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3] 4기 김은
[원 문장] 변광배(철학아카데미 지음),『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중 장 폴 사르트로, 타자를 발견하다
“사르트르는 이처럼 나와 타자 사이의 구체적 관계들은 모두 실패로 끝나기에 우리들은 시선을 매개로 ‘응시하는 존재-존재’에서 ‘응시당하는-존재’로서의 ‘강등’, 또 역으로 ‘응시당하는-존재’에서 ‘응시하는-존재’로의 ‘승격’의 악순환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 역시 인간은 ‘무용한 수난’이라는 사르트르의 정의에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문장)
인용문의 사르트르가 말하는 '무용한 수난'은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찾고자 하지만 인간은 결코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찾지 못한다는 의미로 인간 존재의 비극적 상황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존재이고, 인간 존재의 근거가 고정되어 있다면 인간의 자유와 지속적인 자기 창조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근거가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당나귀가 앞으로 가면 당근도 함께 움직여 결코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존재 근거를 영원히 추구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인간의 삶의 일면을 당근을 쫓는 당나귀에 비유하며 이는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근거지으려는 노력이 결국 헛되다는 인간의 실존적 딜레마를 거론한다. 이러한 '무용한 수난'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자유의 대가라며 사르트르는 ‘인간의 삶’에 인간의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결국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인 '무용한 수난'에 덧붙여 ‘무용한 정열’이라는 어구를 함께 끌어낸다.
‘무용한 정열’이란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무용한 수난'은 그 추구의 불가능성과 그로 인한 고통을 강조하는 반면 '무용한 정열'은 추구의 과정에서의 인간의 능동성을 강조한다.
이렇듯 '무용한 정열'과 '무용한 수난'은 사르트르의 철학의 핵심 주제로 이러한 인간 실존적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실존주의적 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자 하는 '무용한 정열'에 몰두하지만 결국 궁극적인 답을 찾지 못하는, 개인의 자아실현 과정에서 겪어내야만 하는 '무용한 수난'을 통해 겪어내야만 하는 좌절과 불안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더불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AI 시대의 인간 소외 현상은 '무용한 수난'의 한 형태이겠고 이러한 기계화된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무력감에 직면하게 될까? 생각만 해도 혼란스럽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이란 개념을 통해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의 무용한 수난과 무용한 정열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앙가주망이란 인간이 사회, 정치 문제에 관계하고 참여하면서 자유롭게 자기의 실존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이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고 그 상황을 변경하거나 유지 또는 고발하기 위해 행동하기로 결심하는 태도를 지닐 것을, 즉 인간들은 직접 사회에 참여하여 조금씩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자기 선택의 폭과 행위의 범위를 확장시키며 개인의 앙가주망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 전체에 대한 책임에 이를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것은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자기를 해방시켜라'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윤리학의 궁극적 목적이자 모토이며 특히 지식인의 앙가주망이 사회적 모순을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우리의 '무용한 정열'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사르트르의 ‘무용한 수난’, ‘무용한 정열’, 앙가주망이란 개념들은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고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겠다.
새벽의 어둠이 서서히 물러나는 이 시간, 나는 사르트르의 철학을 한 꼭지 읽으며 인생이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는 말이 새삼 와닿는다. 우리의 삶이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 속에서 자유와 책임을 동시에 짊어지는, 당나귀가 당근을 쫓지만 결코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아 헛된 노력을 계속하는 이러한 '무용한 정열'과 '무용한 수난'의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앙가주망'을 통해 적극적으로 세상에 참여하고 행동하는 주체적이면서도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신에게 더욱더 정직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러한 삶이야말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윤리적이고 실존주의적인 삶의 본질이 아닐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은근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곧 선명한 아침이 찾아들 것이고 내 의식 또한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로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살아있는 이 순간이 축복이고 기쁨이고 내 존재의 근거 이유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오늘 하루를 '앙가주망'의 정신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한다. (끝)
20241128
#나의백일프로젝트
#프로젝트
#책강대학
#인생성장학교
#문장공부
#백일백문장
#처음읽는프랑스현대철학
#동녁
#변광배교수
#타자
#일자
#포스트모더니즘
#사르트르
#존재와무
#존재
#타자론
#무용한열정
#무용한수난
#앙가주망
#국립군산대학교
#군산대철학과
#lettersfromatraveler
'4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23학번 대학 새내기의 분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리스 메를로-퐁티 들어가기 (0) | 2024.12.01 |
---|---|
여하튼 사르트르를 덮으며 (0) | 2024.11.29 |
당신은 나의 새로운 가능 세계를 열어주는 존재 (0) | 2024.11.27 |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애와 사상 (0) | 2024.11.26 |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독후감 (0) | 2024.11.26 |