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 <질 들뢰즈의 존재론: 죽음 본능과 창조적 파괴의 철학>
[원 문장]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중 “질 들뢰즈의 존재론 새로 읽기” 김재인 씀
“리비도를 에너지로 갖는 워킹 머신이 우주의 생성에 필연적 요소이듯이, 죽음 본능 또한 필연적 요소라는 거예요. 사랑과 죽음이 함께 하죠. 작동의 한 계기로서, 생성의 한 단면으로서 죽음이 끼어든다는 거예요.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파괴의 욕망으로 머루르게 되죠. 전쟁이나 파시즘이 그거예요.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것이 해체되어야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예술이 대표적이에요.”
나의 문장)
이 문장은 질 들뢰즈의 존재론을 기반으로 삶과 죽음, 생성과 파괴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핵심적으로, 리비도라는 에너지가 우주 생성에 필연적인 요소인 것처럼, 죽음 본능 역시 필연적인 요소로 작동한다고 말이다. 여기서 리비도는 삶의 욕망이나 창조적 에너지로 이해되며, 죽음 본능은 파괴적이거나 소멸적인 경향을 지칭해.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하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작동하면서 생성의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죽음이 함께 한다’는 표현은 삶의 작동 원리 안에서 이 두 가지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들뢰즈는 죽음을 단순히 끝이나 소멸로 보지 않고, 생성의 과정 안에 내재한 한 단면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죽음은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 본능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면 파괴의 욕망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이는 전쟁이나 파시즘 같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죽음 본능이 항상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구조가 해체됨으로써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이러한 창조적 파괴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예술은 기존의 틀을 허물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서 죽음과 생성의 역동적인 관계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질 들뢰즈의 관점에서 사랑과 죽음, 생성과 파괴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론적 과정 안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필연적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의 죽음 본능에 대한 관점을 다른 철학자들의 죽음 철학과 비교해 보았는데 몇 가지 독특한 특징으로 차별화된다. 이는 주로 들뢰즈가 죽음을 고정된 실체나 부정적인 종말로 보지 않고, 생성의 과정 안에 내재된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계기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1. 프로이트의 죽음 본능과의 차별화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타나토스)을 삶 본능(에로스)과 대립하는 파괴적이고 소멸적인 경향으로 보았다.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을 모든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무생물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으로 설명하며, 이는 억제되고 통제되어야 할 부정적 충동으로 여겼지만 들뢰즈는 이러한 죽음 본능을 부정적인 파괴 충동에만 한정하지 않고, 삶의 생성 과정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산적인 계기로 보았다. 그는 죽음을 삶과 분리된 대립 항목으로 보지 않고, 생성과 변형의 동력으로서 이해했다.
2. 하이데거의 죽음 철학과의 차별화
하이데거는 죽음을 "존재의 유한성"을 깨닫고, 이를 통해 진정한 자아와 실존의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로 보았다. 죽음은 개인이 자기 존재를 초월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본질적 경험으로 중심화되었지만 들뢰즈는 죽음을 개별적이고 실존적인 체험으로 보지 않는다. 들뢰즈에게 죽음은 유한성을 깨닫는 주체적 사건이라기보다, 생성의 리듬과 흐름 안에 포함된 하나의 계기다. 그는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에, 죽음은 하나의 종말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형의 일부로 이해된다.
3. 니체의 영원회귀와의 차별화
니체는 죽음을 극복해야 할 초월의 문제로 보았다. 그는 영원회귀의 사상을 통해 삶과 죽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과정으로 이해하며, 이를 긍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음은 강한 자에게 극복되고 긍정되어야 할 삶의 일부분였지만, 그러나 들뢰즈는 니체의 영향을 받았지만, 죽음을 극복하거나 긍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생성의 리듬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순간으로 간주했다. 죽음은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변형과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잠재적 계기다.
4. 사르트르 및 실존주의와의 차별화
실존주의는 죽음을 개인의 실존적 불안과 선택의 문제로 다루며,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직면하고 자유를 재발견하려 했지만 들뢰즈는 죽음을 개인적 실존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는다. 그는 주체의 실존적 경험보다는 생성의 흐름 속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죽음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전체적인 생성과 변화의 조건으로 다룬다.
5. 들뢰즈의 창조적 파괴로서의 죽음
들뢰즈는 죽음을 단순히 부정적 상태로 이해하지 않고, 기존의 구조나 체계를 해체하여 새로운 것이 탄생하도록 만드는 창조적 계기로 본다. 그는 예술, 철학, 사회적 변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죽음의 역할이 창조성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기존의 것을 완전히 무너뜨릴 때만 새로운 것이 가능하다는 그의 관점은 다른 철학자들이 주로 죽음을 제한적이고 종말적인 개념으로 보는 것과 다르다.
즉 들뢰즈의 죽음 본능 철학은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주체 중심으로 해석하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죽음을 생성, 창조, 변형의 필수적인 계기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그는 죽음을 삶과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파괴와 생성이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적 존재론적 틀을 제시한 셈이다.
이처럼 들뢰즈의 관점을 빌려 자신의 죽음 본능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죽음을 단순히 종말로 보지 않고 변화와 생성의 필연적 계기로 간주한다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파괴적 충동을 억압하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이를 관찰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죽음 본능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숙고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들뢰즈가 강조한 것처럼, 파괴는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 더 이상 의미가 없거나 억압적인 요소를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외부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익숙한 습관을 점검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인간관계나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와 경험을 시도하거나, 예술과 글쓰기, 음악 등 창조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죽음 본능을 표현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
삶의 리듬 속에서 죽음 본능과 조화를 이루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태도다. 죽음을 생성의 리듬 속 하나의 계기로 바라보며, 변화와 종말의 순간들을 수용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배움과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패나 상실 같은 경험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성장의 계기를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자신의 삶에서 죽음 본능이 지니는 의미를 주체적으로 정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삶을 재구성하거나 창조적 가능성을 탐구할 동기를 제공하며, 삶에서 중요한 목표를 새롭게 설정하거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
들뢰즈가 예술을 창조적 파괴의 대표적인 예로 든 것처럼, 자신의 죽음 본능을 예술적 방식으로 표현하고 탐구하는 것도 유익하다. 예술 활동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내면적 갈등과 창조적 에너지를 구체화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림, 글쓰기, 음악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를 통해 내면의 파괴적 에너지를 생산적인 결과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들뢰즈의 죽음 본능 철학은 내면의 충동을 억누르거나 부정하기보다는 창조와 변형의 계기로 활용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삶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흐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 본능을 이해하고 그것을 삶의 새로운 의미와 창조적 동력으로 전환할 때, 보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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