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수전공인 국문과의 수강과목 ‘현대시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지원(三知院)에서 출판된 김준오님의 『시론』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시론』 제1장을 정리하면서 나는 시라는 장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마음이 되었다. 시는 단순히 감정을 토로하는 형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었고, 언어를 다루는 고유한 철학이었으며, 무엇보다 존재를 드러내는 섬세한 예술이었다. 시를 모방, 표현, 효용, 구조의 관점으로 나누어 사유하는 일은 마치 하나의 풍경을 여러 빛깔의 렌즈로 번갈아 바라보는 일이기도 했다. 각기 다른 각도에서 그려진 시의 얼굴은 상반되면서도 서로를 보완했다. 그리고 그 복잡한 구조 속에서 나는 시의 매혹적인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동일화의 원리’였다. 자아가 세계 속으로 스며들거나, 세계가 자아의 정서에 물드는 방식—이 감응의 흐름이야말로 내가 시를 읽으며 어렴풋이 느껴왔던 정서의 진동이었다.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도 내 마음처럼 우울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세계를 감각하는 자아로서의 감정과 그 감정을 담아내는 언어 사이에서 시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정을 걷다 문득 계절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겨울의 잔재가 채 가시지 않은 가지 위로, 작은 꽃망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바람은 더 이상 싸늘하지 않았다. 봄은 말없이 도착했고, 나무들은 느릿한 언어로 자신의 계절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벚꽃은 아직 만개하지 않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조차 시처럼 느껴졌다. 꽃은 말하지 않지만, 언어보다 많은 것을 전하고 있었다.
벚꽃은 늘 내게 시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피기 직전의 고요, 만개한 순간의 찬란함, 그리고 지고 난 뒤의 적막한 여운.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시와도 같다. 시는 찰나의 감정을 언어 속에 압축해 영원으로 바꾸는 일이라면, 벚꽃은 그 과정을 고스란히 살아내는 생명이다. 나는 그 아래를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마치 쓰이지 않은 문장처럼 마음 위에 앉고, 아직 쓰이지 않은 시들이 내 안에서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 시를 쓰지 않는다. 아니, 쓴 적은 있지만 시라고 부르기엔 부끄러운 메모들이 전부다. 그러나 이번 『시론』 과제를 정리하면서, 시를 쓴다는 일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는 감정의 흐름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재에 대한 민감한 응답,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와 감응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는 언어를 통해 열린다’는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는 세계를 구성하는 틀이 아니라, 세계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언젠가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언어의 구조와 의미를 공부하고, 시적 자아에 대해 사유하며, 감정을 어떻게 언어화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 시간이 언젠가는 나만의 목소리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직은 어설프고 느리지만, 언젠가 이 봄의 기억, 이 벚꽃 아래의 떨림, 시론을 정리하며 느꼈던 그 정서의 층위들이 나의 문장으로 피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은 시를 배우는 계절이다. 꽃은 피고, 나는 시를 꿈꾼다. 언젠가, 말없이 흩날리던 벚꽃처럼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을 써내는 날이 오기를, 아직 오지 않은 문장을 위해, 마음속에 조용히 숨을 고른다.
제1장 시와 언어
01절 시의 정의
Ⅰ 명칭의 문제
시(詩, poetry)의 명칭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져 옴.
동양에서는 ‘시(詩)’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으며, 이는 《시경(詩經)》에서 유래한 것으로, 감정을 노래하는 말이라는 전통적 정의를 지닌 것이고, 서양에서는 ‘포에지(poetry)’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리스어 poiesis에서 유래하였으며, 창조하는 행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명칭에서 드러나는 차이점
문화권 명칭 어원 또는 의미 강조점
동양 詩 (시) 감정을 노래함 감정 표현, 정서
서양 poetry (포에지) poiesis: 만들다, 창조하다 언어적 창조, 형식
따라서 ‘시’라는 말이 어떤 전통에서 비롯되었는가에 따라 시의 개념과 본질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시’라는 말이 단순히 운율 있는 문학 장르를 넘어, 언어의 예술적 형식 전반을 아우르는 용어로 확장되었다.
Ⅱ 시의 관점과 가치 기준
모방론적 관점
시는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예술이라는 관점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예술 이론이다. 이 관점에서 시는 자연, 인간, 사회, 사물 등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시의 가치는 현실을 얼마나 진실되고 효과적으로 모사(模寫)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고 본다.
1) 핵심 특징
예술 = 모방(mimesis)
시인은 현실의 모사자이다. 시의 참된 가치는 현실 세계를 얼마나 정확하고 의미 있게 재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2) 비판적 시각
플라톤은 시가 현실의 ‘모사’일 뿐 아니라 이차적 모방에 불과하다고 하여 이데아(진리)에서 멀어진 것이라 보았음.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단순한 현실 복제가 아니라 인간 행동의 본질을 통찰하는 구조적 재현으로 보았음. 간단히 말해, 모방론적 관점은 시를 현실 세계의 반영으로 보며, 그 진실성과 재현 능력을 중심으로 가치를 판단하는 이론이다.
2. 표현론적 관점
시는 시인의 내면 세계나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시를 외부 세계의 모방이 아니라, 시인 개인의 주관적 정서와 내면의 표출로 본다. 시의 가치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시인의 감정과 개성을 표현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1) 핵심 특징
예술 = 자기 표현
시인은 감정을 언어로 형상화하는 창조자이다. 시의 중심은 정서, 감성, 자아의 드러남이다.
2) 관련 사조 및 인물
낭만주의 시기 이후 확산된 관점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워즈워스, 김소월, 한용운 등이 있다. 이들은 시를 심정의 자연스러운 흐름, 영혼의 고백으로 여겼다. 이처럼 표현론적 관점은 시를 시인의 내면을 진실하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보고, 그 표현의 진정성과 감동을 시의 가치 기준으로 삼는 이론이다.
3. 효용론적 관점
시는 도덕적, 사회적, 교육적 가치를 지닌 유용한 도구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시를 단순한 미적 표현이 아니라, 삶과 사회에 실질적으로 이로운 영향력을 미치는 글로 간주한다. 시의 가치는 정서를 순화하고, 도덕을 함양하며, 공동체를 계도하는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1) 동양의 효용론: 풍교론(風敎論)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시가 풍속을 교화하는 도구라는 관점이 존재했으며, 이를 풍교론이라 부른다. 《시경(詩經)》에 기반한 이론으로, 시는 백성의 정서를 반영하고, 임금은 이를 통해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시는 감정을 표현하는 동시에 도덕과 정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2) 관련 사조 및 시문학
개화기 시가에서는 국민 계몽, 애국심 고취, 근대화 이념 전달 등을 시의 중요한 기능으로 삼았다. 참여시, 노동시, 정치시 등에서도 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수단, 즉 교조적 기능을 띤다. 이들 시는 종종 계몽적이거나 선동적인 어조로 독자의 인식을 고양하고 행동을 유도하려 한다.
3) 핵심 특징
예술 = 사회적·도덕적 효용의 도구
시인은 정신을 계도하고 현실을 개선하려는 사회적 사명자이다. 시의 중심은 교훈성, 계몽성, 실천성이다.
4) 대표 인물 및 사상
서양의 호라티우스는 시의 목적을 "즐겁게 하며 유익하게 하라" (dulce et utile)고 말하였다.
동양의 공자는 《논어》에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며, 시의 윤리적·정치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5) 요약
효용론적 관점은 시를 정서적 위안과 도덕적 가르침을 제공하며, 사회를 개선하고 공동체에 유익함을 주는 예술로 간주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관점은 동양의 풍교론, 개화기 계몽시, 현대의 참여시와 정치시 등에 반영되어 있으며, 시가 교조적이고 실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4. 구조론적 관점
시는 언어 자체의 구조와 형식 안에서 의미를 생성하는 자율적 언어 예술이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시를 외부 세계나 시인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시 내부의 언어적 관계와 구조 속에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체계로 본다. 시의 가치는 그 내부에 존재하는 형식, 구조, 리듬, 운율, 반복, 대칭 등 언어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판단된다고 본다.
1) 핵심 특징
예술 = 언어 구조의 자율적 조직
시인은 언어를 조형하는 창조자이며, 시는 자체 언어 체계로 의미를 구성하는 언어 구조물이다. 시의 중심은 형식, 구조, 기호의 배열, 언어 간 관계성이다.
2) 배경 및 관련 이론
20세기 구조주의 언어학과 러시아 형식주의, 프랑스 구조주의 비평에서 발전하였다. 로만 야콥슨,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등의 이론가들이 시를 언어 구조로 분석하였다.
3) 구조론적 접근에서의 시 읽기
시를 분석할 때 외부 맥락(작가, 시대, 감정 등)을 배제하고, 시 안에 존재하는 언어적 구조, 반복 패턴, 변형 규칙, 대비 구조, 은유와 환유의 배치 등을 중심으로 읽는다. 시는 의미 전달의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는 언어적 사건으로 간주된다.
4) 요약
구조론적 관점은 시를 외적 반영이나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언어 내부의 구조적 질서 속에서 의미를 자율적으로 생성하는 예술로 이해하며, 시의 가치는 그 구조적 완결성과 언어의 조형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이론이다.
Ⅲ 서정시의 장르적 특징
시적 세계관
시적 세계관은 서정시가 형성하는 정서적·심미적·상징적 세계의 인식 방식을 의미한다. 서정시는 현실 세계를 객관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시인의 감정, 감각, 내면의 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세계를 언어로 창조한다. 이 세계는 이성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이미지, 객관보다는 주관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서정시에서는 특히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즉 자아와 세계가 일체감을 이루며 하나로 융합되는 체험이 중심이 되며, 이는 시적 주체가 세계 속으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는 서정적 직관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시적 세계는 언어의 함축성과 상징성, 음악성을 통해 드러나며, 현실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질서와 감각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1) 핵심 특징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즉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이 시적 체험의 핵심 구조이다. 주관적 감정과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세계 인식이 중심이다. 감각, 이미지, 상징에 의한 세계 형성이 두드러지며, 논리적 서술보다는 정서적 울림이 강조된다. 시적 주체는 세계의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와 합일되는 존재로서의 자아로 등장한다.
2) 요약
시적 세계관은 서정시가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는 내면적이고 상징적인 세계로,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일체감 속에서 감정과 이미지가 주도하는 독자적 질서를 형성하는 예술적 공간이다.
2. 서정적 자아
1) 역사적 자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회적‧역사적 정체성을 갖는 자아이다. 특정 시대나 사회 속 위치에 따라 규정되며, 정치·문화적 맥락 속에서 파악된다.
예: 민족주의 시에서 등장하는 ‘국민의 자아’ 혹은 ‘역사의 증인’으로서의 자아
2) 논리적 자아
이성과 사고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설명하는 자아이다. 철학적 사유, 과학적 탐구, 논증적 판단을 수행하는 자아로, 합리성이 중심이 된다. 주로 산문적 글쓰기나 분석적 담론에서 드러나는 자아의 형태이다.
3) 실용적 자아
현실 세계에서 목적을 추구하고 행동하는 자아이다. 생존, 효율, 실천을 중심으로 하며, 경제적·사회적 관계 속에서 기능한다. 일상적 삶의 주체로서 현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자아이다.
4) 서정적 자아
서정적 자아는 서정시 속에서 나타나는 감정적, 심미적, 상징적 체험을 담당하는 자아이다. 서정적 자아는 이성이나 실용성보다 감성, 직관, 정서적 울림을 중심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는 존재이다. 이 자아는 현실 세계의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내면적 체험과 정서의 진실성에 근거하여 세계를 인식하고 형상화한다. 종종 자연, 사물, 타자와의 일체감 속에서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체험을 수행한다.
① 핵심 특징
주관과 객관, 감정과 이성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이고 세계와의 접촉없이도 존재하는 자아다. 감정과 정서를 중심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자아이다.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 즉 자아가 세계 속에 몰입하거나 세계가 자아의 감정으로 형상화되는 특징을 지닌다. 시적 언어를 통해 상징과 이미지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주체이다. 시간성과 현실성보다는 순간성과 초월성에 더 가까운 자아이다.
② 요약
서정적 자아는 역사적·논리적·실용적 자아와 달리, 정서와 감각, 상징과 이미지로 세계를 체험하고 표현하는 시적 주체로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기반으로 내면의 울림을 형상화하는 예술적 자아이다.
3. 동일화의 원리
동일화의 원리는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일체화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서정시의 본질은 자아와 세계의 분리보다는 합일, 즉 일체감의 체험에 있다. 이때 자아는 외부 세계를 단순히 관찰하거나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와 감응하며 그 속에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러한 동일화의 방식은 주로 동화(同化)와 투사(投射)로 나뉜다.
1) 동화(Assimilation)
자아가 세계 속으로 스며드는 방식, 즉 자아가 세계에 물들어가는 동일화이다. 자아가 외부 세계의 감각, 정서, 분위기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내면화한다. 자연이나 대상에 자신을 맞추며 동화되는 체험을 중심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자아는 세계의 한 부분이 되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거나 사물과 감응하는 상태로 나아간다.
예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자신도 흔들리는 마음을 느낄 때, 자아는 세계에 동화된 것이다.
2) 투사(Projection)
자아가 자신의 감정이나 내면 상태를 세계에 부여하는 방식, 즉 자아가 세계를 자신의 정서로 물들이는 동일화이다. 자아가 세계에 자신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덧씌우는 과정이다. 감정, 고통, 기쁨 등을 자연이나 사물에 투영함으로써, 세계가 자아의 정서로 채색된다. 세계는 더 이상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자아의 감정이 반영된 주관적 공간이 된다.
예시:
흐린 하늘을 보고 “하늘도 내 마음처럼 우울하다”고 말할 때, 자아는 세계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3) 요약 비교
구분 동화 투사
방향 세계 → 자아 자아 → 세계
작용 세계에 자아를 맞춤 자아의 감정을 세계에 부여
특성 수용적, 감응적 창조적, 감정적
핵심 체험 자아가 세계에 스며듦 세계가 자아의 내면을 반영
4) 결론
동일화의 원리는 서정시에서 자아와 세계가 구별되지 않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미적 체험의 핵심 구조이다. 이 원리는 자아가 세계에 물들어 들어가는 ‘동화’, 혹은 자아의 내면이 세계에 덧씌워지는 ‘투사’라는 두 방식으로 작동하며, 서정시의 깊은 감정적 울림과 상징적 언어를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4. 순간과 압축성
서정시는 순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포착하고, 이를 언어로 밀도 있게 응축하여 표현하는 장르이다.
1) 순간의 체험
서정시는 특정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는 이야기를 서술하기보다, 한 순간의 감정, 인상, 정서적 깨달음을 포착하여 형상화한다. 이때의 ‘순간’은 단순한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자아의 내면에서 세계와 감응하거나 깨달음을 경험하는 ‘심리적 시간’이다. 그 순간은 자아와 세계가 일체감을 이루는 직관적 통합의 시간이며, 시는 바로 그 찰나의 진실을 붙잡아 언어로 형상화한다.
2) 압축성의 원리
서정시는 짧은 언어 형식 안에 많은 의미와 감정을 응축하는 특징을 지닌다. 말해지지 않은 것, 암시된 것, 생략된 것들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게 하며, 독자는 함축된 언어의 결 속에서 다양한 감정과 이미지를 해석하게 된다. 이는 시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언어의 여백과 침묵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드러내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3) 핵심 특징 요약
요소 특징 역할
순간성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이 드러나는 감정적 찰나 서정시의 시간 구조를 형성
압축성 감정과 의미를 최소한의 언어로 응축 시적 밀도와 여운을 형성
4) 결론
서정시는 찰나의 감정을 정지된 언어 속에 응축시킴으로써, 순간의 체험을 영원한 시적 형상으로 전환하는 장르이며, 이 과정에서 압축성은 서정시의 미학적 깊이를 형성하는 본질적 특성이다.
5. 주관성과 서정
서정시는 자아의 내면적 감정과 정서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장르이며, 그 핵심은 주관성에 있다.
1) 주관성의 의미
주관성은 시적 자아가 자신의 감정, 생각, 체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표현하는 태도를 말한다. 서정시에서 세계는 객관적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감정과 시선에 의해 형상화된 세계로 재구성된다. 따라서 같은 대상을 두고도, 시인의 감정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이미지로 표현될 수 있다.
2) 서정의 본질로서의 주관성
서정시는 보편적 사실보다 개별적 감정, 논리적 설명보다 정서적 반응을 중시한다. 이때 표현되는 감정은 단순한 사적 감정이 아니라, 자아를 통해 정제되고 예술화된 정서이다. 주관적 체험은 시 속에서 상징, 이미지, 운율, 언어의 함축성을 통해 보편적 울림으로 승화된다.
2) 핵심 특징 요약
요소 특징 역할
주관성 자아의 감정과 체험을 중심으로 세계를 해석 시의 내용과 관점 형성
서정성 정서적 표현을 통해 독자와 정서적 교감 형성 시적 울림과 공감 유도
3) 결론
서정시는 주관적 정서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자아와 세계의 감정적 관계를 드러내는 장르이며, 그 본질은 감정의 직접적 표출이 아닌, 정제된 주관성 속에서 서정적 울림을 창조하는 데 있다.
6. 제시형식
서정시의 제시 형식은 자아의 감정이나 정서를 직접적으로 서술하기보다, 암시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표현 구조를 의미한다.
1) 직접 진술보다 간접 제시
서정시는 감정을 설명하거나 해석하지 않고, 이미지, 상징, 비유, 운율, 구조 등을 통해 정서를 ‘보이도록’ 구성한다. 이는 독자가 시의 감정을 느끼고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시는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에서 더 많은 의미와 정서를 전한다.
2) 함축과 여백의 미학
서정시는 언어의 절제와 생략을 통해 정서를 농축한다. 감정은 직설적 표현이 아닌 암시적 장치 속에서 드러나며, 독자는 제시된 이미지나 상징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정서에 이르게 된다.
3) 발화 구조의 특징
서정시는 단일 화자가 집중된 시점과 정서로 발화하는 경우가 많다. 시적 자아는 자신의 감정을 특정한 시간, 공간, 사물, 자연 현상에 투사하거나 동화시켜 표현한다. 이때 시는 논리적 전개보다는 정서적 흐름, 감각적 배열에 따라 구성된다.
4) 핵심 특징 요약
요소 특징 역할
간접성 정서를 암시적‧상징적으로 표현 독자의 정서적 해석 유도
함축성 절제된 언어로 의미를 압축 시적 밀도 형성
정서 중심의 발화 자아의 정서를 중심으로 언어가 전개 감정의 흐름을 언어로 조직
5) 결론
서정시는 자아의 감정을 직접 진술하기보다 이미지, 상징, 구조를 통해 정서를 간접적으로 제시하며, 언어의 함축성과 여백을 통해 독자의 감정 이입과 해석을 유도하는 형식적 특성을 지닌다.
02절 언어
Ⅰ 언어와 실제
문학과 언어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현실과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예술이며, 언어는 문학의 본질적 재료이다.
1) 문학은 언어 예술이다
문학은 회화나 음악처럼 물질적 재료를 사용하는 예술과 달리, 비물질적인 언어를 예술의 재료로 삼는다. 언어는 현실을 재현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상상적 세계를 창조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문학은 이러한 언어를 통해 인간의 경험, 정서, 사유를 상징적으로 재구성한다.
2) 문학 언어의 특성
문학 속 언어는 일상 언어와 달리, 정보 전달보다 정서 전달과 미적 효과를 중시한다. 이는 언어의 형식, 배열, 소리, 의미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며, 언어 그 자체가 작품의 의미와 정서를 구성하는 적극적인 요소가 된다. 특히 시에서는 운율, 이미지, 상징, 중의성 등을 통해 언어의 예술적 가능성이 극대화된다.
3) 언어와 실제의 관계
문학 언어는 현실 세계(실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선택하고 변형하며,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현실을 형상화한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문학적 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지닌 자율적 매체이다.
4) 결론
문학은 언어를 통해 인간의 현실과 내면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이며, 문학 언어는 일상 언어와 구별되는 예술적 장치로서, 실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감각하게 하는 창조적 매개체이다.
2. 대상. 의식. 언어
문학 언어는 대상(세계), 의식(자아), 언어(표현) 간의 관계 속에서 성립하며, 이 세 요소는 문학의 의미 형성과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삼각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관계는 폴 쿤즈의 ‘논증–표현–인식’의 삼원 구조와도 깊게 연결된다.
1) 대상: 인식과 형상의 바탕
대상은 시인의 감정이나 사고의 출발점이 되는 외부 세계 또는 경험의 계기이다. 자연, 사물, 사회, 타자 등의 외적 현실이 문학의 소재가 되며, 이는 자아의 의식 속에서 정서적 의미를 지닌 상징적 존재로 탈바꿈한다. → 쿤즈의 관점에서 이는 ‘인식(cognition)’에 해당하며,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화하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2) 의식: 감정과 의미의 중심
의식은 시적 자아가 대상을 지각하고 감응하며 해석하는 내면의 주체이다. 이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감정, 기억, 상상,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대상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 이는 ‘표현(expression)’에 해당하며, 자아의 내면이 언어를 통해 형상화되는 심미적 창조의 원천이다.
3) 언어: 의미 형상의 수단
언어는 의식이 대상을 인식하고 체험한 결과를 외화하는 표현 수단이자 매개체이다. 문학 언어는 정서적, 상징적, 암시적 형식으로 구성되며, 현실을 직접 반영하기보다 의식과 대상을 매개하여 새롭게 형상화한다. → 이는 ‘논증(argumentation)’의 차원에서 기능하며, 언어적 형식과 조직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 독자와의 소통 구조를 형성한다.
4) 쿤즈의 ‘논증–표현–인식’과 문학 구조의 대응 관계
쿤즈의 개념 문학적 대응 요소기능
인식 (Cognition) 대상 세계에 대한 감각과 의미화
표현 (Expression) 의식 자아의 감정과 정서의 창조적 표출
논증 (Argumentation) 언어 의미를 조직하여 전달하는 형식적 장치
이 세 요소는 각각 독립적이지 않으며, 상호작용 속에서 문학 언어의 의미와 감동을 창조한다. 문학 언어는 이 구조를 바탕으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고, 감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설득력 있는 정서적 체험을 제공한다.
5) 결론
문학 언어는 ‘대상–의식–언어’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며, 이는 쿤즈가 제시한 ‘인식–표현–논증’이라는 삼원 구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문학은 현실을 인식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언어로 의미를 조직함으로써 인간 내면과 세계를 예술적으로 중재하는 언어 행위이다.
3. 주술적 언어 의미론적 기호
문학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의미를 생성하고 감정과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힘을 지닌 언어이다. 이때 중요한 개념이 주술적 언어와 의미론적 기호이다.
1) 주술적 언어
주술적 언어란 언어가 단순히 사물을 지시하거나 설명하는 기능을 넘어서, 그 자체로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감정과 행위를 유발하는 힘을 지닌 언어를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주문이나 시가 신성한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던 전통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현대 시에서도 주술적 언어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언어를 통한 정서의 환기, 정화, 세계와의 교감을 실현한다.
예시:
“부르면 온다, 꽃이여.” – 김춘수의 「꽃」에서처럼,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존재를 발생시키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
2) 의미론적 기호
의미론적 기호란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만이 아니라, 그 기호가 내포한 감정, 정서, 상징 등을 포함한 복합적 의미 체계를 말한다. 이는 언어가 단순한 약속의 체계를 넘어서, 사회·문화·심리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의미작용을 하는 기호라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 언어는 바로 이 의미론적 기호의 작용을 극대화하여 감정, 상징, 이미지 등을 창조한다.
특징:
다의성: 하나의 단어가 여러 의미 층위를 가질 수 있다.
함축성: 명시되지 않은 정서와 의미가 독자의 해석을 통해 드러난다.
상징성: 특정 단어나 이미지가 보편적 정서를 환기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3) 관계와 의의
구분 정의 문학적 기능
주술적 언어/언어가 현실에 영향력을 미치는 마법적 언어/감정 이입, 정서 환기, 존재 창조
의미론적 기호/언어가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내포한 기호/상징 창출, 해석 유도, 의미 확장
문학은 이 두 언어적 작용을 통해 현실을 재현하는 동시에,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세계를 새롭게 체험하게 한다. 특히 서정시는 이 언어들의 감응성과 자율성, 상징성과 환기력을 활용하여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정서적으로 형상화한다.
4) 결론
문학 언어는 주술적 언어의 힘과 의미론적 기호의 복합성을 바탕으로, 단순한 전달이 아닌 정서와 상징의 생성 작용을 수행하는 예술적 언어이며, 이를 통해 문학은 독자에게 감각적이며 해석 가능한 세계를 제시한다.
4. 시어와 신화
시어(詩語)는 일상 언어와 구별되는 시적 감각과 상징성을 지닌 언어이며, 신화는 시어 속에서 반복적 이미지와 서사의 원형으로 작동하여 집단 무의식과 정서의 원형적 구조를 형성하는 기제이다.
1) 시어의 본질
시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감정, 정서, 상징, 이미지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언어이다. 시어는 의미의 밀도를 높이며,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 암시하는 함축성과 여백의 미학을 실현한다. 이러한 시어는 종종 현실의 직접적 재현이 아니라, 정서적 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2) 신화적 상상력과 시어
신화는 인간의 보편적 경험과 정서를 원형적 서사로 구조화한 상상 체계이다. 시인은 신화적 모티프나 인물을 시어 속에 도입함으로써,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정서와 연결하고 정서의 깊이와 상징성을 확장한다. 신화는 시 속에서 시간을 초월한 원형적 의미, 집단 무의식, 상징적 질서를 구성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예시:
‘태양’, ‘바다’, ‘죽음’, ‘모성’ 등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며 신화적 상징으로 기능함.
T. S.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서사적 파편과 신화적 인용을 통해 현대인의 정서를 드러내는 시가 대표적이다.
3) 시어와 신화의 관계
요소 정의 문학적 기능
시어 정서와 상징을 응축한 시적 언어 감정 표현, 미적 형상화
신화 집단 무의식과 원형적 상상력을 담은 서사 구조 상징 강화, 보편적 정서 환기
시어는 신화를 통해 더 깊은 정서적 층위와 상징적 의미를 획득하게 되며, 신화는 시어 속에서 개인적 언어를 집단적 상상으로 확장하는 통로로 작용한다.
4) 결론
시어는 감정과 이미지를 압축하는 예술적 언어이며, 신화는 그 시어에 상징성과 원형적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력의 구조이다. 이 둘의 결합은 시가 개인적 체험을 넘어 집단적 정서와 보편적 진실에 이르게 하는 문학적 힘을 형성한다.
5. 언어와 사물
문학 언어, 특히 시어는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단순한 지시 이상의 방식으로 다루며, 사물에 새로운 의미와 감정을 부여하는 예술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1) 일상 언어에서의 관계: 지시 기능
일상 언어에서 언어와 사물의 관계는 지시적이다. 즉, 언어는 사물을 명명하거나 지시하는 표지로 작동하며, 의미는 비교적 고정적이다. 예를 들어, "나무"라는 단어는 특정 사물(나무)을 가리키는 이름에 불과하다.
2) 문학 언어에서의 관계: 변형과 창조
시에서 언어는 사물을 단순히 지시하는 것을 넘어서, 감정과 정서를 이입하거나 상징성을 부여한다. 사물은 시인의 인식과 감정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며, 주관적 해석과 상징의 대상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시어 속 사물은 현실적 존재이면서도 시적 자아와 정서적으로 결합된 존재로 재탄생한다.
예시:
“돌”은 단순한 사물이지만, 시에서는 침묵, 고통, 단단함, 절망, 영원성 등 다양한 상징으로 기능할 수 있다.
3) 언어와 사물의 상호작용
시는 사물에 내재된 상징성과 감각을 발굴하거나 새롭게 부여하는 언어적 행위이다. 이는 자아가 언어를 통해 사물과 교감하며, 세계를 감각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언어는 사물을 다시 보게 하고, 새롭게 인식하게 하며, 감정을 투사하게 하는 창조적 힘이 된다.
4) 핵심 특징 요약
구분 일상 언어 문학 언어(시어)
관계 지시적 감정적·상징적·재구성적
기능 명명, 정보 전달 의미 변형, 정서 환기
사물의 위상 고정된 대상 감정이입된 존재, 상징적 기호
5) 결론
문학, 특히 시에서 언어는 사물을 단순히 지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상징을 입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예술적 수단이며, 이를 통해 시인은 세계와 교감하고 현실을 재구성한다.
Ⅱ 존재와 언어: 존재론적 현상학
문학 언어는 단순한 의미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를 드러내고 체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존재론적 현상학에 기반한다.
1)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현상학 개요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이 존재(Sein) 자체보다 존재자(Seiendes) 즉, 개별 사물이나 실체에만 관심을 가져왔다고 비판하며, 존재 그 자체를 사유의 중심으로 되돌리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을 존재를 물으며 살아가는 존재(현존재, Dasein)로 정의하고, 존재는 우리가 대상에 관심을 갖고 사유하고 언어화하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 보았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언어와 사유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을 추구하였다.
2)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유명한 언명을 통해, 언어는 단순히 사물을 지시하거나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장(場)이자 사건이라고 보았다. 특히 시는 존재가 가장 순수하고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언어 형식으로 간주된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존재를 호명하고 여는 자, 즉 존재의 현현을 가능하게 하는 자이다.
3) 현상학적 언어 인식과 문학
문학 언어는 대상의 본질을 설명하거나 정의하기보다, 감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울림을 통해 사물과 존재가 ‘그 자체로’ 드러나는 장면을 구성한다. 이는 현상학의 태도와 일치하는데, 현상학은 세계를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자 한다. 문학, 특히 시는 언어를 통해 사물과 자아가 서로를 감응하며 존재의 깊이에 접근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4) 문학에서의 적용
시인은 언어를 통해 사물의 고유한 존재 방식을 드러내며, 독자는 그 언어를 통해 존재를 다시 보고, 새롭게 체험한다. 이때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개방성과 감각적 현존을 매개하는 예술적 공간이 된다. 설명이나 분석이 아니라, 이미지와 정서, 여백과 침묵 속에서 존재는 문학적으로 펼쳐진다.
5) 핵심 개념 요약
개념 의미 문학적 적용
존재의 집/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자리이다/시는 존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언어 행위
현상학적 태도/사물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려는 자세/설명이 아닌 감각적 드러남, 이미지 중심의 서술
열린 의미/언어는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시어는 해석의 여백과 다층적 상징
6) 결론
존재론적 현상학은 언어를 존재를 드러내는 근원적 방식으로 이해하며, 문학 언어는 존재와 사물, 자아와 세계가 감응하며 열리는 장(場)을 형성한다. 시는 세계를 분석하지 않고, 세계가 말하도록 조용히 귀 기울이는 언어이다.
{사례 분석: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와 존재론적 언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1) 시어 속 존재의 드러남
이 시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행위는 단순한 언어적 호출이 아니다. 이는 하이데거가 말한 바와 같이, 존재를 현현시키는 언어의 행위, 곧 존재를 존재로 있게 하는 말 걸기이다. ‘그’는 불리기 전까지 익명의 존재자에 불과하지만, 시적 자아가 그를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그는 비로소 고유한 존재, 즉 ‘꽃’이 된다. 여기서 ‘꽃’은 생물학적 개체가 아니라, 존재의 정체성과 본질이 드러나는 형상이다.
2) 하이데거적 해석: 말은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는 존재가 언어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고, 현존하게 된다고 보았다. 김춘수의 시는 이 철학을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에게 고유한 자리와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며, 그 존재는 언어에 의해 드러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열림’을 경험하게 된다. 이 시는 단지 관계의 시작이나 감정의 연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존재로서 빛나는 사건, 존재의 개방과 현상을 언어로 체험하게 한다.
3) 현상학적 감응과 시의 구조
이 시는 대상(그)과 자아(나), 그리고 언어(이름 부르기)라는 세 요소의 감응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앞서 제시한 대상–의식–언어의 구조와도 일치하며, 쿤즈의 인식–표현–논증 삼각 구조에도 대응한다. 자아는 대상을 감응적으로 인식하고 그 감정과 의미를 표현적 행위로 이름을 불러내며 그 과정을 언어적으로 구조화(논증)함으로써 존재는 언어를 통해 감각되고, 공명하며, 형상화된다.
4) 결론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는 존재론적 현상학의 시적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언어는 존재를 명명하고 열어주는 힘이며, ‘이름 부르기’는 존재를 이 세상 속에서 고유하고도 감각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시는 존재가 언어 속에서 비로소 피어난다는 하이데거적 사유를 한국적 시어로 정제한 대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Ⅲ 시성과 시문법
기호와 의장
시는 언어 기호의 예술적 조직을 통해 정서와 의미를 창조하는 형식이다. 이때 기호는 시의 표현 요소이며, 의장(意匠)은 그 기호를 배열하고 구성하는 미학적 전략을 의미한다.
1) 기호: 의미와 감정을 담는 언어 단위
기호는 언어의 기본 단위로, 의미를 생성하고 소통하는 표식이다. 시에서는 하나의 단어, 이미지, 어조, 심지어 여백까지도 기호로 작동한다. 시적 기호는 일상 언어처럼 단순히 대상을 지시하지 않고, 정서와 상징, 암시를 내포하는 다층적 의미체계를 형성한다. 시 속 기호는 종종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을 띠며, 독자의 감각과 해석을 통해 의미가 활성화된다.
예시:
‘달’이라는 시어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그리움, 고독, 순수함, 여인상 등을 함축하는 기호로 사용된다.
2) 의장(意匠): 기호를 배열하는 미적 구성 원리
의장은 시적 기호를 조직하고 배열하는 방식, 즉 시적 형식과 구조를 창안하는 미학적 장치이다. 반복, 대구, 대조, 행갈이, 운율, 구문 전환, 이미지 배열 등의 방식이 의장의 예에 해당한다. 의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인의 미적 감각과 세계 인식이 구체화되는 창조적 전략이다. 이를 통해 시는 단어 그 자체를 넘어서, 구조적 리듬, 긴장, 균형, 감정의 흐름을 구성한다.
3) 기호와 의장의 관계
기호는 시의 재료, 의장은 그 재료를 예술적으로 조형하는 원리이다. 기호가 지닌 상징성과 정서는 의장을 통해 의미의 구조로 배열되며, 독자는 이 구조 속에서 정서의 흐름, 의미의 긴장, 리듬의 조화를 체험하게 된다. 시의 창작은 이 둘의 상호작용에 기반한 언어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다.
4) 요약 비교
구분 기호 의장
정의 의미를 담은 언어 표현 단위 기호를 배열·조직하는 형식 원리
기능 감정과 상징의 매개 정서와 의미의 미적 구성
예시 ‘달’, ‘눈물’, ‘바람’ 같은 시어 반복, 대조, 행갈이, 이미지 배열
5) 결론
기호와 의장은 시를 구성하는 두 축으로, 기호는 감정과 의미의 단위로 기능하고, 의장은 그 기호들을 예술적으로 조직하는 전략이다. 시는 이 두 요소의 긴밀한 결합을 통해 독자에게 미적 감동과 정서적 깊이를 제공하는 언어 예술이다.
2. 내포
내포는 기호가 지닌 개념적 의미, 정서적 함의, 상징성 등을 포함하는 의미의 깊이를 말하며, 시어가 단순한 사전적 의미를 넘어 다층적 해석 가능성과 감정적 깊이를 지니게 하는 핵심 개념이다.
1) 내포의 개념
언어는 일반적으로 외연(denotation)과 내포(intension)의 두 가지 의미 작용을 가진다. 외연이 한 단어가 가리키는 객관적이고 지시적인 범위라면, 내포는 그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속성, 정서, 상징, 개념적 맥락을 가리킨다.
2) 시어에서의 내포
시어는 일상어보다 훨씬 강한 내포적 성격을 지닌다. 하나의 시어는 정서적 떨림, 상징적 이미지, 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독자는 이를 감각적으로 해석하고, 경험적으로 수용한다.
예시:
‘불’이라는 시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파괴, 정화, 분노, 혁명, 신성함 등 다양한 내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3) 내포의 미학적 기능
내포는 시가 감정과 의미를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기반이 되며, 언어의 다의성, 함축성, 상징성, 해석의 개방성을 가능하게 한다. 시어의 내포는 독자와의 해석적 교감을 유도하며,
독자는 각자의 경험과 정서를 바탕으로 의미를 갱신하게 된다.
4) 요약 정리
구분 외연 내포
의미 작용 객관적 지시 의미 개념적·정서적·상징적 의미
성격 고정적, 단일적 다층적, 함축적
시어에서의 역할 지시 대상 제공 감정과 해석의 깊이 생성
5) 결론
내포는 시어가 외연적 의미를 넘어 다층적인 정서와 상징을 함축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로, 독자는 시어의 내포를 통해 감정을 공명시키고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적 체험에 이르게 된다.
3. 은유원리와 환유원리: 언어선택과 배열
시적 언어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비유와 상징을 통해 감정과 의미를 생성한다. 이때 은유(metaphor)와 환유(metonymy)는 시의 언어 선택과 배열을 지배하는 두 가지 인식 원리이다.
1) 은유 원리: 유사성에 기반한 언어 선택
은유는 서로 다른 두 사물이나 개념 사이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A를 B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감각과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시적 언어에서 은유는 정서적 몰입, 상상력의 확장, 깊이 있는 이미지 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예시:
“그의 눈은 깊은 호수였다.” → 눈과 호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깊이’, ‘고요함’이라는 유사성을 통해 연결된다.
2) 환유 원리: 인접성에 기반한 언어 배열
환유는 어떤 대상이나 개념을 그것과 물리적‧논리적으로 인접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부분과 전체, 원인과 결과, 속성과 본질 사이의 연결성에 주목하여 의미를 전달한다. 시에서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통해 현실감, 정서적 간접성, 상징성을 드러낸다.
예시:
“청와대가 입장을 발표했다.” → 실제 발표 주체는 사람(대통령)이지만, 공간인 ‘청와대’로 환유된다.
3) 언어 선택과 배열의 원리로서의 기능
구분 은유 원리 환유 원리
작용 방식 유사성에 의한 대체 인접성에 의한 대체
중심 기능 감정의 이입, 상상력의 전이 사실성, 상징적 암시
언어 선택 감정 중심, 이미지 창조 구체 중심, 상징 환기
배열 방식 감각적 전이 구조 논리적 연쇄 구조
은유는 시적 언어의 선택(selection)을 지배한다.
→ 표현할 대상을 무엇으로 바꿔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
환유는 언어의 배열(combination)을 지배한다.
→ 어떤 맥락 속에 연결된 요소들을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
4) 야콥슨의 시이론과의 연관
러시아 형식주의자 로만 야콥슨은 시적 언어의 구조를 은유적 경향과 환유적 경향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시는 은유의 예술, 소설이나 사실적 담론은 환유의 예술이라 보았다.
5) 결론
은유 원리와 환유 원리는 시적 언어의 선택과 배열을 이끄는 두 축이며, 시인은 이 두 원리를 활용해 현실을 감각적으로 변형하고 정서를 심화시킨다. 은유는 유사성에 기반한 이미지 생성의 방식이고, 환유는 인접성에 기반한 상징적 배열의 원리이다.
4. 의미시와 체험시
의미시와 체험시는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태도와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개념으로, 시가 무엇을 말하는가(의미 중심)와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정서 중심)의 관점 차이를 반영한다.
1) 의미시(意味詩)
시가 전달하는 내용, 주제, 교훈적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는 시 유형 또는 독서 방식이다. 시의 사상적 내용, 메시지, 논리적 해석이 중심이 된다. 독자는 시가 무엇을 말하려는가, 무엇을 비판하거나 가르치려는가를 중심으로 해석한다. 감정보다 의미의 명확성과 논리적 구조가 강조된다.
예시:
개화기 시가, 민족주의 시, 참여시 등에서 주제 중심적 읽기가 해당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이별에 대한 체념’이라는 의미 중심으로 해석할 때 의미시에 해당한다.
2) 체험시(體驗詩)
시를 통해 정서적 감각, 이미지, 분위기, 심상 등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시 유형 또는 독서 방식이다. 시를 감각적으로 수용하며, 이미지나 리듬, 상징에서 오는 정서적 울림이 중심이 된다. 독자는 시의 의미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기보다, 정서와 분위기를 공감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감상한다. 시의 언어는 지시적인 기능보다 체험을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예시:
김춘수의 「꽃」, 이상이나 김기림의 이미지 중심 시편 등은 의미보다 감각적 체험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3) 비교 요약
구분 의미시 체험시
중심 요소 주제, 메시지 감정, 정서, 이미지
독자 태도 해석, 이해 공감, 몰입
언어 기능 의미 전달 감각 환기
특징 논리적, 설명적 함축적, 정서적
관련 경향 교훈시, 참여시 상징시, 이미지 중심 시
4) 결론
의미시는 시의 논리적 내용과 주제에 집중하는 방식이며, 체험시는 시의 감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흐름을 중심으로 몰입하는 방식이다. 시는 이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닐 수 있으며, 독자의 수용 태도에 따라 서로 다른 차원의 감상이 가능하다.
5. 서술시와 묘사시
서술시와 묘사시는 시적 언어가 현실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따라 구분되는 시의 표현 방식이다. 이는 시의 언어 태도, 즉 말하기 중심인가, 보여주기 중심인가의 차이에 기반한다.
1) 서술시(敍述詩)
화자가 직접적으로 사건, 정서, 사상, 인식 등을 말해주는 방식의 시이다. 직접적 진술, 시간의 흐름, 이야기 구조가 특징이다. 화자가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감정이나 인식을 명확하게 전달하며, 시의 흐름은 비교적 논리적이고 서사적이다. 시적 자아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며, 독자는 화자의 말에 따라 사유를 공유하게 된다.
예시:
신석정의 「나는 왕이로소이다」, 백석의 「통영」 등 사건의 전개나 서술적 흐름을 통해 의미가 전달되는 시
2) 묘사시(描寫詩)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이미지, 풍경, 정황을 묘사함으로써 정서를 드러내는 시이다. 말보다는 보여주기(showing)에 초점을 맞추며, 사물의 형태, 색감, 움직임 등 감각적 요소를 통해 정서와 분위기를 암시한다. 시적 자아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며, 독자는 묘사된 장면을 통해 정서를 체험하게 된다. 은유, 상징, 이미지가 주요한 표현 수단이다.
예시:
정지용의 「향수」, 김기림의 「파초」, 김춘수의 「꽃」 등 감각적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정서를 유도하는 시
3) 비교 요약
구분 서술시 묘사시
중심 방식 말하기(telling) 보여주기(showing)
표현 태도 직접 진술 감각적 이미지 제시
시적 자아 전면적 등장 은근히 배제됨
독자의 수용 해석 중심 체험 중심
특징 논리적, 설명적, 서사적 상징적, 암시적, 정서적
4) 결론
서술시는 시적 자아가 직접적으로 세계를 진술하는 방식의 시이며, 묘사시는 사물과 장면을 감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정서를 암시하는 방식의 시이다. 시인은 두 방식을 상황에 따라 혼합적으로 활용하며, 독자는 이를 통해 다양한 정서적·미학적 체험을 하게 된다.
6. 시적 개성과 문체소
시적 개성은 시인이 지닌 고유한 언어 감각과 정서 표현 방식, 문체소(文體素)는 그 개성이 언어적으로 구현되는 형식적 표현 요소를 의미한다. 시는 이 두 요소를 통해 시인의 내면과 미적 세계관을 독자적으로 드러내는 예술 언어를 형성한다.
1) 시적 개성
시적 개성은 시인이 시에서 발휘하는 고유한 언어 감각, 정서 처리 방식, 세계 인식 태도를 말한다. 이는 시인이 사용하는 어휘, 이미지, 정서의 농도, 말걸기 방식 등에서 나타나며, 시의 목소리, 분위기, 리듬에 고유한 색채를 부여한다. 시적 개성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인의 존재 방식과 미적 윤리의 반영이다. 동일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시인의 개성에 따라 형식과 어조, 정서의 결이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예시:
김춘수: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 존재론적 시의식
윤동주: 고백적 정서, 양심의 언어, 순결한 자아의 어조
이상: 실험적 언어, 파괴된 문법, 초현실적 이미지
2) 문체소(文體素)
문체소는 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언어적 표현 요소이며, 문체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의 스타일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문체소는 시어 선택, 문장 구조, 어조, 반복, 구문 전환, 행갈이 방식, 리듬감 등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시인의 시세계 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작품의 통일성과 개성을 형성한다. 문체소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개성의 구조화된 표현 양식이다.
3) 관계와 상호작용
요소 정의 기능
시적 개성 시인의 고유한 감정, 사유, 언어 감각 작품의 정체성, 시인의 세계관 반영
문체소 개성을 구체화하는 언어적 표현 장치 개성의 형식화, 시적 분위기 조성
시적 개성은 내용의 차원, 문체소는 형식의 차원에서 드러나며, 둘은 결합하여 시에 독특한 미감과 인상을 부여한다.
4) 결론
시적 개성은 시인의 내면과 사유 방식이 언어를 통해 발현된 예술적 특성이며, 문체소는 그 개성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표현 장치이다. 시는 이 두 요소를 통해 고유한 언어 세계를 구성하며, 독자에게 강렬한 정서적·미학적 인상을 남긴다.
7. 해사체와 통사체
해사체(解事體)와 통사체(通辭體)는 시의 언어가 문장을 어떻게 구성하고 흐름을 형성하는가에 따라 구분되는 표현 방식이다. 이는 시의 문법적 구조와 시적 감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1) 해사체(解事體)
문장의 문법적 구조가 완결되지 않은 채 끊어져 배열되는 시적 문장 구성 방식이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 등 문장의 필수 요소들이 생략되거나 파편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문장이 논리적이고 문법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암시적이며 정서 중심적이다. 독자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미지와 정서,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해사체는 시어의 긴장감, 여백, 상징성을 강조하며, 시의 언어 실험성과 개방성을 보여준다.
예시:
물에 젖은 종이 위
불 꺼진 전등
그 아래
너의 눈빛 – (문장이 완결되지 않음. 이미지와 정서로 구성됨)
2) 통사체(通辭體)
완결된 문법 구조를 갖춘 문장이 일정한 통사적 흐름을 따라 배열되는 시적 문장 구성 방식이다.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가 분명히 드러나고, 문법 구조가 일반적인 문장법을 따르며 연결된다. 의미는 논리적으로 전달되며, 시적 감정은 구조 속에서 명료하게 형상화된다. 독자는 의미를 해석하며 시의 주제와 메시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
예시:
나는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
어제처럼, 바람이 불고 있었다.
3) 비교 요약
구분 해사체 통사체
문장 구조 파편적, 비문법적 완결된 문장 구조
의미 구성 암시적, 감각적 논리적, 명시적
독자 수용 정서적 체험 중심 의미 해석 중심
시적 효과 이미지 중심, 여백 강조 내용 중심, 메시지 강조
4) 결론
해사체는 시의 언어를 파편적이고 감각적으로 구성하여 정서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통사체는 문법적 완결성과 논리적 흐름을 통해 의미 전달을 중시한다. 시인은 이 두 표현 방식을 상황과 목적에 따라 선택하거나 혼용하여 시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8. 형태시와 언어위기
형태시는 시의 언어적·시각적 형식을 실험하는 현대시의 한 양상이며, 언어 위기는 이러한 시적 실험이 출현하게 된 근본 배경을 이룬다. 이 항목은 시가 언어의 한계와 해체, 그리고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하는 문학 장르임을 보여준다.
1) 언어 위기: 현대시의 출발점
20세기 이후, 시는 언어의 의미 전달 기능이 더 이상 진실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위기 의식을 직면하게 되었다. 과잉된 정보, 획일화된 문법, 정치적 언어의 오염 속에서 언어는 진실을 가리는 수단이 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시는 기존 언어 질서에 대한 불신과 해체 충동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어 형태를 모색하게 되었다.
관련 배경: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전후(戰後)의 실존주의 문학,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 등이 언어 위기를 심화시켰다.
2) 형태시: 언어 위기 속에서의 실험
형태시(形態詩)는 시의 전통적인 문법과 형식을 해체하고, 언어의 물질성, 시각성, 구조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시적 실험 형식이다. 언어를 의미의 수단이 아니라, 시각적·청각적 경험의 대상으로 전환한다. 시의 형식은 더 이상 내용의 종속물이 아니라, 의미 생산의 주체가 된다. 언어가 ‘말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탐색하며, 시는 언어의 침묵과 파열, 틈과 공백을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삼는다.
예시:
이상의 시에서 보이는 문장 구조의 파괴, 단어의 낯설게 하기
김수영의 「폭포」에서 보이는 반복과 단절의 리듬
구체시(concrete poetry): 언어를 도형처럼 배치하여 시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
3) 형태시와 언어 위기의 관계
요소 언어 위기 형태시
인식 기반/언어의 의미 전달 기능에 대한 불신 언어 형식의 전환과 실험
핵심 문제/말해질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언어의 외형과 구조를 통한 의미 창출
예술적 태도/기존 언어 체계의 해체 새로운 시적 언어 형식의 구성
4) 결론
형태시는 언어의 위기 상황 속에서 등장한 시적 대답으로, 언어를 단순한 의미 전달의 도구가 아닌, 시각적이고 구조적인 예술 재료로 재인식한다. 이러한 시적 실험은 언어의 침묵과 파열 속에서도 시가 새로운 의미와 감각을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Ⅳ 시제와 서정적 시간
시에서의 시제(時制)는 단순한 시간 표현이 아니라, 서정적 자아가 시간을 인식하고 체험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특히 서정시에서는 과거·현재·미래라는 객관적 시간 구분을 넘어서, 정서가 응축된 '서정적 시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 시제: 문법적 시간 구조
시제는 문법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구분을 나타내는 장치이다. 시의 시제는 단순한 시간 정보의 전달을 넘어서, 화자의 정서와 인식 태도를 반영한다. 같은 ‘과거’ 시제라도, 회상, 후회, 그리움, 환상 등 다양한 정서를 담을 수 있다.
예시: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정서적 기억의 현존화를 담고 있음.
2) 서정적 시간: 내면화된 시간의 구조
서정적 시간은 시적 자아의 감정, 기억, 직관에 따라 내면적으로 구성된 시간이다. 이는 연속적이고 객관적인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정서의 농도, 기억의 깊이, 감각의 순간 속에서 체험되는 심리적 시간이다. 과거는 현재 안에 살아 있고, 미래는 예감되며, 시간의 구분은 흐릿해진다. 이로 인해 시는 종종 순간 속에 영원을 담거나,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감정의 회로를 형성한다.
3) 시적 언어와 시간의 작용
시어는 순간을 정지시키고, 감정을 응축하는 힘을 지닌다. 시적 순간은 종종 ‘찰나’의 감정이지만,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의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이로써 시는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형상화하는 예술로 작동한다.
예시:
정지용 「향수」: 유년기의 한 순간이 현재의 정서와 중첩되며 ‘잊히지 않는 시간’으로 재현됨
김춘수 「꽃」: 이름을 부르는 찰나에 존재가 드러나는, 존재의 시간으로서의 시적 순간
4) 요약 비교
구분 문법적 시제 서정적 시간
기준 과거, 현재, 미래의 객관적 시간 자아의 감정과 기억에 따라 구성된 시간
구조 연속적, 선형적 반복적, 중첩적, 순간적
기능 사건의 흐름 전달 정서의 밀도 형성
시적 효과 시간적 정보 제공 시간의 질적 체험 제공
5) 결론
서정시는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정서와 기억, 감각의 농도 속에서 다시 구성한다. 시제는 이러한 서정적 시간 체험을 문법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이며, 시는 그 안에서 찰나를 영원처럼 머무르게 한다.
서정시와 현재시제
서정시는 현재시제를 선호한다. 이는 단순한 시간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서정시의 본질인 ‘지금–여기’의 정서적 현존을 구현하는 언어적 태도와 관련된다.
1) 현재시제의 기능
현재시제는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감정과 인식의 순간을 고정시키는 문법적 장치이다. 서정시에서 현재시제는 말하는 자아(화자)가 지금 이 순간에 어떤 감정이나 체험에 몰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제 선택은 독자가 화자의 정서적 상태와 직접적으로 접속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예시:
“나는 너를 생각한다 / 바람은 창을 흔든다”
→ 이 현재시제는 지금 여기에서의 정서적 현존을 강조한다.
2) 서정시의 본질과 현재성
서정시는 정서의 응축된 표현이며, 이 정서는 항상 현재의 순간에서 발생한다. 설령 과거의 사건이나 기억을 다루더라도, 시는 그것을 지금-여기의 정서로 소환하여 말한다. 현재시제는 시적 자아의 몰입된 감정, 순간적 직관, 존재의 현전을 언어로 고정하는 도구이다.
3) 현재시제의 시적 효과
정서의 즉시성: 감정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느껴지고 있음을 보여줌
공감의 강화: 독자가 시적 순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부여함
시간의 응축: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한 순간을 영원처럼 응축함
존재의 환기: 하이데거의 사유처럼, 시에서의 현재는 존재가 드러나는 자리이다.
4) 요약 정리
항목 내용
사용 이유 감정의 현재성, 정서의 몰입을 드러내기 위해
기능 시적 자아의 감정 상태를 지금–여기에서 현전하게 함
효과 정서의 즉시성, 독자와의 감정적 동시성, 시간의 정지 효과
관련 사유 하이데거의 존재 현전, 서정적 시간의 내면화
5) 결론
서정시는 현재시제를 통해 감정과 정서를 지금 이 순간에 생생하게 현전시키며, 이를 통해 독자는 시적 자아의 내면에 깊이 접속하게 된다. 현재시제는 서정시가 찰나를 붙잡아 영원화하는 미학적 장치이자 존재의 시적 형식이다.
2. 순간형식과 완결형식
(예시: 최두석 「대꽃 8」)
1) 순간형식
한 순간의 이미지나 감정이 응축되어 펼쳐지는 시적 구조를 말한다. 최두석의 「대꽃 8」에서는 시위대가 바리케이드 앞에서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극적인 한 순간이 시의 중심에 자리한다.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라는 구절은 삶과 죽음의 경계, 찰나적 희생과 그 숭고함을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이 장면은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와 충격 속에 정서가 밀도 있게 응축된, 전형적인 순간형식의 시적 구성이다.
2) 완결형식
정서나 사건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전개되어 의미의 귀결에 도달하는 시적 구조를 말한다.
「대꽃 8」은 단지 한 장면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시위대의 출정 → 외침 → 총격 → 쓰러짐 → 대꽃 개화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서가 전개된다. 이 흐름 속에서 시적 자아는 죽음을 통해 피어난 꽃, 곧 희생을 통한 진실의 드러남이라는 상징적 결론에 도달한다. 이는 서정시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정서의 이행과 인식의 전개를 통해 완결성 있는 진술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3) 적용 요약
구분 순간형식 완결형식
시적 장면 총탄에 쓰러지는 순간의 이미지 시위의 시작부터 대꽃이 피기까지의 흐름
정서 처리 찰나의 충격과 숭고함의 응축 희생의 의미화, 정서의 귀결
시적 효과 한 순간의 정서적 강렬함 역사적 사건의 상징화와 서정적 승화
4) 결론
최두석의 「대꽃 8」은 순간형식과 완결형식을 동시에 갖춘 시로, 바리케이드 앞에서의 쓰러짐이라는 찰나를 통해 정서의 극점을 드러내고, 그것이 대꽃 개화라는 상징으로 귀결되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시는 이처럼 한 순간의 정서를 응축하면서도 그 정서를 시간 속에서 의미화하며 서정적 깊이를 형성한다.
3. 현재시제의 두 양상
서정시는 현재시제를 통해 정서를 구현한다. 그러나 현재시제는 단일하지 않고, 시의 맥락에 따라 ‘역사의 현재’와 ‘무시간성’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분화된다. 이는 각각 시간의 감각을 현재로 끌어오는 방식과 시간 자체를 정지시키려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대조되며, 시적 시간 인식의 깊이를 보여준다.
⑴ 역사의 현재
과거의 사건이나 정서를 현재시제로 표현함으로써, 시적 체험을 지금-여기에서 다시 살아내는 방식이다.
㈎ 지속의 시간
과거의 사건이나 감정이 단절되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를 분리시키지 않고 지속으로 느끼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 가운데 행위를 마치 현재의 것으로 말함으로써 그 행위의 생생함을 고조하는 문학적인 방법
예시: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시인의 시간의식이 불분명해서라기보다 발화내용의 현실감을 주기 위해 과거 사실을 현재 사실처럼 표현한 예술적 의도에서 나옴
㈏ 시간의 모호성
과거인지 현재인지 불분명한 시간 표현을 통해 정서가 흐르는 시간 안에서 혼융되는 구조이다.
예시: 김소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 제목은 과거를 가리키지만, 본문의 어조는 지금 깨닫고 있는 정서적 감각을 담는다.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라는 현재의 진술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감정의 상태를 드러내며,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정서에 따라 뒤섞이고 흐릿해지는 서정적 시간이 된다.
⑵ 무시간성
시적 언어가 시간을 지우거나 정지시켜, 정서와 이미지가 영원처럼 머무는 공간을 형성하는 방식이다.
㈎ 시간의 공간화
무시간성이란 진리라든가, 이념 또는 무의식의 세계나 영원 법열의 순간같이 시간개념을 적용하기 어렵거나 시간의식을 초월한 상태를 가리킨다.
㈎ 시간의 공간화
시 속 세계가 시간에 따라 흐르지 않고, 정지된 장면들로 병치되며 공간적으로 제시되는 방식이다. 이는 시적 자아의 내면을 시간이 아닌 이미지의 병렬적 전개를 통해 구성하는 시적 전략이다.
예시: 이상 「오감도 시제11호」
그사기컵은내해골과흡사하다.내가그컵을손으로꼭쥐었을때내팔에서는난데없는팔하나가접목처럼돋히더니그팔에달린손은그사기컵을번쩍들어마룻바닥에매어부딪는다.내팔은그사기컵을사수하고 있으니산산이깨어진것은그럼그사기컵과 흡사한내해골이다.……그러나내팔은여전히그사기컵을 사수한다.
* 분석
시는 시간의 선형적 흐름을 따라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편화된 이미지와 감각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며, 심리적 긴장과 내면의 분열이 ‘팔’과 ‘사기컵’이라는 상징적 사물로 시각적으로 배열된다. ‘접목처럼 돋힌 팔’, ‘사기컵을 메어부딪는 손’, ‘해골과 흡사한 사기컵’ 등 각각의 장면은 감정이나 사건의 흐름 속에서 진행되기보다는, 고정된 심상들이 공간처럼 펼쳐져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 구절 “내 팔은 여전히 그 사기컵을 사수한다”는 반복적 현재진술로, 시적 자아가 시간 속에 있지 않고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자기 분열, 자기 동일성의 흔들림이 사건보다 형태와 이미지로 드러나는 구조다.
* 시간의 공간화적 특성 정리
요소 구현 방식
이미지 병치 팔, 사기컵, 해골, 백지 등 시각적 상징들의 단절된 나열
정지된 구조 행위가 진행되기보다는, 감정적 충돌이 이미지로 고착됨
내면의 공간화 자아의 분열과 불안이 시공간이 아닌 내면의 무대에서 일어남
시제의 역할 과거형과 현재형이 혼재하지만, 사건은 진행되지 않고 반복되며 고정됨
* 결론
이상 「오감도 시제11호」는 시간의 선형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파편적 이미지와 내면적 심상의 병치를 통해 ‘시간의 공간화’를 구현한다. 시 속 사건은 진행되지 않고, 고정된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자아의 분열과 내면의 갈등을 형상화한다. 이 시는 무시간적 서정의 극단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 묘사의 무시간성
시 속 대상이 현재시제 혹은 시적 묘사를 통해 정지된 상태로 고정될 때, 시간은 사라지고
시는 순수한 이미지와 감정의 응축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무시간성은 정서의 잔존이나 침묵의 공명을 표현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예시: 장서언 「고화병」
고자기 항아리
눈물처럼 꾸부리진 어깨에
두 팔이 없다.
파랗게 얼었다.
늙은 간호부처럼 고적한 항아리
우둔한 입술로 계절에 이그러진 풀을
담뿍 물고,
그 속엔
한 오합 남은 물이
푸른 산골을 꿈꾸고 있다.
* 분석
이 시는 시제상 현재형 혹은 시적 상태 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고 멈춰 있다. ‘고자기 항아리’는 의인화된 몸처럼 서 있으며, 그 안의 ‘물’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꿈꾸고 있는 듯한 정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눈물처럼 꾸부리진 어깨”, “파랗게 얼었다”, “늙은 간호부처럼 고적한 항아리” 등 모든 묘사는 행위가 아닌 상태의 지속이며, 이 정지는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정서의 침전, 혹은 감정의 고요한 잔존이다. ‘한 오합 남은 물’은 생의 잔여물이자 감정의 흔적이다. 그것이 “푸른 산골을 꿈꾸고 있다”는 표현은 현실이 아니라 정지된 내면의 풍경, 기억과 감정의 조용한 울림을 시각화한 것이다.
* 무시간적 묘사 특징 정리
요소 구현 방식
현재시 묘사 대상은 움직이지 않고, 정지된 상태로 조용히 관찰됨
시간의 정지 항아리, 물, 풀 등 모든 요소가 시간 밖에 놓인 이미지로 제시됨
정서의 침묵 말보다는 감각과 기호, 상징적 잔여물로 감정이 표현됨
꿈과 잔존 물이 ‘푸른 산골을 꿈꾸는’ 모습은 행위가 아닌 감정의 여운으로 남음
* 결론
장서언의 「고화병」은 시제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지 않고, 감정이 응고된 이미지들을 정지된 묘사로 병치함으로써 ‘묘사의 무시간성’을 구현한다. 시적 자아는 대상과 감정을 분리하지 않고, 시간 없이 존재하는 풍경 속에서 감정의 흔적을 조용히 응시한다. 이는 감정의 침묵, 이미지의 응축, 시간의 삭제를 통해 구현된 고요한 서정의 한 형식이다.
㈐ 영원한 현재
‘영원한 현재’는 서정적 시간의 또 하나의 의미심장한 양상이다. 서정시가 정서와 사상의 융합이라고 정의할 때 정서는 순간적이지만 사상은 초시간적이다. 그래서 서정적 시간은 영원한 현재로 기술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앞의 ‘역사적 현재’와는 구별된다.
예시: 조병화 「의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 주듯이
*분석
이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점 부분은 시간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다. 먼 옛날 선조들이 내게 물려 주었듯이 나도 후손에게 “의자”를 물려주겠다는 나의 의지가 “주듯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보아 의자를 자기에게 물려 준 것은 과거이므로 “주듯이”란 ‘주었듯이’의 오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가 표상하는 바의 ‘세대 교체’라는 자연의 섭리는 하나의 진리요, 이념으로서 시간을 초월해 영원을 지향하는 무시간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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