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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2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by thetraveleroftheuniverse 2025. 2. 6.

<2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2편>  원스 어폰 어 타임 – 한 소년을 추억하며

 

 

 

 

 

"땡그랑 땡그랑"

두부 파는 소년의 종소리가 땅거미를 타고 메아리쳤다. 오두막 지붕 위, 굴뚝을 타고 밥 냄새를 품은 뽀얀 연기가 나붓댔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담장너머 골목마다 똬리를 틀었다. 아이들이 종종거리며 내달렸다.

"두우부, 두우부"

종소리 뒤로 소년의 두부라는 외침이 날개짓을 하며 저녁 하늘로 퍼져나갔다. 소년의 목소리는 힘차고 당당했다. 소년의 목소리가 붓질이라도 했을까? 소녀의 양 볼이 저녁노을처럼 붉어갔다. 소녀는 코스모스 꽃잎을 먹고 있는 창호지 문을 배깃이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열린 문틈으로 소년의 목소리가 방안으로 스며들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소녀는 나지막이 두우부, 두우부소년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소년은 윗마을 이장네 머슴인 서 씨의 아들이었다. 서 씨는 이장네 헛간에 방을 내고 식구들을 들였고 온 가족은 두부를 만들고 파는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서 씨 가족이 두부 장사를 하기 전에는 시꺼멓고 키가 큰 아저씨가 하루에 한 번, 저녁나절에 두부를 팔러 마을에 들르곤 했다. 모락모락 아직 숨이 채 가시지 않은 두부를 사는 날엔 늘 한두 가지 두부 요리가 상에 올라왔다. 된장국이나 김치찌개의 두부 몇 쪽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아저씨의 목소리와 소년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던 날도 있었다. 노련하고 우렁찬 아저씨의 목소리에 묻혀 소년의 '두우부 두우부' 소리는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다. 마을 엄마들은 낯선 목소리를 알아채고 아저씨의 것보다 소년의 두부를 사기 시작했다. 어색하고 처량했던 소년의 목소리는 점차 크고 당당해져 갔다. 저녁노을에 물든 소년의 목소리가 땅거미에 묻혀 사라지면 소녀의 가슴 한쪽이 아릿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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