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감상문은 복수전공 <영상문학론> 수업의 과제, 문화현상으로써 OSMU의 영상과 해당 작품 분석하기, 세 번째 영화 수행의 일환으로, 박상영의 원작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과 이언희 감독의 동명 영화의 OSMU 전략을 비교하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의 번역과 윤리적 감응을 고찰한 결과물이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감상문: 박상영의 감정 문법에서 확장된 OSMU적 사랑의 변주
박상영의 문장은 언제나 감정의 진실에서 출발한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였다. 너무 긴 제목에 웃음이 났지만,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그 웃음은 곧 울컥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감정을 웃기게, 그러나 끝내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써내려 갔다. 관계를 망치고, 미련에 질질 끌리고, 후회하고도 또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들. 그 모든 것이 너무 솔직해서, 나는 때로 그 서툰 사랑을 응원하면서도 눈물 짓게 됐다. 박상영의 글은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고상하지 않고, 종종 유치하거나 적나라하지만, 그 어떤 감정보다 진심에 가깝다.
그 진심은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더욱 짙어진다. 서울이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 연작 소설집은, 사랑, 상실, 우정, 정체성과 같은 보편적이면서도 절실한 문제를 다룬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이나 「며느리 디룩」처럼, 그의 단편들은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에 서툰’ 인물들로 가득하다. 유머와 자기비하, 상처와 정욕, 냉소와 다정함이 얽힌 이 문체는 고상하지 않고, 때론 무례하게 보일지라도, 감정 앞에서는 진실하다. 이처럼 ‘감정에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은 박상영의 문학을 오늘의 한국문학 속에 독보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대도시의 사랑법』 네 편의 이야기 가운데 「재희」는 특히 눈에 띈다. ‘영’이라는 퀴어 남성과 ‘재희’라는 여성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로, 이들은 연인도, 단순한 친구도 아닌 관계를 공유한다. 밤마다 클럽에서 유흥을 즐기고, 서로의 삶에 허물없이 개입하며, 외로움과 상처를 함께 겪어낸다. 이들은 ‘대안 가족’의 얼굴을 하며, "미친년과 게이가 만났다, 바야흐로 애니멀 라이프가 시작되었다"는 말로 자신들의 삶을 농담처럼 정의하지만, 그 속엔 삶을 견디는 진지한 감정의 농도가 깃들어 있다. 재희는 바로 그런 인물이다. 욕망과 충동에 솔직하고, 과감하며,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의 감정에 충실하다.
이언희 감독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 「재희」 , 그야말로 “오늘만 사는 구재희”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13년에 걸친 재희와 흥수의 관계를 따라간다. 영화는 원작의 자전적이고 단문적인 리듬 대신, 시각적이고 정서적인 언어로 감정을 확장한다. 김고은이 연기한 재희는 과감하고 솔직하며, “연애는 빨간 옷 같은 거야”, “사랑은 보호필름 떼고 하는 거야”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던진다. 그는 사랑에 회의적인 흥수와 달리, 끝까지 사랑의 가능성을 믿는다. 실연, 낙태, 사회적 편견을 겪으면서도 사랑을 꿈꾸고, 사랑 앞에서 자기를 숨기지 않는다.
“보고 싶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추상적이잖아.”
재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그리움을 말하는 그는, 오히려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사랑을 느끼고 있다. 감정이란 쉽게 정의되거나 함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말은 영화 전체의 태도처럼 들린다.
흥수는 보다 조용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는 말이 적지만, 기억과 감정에 민감한 인물이다. 영화 중반, 흥수는 과거 연인이었던 수호를 떠올리며 말한다. “한 번도 솔직히 말해본 적 없었다. 보고 싶다고.” 이 말은 이별한 자의 후회이자, 한 번도 감정을 고백하지 못했던 자의 고백이다. 흥수는 수호와의 기억을 정리하며, 동시에 재희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이 겪은 사랑, 우정, 상처, 성장의 시간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영화 후반부, 우리는 그가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퀴어 소설이자, 자기 존재를 언어로 되짚는 시도이며, 고백의 형태다. 감정을 기억하는 방식으로서의 글쓰기, 그것은 흥수에게 삶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새로운 기술이 된다.
이 영화에서 특히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흥수가 어머니에게 커밍아웃한 뒤의 에피소드다. 처음에 흥수의 어머니는 동성애를 병으로 여기고 새벽기도를 다니지만, 아들의 진심을 받아들이기 위해 상영 중이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을 혼자 보러 간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동성애를 섬세하게 그린 세계적인 퀴어 영화로, 부모 세대가 자녀의 정체성을 이해하려 할 때 상징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이 장면은 흥수의 어머니가 아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작지만 진심 어린 시도이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인간의 권리’라는 메시지를 세대 간 감정의 언어로 이어주는 상징이 된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사랑은 인간의 권리야”라는 대사는 주인공 흥수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표현한 말이다.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이 말을 내뱉는다. 이 장면은 성소수자의 자기 수용과 존재 긍정을 담은 영화 전체의 핵심 선언처럼 다가온다.
두 사람은 종종 서로를 찌르기도 한다. “세상에서 제일 초라한 게 뭔지 알아? 돈 없는 게이야.” 이 농담 속엔 현실의 벽이 있고, “세상사람이 욕하는 거보다 네가 쳐놓은 벽이 더 아파.”라는 대사는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러나 끝내 재희는 말한다. “네가 너인 게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어?” 이 한마디는, 재희가 흥수에게 건넨 유일한 믿음이며, 가장 확실한 감정의 울타리였다.
영화는 밤의 클럽 조명, 낡은 아파트, 누운 채 서로의 이마를 바라보는 장면, 아무 말 없이 라면을 나누는 식탁에서의 묘사 등, 감정의 기록이자 증거가 된다. 이는 OSMU(One Source Multi Use) 전략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감정의 번역이다. 박상영의 문학이 글로 보여주던 감정을, 영화는 공간과 표정, 음악과 편집으로 물질화한다. 단순한 서사의 확장이 아니라, 감정의 형태를 바꾸는 방식. 그것이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다.
영화의 마지막, 흥수는 재희의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부르며, 독백처럼 말한다. “그때, 그 순간 내 인생에 나타나 나를 알아봐 주고, 기꺼이 서로의 상처를 함께하며, 의심 없이 전부를 내어준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과, 그때 내가 지었던 모든 표정을 기억하는 내가 나인 채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려준 내 20대의 외장 하드, 잘 가라 재희야.” 이 고백은 이별이 아니라 수용이고, ‘너 없이도 괜찮다’가 아니라 ‘너 덕분에 내가 있었다’는 기억이다. 재희는 떠나지만, 흥수는 더 이상 숨지 않는다.
그들의 동거는 영화 초반, “슬기로운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재희는 결혼을 선택하고,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걷는다. 비록 ‘슬기로운 동거생활’은 끝났지만, 흥수는 이제 혼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 그는 더 이상 감정을 숨기지 않고, 과거의 사랑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지금 그의 앞에 열리는 삶은 ‘슬기로운 혼자의 생’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립이 아니라, 자기를 받아들이는 힘으로서의 홀로서기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 무엇일까에 대해 사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커뮤니티에 수호가 올린 글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라는 문장 앞에서,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필연적으로 집착이 수반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는 사랑은, 타자를 향한 깊은 응시와 책임의 감정이다. 단순한 감정적 끌림을 넘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통해 더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욕망. 『대도시의 사랑법』 속 흥수와 재희의 관계처럼, 사랑은 때로 우정과 가족, 혹은 연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삶의 틈을 채우는 것이기도 하다. 감정에 솔직하되 책임을 지고, 나 아닌 타자의 존재를 온전히 끌어안는 것.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단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윤리이자 존재 방식에 가까운 것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렇게 묻는다.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영화는 그 질문에 정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그 물음 곁에 조용히 머무르며, 감정의 언어를 다정히 건넬 뿐이다. 바로 박상영의 문학이 늘 그래왔듯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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