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아직 반쯤밖에 채워지지 않은 교실은 예상과 달리 조용했다.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걷어 올리는 재미로 학교로 온다는, 코를 벌렁거리는 버릇을 가진 해룡이도 웬일인지 짝꿍하고 조용히 키득거리고만 있었다. 깜돌이라는 별명을 가진 재수도 앞에 앉아있는 만호의 등을 연필로 콕콕 찌르며 끽끽댈 뿐, 참으로 수상한 분위기였다. 이때쯤이면 온 교실의 의자가 뒤집어지고 책상은 삐뚤빼뚤, 술래잡기하랴, 모가지를 잡고 조르랴, 야단법석이어야 할 교실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리에 앉아 찧고 까불뿐, 어딘가 평소와 달랐다.
"야, 교장선생님이 오셨다 가셨어? 아니면 담임?"
아직 끝내지 못한 일기 숙제를 베껴 쓰던 정임은 턱으로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고 있는 소년 위로 무지개가 보였다. 소녀 보다 두서너 살은 더 위라는데, 어찌 우리 4학년 반에 와 있을까? 소녀는 못 본 척 슬그머니 눈길을 돌렸다. 가슴이 뛰고 양쪽 볼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한편으론 소년의 기세에 눌려 꼼짝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우습기도 했다. 두서너 살 위, 깍듯이 형으로 모셔야 할 소년의 출현에 깜돌이와 벌렁이조차 제압당했을까? 소녀는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급 아이들이 마을별로 속속 도착했다. 교실로 들어서던 아이들도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저희들끼리 속닥이며 구석 자리에 앉은 두부 파는 소년을 흘끗거렸다. 담임선생님이 출석부와 대나무 뿌리로 만든 회초리를 들고 들어왔다.
"개학날인디 왜케 조용들 하디야? 인자서 하지 못한 숙제들 하는 것은 아닌겨?" 선생님은 회초리로 교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몇몇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켰고 몇몇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야, 서용수, 이리 나와 봐"
두부 파는 소년이 엉거주춤 교단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들, 서용수 알지, 모르는 놈들 있으면 손 들어봐."
아이들 서, 너 명이 기죽은 모습으로 손을 들었다.
"저기, 저 윗마을 서퍼멀에 사는 서용수여. 너들보다 세 살이나 많은 형인께 깍듯이 모셔라. 용수가 전학 오는 통에 쉬느라고 나이와 같은 학년에 올라갈 수가 없었디야. 하여 너희들과 같이 공부하게 되었으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갈켜 주고 사이좋게 지내라잉."
선생님의 장황한 소개가 끝나자, 두부 파는 소년이 아이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서용수라고 혀요. 앞으로 잘 부탁헐팅게 사이좋게 지내유."
아이들은 쭈뼛거리면서 박수쳤다. 그의 출현이 달갑지 않은 아이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소녀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박수쳤다. 짝꿍 정임이 소녀의 손을 끌어 내리고서야 박수를 멈출 수 있었다. 자신의 박수 소리를 알아챘을까? 소녀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연필심에 침을 잔뜩 묻혀 '서용수'란 이름을 몇 번이나 노트에 굵게 썼다. 정임이 소녀의 노트를 기웃거렸다. 소녀는 붉어진 볼을 부비며 잽싸게 노트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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