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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이토록 쓸쓸하고 다정한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4. 29.

 

 

이토록 쓸쓸하고 다정한

 

굴라쉬는 붉은빛이 감도는 깊은 국물 위에 부드럽게 풀어진 소고기 조각과, 흐물흐물 녹아내린 양파, 단맛을 품은 당근이 가라앉아 있었다. 한 숟갈 뜨면, 달큰한 향이 먼저 코끝을 스쳤고, 입 안에서는 고기와 채소의 결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가볍지 않은 무게감. 그러나 느끼함 없이 깔끔하게 넘어가는 맛. 곁에 놓인 플랫브레드를 찢어 굴라쉬에 살짝 적셨다. 구워진 밀가루의 고소한 냄새가 퍼졌고, 국물에 젖은 가장자리는 부드러웠다. 바삭함과 촉촉함이 입 안에서 동시에 일었다. 밀가루의 풍미가 굴라쉬의 진하고 짭조름한 국물과 만나, 처음에는 포근하게, 그다음은 은은하게, 끝에는 약간 매콤하게 혀를 감돌았다. 따뜻한 굴라쉬와 플랫브레드를 번갈아 먹을 때마다, 몸속 어딘가 묵은 허기와 외로움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음식이 아니라, 작은 위로를 천천히 씹어 삼키는 기분.

 

생연어 플랫브레드는 사과의 은은한 단맛과 어린 새싹 야채가 어우러져 전혀 비릿하지 않고 고소했다. 명란크림리조또는 예상한 대로, 버터의 풍미가 진하게 살아 있었고, 명란 알갱이들이 입 안에서 탱글탱글 부서졌다. 다만, 와인 한 병은 조금 가벼웠다. 가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목을 넘길 때마다 어딘가 허전한 감촉이 혀끝에 남았다.

 

그러나,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이 조심스레 모여 있었기에, 나는 음식의 풍미와 그것을 느끼는 나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무언가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말로는 닿지 않는 감정, 각자의 시간을 견디며 건넨 조심스런 다정함이, 우리 사이의 공간에 스며들었다.

 

비록 나는 초대받은 손님이었고, 그저 중간고사를 끝낸 뒤 수다를 나누자는 자리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나는 며칠 전 조용히 지나간 내 생일을, 오늘 이 자리에서 늦게나마 축하받고 싶었다는 것을.

 

지난 수요일, 나는 혼자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소박하게 스스로를 축하했다. 그리고 오늘, 어쩌면 그때 느꼈던 작은 허전함을 스스로 보상하고 싶었던 걸까. 작은 케이크를 사 들고 이 자리에 왔다.

 

쑥스럽게 내 안에서만 꺼내든 축하. 늦은 생일. 늦은 축하. 그러나 조금도 덜하지 않은 마음.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 모금 와인을 들이켰다. 가볍게 스치는 과일향이 입 안을 채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아서, 이렇게 늦어서, 오히려 더 소중하다고.

 

식당을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손등에는 아직 음식 냄새가, 옷깃에는 와인 향이 희미하게 스며 있었다. 아쉬움과 다정함이 뒤섞인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늦게라도 나를 축하할 수 있었던 것. 어설프더라도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준 것. 그 모든 것이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괜찮아. 충분해.”

그리고 알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작은 이유가 되어주는 것, 늦은 축하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는 것. 어깨 위로 스쳐가는 밤공기가 쓸쓸하게 따뜻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끝을 내디뎠다. 이토록 쓸쓸하고, 이토록 다정한 밤에, 나는 살아 있고 어설프게라도 마음을 모은 밤들이, 삶을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조금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 나를 조용히 축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쓸쓸함과 다정함은 늘 어깨를 맞대고 걷는다는 걸, 오늘밤, 다시 한 번, 깨달으며, 함께한 그대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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