, 참다운 친구란 무엇일까. 우리는 누군가의 괴로움을 응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강간범이라 낙인찍힌 문구가 페인트로 적힌 차 앞에서, 함께 그 문장을 지우는 사람. 말없이 곁에 서서, 함께 페인트칠을 지우는 손 하나가 되어주는 사람. 나는 그 장면에서 어느새 나 자신에게 모범답안을 내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괴로움에 빠진 누군가를 보는 것보다, 말없이 곁에 서서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 같은 마음이 일었다.

 

소년의 시간은 단순한 사건 재현이 아니라, 사회가 청소년을 어떻게 방치하는가, 가정과 제도는 어떤 실패를 반복하는가, 인간의 감정은 어떻게 억눌리고 폭발하는가에 대해 끝까지 묻는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한 아이가 저지른 행위의 무게보다, 우리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 아이를 놓아버렸는지를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자신에게 묻는다.

우리는 다음 제이미를 막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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