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사건과 한국전쟁 시기의 국가폭력을 다루며, 역사적 비극과 그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몽환적이고 시적인 산문으로, 역사적 대참사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서사를 펼친다. 나는 소설 속 두 인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인선에게
안녕하세요, 인선님?
당신이 견뎌온 날들, 그리고 살아내고자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며 숨죽여 당신을 바라봤습니다. 당신이 지나온 길 위에는 고통과 상처, 부재의 무게가 짙게 깔려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당신은 스스로를 잃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삶, 목표를 향해 살아갔더군요. 세대를 연결하는 그리움과 기억은 당신을 지키는 동시에 당신을 무겁게 짓누르는 족쇄 같았겠지요. 사라진 사람들과의 작별은 결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의 삶이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작별할 수 없기에 그들의 존재는 더욱 선명하게 당신 안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글 속에서는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당신의 아픔은 단순히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라, 시대와 역사,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어진 공통의 상처였지요. 저는 당신을 만나기 전, 어렴풋하게 알았던 그 고통에 무심했습니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지, 이제 역사 속에서 그런 일들은 다시 반복되지 않겠지, 따위의 생각들로 저는 변명하기도 했답니다. 어쩌면 제 일상에 어둠으로 드리우게 될 사실 앞에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만남으로써 어느 정도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금씩 허물을 벗기며, 실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속성 중에 그 잔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 어쩌면 그것이 잔혹함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탓해야 할까요? 물론 이는 단순한 답변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할 주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선!
당신의 내면에는 탓하는 마음보다 깊은 상처만큼이나 깊은 연민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사랑이 당신을 살아가게 하고, 당신이 살아온 길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당신이 품고 있는 고통과 상처마저도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모습에 시렸던 제 마음, 탓했던 제 마음, 부끄러웠던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정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고민 속의 치열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솟구쳤습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마지막 저의 투혼이기를 빌어봅니다.
인선,
부디 이 편지가 당신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당신의 길, 저와 우리 모두의 삶의 길 위에 평안을 빌며,
한 독자가.
경하에게
안녕하세요, 경하님!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당신은 인선의 삶을 바라보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그 고통에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체감했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인선 곁에 머물며, 어쩌면 혼으로나마 나타났을지도 모를 친구 인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구로서 당신이 인선과 나눈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느낀 고통과 연대는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당신의 마음 속에도 상처와 흔적이 깊게 남았을 테지만, 인선의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려 한 당신의 용기에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헤매는 인선의 곁에 당신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친구란 단순히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끌어안으려는 존재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하,
당신의 글과 목소리는 인선의 고통을 기록하고 전하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 다리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그의 삶뿐 아니라, 그가 속해 있던 세상과 역사를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눈길이 없었다면 우리는 인선의 이야기를 온전히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사라지지마”라고 인선의 혼에게 말하던 당신의 목소리가 아직도 웽웽거립니다. 아마 오랫동안 메아리로 저에게 반복되겠지요. 부디 인선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얻은 감정과 깨달음이 당신에게도 위로와 힘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당신 역시 저의 곁에서 소중한 의미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었군요.
당신의 목소리가 제게 메아리치는 동안, 저는 당신이 품었던 질문들과 감정들을 되새기게 됩니다. 인선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던 당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신 자신도 얼마나 깊은 상처를 마주했는지 압니다. 그러나 그 상처들이 당신의 내면에 새긴 흔적들은 단순히 아픔으로만 남지 않았을 겁니다. 그것들은 인선과의 연대, 어쩌면 미래의 수많은 독자들과의 연대를 꿈꾸며 인선을 향한 사랑과 공감의 증거로, 취약하기 때문에 연대할 수밖에 없는, 우리 안에 자리 잡을 수 있겠지요.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인선과 나누었던 시간 속에서 당신이 얻은 것들은 단순히 기억이나 감정 이상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의 삶에 새로운 시선을 열어 주고, 우리가 각자의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연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경하, 당신의 이야기는 단지 인선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모두에게 인선과 역사 속의 고통받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할 수 있을지를 묻는 목소리처럼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그러했듯이, 우리 또한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마주함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더 인간답게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부디 당신의 삶 속에서도 그 모든 순간들이 작지만 빛나는 위로가 되었듯, 당신이 품었던 마음들은 결코 헛되지 않게, 당신의 이야기가, 그리고 인선과 나눈 시간이 당신에게,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당신의 깊은 마음에 감사하며,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친구였으며 역사의 증언자가 된 당신에게 갈채를 보냅니다.
어정쩡한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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